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마녀와 아이들 (8)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온다.

 

우리는 겨울 내내 장작을 패거나, 때때로 눈 속에서 자고 있는 개구리나 뱀을 잡아다 

 

구워 먹었다. 가끔은 눈싸움도 했다. 지붕에 쌓인 눈을 털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난 일요일마다 엘리샤 누나를 찾아가, 마력 강제 반사 건틀렛- 그냥 리버스라고

 

부르기로 한 장갑의 연구를 계속했다. 재미는 없지만 그럭저럭 보람 있는 일이었다.

 

“에단, 오늘도 검술 훈련하러 가니?”


“응, 밤이 되기 전엔 올 거야.”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일찍 들어오렴.”


“중요한 날?”


오늘이 무슨 날이더라? 누구 생일이었나? 아니, 그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엄마의 꿈이 이뤄지는 날이라고 해둘까?”

 

꿈이 이뤄지는 날……?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됐다.

 

“뭐……알겠어.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형, 오는 길에 과자 사와!”

 

“꾸우우끼이.”


“시끄러, 바보들아!”

 

나는 집을 나와 마을로 내려갔다.

 

스승님은 병나발을 불며 여관 근처의 바위에 앉아있었다.

 

“오, 왔냐.”


“오늘은 뭘 배우는 거죠?”


“딱히.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이다.”


스승님이 그렇게 말하며 병을 바닥에 휙 던졌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여길 떠날 생각이다.”

“갑자기요? 하지만 아직 수련도 안 끝났는데…….”


“괜찮을 게다.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전부 가르쳐줬어.”


하지만 이렇게 빨리 헤어지다니……못내 아쉬웠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난 떠돌이다, 떠돌이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 법이고.”


그가 품속에서 네모나게 생긴 돌을 꺼냈다.

 

“검, 이리 다오.”


“네.”


나는 가지고 있던 검을 스승님께 건네줬다.

 

“나는 너에게 강해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앞으론 나와 했던 대로 반복, 숙달하면 돼.

 

최강의 검사- 까진 아니어도 그럭저럭 강한 검사는 될 수 있을 거야.”

 

그가 칼날을 돌에 대고 갈았다. 날을 세우는 것이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난 싸움에서 도망쳤다. 비겁하고 치사하게 달아난 겁쟁이다.”


“…….”


“이길 수 없었어. 그 음마는 인간의 힘으론 절대 죽이지 못할 괴물이었으니. 

 

하지만 난 도망쳐선 안 됐다. 차라리 거기서 죽어야 했지.”

 

“이미 끝난 일이잖아요.”


“에단, 아마 너도 그런 적이 있을 것 같구나.”

 

나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저희 부모님은 강도한테 살해당하셨어요.”


“너는 그 때 어디 있었지?”


“아빠가 바닥의 틈새로 들어가 숨어있으라고 했어요. 저는, 거기서 전부 지켜봤어요.”


부모님이 칼에 맞아 쓰러지고, 그 피가 흘러 내 얼굴을 적셨다.

 

그럼에도 난 비명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회하느냐?”


“매일 후회했어요. 제가 강했으면, 그랬다면-”

 

“네가 말했듯 이미 끝난 일이다. 흥, 우리 둘 다 겁쟁이로구나.”


스승님이 껄껄 웃으며 검을 내게 돌려줬다.

 

“이제 그 검은 너의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은 다시 검이 된 거야.”


“…….”


“에단, 내가 너에게 매번 강조한 게 뭐였지?”


“투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엔 인간의 이치로는 이길 수 없는 괴물도 있다. 도망치더라도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겠지……하지만, 절대 물러서지 말아야 할 순간도 있다.”


“그럴 땐 어떻게 하죠?”


“싸워야지. 공포가,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확신이 널 뒤흔들 거야. 죽음이 너의 귀에

 

드디어 너의 최후가 왔노라고 속삭이겠지. 그럴 땐, 네가 해야 할 일만 생각해라.”

 

“저 같은 겁쟁이가 그럴 수 있을 까요……?”


그 말에 스승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진짜 겁쟁이는 다시 싸우겠단 마음조차 품지 못한다. 공포에 사로잡혔으니까.

 

다시 싸우겠노라 검을 쥔 순간, 그 누구도 그 사람을 겁쟁이라 모욕할 수 없어.”

 

“……!”


스승님이 검을 뽑아, 내 어깨 위를 가볍게 두들겼다.

 

“난 기사도 아니고, 널 기사로 만들어 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이걸로 기사가 됐다고

 

생각해라. 너의 영혼, 너의 명예,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는 기사가.”


“알겠어요.”


“좋다. 에단, 부디 어디선가 다시 만나자.”


스승님은 그 말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길 떠났다.

 

붙잡고 싶었다.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사나이가 가는 길을 막는 것은 옳지 않으니.

 

나는 그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나는 정처 없이 떠돌았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이 떠났다는 걸 믿기 어려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도 곧 15살이구나.”


제이크 형도, 그 이전에 엄마가 길러준 모든 아이들은 15살이 됐을 때 집을 떠난다.

 

여길 떠나면 뭘 하며 살아야할까? 

 

가족이 없는 삶. 그런 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내겐 가족들이 전부다……나 혼자 뭘 하며 살아야 좋을지 전혀 모르겠다.

 

검술도 조금이나마 배웠고, 마법 반사 같은 것도 할 줄 아니 용병이 되는 것도 좋겠다.

 

그렇지만 사람을 해치며 사는 것보단 조용히 사는 쪽이 더…….

 

“에이, 그만두자.”


여기 앉아 혼자 고민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벌써 해가 져서 땅거미가 지는 게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면 여느 때처럼 엄마와 동생들이 날 반겨 주겠지.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베개 싸움을 하거나 동화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든다.

 

그런 매일을 보낸다.

 

나는 집의 문을 열었다. 장작을 떼우지 않은 건지 안은 추웠다.

 

“이 바보들, 엄마 감기 걸리는데 장작도 제 때 안 떼우고 뭐한 거야?”


그나저나 왜 이리 집이 조용하지? 벌써 밥 먹고 자러 갔나?

 

나는 문을 열었다.

 

문을…….

 

“…….”


……?

 

……? 뭐야? 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이해가 불가능했다.

 

생각이 멈추고, 호흡이 멈추고, 그 모든 게 멈춘다.

 

레이트.

 

마렌드.

 

레토.

 

레이트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마렌드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레토는 바닥에 엎어져있었다.

 

그렇지만, 머리가 없었다.

 

“어? 뭐야, 뭐냐고 이게……야, 이……이런 장난, 재미없어…….”


장난이야, 그래. 또 짓궂은 장난을 치는 거야.

 

“하, 하하하하……그래, 졌어. 졌다고, 그러니까 그만해. 이제 나오란 말이야……!”


피가 흐른다.

 

그리고 나는 안다. 저 피가 절대로 가짜가 아니라는 걸.

 

“당장 나오란 말이야!!”


엄마.

 

엄마를 찾아야한다.

 

누가 됐든 이런 짓을 한 놈을, 엄마가 무사한지- 아니야, 뭐부터 해야지? 생각해, 생각해라!


“크리스!”


그래, 크리스는 여기 없다. 

 

오늘 엘리샤 누나랑 따로 할 일이 있다고 했어. 그러니, 아직 무사할 것이다.

 

지켜야한다.

 

엄마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그렇지만 크리스는 내가 지켜줘야 한다.

 

“미안해, 금방 돌아올게……!”


나는 동생들을, 차게 식어버린 아이들을 두고 달렸다.

 

이건 악몽일까?

 

악몽이길, 차라리 그랬으면. 눈을 뜨면 평소처럼 동생들이 있고, 엄마가 있고, 또 평범한

 

하루를 보냈으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아아아아아아아아-!!”


달린다, 계속 달린다. 무작정 뛰었다.

 

그리고 온 몸이 땀에 젖어, 숨이 차 피의 비린맛이 느껴질 때까지 달린 끝에 나는

 

엘리샤 누나의 집에 도착했다. 

 

“뭐야? 에단, 너 왜 이런 시간에-”


“누나! 엘리샤 누나, 누가……누가 내 동생들을 전부 죽였어! 죽여버렸다고!”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너희 전부 아직 15살이 안 됐는데……?”


“크리스는!?”


“나 여기 있어!”


크리스! 나는 얼른 달려가 크리스를 꽉 끌어안았다.


“크리스, 크리스……! 다행이다, 너는 살아있었구나. 다행이야……!”


“오빠? 그게 무슨 말-”


“여기 있었구나.”


엄마.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가 어두컴컴한 길을 지나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 엄마, 다행이다! 지금-”


그 때, 엘리샤 누나가 내 앞을 손으로 가로막았다.

 

뭔가 이상했다. 이 분위기는, 마치 싸우기 전의 그것과 같았다.

 

“우르우논, 너……무슨 짓을 한 거야?”


“……엘리샤, 드디어 때가 됐어. 그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리고 왜, 엄마의 옷에 저렇게 많은 피가 묻어있는 거야?

 

“드디어 마르코를 다시 만날 수 있어.”


“이 녀석은, 그 녀석들도 아직 15살이 안 됐어. 네 계획대로면-”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 마력은 이미 충분히 모였거든.”


이해가 전혀 안 됐다.

 

마치, 엄마가 그 애들을 죽인 것 같잖아…….

 

“자아, 에단. 크리스, 엄마한테 오렴. 엄마의 꿈을 이뤄줘.”


“에단……미안해.”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제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때 부랑아들이 내게 했던 말대로.

 

우리는, 가축이었다.

 

“왜…….”


“엄마는, 꿈이 있어. 정말로 오랫동안 이루고 싶었던 꿈이.”


엄마.

 

엄마는, 웃고 있었다.

 

“엄마는 정말로 사랑했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날 거야. 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웃지 마.

 

웃지 마, 웃지 마, 웃지 말란 말이야.

 

그런 얼굴로, 웃지 마.

 

“미안하지만 계약 파기다. 우르우논, 나도 더 이상 못 해먹겠다고.”


그 때, 엘리샤 누나가 내 앞에 섰다.

 

“그 긴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애들이 죽었지? 네 그 미쳐버린 꿈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너한테 배신당하고 죽은 거야? 제기랄, 너 같은 괴물한테 목숨 구걸을 하는 게

 

아니었어. 차라리 네 손에 죽어버렸어야 했다고!!”

 

“이제와서 후회하는 거야? 엘리샤, 너도 공범이야. 알고 있잖니?”


“닥쳐! 이 녀석들만은, 에단이랑 크리스- 나의 딸만큼은 넘겨주지 않겠어!”


그 순간, 집이 무너지며 그 너머로 수많은 골렘과 호문쿨루스들이 나타났다.

 

“나, 가작(假作)의 마녀 엘리샤! 나는 증오의 마녀 우르우논, 널 단죄하겠다!”


“……그렇구나. 알겠어, 응. 너의 뜻은 잘 알겠어.”

 

나는 직감했다.

 

“너도 나의 꿈을 위해, 삶에서 해방시켜줄게.”


엘리샤 누나는, 절대로 엄마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누가 감성적이고 다정한 내용이라 좋다 그랬는데...

Ah, 잘 알아두세요. 저는 그런 거 안 좋아합니다.

다시 말해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내용이 제 취향이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