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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지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 약사 아미티스의 가게는 오는 사람 없이 한산했다.

 매년 봄마다 마을에서 열리는 체육대회에 필요한 응급약을 조제하느라 지난 몇 주 동안 밤을 샜지만, 대회가 끝나고 난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

 다만 밖에 나가 활동하기도 좋은 봄날이라 사냥꾼이나 모험가 파티 몇이 종종 들어와 회복약을 찾았으나 그때마다 조제하고 남은 응급약들을 마법 해독제와 함께 꺼내면 되었다.


 가게 서쪽에 크게 선 마을회관에 해가 가려지자 시계 종이 울리며 6시를 알렸다. 가게를 정리하고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미티스는 수입을 정리하고 자리만 치울 뿐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아직 찾아올 손님이 하나 있었다.


"누나!"


 나무로 된 가게문이 끽 열리며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법한 나이의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숨이 차 보이는 남성은 엘프인 아미티스와는 외형이 조금 달랐다.


"왔어?"


"죄송해요, 도서관이 늦게 끝나서."


"괜찮아, 괜찮아. 어머머, 그렇다고 여기까지 뛰어온 거야?"


 이마에 땀이 맺힌 남성을 향해 아미티스가 방금 닫았던 냉장고에서 음료를 하나 가져와 건네주었다.


"자, 시원한 거 하나 줄게."


"감사합니다."


"무리하지 말라니까. 여기서 도서관까지 멀지 않아?"


"여긴 너무 엘프한테 다 맞춰져 있다니까요. 제 체력으로는 너무 멀어요."


"후훗, 이시(Issy) 넌 인간이니까."


 '이시'(Issy)는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인간인 도서관 사서 이사도어(Isadore)의 애칭이었다. 올해로 21살이 되는 이사도어였지만 아미티스를 비롯한 엘프들은 아직까지도 그를 어린아이 이름 같은 '이시'로 부르기를 고집했다. 사실 인간보다 몇 배 더 긴 수명을 가진 엘프들이 이사도어를 아직도 꼬마아이처럼 보는 건 어쩌면 당연하기도 했다.


"그래도 누나랑 오랜만에 보는 건데 늦고 싶지는 않았어요."


"확실히 오랜만이지. 사실 누나한테 상담해달라고 한 것도 오랜만이잖아?"


"그렇네요.."


"혹시 그 일이랑 관련된 거니? 한 닷새 쯤이었나, 그동안 마을에서 사라졌었잖아. 얘기도 없이. 나중에 얘기해준다고만 해놓고서."


"....."


 이사도어가 말 대신 아미티스에게 받아든 음료를 들이켰다.

 음료수를 삼키고 짧게 한숨을 내뱉는 그의 표정은 한눈에 봐도 어두워 보였다.


"엘프 중에 칼리아라고 아시죠?"


"응, 알지. 너랑 많이 친했잖아. 혹시 싸웠니?"


"......비슷해요."


 이사도어가 음료수를 마지막으로 들이키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되짚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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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리아.

 마을에서 촉망받는 엘프 마법사인 그녀는 이사도어가 태어났을 때 이미 마법을 배우고 있었고 그녀가 다니는 마법 학교가 인간 학교와 가까웠던 탓에 이사도어가 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둘은 자주 마주치는 사이였다.


 소년 이사도어는 천재적으로 마법을 다루는 칼리아를 졸졸 따르며 그녀와 친해졌으나 칼리아는 꽤나 도도한 성격이라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길 부끄러워했고 그것은 종종 심술로 표현되기도 했다.

 새로운 마법을 연습할 때마다 칼리아는 과자나 예쁜 꽃 따위를 미끼로 이사도어를 불러내 피실험체로 삼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날이면 그녀 마음대로 짓궂은 장난을 치고는 당황하고 놀라는 이사도어의 표정을 지켜보며 기분을 풀곤 했다.


 그렇지만 엘프와의 힘 차이였는지 아니면 칼리아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인지 어린 이사도어는 그녀를 거부하지 않았고 칼리아도 자연스레 그를 자기의 애완동물 내지는 하인 삼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 짜증나. 키리에 선생 오늘 남친이랑 헤어졌나, 왜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트집을 잡지?"


"그..누나.. 저 팔 아파요.."


"남자잖아, 과일 들고 있는 것도 못 버텨?"


"근데 이게 마법이랑 무슨 상관.. 아윽!"


"보면 몰라? 인챈트된 과일이 인간 손에 닿으면 어떻게 되나 알아보는 거잖아."


"처음 들어봐요.."


"쯧, 겨우 인간밖에 안 되니까 모르지. 바나나 하나 까서 줘 봐."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순전히 노예 취급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사도어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거기 서 봐."


"이번엔 무슨 마법이에요?"


"...마법 아냐."


"으익..!"


"가만히 있어."


"제 배는 왜.. 아읏, 손 위로 올리지 마세요!"


"왜?"


"그냥, 기분이.. 이상하다구요."


"지금 내 말을 거역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근데 이걸 왜 하는 거에요?"


"응? 그건… 어.. 인..간! 그래, 인간의 몸을 조사하는 거지. 그것도 몰라? 멍청하긴."


 언제부터인가 칼리아의 눈은 이사도어의 몸을 향해 있었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의 몸을 만지거나 옷을 빌려가는 날이 잦아졌던 것이다.

 말이 빌려가는 것이지 실은 예고도 없이 그냥 가져가버리는데, 1시간도 안 되어 돌려주기도 하고 일주일 가까이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불쑥 돌려주기도 하는 것이 대체 어디에 쓰는지 그도 모를 지경이었다. 5년 전쯤 마을 체육대회에 나갔을 때 썼던 운동복은 그날 저녁에 사라져 지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 소년 이사도어는 멍청하도록 순수했다.


 사춘기가 들며 이사도어도 가까운 이성 칼리아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었고 그녀가 아무리 자기를 하인 취급해도 첫사랑이라는 콩깍지에 가려져 있었다. 최소한 그녀도 자신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으니 자길 가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너 뭐라고 했어?"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물론 누난 엘프고 전 인간이지만.. 그래도 저 자신 있어요!"


"........"


 칼리아가 당황한 눈빛을 황급히 숨겼고 재빠르게 아랫것 보듯 하는 그녀 특유의 눈빛으로 되돌렸다.


"..너 진짜 웃긴다. 자기 분수도 모르고 설치는 게."


"네..?"


"눈치도 없어? 넌 하인이고 실험체야. 내가 하는 말만 듣고 따르면 된다고. 사랑? 웃기고 있어!"


"....하..하지만.. 전 누나가 저를--"


"착각도 정도껏 해야지. 고작 너 따위가 나한테 고백하면 내가 받아줄 줄 알았어?"


"......."


"무슨 말인지 알았으면 돌아가. 특별히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해줄 테니까, 가서 반성하라고!"


 혼자서 할 말 다 마치고 돌아선 그녀는 방금 전 받았던 예쁜 장미꽃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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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 전 얘기죠. 그때까지만 해도 전 칼리아가 절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내가 보기에는 싫어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아니면 장난감 취급하는 거거나."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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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본심을 알게 된 건 바로 올해 들어서였다.


 학교 졸업 직후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이사도어는 마법 서적을 찾으러 오는 칼리아의 어머니 헤스티아와 자주 만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미 칼리아와 이사도어가 같이 어울리던 모습을 지켜봐온 그녀는 자기를 보고 어색해하는 이사도어와 달리 그에게 꼭 자기 딸의 연인을 대하듯 다정했고 그렇게 터놓은 분위기에서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온 것이었다.


"...발정기요?"


"호호, 내가 말하기도 부끄럽네. 그래도 우리 이시니까 말해주는 거야."


 인간에게는 없으나 엘프 종족에게는 발정기가 있다. 임신 준비가 된 여성 엘프는 아랫배 쪽에 분홍색 하트 모양의 진한 음문을 표시해 발정기임을 알리는데, 옷 몇 겹에 가려져 있어도 옷에 조명이 비치듯 분홍색 빛이 새어나와 모두가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발정기는 엘프마다 나타나는 시기도 다르고 그 유형도 다양하다. 어떤 엘프는 집에서 도구를 이용해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 충분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엘프는 자신의 본능을 참지 못해 누군가를 덮쳐야만 욕구가 채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사도어도 학교에서 들은 지식으로 그걸 알고 있었고 하필 엘프 마을에 사는 탓에 분홍빛 음문이 비치는 엘프와 눈이 마주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엘프들보다 약한 존재이며 쉬운 먹잇감인 이사도어는 그런 엘프들이 보이면 그저 피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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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누나 집에는 왜 왔어? 누나도 엘프인데, 그 시기면 어쩌려고?"


 아미티스가 문 앞에 걸려 있던 'OPEN' 사인을 'CLOSED'로 바꾸면서 말했다.

 다시 이사도어에게 돌아선 그녀의 몸에는 분홍색 빛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저 안 덮치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이사도어가 말을 흐렸다. 평소처럼 밝은 모습의 그였다면 '누나라면.. 괜찮으니까요.'라고 작게 내뱉어버렸을지 모르나 오늘은 아니었다.


"..아무튼 계속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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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은 1~2년에 1번쯤이지만 요즘 들어 1년에 1번쯤 나타난다던 칼리아의 발정기는 헤스티아의 말에 의하면 바로 이틀 뒤부터 시작이었다.


"기간도 있지, 예전에는 길어야 1주일이었는데 한 4년쯤 전이었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보면 2주 가더라고?"


"이걸 왜.. 저한테 말해주시는 건가요?"


"응? 왜냐니? 너도 알잖아."


"네?"


"발정기 내내 네 얘기밖에 안하던걸?"


 그러면서 헤스티아는 지금까지 발정기 기간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발정기가 되면 칼리아는 자기 방에 들어가 마법으로 스스로 욕구를 해결하는데, 4년 전부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욕망을 주체하지를 못하고 신음소리가 방음 마법도 안 먹힐 정도로 커져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좋든 싫든 그녀가 욕구를 게걸스럽게 채워대는 소리들을 헤스티아도 들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밤새도록 칼리아의 방에서 들려오는 말은 계속 '이시는 내꺼'라느니 '결혼결혼결혼결혼' 같은 이야기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사도어가 성인이 되면서 강도가 더 심해졌다. 이사도어가 딱 20살이 되던 작년에는 그가 마치 사냥감이라도 되는 양 반드시 이시를 잡고 말 거라고 벼르던 중 하필 그가 책을 구하러 대도시로 떠나 장기간 마을을 비웠던 5월에 발정기가 오고 말았다.

 결국 발정기 내내 그를 만나지도 못한 칼리아는 자기 방 안에서 온갖 비명소리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이시를 따먹느니 어쩌니 하면서 안달을 내는 통에 부부가 2주 동안 잠도 못 잘 지경이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엘프가 타종족인 인간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발정한다는 게 조금 이상해 부부가 나름 수소문을 해보았고 아는 마법사로부터 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쪽이 들은 사연은 고블린들의 습격으로부터 구해준 인간을 너무도 사랑한 엘프가 자기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다 결국 발정기 때 참지 못하고 인간의 다리를 화살로 쏴버리고는 자기 집에 가두고서 일주일 내내 강간한 결과 속도위반 결혼이 성사되어 7명의 하프엘프 자식들까지 낳고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들은 이사도어는 소름이 돋았다.

 칼리아가 자신에게 품은 감정을 숨겨두고 있었다는 건 둘째치고 만약 발정기 중의 그녀와 마주친다면 마법으로 무슨 짓을 당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저도 칼리아한테…?"


"호호, 뭘 그렇게 걱정하니? 너희들은 이미 얘기 다 됐으니까 걱정하지 마."


"무슨 말이에요 그게! 저한테는 얘기 안 됐어요!"


"어? 너네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 아니었니?"


"네!?"


"칼리아가 맨날 그러던데? 네가 다 크면 자기가 신랑으로 삼아주기로 오래 전부터 약속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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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야?"


 아미티스가 이사도어의 말을 끊었다. 자기도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란 눈치였다.


"당연히 거짓말이죠. 아마 고백했던 일 가지고 과장한 걸 거예요."


"과장?"


"고백했을 때 결혼하자느니 신랑으로 삼아달라느니 얘기한 적은 없어요. 어머니한테 자기랑 약속했다고 거짓말을 했던 모양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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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준비도 안 된 채로 칼리아의 발정기는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칼리아도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이사도어와 마주치고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다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도서관에 찾아와 이사도어에게 책을 찾는 척 하며 은근슬쩍 자신을 어필하는 날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사도어도 오히려 그녀를 무서워하거나 아예 반응해주지를 않으며 그런 날이 이틀이 되고 나흘이 되자 참고 참았던 욕망이 결국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닷새 째 되는 날 오후, 조용했던 도서관 문이 난데없이 쾅 하고 열리고는 옷이며 머리며 다 헝클어진 칼리아가 모습을 드러냈고 다음 이어지는 것은 "이사도어 나와!!!" 하는 그녀의 고함 소리였다.


 다른 엘프들의 힘을 빌려 겨우겨우 쫓아내긴 했지만 그날 이후 칼리아의 몽니는 더욱 심해져 퇴근하는 이사도어를 붙잡고 자기 집으로 끌고가려 하거나 야밤에 집을 찾아와 미친듯이 문을 두드리는 날도 있었다.

 가장 위험했던 날은 칼리아가 이사도어를 생각해서 마지막까지 안 쓰고 있던 마법까지 동원해 만든 최음 포션을 몰래 그가 마시던 음료수에 집어넣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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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때 해독제를 찾았던 거구나?"


"너무 급해서 사정을 말할 시간도 없었어요. 죄송해요."


"괜찮아. 갑자기 확 풀린 표정을 하고 들어와서 안절부절하던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데, 후훗."


"하하.."


 아미티스가 촛불에 불을 당겨 가게 안을 밝혔다. 조금씩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그래도 말 안 하고 갑자기 사라진 건 너무했어."


"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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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이사도어는 집 문앞에 쪽지 하나만 남긴 채 마을을 빠져나왔다.


 이사도어의 집은 마을 바깥쪽에 위치했고 거기서 북쪽으로 산을 넘어 죽 올라가면 인간 마을이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닿을 거리는 아니었지만 가까운 마을에 있으면 쉽게 잡힐 것을 염려한 그는 아예 짐을 단단히 챙겨 다음날 저녁 인간 마을에 도착했다.


 일주일 넘게 칼리아에게 시달린 몸을 이끌고 먼 거리를 걸어와 지칠 대로 지친 이사도어는 그곳에서 외숙모가 운영하는 여관에 들러 자초지종을 설명한 끝에 다행히 방을 하나 얻을 수 있었고 거기서 칼리아의 발정기가 끝날 때까지 숨어서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닷새 동안 마을에서 사라졌던 것은 그런 연유였다.


 그렇게 이사도어는 여관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발정기 열사흘째를 맞았다.


"이제 밤이네.."


 여관 방에서 사흘 정도 숙식하며 어느새 여관 생활에 적응해 있던 이사도어는 이제 자신의 체취가 조금씩 느껴지는 이불을 덮으며 옅게 잠에 빠져들어갔다.

 닫힌 창문 너머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새어들어왔다.


"앞으로는 매년 이래야겠다."


 1년에 2주. 그렇게 짧은 기간은 아니나 먼 곳으로 여행이라도 가는 식으로 이렇게 피하다 보면 칼리아도 다른 남자 엘프에게 눈을 돌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의 해결책을 생각해 내자 이사도어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는 몸을 뒤척이며 긴장을 풀었다.

 옆으로 누운 자세가 된 그의 눈에는 반대쪽 벽에 붙은 옷장이 보였다.


 바람 때문인지 옷장 문이 덜컹거렸다.


"음…"


 그 소리가 거슬리는 듯 이사도어가 일어나 창문을 닫으러 일어났다.



 그러나 창문은 이미 닫혀 있었는데..?



"?!"


 옷장 문이 부서지는 쾅 소리가 들리며 쿠당탕 하고 누군가 굴러떨어졌다.


"히익!"


"하아..하아..하아.."


 순간 몸이 굳었던 이사도어가 겨우 등을 돌려 옷장 쪽을 보았다.

 나체의 엘프 마법사가 그의 바로 눈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의 아랫배에서 분홍빛 음문이 밤중에 홀로 반짝였다.


"카...칼..ㄹ--"


"쉿."


 칼리아가 이사도어의 입을 막으려 손을 그의 입가에 들이밀었고 그것에 움찔한 이사도어가 뒷걸음질쳤다.


"이시."


"...."


"이시."


".....읏."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는 듯 칼리아가 계속 이사도어를 밀어내며 마지막에는 어깨를 밀쳐 그의 몸을 침대로 넘어뜨렸다.


"이시...♡♡♡"


"자, 잠깐만요, 누나.. 이건 제가 나중에.. 아니, 어떻게 여길..."


 말이 꼬이는 이사도어에게 그대로 눈을 둔 채 칼리아가 손을 들어 마법을 썼고 방 전체가 붉은빛 아우라에 덮여버렸다.

 귀뚜라미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찾았어. 찾았어. 찾았어. 드디어 찾았어...♡"


 눈에 총기가 없었다. 아니, 얼굴 전체가 핏기가 없는 것처럼 창백했다.

 손가락 두어 마디 정도 거리까지 가까워진 그녀의 그 얼굴과 숨소리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고 코에는 옷장에서 여기까지 이어지는 낯선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왜 도망간 거야? 왜? 왜? 왜? 왜? 왜?"


 이사도어가 입을 열어 말하려 했으나 첫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칼리아의 다음 말에 묻혀버렸다.


"넌 누나 껀데. 누나 꺼잖아. 말괄량이였던 날 다 받아줬잖아. 내가 부르면 꼭 달려와 줬잖아. 누나가 좋다고 말해줬잖아. 어디 보는 거야? 누나 봐. 누나 보라고. 누나한테서 눈 떼지 마. 또 도망치려고 그러지? 도망치면 죽여버릴거야."


 칼리아의 두 손이 이사도어의 목덜미를 감쌌다. 조금만 힘을 줘도 이사도어의 목이 졸릴 수 있었다.


"우리 이시는 착하니까, 누나랑 결혼해줄 거지? 그치?"


"끅… 누..나..."


"아냐. 대답하지 마."


 칼리아가 이사도어의 입에 손가락을 얹었다.


"우선 아이부터 만들고 나서 얘기해도 늦지 않잖아?"


 칼리아의 손짓 한 번에 이사도어의 잠옷이 벗겨졌다.

 칼리아로서는 처음 보는 성인 이사도어의 맨살이 그녀를 자극했고 코 끝에서 느껴지는 남성의 향취에 엘프 특유의 진한 애액이 뚝뚝 떨어지며 이사도어의 허벅지에 맺혔다.


"누나가 이거 때문에 얼마나 미치는 줄 알았는데, 하아..♡"


"아..안 돼, 제발, 누나! 그--읍...읍..."


"괜찮아, 괜찮아. 자, 가만히 있어.. 금방 끝날 거야. 밖에 달 예쁘다, 그치? 그거 보면서 참고 있어? 알았지?"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소리와 반대로 남성기가 한꺼번에 자극되는 찌릿한 감각이 이사도어의 온몸을 덮쳐왔다.

 4년을 기다려온 신음소리. 그것은 지난날 발정기 내내 자신의 부모를 괴롭힌 울부짖음에 가까웠던 비명과는 달랐다. 황홀경에 취해 자제력을 잃고 순간순간의 본능에 몸을 맡기며 행복을 내지르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 아래,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를 끝없이 듣고 있는 이사도어의 입에서는 호흡을 빼앗겨 소리를 잃은 신음만이 새어나올 뿐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 남았었는데.


 딱 하루 남았었는데.



 그러나 이제 그 하루는 굶주린 칼리아가 자신의 집착과 성욕을 원없이 채워넣는 날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무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는 방 안에서 이사도어는 그녀의 욕망을 모두 받아내며 마음대로 쓰러지지도 못한 채 자신이 가진 정액을 모조리 그녀의 자궁 안으로 토해내야 했다.


--


"하…"


 이사도어가 말을 끊고 한숨을 쉬었다.

 꼭 담배를 피우는 중년 남성들을 따라하는 것 같았지만 아미티스의 눈에는 뭔가 어설펐고 거기다 눈가에 미처 가리지 못한 눈물이 작게 반짝였다.


"괜찮아..?"


"........"


 아미티스가 의자에서 일어나 이사도어 곁에 앉으며 그를 안아주었다.


"죄송해요. 한심한 꼴이나 보이고.."


"아냐.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


".....여전히 꼬마아이구나. 우리 이시는."


--


 이사도어가 엘프 마을을 떠난 지 닷새째 되는 날.

 뒤따라 사라졌던 칼리아와 함께 둘은 다시 마을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도 안 되어 둘이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퍼져 걱정하던 지인들이 각자의 집에 찾아가 사라졌던 사연을 캐물었으나 칼리아는 칼리아대로, 이사도어는 이사도어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아미티스가 이사도어에게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라는 대답을 들은 것도 이 날이었다.


 특히 발정기가 끝나 제정신으로 돌아온 칼리아는 자신이 한 짓을 그제서야 자각하며 귀에 불이 붙은 듯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이대로 자신이 점찍어둔 신랑을 놓쳐버리고 싶지는 않았는지 사흘 만에 도서관에 찾아가 도도했던 모습도 다 던져버리고 이사도어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대답은 냉랭했다.


"저는 당신 같은 사람 몰라요."


"제발, 누나가 이렇게 빌게. 누나가 정말 뭐든지 할게..! 제발 용서--"


"도서관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돌아가시라구요."


 그 순하던 이사도어의 입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란 말이 나올 만큼 그는 칼리아에게서 깊은 실망감과 원망을 느꼈지만 그녀도 포기하지 않았다.

 휴관일에까지 그녀는 홀로 집에 있을 이사도어를 만나러 아침 댓바람부터 그의 집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그날은 심지어 칼리아의 어머니 헤스티아까지 함께 찾아와 이사도어의 마음을 돌려놓으려 애를 썼다.


"...돌아가라고 했죠."


"일단 앉아 봐, 누나 얘기를--"


"당신 같은 누나 모른다구요."


"이시..."


"이시라고도 하지 마요, 당신이 내 애칭 부르는 것만 들어도 소름 끼치니까."


"........그 일이 그렇게 싫었어?"


 연이은 이사도어의 차가운 대꾸에 칼리아가 항변하듯 말했다.


"딱 한번 실수한 거잖아. 누나 지금까지 진짜 죽도록 참아왔다고! 딱 한번 실수인데.."


"그래서요?"


 그러자 딱딱했던 목소리에 갑자기 날이 세워지며 이사도어가 칼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어떡하라고요? 참다참다 못 참아서 한번 덮친 거니까 그 정도는 봐달라 이겁니까?"


"...그러니까, 다시는 안 그럴--"


"그 따위 약속을 내가 어떻게 믿어요!"


"아니, 제발 누나 얘기좀 들어 봐. 왜 내 사정은 이해 안 해주--"


"말 잘 했습니다. 그래, 발정기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는 얘기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어요. 그럼 나는요? 여태껏 아랫것 취급받아가며 살다가 강제로 덮쳐진 내 사정은요!"


"......"


"당신한테 저는 그냥 장난감이죠? 자기 맘대로 갖고 놀다가 망가져도 대충 고쳐주기만 하면 되는 놀잇감이잖아요!"


 할 말이 없어진 칼리아가 고개를 떨구자 보다못한 어머니 쪽이 입을 열고 나섰다.


"이시, 그래도 앞으로 네 마누라 될 엘프인데 왜 그러니? 서로 이해하고 살아야지, 결혼생활도 나중에--"


"제발 헛소리 좀 그만하세요!!"


 엘프보다 작은 이사도어의 체구에서 참고 참았던 거센 고함이 터져나왔다. 뒤이어 그의 손가락이 창날처럼 뻗쳐나와 두 엘프를 겨누었다.


"결혼이고 개나발이고 그따위 약속 한 적 없습니다. 애초에.. 애초에 당신이 내 장미꽃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그날부터..! 난 당신 같은 사람 마음 속에서 다 지웠단 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어머니한테는 뭐..? 결혼하기로 약속을 해..?"


"....."


"그래서 강제로 순결을 빼앗아가면 제가 다시 고백이라도 할 줄 알았어요..? 네? 무슨 짓을 해도 애완동물마냥 좋다고 꼬리치며 다시 올 줄 알았냐구요!!"


"이사도어, 아가야, 제발 진정하고…."


 어떻게든 둘을 중재하려는 헤스티아 옆에서 칼리아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이사도어도 목이 메이며 마당의 장작더미 위에 주저앉았다.


"...나 좀 제발 내버려두세요. 그냥 더 고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장난감이라 치고… 갖다 버리든 남한테 던져주든 해달라구요…."


 하며 이사도어가 눈물을 삼켰다.

 그걸 보고 있던 헤스티아도 마음을 바꾼 듯,


"...그래, 그러면.. 이시도 많이 힘들었으니까.. 지금은 푹 쉬고, 나중에 얘기하자꾸나."


 하며 자기 딸의 손을 잡아끌었다.


"..."


 그런데 이번에는 칼리아가 발을 떼지 않았다.


"딸, 오늘은 그만 가자."




"......못 버려."




"뭐라고?"


 순간 칼리아의 호흡이 터지며 어머니의 손도 뿌리치고 달려가 이사도어의 어깨를 붙잡았다.


"못 버려!! 넌 내 꺼야. 절대로 못 버린다고!"


"....?!"


 아직도 분노에 찬 시선을 버리지 못하는 이사도어를 칼리아도 마주 노려보았다. 이전까지의 미안한 모습은 찾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한 번 넘은 선, 내가 또 못 넘을 것 같아? 너 각오해, 발정기 아니라고 너 못 덮칠 줄 알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너 내 껄로 만들 거야!!"


 어머니의 손과 마법에 반강제로 끌려가는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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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지난 주 일이에요."


"......."


 어느새 시간은 밤이었다. 아미티스는 촛불에 비춰지는 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됐는지 돌아볼 시간도 없더라구요.. 눈을 감으면 칼리아가 찾아오는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잠도 안 오고, 도서관에서도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미칠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걱정돼?"


"매일 그래요. 특히 며칠 전부터 칼리아가 안 보이는데, 분명 절 납치하려고 일을 꾸미는 거겠죠. 발정기 때처럼 퇴근하는 절 붙잡고 약을 먹이든, 아니면 밤중에 제 방에 찾아오든 해서.."


 반쯤 쥔 이사도어의 오른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리고, 발정기 아니라도 상관없다면서 절 덮치겠죠? 그다음엔, 그날..그날처럼, 정신을 잃어도 마법으로 깨워지면서..끝없이..끝없이 짜내지고--"


 아미티스가 이사도어의 오른손을 붙잡으며 손떨림이 같이 떨리던 목소리와 함께 멈췄다.


"괜찮아. 누나가 있잖아."


"누난 몰라요. 저는 지금도 칼리아가 저 가게문을 박차고 들어올 것만 같다구요."


 아미티스가 쿡쿡 웃었다. 위로해주는 것과는 뭔가 결이 다른 웃음이었다.


"나라면 그렇게까지 걱정 안 할 거야."


"그건 누나가 안 당해봐서 그래요! 오늘 아침에도 저 깨우러 온 어머니 보고--"


"칼리아인 줄 알고 놀랐지? 어린애처럼 소리지르면서."


 순간 이사도어의 몸이 굳었다.


"...그걸 누나가 어떻게 알아요?"


"그걸 왜 몰라? 일어나자마자 눈앞에 엄마가 있으니까 막 '꺄악!' 하고, 여자애처럼 놀라더니 이불 부여잡고 덜덜 떨었잖아? 얼마나 귀여웠는데."


"아니.. 제 집 안에서 있었던 일을 누나가.."


"후훗."


 아미티스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사도어가 왜인지 모를 위협을 느끼며 그녀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누나는 다 알아. 아주 예~전부터 우리 이시를 지켜봐 왔는데?"


"뭐..라구요..?"


"못 믿겠어?"


 잠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아미티스의 손에는 익숙한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가방을 열자 학생들이 입을 법한 작은 크기의 운동복이 꺼내져 나왔다.


"그...그건…"


"맞아. 네가 5년 전에 잃어버렸던 그 운동복."


 아미티스가 운동복을 꼭 작은 아이라도 되는 양 껴안으며 말했다.


"이거 있잖아, 약을 좀만 뿌리면 이시의 냄새가 다시 확 난다? 꼭 5년 전 이시가 막 벗었을 때처럼."


"그걸.. 그걸 왜 누나가.. 가지고 있어요.."


"왜 그렇게 싫어해? 누나가 널 이렇게 좋아하고 아껴준다는 뜻인데."


"아껴준다구요?"


"그럼. 칼리아가 며칠 전부터 왜 갑자기 사라졌다고 생각해?"


"..........!!"


 이사도어는 자신을 보는 아미티스의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느꼈다.


"그 더러운 년, 오래 전부터 너한테 집적댈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감히 내 신랑한테 손을 대? 그걸 내가 모를 줄 알고?"


"......."


"그래도 괜찮아. 죽이지는 않았으니까. 만약 네 순결을 가져간 거였다면 산 채로 몸을 갈가리 찢었겠지만."


"칼리아가.. 아니었어요?"


"첫경험을 칼리아가 뺏어갔다고 했었지? 사실 아니야."


"그럼 누가…."


"후후, 누나가 너 성인 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렸었는데, 그 소중한 첫경험을 남이 훔쳐가게 놔뒀을 것 같아?"


 아미티스가 손을 들어 이사도어의 무릎을 쓰다듬었다.


"너 20살 되는 바로 그날 밤에, 귀엽게 자고 있는 이시를.. 후후.. 흐하하핫…!"


 무릎에 닿는 소름끼치는 촉감을 느끼며 광기어린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이사도어의 얼굴이 금세 엘프만큼이나 창백해졌다.


"하아… 그때 생각하니까 누나 이젠 못 참겠어."


 아미티스가 치마 아래 숨겨진 끈을 풀자 그녀의 아랫배를 감쌌던 두꺼운 붕대가 그녀의 발밑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절대 칼리아 같은 년이랑은 결혼 안 한다고 했었지? 정말 잘 했어. 역시 우리 아가 정말 똑똑하다니까."


"그..그건--"


"그건 누나랑 결혼한다는 뜻이지? 맞지?"


 이사도어의 대답도 듣지 않고 아미티스가 서랍에서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약물이 이미 주사기 안에 들어 있었다.

 주사기는 아무 방해도 거치지 않고 이사도어의 안을 파고들었다.


"자아~ 이제 기분이 나른해지면서 편해질 거야."


 이사도어는 침묵했다. 대답할 기운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자리에서 쓰러지며 흐려지는 초점 속 보이는 마지막 광경은 아미티스 누나가 절대 지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탐욕스러운 미소, 그리고 옷이 한꺼풀씩 벗겨지며 더욱 선명해지고 있는 분홍빛 음문이었다.


"걱정 마.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못된년 하나 때문에 고생 많았지? 이제 푹 쉬어."


"누나가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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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꼴리는 걸로 만들어봐야지 생각했는데 쓰고보니까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가족의 품으로 언제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