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가 죽었다.


 딸이 구토했던 날, 의사는 원인 미상의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딸아이의 어여쁜 웃음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잃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말도, 의식도 점점 사라져 갔다. 아내는 그런 딸아이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당신은 신경 쓰지 마요. 낮에는 내가 잘 돌볼 테니까.”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에 기대기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주변의 시선을 무릅쓰고 매일 정시에 퇴근했다. 저녁도 먹지 않고 딸아이가 입원한 병원으로 직행했다. 매일 밤 아내의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하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장기간의 입원 치료도 소용이 없었다. 딸아이가 하늘로 떠난 날, 아내는 내 품에 안겨 격하게 오열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다. 일이 바빠서 한동안 가정에 신경 쓰지 못했다. 아내에게도, 딸에게도 관심을 가질 틈이 없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 소중함을 빼앗긴 뒤였다.

 딸아이가 사라진 후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현실 도피를 위해 일에 몰두했다. 딸이 없는 공허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요즘, 또 바쁜가 봐요?”

 “……응.”

 “아직도, 못 잊은 거죠? 우리 딸…….”

 “……”

 “이제, 그만 놔 줘요…….”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계속해서 채찍질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딸을 볼 면목이 없었으니까.

 “미안. 들어가서 쉴게.”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옛날이 좋았는데.”

 “응?”

 “우리 딸이 아플 땐, 항상 곧바로 집으로 와 줬잖아요.”

 “그랬……지.”

 “근데 왜, 요새는 그러질 않아요?”

 아내의 목소리에는 섭섭한 기색이 다분했다.

 “……미안. 사실, 집에 있는 게 두려워.”

 “왜요?”

 “집에 있으면,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 같아……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반겨줄 것만 같아…….”

 “……”

 “아직도 딸이 없어졌다는 걸 믿고 싶지가 않아……. 당신은, 그렇지 않아……?”

 목이 멘 목소리로 한탄하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이 아내가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저는요?”

 “응?”

 “저는 더 외로워요……당신도, 딸도 없는 집에서 하루종일 혼자……얼마나 외로운지 아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내의 감정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는 걸 눈치챘다.

 “여보…….”

 “사랑하는 사이잖아요. 그래서 결혼도 했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있어요. 같이 아픔을 나눠요…….”

 “……알았어. 내가 미안.”

 딸아이를 계속해서 지켜봤던 그녀가 가장 힘들 거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나는 묵묵하게 아내의 여린 몸을 끌어안았다. 잠시 후 진정되었는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늦게까지 일하고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얼른 자요.”

 “응, 고마워.”

 “자기 전에 맥주 한잔할래요?”

 “……그래. 한잔만 하자.”

 술잔을 사이에 놓고 그녀와 마주앉자, 신혼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열정적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지금은 설렘보다는 익숙함이 먼저였다. 우리의 관계가 변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짠.”

 “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며, 이제는 아내에게 더 잘 대해야겠다고……그렇게 생각했다.

 “어때요, 시원하죠?”

 “응, 시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구토감이 일었다. 제어할 틈도 없이 토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우욱, 커헉……!”

 온몸의 내장이 조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문득 나는 아내의 절박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여보, 우리 딸이……토를 하더니 갑자기 쓰러졌어요……!’


 세상이 90도로 회전했다. 머리에 둔탁한 충격이 일었다.

 ‘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이제, 딸은 잊어요. 자기.”

 아내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고막을 울렸다.

 “회사도 그만둬요. 저는 당신만 있으면 돼요.”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그녀가 얇은 손가락으로 살포시 들어 올렸다. 해맑은 미소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저번엔 실수해서 죽어버렸지만, 두 번은 실수 안 해요.”

 실수?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는 저랑 행복하게 살아요.”

 입술이 닿을 정도로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초점을 잃은 눈이 내 동공을 가만히 응시했다.

 “계속, 영원히…….”

 숨 막히게 달콤한 목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