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럴 보장이 없어도, 의심이 드는 순간이 있어도, 어린애처럼 떼쓰듯 부정하고 억지 부리면서 이 마음을 결코 내려놓지 않았다.



작은 두 손을 모아 신께 기도하듯 난 강하게 믿었다, 믿고 싶었다.



그저 눈 닿는 곳마다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게 되면 이 마음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변해 버린다.



입안 가득 진하게 남은 그 달콤한 맛을 되새기며 나의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영원히 남길 수 있었다.



지금도 난 그 맛을 되새기고 있다.



그래, 지금도.



---



"밖이 많이 춥지? 어서 들어와."



저녁을 먹으러 준비하려던 찰나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실례할게."



손님은 나와 함께 유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온 각별한 친구사이인 그였다.



그는 편안히 신발을 벗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오른쪽 손에는 서류가방과 반대편 손에는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왜 꽃다발을 들고 있는지는 뒤로하고 그에게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기 위해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꺼내놓은 접시를 치우고 전기포트에 물을 올려 간소하긴 하지만 티백으로 그를 대접했다.



그는 의자 옆에 꽃다발을 살며시 내려놓고 손이 시린지 대접받은 커피잔을 두 손으로 포개어 달콤하고 씁쓸한 커피의 따스함을 느끼며 가고 있었다.



나또한 커피와 함께 자리에 앉아 그에게 왠 꽃다발이라며 묻자 오늘이 그와 유아의 결혼기념일이라고 말했다.



"아, 그렇구나. 결혼기념일 축하해."



몰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박수와 함께 축하해주었다.



이에 그는 환하게 기뻐하며 답해주었다.



"고마워."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유아는 어때 잘 지내?"



"응,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네. 설마 너가 유아하고 결혼했을 줄이야. 결혼식 당일에 알려줘서 그때는 너무 깜짝 놀랐어. 같이 오래 시간을 지내고 왔는데도 전혀 난 눈치 채지 못했어."



"미안, 일부러 좀 숨기고 다녔어. 사실 놀래켜주고 싶었거든."



"그런 거 미리 말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저번에 디즈니랜드하고 바다에 갔을 때 둘이서 오붓하게 데이트할 수 있게 배려해줬을 텐데."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나, 유아, 그리고 미사키. 이렇게 3명이서 같이 노는 게 난 좋아."



"헤에. 몰래 둘이서 뭐하는지 캠코더로 남겨서 유아네 부모님에게 네토라레 비디오테이프로 보낼 작정이었는데 아깝네."



"아하하! 유아의 아버님은 분명 그렇겠네. 아주 재밌어."



그는 내 농담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재치있었다는 듯 웃어주었다.



그 웃음에 나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고 입안에서 다시 달콤함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 달콤함과 함께 그의 웃는 모습을 눈 속에 담아가며 내 머릿속은 저번에도 웃어준 기억을 찾아가며 멍해져갔다.



"... 괜찮아?"



한 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만 있는 내 모습에 그의 입가에 웃음이 멈추고 걱정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봐주었다.



그것또한 어디선가 보았던 모습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난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뉘어 갔다.



겨울이었기에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밖은 벌써 어두워졌다.



"그나저나 이렇게 있어도 돼?"



"뭐가?"



"유아 말이야. 나하고 너, 이렇게 둘만 있는데 괜찮겠어? 쓸쓸해 할지도 모르는데."



"아 괜찮아, 괜찮아. 저녁에는 돌아갈 거니까. 유아에게는 야근하고 있다고 말했어."



"에에. 유아에게 거짓말 치다니. 그런 순순한 아이에게 너무하지 않아?"



"... 할 말이 없네. 그래도 이번 뿐이니까. 집에 가서는 제대로 기념해줄 거니까."



뒷머리에 손을 올리며 곤란해하는 그의 옆에 있는 꽃다발을 다시 보았다.



꽃은 정말 아름다웠다.



무슨 꽃이지? 리시안셔스?



좋은 꽃이네, 점원이 골라준 걸까? 아니면 꽃말을 생각해서 산 걸까.



상관없나, 어차피 이 꽃은 내가 아니라 유아를 위해 산 거니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난 매몰차게 단호한 어투로 그에게 말했다.



"그럼 빨리 가. 유아 쓸쓸하게 하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다 마시고 난 커피잔을 치우려고 했는데 그가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 사실 너하고 좀 이야기 하고 싶어서 시간 낸 거야."



"나하고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응, 이게 좀 복잡한데..."



다시 자리에 앉아 커피잔을 가득 채워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싸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소한 말다툼이었는데 그것이 어느세 말싸움으로 번져서 어제부터 계속 말 안하다가 아침이 되어도 '다녀오세요.' 라는 그 흔한 말 한마디 없이 집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쫓겨나는 듯이 느겼다고.



화려하게 한껏 꾸며진 식장에서 유아의 약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서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한 그의 모습을 지켜본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 그렇게 좋아하던 그의 모습이었는데, 그때의 기억과 달리 그의 약지 손가락은 가벼워보였다.



"난 유아의 마음을 잘 모르겠어."



눈방울과 한숨을 곁들인 힘없는 목소리.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흐느끼는 그의 모습또한 난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나도 똑같이 그처럼 슬퍼할 수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러지 못했다.



"... 내가 잘못한 거겠지.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심한 말을 했던 거 같아."



"..."



그의 혼잣말과 같은 말은 나는 조용히 엎어진 그의 머리를 살며시 쓰담아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유아가 아무런 이유없이 화냈을 리가 없어, 착하고 순수한 애야.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내가. 겨우 그걸로 화내다니, 후회스러워."



난 그저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시계의 시침 소리가 방 안을 조용히 울려퍼져가는 것을 느끼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울음을 멈추고 다시 활기를 되찾는 동안 따뜻했던 커피는 이미 식어 차가워져버렸다.



고개를 든 그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얼굴을 한 채 자켓으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며 내게 물었다.



"난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



출구를 찾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길을 잃어 홀로 남겨져서는 이도저도 못해 절망하는 그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면 볼 수록 내 마음 어딘가 꽁꽁 숨겨놓았던 파편 하나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맛은 쓴 맛이었다.



난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넌지시 그에게 물었다.



"아직도 유아 사랑해?"



"당연히 사ㄹ... 아..."



끝 말이 흐려진 그의 대답.



아아,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그이.



차마 거짓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겠지.



그래, 난 너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었지.



나와 달리 허물없이 그저 솔직하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너를 부러워했어.



그런 거 때문에, 너 스스로 때문에 이렇게까지나 흐트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 볼 수록 왠지 모르게 악의가 차올라.



잘못되었던 건 알아, 잘 알지.



하지만 그럴 수록 더 너의 성격을 부러워하게 될 수 밖에 없어.



계속 흔들려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계속 흔들리게 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도, 참고 싶지 않은 것도.



마치 마음에 홍수가 난 거 같아.



그렇기에 난 정말로...



쓴 맛이 나기 시작했단 말이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유혹하듯 침실로 향할 것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유아가 뭘 원하는지 알고 싶으면 와."



나의 말 한마디에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향했다.



아아, 즉답이라. 그러면 상처받는다고.



같이 침실로 향한 우리는 문을 열고서 닿았는데 그 소리가 무척이나 꺼림칙했다.



그는 침대에 앉았고, 난 잠시 제일 밑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상자를 꺼내들었다.



"뭐야 그거?"



궁금해하는 그를 뒤로하고 상자를 열려고 했는데, 너무나 낡은 나머지 제대로 열리지 않았고.



조금 힘이 들어가자 상자가 열리긴 했지만, 상자의 이음새 뜯겨나가 버리고 말았다.



망가져버렸네, 이제 됐나.



상자 안에는 소중하게 담겨진 낡은 색종이가 있었다.



난 조심히 들어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알아?"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체와 함께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기 권' 이 써져있는 색이 바래 원색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색종이.



"이건 내가 네 어릴 적 생일 때 주웠던..."



"응, 맞아. 쓰지않고 계속 소중히 간직해놓았어."



어릴 적 추억이 감명이 깊은지 그는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관심이 사라진 건지 내게 건네며 '유아가 원하는 것' 이 무엇인지 물었다.



"원하는 거? 아 참 그랬지. 알고싶어? 알고싶겠지. 그래 알려줄게."



서로의 살갖이 맞닿아가도록 그를 침대에 눕혀 점점 더 가까이에 다가갔다.



처음에는 의아했던 그였지만 내 가슴이 그에게 닿자 그는 뭐하냐면서 이러지 말라고 저항하지만.



혹여나 내가 다칠까 손목을 맞잡은 팔을 뿌리치지 못한 채 살갖이 완전히 포개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미사키. 대체 뭐하자는 거야..."



"응? 유아가 원하는 걸 알려주고 있는데?"



"아냐 틀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말로 해도 안다고."



"아니, 정말로 유아가 원하는 거야."



"장난도 그 정도까지 해! 이런 걸 유아가 원할 리 없어!"



"응, 없어."



"뭐? 너 설마 거짓말 친..."



"맞아 거짓말이야."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내게 쏜살같이 거칠게 날 밀어냈다.



헤, 화나면 이런 모습이구나.



"왜 이런 짓궂은 장난까지 해가며 거짓말을 하는 거야!"



아까 전 보여주었던 상냥함 없이 그저 있는 힘껏 밀어내고 있었지만 난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양팔을 목에 걸어 때어내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매우 당황해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왜 나한테 이런 짓을..."



"좋아하니까."



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말했다.



내 말 한마디에 그의 저항이 약해지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비로써 난 내 마음에 담긴 것들은 감히 꺼낼 수 있었다.



"좋아해 아니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미칠 정도로 사랑해."



몸을 비벼가며 서로 닿는 면적을 넓혀가면서 그를 점점 더 옭아맨다.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난 그래도 상관없었다.



"계속 너만 바라봤어. 유아가 있기 전부터 계속. 외톨이었던 내게 너가 첫 친구가 되어주었을 때 부터."



"그럼 왜 말을..."



"할 수가 없는 걸. 난 겁쟁이니까. 그래서 솔직한 네 모습이 부러웠고 좋아했었어.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좋으면 좋다고도 말하고. 난 그런 거 잘 못했으니까."



"..."



"난 어릴 때 반드시 너하고 이어질 거라고 굳게 믿고 왔었어. 너가 내 삶의 동경의 대상이었으니까."



밀어내고 있던 그의 두 팔의 힘이 완전히 풀렸고 저항은 이미 없었진지 오래였다.



난 그저 그를 더 강하게 옭아매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나 좋아하고 사랑했는데 넌... 내가 아니라 유아하고 이어질 줄이야."



"그건 ㄴ..."



"응, 내 잘못이야.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전달되지 않으니까. 정말로 너무 후회돼. 뼈저릴 정도로 말하지 못했던 내가 너무 싫어."



"..."



아무 말 없이 그저 내 말을 들어주고 있는 그.



아까 전 내가 그를 위로할 때와 완전히 뒤바껴버렸다.



"그래서 너를 본받으려고 해. 조금은 솔직해버리기로. 아직 너가 가지고 있지?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기 권'."



내가 그를 강제로 밀쳐 눕혔을 때. 색종이는 자연스레 그의 옷깃에 들어가 있었다.



"내 소원은 '내가 솔직해지는 것'."



"그걸로..."



"아니, 이게 전부야. 이거만 있으면 돼."



"대체 무엇을 하려고."



"키스해줄래?"



"...!"



"넌 유아하고 어디까지 했어? 역시 '그것' 도 했지? 그걸 나에게도 해줄래? 유아하고 해보지 않았던 것들도 말해줄래? 넌 어떻게 하면 기분좋아져? 어떻게 해야 널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거야?"



한껏 당황한 채 갈팡질팡 헤매는 사이 나는 그의 셔츠의 단추를 조금씩 풀어가고 있었다.



그는 더는 안된다는 듯이 단추를 풀어가는 내 손을 잡아 멈추고선 실망감과 분노로 가득 찬 무서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지만.



그는 이내 그러한 짓을 할 수 없게 되버렸다.



내 손을 잡고 있는 그의 팔 위로 조금씩 눈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기에.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코맹맹한 소리가 같이 울리고 얼굴은 눈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참을려고 했지만 조금 전 그하고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되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지 날 좋아해줄 거야...?"



그의 품속에서 흐느끼며 방 안은 나의 흐느낌과 함께 시계의 시침소리가 한동안 조용히 울려퍼졌다.



그는 내 머리를 쓰담아가며 조용히 말했다.



"마음대로 해."



나는 좋아한다 또는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거짓으로 답하는 그런 값싼 걸로 답해주지 않는 상냥한 그이니까.



그렇기에 더욱 더, 더욱 더.



"마음대로? 정말로 마음대로 해도 돼?"



"그래, 마음대로 해. 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쓴 맛이 나버린다고.



"최악, 실망이야. 유아가 있는데도 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잘못은 한 거 나, 나쁜 건 나. 그런데도 넌 왜 같이 책임지려고 하는 거지? 마음대로 하라는 건 너도 동조한 거와 다름이 없어.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결코 없었던 일로는 할 수 없단 말이야. 아까 전 까지 저항한 것도 유아를 생각해서잖아. 유아에게 미안해하지도 않아? 정말 최악이야. 아주 최악. 완전히 실망했어."



"..."



"하지만 그래도 좋아, 오히려 내게 더 좋은 걸. 그래 이제 어떤 거 부터 시작할까? 유아는 뭐 부터 시작해? 마음대로 하라고 했으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할까? 그래 그게 좋겠지. 그래야 더 기억에 남을테니까. 그러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



그가 내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말 그대로 정곡을 찌르는 말을.



"... 정말 너무해. 너무 이기적이야. 왜... 왜 끝까지 모른 척 해주지 않는 거야?"



마음이 차올랐다.



잠시 멈쳤던 눈물이 다시 홍수처럼 흘러나오려고 한다.



"내가... 내가 어떤 마음인지도 잘 알면서. 왜! 대체 왜! 미워해주지 않는 거야?"



"소중한 친구니까."



"아냐! 난 너의 친구가 아냐. 친구를 배신하고 유혹하는 나쁜 마녀란 말이야!"



그에게 애원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난 마녀야! 마녀는 미움받아만 한다고! 미워해! 미워라하고! 제발...!"



"미워할 순 없어."



"왜?!"



"소중한 친구니까."



"..."



나쁜 녀석.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나.



눈물이 뺨을 타고 입술에서 턱으로 흘러 침대에 떨어진다.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면 곧바로 다른 물방울이 떨어지고.



다른 물방울이 떨어지면 또 다른 물방울이 떨어진다.



시트는 이미 내 눈물로 축축해져버렸다.



"미움받으면 편해질 수 있는데... 이제는 버릴 수 있는데..."



아아, 쓴 맛.



이제는 눈물과 뒤섞여 짠 맛도 난다.



"내가... 내가 이런 걸 원할리가 없잖아... 내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너에게 미움받고 싶을리가 없잖아, 난 그저... 난 아아..."



방 안이 비애감으로 가득 찬 울음소리로 울려퍼져나간다.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린 나머지 이제는 더 이상 쓴맛이 아닌 짠 맛 밖에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덕분에 왠지 모르게 뭔가 알게 된 게 하나가 생긴 거 같다.



난 이제 어린애처럼 떼쓰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난 눈물을 닦아내며, 힘없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제 돌아가야 하지? 자, 어서 돌아가."



꺼림칙하게 닫히던 문이 살며시 열어지며 그 또한 침대에서 일어나 같이 침실에서 나왔다.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그가 꽃다발과 가방을 챙기며 현관문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며 배웅하기 시작했다.



"갈게."



"...기다려."



나를 그를 멈춰세우고 그의 옷깃을 가리켰다.



"아직도 너가 가지고 있네."



옷깃에는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기 권'이 아직 있어 다시 내 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색종이를 그 자리에서 바로 찢어버렸다.



"... 그걸로 괜찮아?"



"응, 괜찮아. 이걸로 됐어. 이건 이제 미련 밖에 남지 않게 되어버린 거니까.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이어질 거라고, 그래서 버릴 수가 없었던 거였지만. 이제 됐어. 이제는 필요하지 않게 되어버렸으니까. 이제는 어리광 부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다른 사람하고는..."



"없어. 내게는. 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 알겠어, 갈게."



"응, 잘가. 어서 가서 유아를 사랑해줘. 유아도 그걸 원하니까."



"나하고 만나기 전에 유아랑 만났구나. 너는 대체 얼마나..."



"유아도 나의 소중한 친구니까. 친구를 배신할 순 없어. 그러니까 자, 어서 가서 행복하고 싶었던 내 몫만큼. 유아를 행복하게 만들어줘."



"고마워. 미사키."



현관문이 닫히고 방 안은 이제 나 홀로 남았다.



뒤를 돌아보니 바로 눈앞에 아까 찢어버렸던 색종이 눈에 들어온다.



난 그대로 망가진 상자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쓰레기 속에서 마구 뒤섞인 것이 허무하게 느겨진다. 



겨우 이런 거 때문에.



그래도, 괜찮아. 



이제는 이걸로 충분하니까.



---



솜사탕처럼 달콤했던 그 맛이 난 지금도 느낀다.



하지만 달콤했던 솜사탕은 너무 단 나머지 어느세 가시가 되어버려 입안을 가득 치르고 말아버리는 쓴 맛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쓴 나머지 처음 느겼던 달콤함의 기억마저 잊어버리고 쓴 맛만 나는 괴로운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입안에 가득찬 이 가시들을 결코 내뱉을 수 없었다.



내게 이 기억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만약 버리게 되면 정말로 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채, 아무것도 아니게 되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와 나, 그리고 유아와 함게 보내온 그때 그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하고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 느겨지기 시작했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어떤 기분이었지? 무엇을 보고 웃었지?



정말로 그게 나였을까?



솜사탕이 가시가 될 수록, 달콤함이 쓴맛이 될 수록.



이 모든 기억들이 거짓으로 변해버리는 거 같았다.



그저 거짓으로만 된 기억만을 품에 안은 채, 내 자신도 거짓처럼 되버리고 말아버리는 있던 것이었다.



그것을 짠 맛이 내게 알려주었다.



그래, 난 괴로워하고 있었구나.



이 마음을 포기할 수 없어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구나.



소중한 기억들이 가시에 찔린 채 흩어져 간다.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것들이 사라져 간다.



내 자신이, 사라져간다.



이제는 놓아주자.



눈과 섞여 봄이 되면 같이 녹아 사라질 수 있게.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 마음을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이 마지막 해의 마음 고백으로 영원히 남겨두도록 하자.



나의 소중했던 기억들과.



끝내 솔직해질 수 있었던 나 자신과 함께.



소중한 친구를 위해서라도.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