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 이요?”

 “응. 미안, 지금까지 거짓말해서.”

 오랜만에 Y에게 연락이 왔을 때, 공교롭게도 나는 무기력함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는 모든 의욕을 잃었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멀쩡한 척 연기하며 철저히 나 자신을 숨겼고, 그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와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순간,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단 한 명에게라도 사실을 말하고 편해지고 싶었다.

 “뭘 해도 안 되고,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아. 돌이켜 보니 시간만 낭비하고 있더라고.”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Y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혈육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남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휴학하게 됐어. 어때, 한심하지?”

 말을 모두 끝내고 나서야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과조차 다른 선후배 사이에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듣고 좋아할 사람은 없다. 후배 입장에선 선배의 하소연을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뇨, 오히려 좋은데요?”

 “……뭐?”

 예상 밖의 대답에 나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이제, 선배한테 계속 연락할 수 있잖아요.”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향하며 빨대로 아이스커피를 휘저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괜찮아요, 선배. 누구나 쉬어가고 싶을 때가 있는 거라구요.”

 “그런…가.”

 “자! 그럼 선배 한가하겠네요? 지금 저랑 같이 영화 보러 가요!”

 “지, 지금?”

 “네! 지금 당장이요!”

 해맑게 웃으며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를 만난 것은 나에게 구원이었다.



 Y는 생각보다 쾌활한 아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소심하고 조용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말주변도 없었고,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녀는 후배 중에서도 귀엽기로 소문이 자자했기에, 그 점이 인상에 남았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반년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활기찬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쪽이 진짜 모습인지, 아니면 내 기분을 배려해서 그랬는지는 몰랐지만, 그녀 덕분에 나는 웃는 일이 많아졌다. 살아갈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근데,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주는 거야?”

 “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녀는 너무 착했다. 그래서 더더욱 걱정되었다. 나 때문에 그녀가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아닐까.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도한 자격지심이 나를 옭아맸다.

 “물론 난 너랑 있으면 즐거워. 하지만 이제 괜찮아. 네 덕분에 요즘 기분이 정말 많이 나아졌어.”

 “……”

 “그러니까 나랑 이제 무리해서 시간 안 보내도 돼.”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그녀는 얼마든지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인간이었다. 나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래서 그녀를 구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땐 그런 한심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니까”

 “뭐?”

 “선배가, 좋으니까요. 정말 모르셨어요?”

 그녀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던 것은 초저녁의 추위 때문이었을까.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어요. 선배는 그때 정말 빛났어요. 매사에 열심이었고, 남들을 잘 챙겨주셨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의 나는 결코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없었다.

 “다 예전 일이야. 이제 난……그냥 한심한 인간에 불과해.”

 “선배가 왜 한심해요.”

 조금 강한 목소리로 그녀는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게 뭐 어때서요.”

 생각보다 그녀의 눈빛은 확고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예전 모습에 반했던 건 맞지만, 전 선배가 어떤 모습이든 선배 그 자체가 좋아요.”

 “……”

 “저로는, 안 될까요?”

 한없이 순수에 가까운 그 마음을, 나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요즘 늦는구나.”

 그날 저녁, 아버지의 한마디 말은 무미건조했지만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학교생활은.”

 “저…….”

 “문제가 있으면, 빨리 말하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휴학…했습니다.”

 “이유는?”

 “요즘 힘들고……성적도 좋지 않고, 조금 쉬고 싶어서…….”

 아버지는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신문을 접고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눈 깜짝할 사이 얼굴에 얼얼한 충격이 일었다.

 “한심한 놈.”

 “……”

 “역시 넌 날 실망시키는구나. 난 네가 실패할 줄 알고 있었다.”

 그 말만을 남기고 아버지는 당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어머, 어떡해…….”

 Y는 내 얼굴의 상처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볼이 조금 찢어진 것일 뿐이었는데도.

 “아무것도 아니야. 난 괜찮…….”

 “……왜 항상 그래요?”

 “응?”

 “왜 맨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냐구요.”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힘들면 힘들다, 아프면 아프다. 말을 해 줘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저는 정말 힘이 되어주고 싶다구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조차 나를 버렸는데.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인데.

 “그만큼, 선배가 좋아요……선배가 괴로운 걸 보면, 저도 괴로워서 어쩔 수가 없을 정도로…….”

 “……”

 그제야 나는 내가 두렵다는 이유로, 그녀의 진심을 애써 무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한테만큼은, 모두 털어놔도 괜찮아요……네? 그러니까…….”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하는 그녀를, 나는 조용히 끌어안았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Y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다. 종일 힘든 일뿐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면 신기하게도 버틸 수 있었다. 그녀와 만나는 시간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와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공원을 거닐고, 사진을 찍고, 쇼핑을 하고, 여행을 떠나고, 하룻밤을 보내고……모든 순간이 행복이었다. 그녀의 존재는 내 안에서 갈수록 커졌다.

 “내일은 어디 갈까? 오빠는 어디가 좋아?”

 “난 어디든 좋아. 너만 있으면.”

 “꺄악! 뭐야, 부끄럽게~”

 처음에는 낯간지러웠던 호칭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빠, 근데 이분은 누구야?”

 섬뜩할 정도로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내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가끔 그녀가 나를 의심할 때의 모습은 꽤 무서웠다.

 “아, 그냥 같이 알바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갠톡을 보내?”

 “별 내용 없어, 진짜야.”

 성별이 여자일 뿐,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녀와의 채팅 내용을 Y에게 모두 보여주고 나서야 겨우 의심을 풀 수 있었다.

 “그래, 믿어줄게. 그건 그렇고 오빠, 요즘은 좀 어때?”

 평소로 돌아온 Y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제 괜찮아. 전부 네 덕분이야.”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었다. 실제로 그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나는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녀 역시 내가 그녀에게 의지하는 것을 기뻐했다. 나는 그녀를 통해 치유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오빠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응, 알았어.”

 “그러면, 내가…….”

 “응?”

 “……아무것도 아냐.”

 아무렇지 않게 흘려들었던 말. 그때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나와 그녀가 사귄 지 100일이 되는 날, 나는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큰일이다……늦겠는데.’

 일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서 그녀와의 약속에 늦을 것 같았다. 다른 날도 아니고 기념일에 약속에 늦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빠르게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김얀붕.”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몸이 경직되어 대답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어딜 갔다 오는 길이지?”

 “알바……하고 왔습니다.”

 “뭐 하는 짓이지?”

 “……”

 “내가 언제 돈을 벌어오라고 한 적이 있나?”

 잠시 잊고 있었다. 나에게 마음대로 살아갈 자유는 없었다는 것을.

 “쓸데없이 나약한 생각에 빠졌으면, 네 문제점을 보완할 생각을 해야지.”

 “……”

 “스스로 그렇게 할 줄 알았건만, 밖에만 싸돌아다니지 너는 전혀 생각이 없구나.”

 늘 이랬다. 완벽한 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실망만 하셨다.

 “네 어미가 죽는 날에도, 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런 자세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어.”

 어머니 이야기에, 내 마음 속 무언가가 꿈틀했다.

 “너는 나보다 부족하게 태어났는데, 왜 나보다 노력하지 않는 거냐.”

 “……아버지 때문이잖아요.”

 “뭐?”

 지금껏 참고 참았던 분노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자살한 건, 아버지 때문이잖아요.”

 “뭐야?”

 “아버지가 엄마를 죽였잖아요.”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손찌검이 날아들었다. 매일 아버지에게 맞고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화가 나는데도 아버지에게 대들 수는 없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폭력으로 각인된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너나 그년이나, 자신이 나약한 걸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구나. 쓰레기 같은 족속들.”

 “커헉!”

 “그런 주제에 나를 능멸해? 내가 만만하지? 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성인이 된 이후로 멈췄던 아버지의 폭력 역시 쌓였던 만큼 마구 터져 나왔다.

 온몸이 아팠다. 저항할 수 없었다.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구타는 멈췄다.



 “100일 기념으로……놀래켜 주려고 했는데.”

 “어…….”

 “이렇게, 놀래켜 주려던 건 아니었는데…….”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Y가 여기에?

 내 집은 어떻게 안 거지? 비밀번호는?

 언제부터 들어와 있던 거지?

 이 비릿한 냄새는 뭐지?

 왜 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졌지?

 왜 그녀가 손에 칼을 들고 있지?

 왜 칼에 붉은 액체가 묻어 있지?

 “많이 힘들었지?”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싹한 공포가 온몸을 엄습했다.

 “모두, 이 사람 때문이었구나…….”

 피가 흥건한 손으로 그녀는 내 얼굴을 상냥하게 매만졌다.

 “무슨 짓이야…….”

 “응?”

 “왜 그런……왜…….”

 아무렇지도 않은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더욱 광기에 차 있는 것 같았다.

 “오빠가 행복하길 원했어.”

 “뭐…….”

 “이 사람이 없어져야 오빠가 행복해질 수 있어. 근데 오빠 손에 피를 묻힐 순 없잖아? 그래서 내가 했어.”

 분명 아버지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그렇다고 이런 결말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엿들어서 미안. 멋대로 행동해서 미안.”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그 눈물은 죄책감의 뜻이었을까.

 “오빠, 사랑해.”

 그녀가 살며시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입술은 그날따라 유난히 썼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칼이 들려 있었다.

 “뭐……하는 거야?”

 “오빠, 오빠도 날 사랑해?”

 그녀는 무심한 듯 내게 물었다. 나는 그 표정에서 불길한 결의를 느꼈다.

 “응, 그러니까 어서 그거 내려놔.”

 “다행이다…….”

 그녀가 안심한 듯이 웃었다. 그 미소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럼, 나를 잊지 말아줘.”

 “알았어, 알았으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없어도…….”

 “잠깐……!”

 “꼭, 행복해야 해…….”

 “그만……!”

 다시 한번, 선혈이 흩뿌려졌다. 그녀가 종이 인형처럼 쓰러졌다.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악몽에서 깨어날 수는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Y는 정신 장애를 앓고 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녀에게는 가족도 한 명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있어서 유일한 존재였다. 전부 모르던 사실이었다.

 내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Y의 존재는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



 겨울. 내가 그녀를 만나게 된 지 딱 365일이 되는 날.

 ‘오빠, 우리 벌써 1주년이야!’

 Y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나는 Y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 만약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라면, 그녀가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더라면, 그녀는 지금 내 옆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꼭, 행복해야 해…….’

 그녀의 마지막 당부를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왔다. 하지만 결국 소용없었다. 그녀 덕분에 얻은 삶의 용기는, 그녀가 없는 세상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얀순아.”

 닫혀 있던 기억을 억지로 열어 그녀의 이름을 읊조렸다.

 “1주년 축하해.”

 나는 부엌칼을 천천히 집어 들었다.

 “선물이 있어.”

 내 목소리가 그녀에게 닿기까지 아주 조금.

 “만나러 갈게.”

 칼날이 경동맥을 꿰뚫어,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순간 그녀가 웃는 환영이 보여, 나도 그녀와 함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