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찌릿한 아침의 감각이 남아있는 눈꺼풀을 풀어주기 위해 지긋이 눈을 감고 있다. 물 묻은 아스팔트를 헤치는 타이어와 보도 블럭을 맞고 튕기는 물방울의 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 건물 내부의 스피커에서는 제목을 알지 못하는 감미로운 노래를 재생하고 있었다.


나는 꼭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온화한 색의 조명이 전체를 밝게 드리우며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카페의 한쪽 벽면을 책임지고 있는 통유리는 얇은 빗줄기가 어지러이 선을 긋고 있었다. 신호등이 초록색 빛을 켰다. 빗물에 가려 형체가 뭉그러졌지만, 먹구름에 햇빛이 가려 조명의 색만큼은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횡단보도 위로 사람이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바로잡고, 시선을 살짝 내려 온기가 피어오르는 곳에 집중했다. 흰색 머그컵 안에는 검고도 붉은 기운이 감도는 커피가 반 정도 담겨 있었다. 씁쓸한 향기가 차분했다. 손잡이를 잡았다. 검지, 중지 손가락으로 감쌌다. 손가락의 두번째 마디가 컵에 닿아 남아있던 온기가 고스란이 전해졌다. 약간의 무게감을 느끼며 입술까지 가져와 대고 커피를 기울였다. 그것을 입에 조금 머금고, 테이블에 올려둔 뒤 자연스럽게 힘을 풀고 손을 제자리에 가져왔다.


다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다른 감각들을 차단했다. 입안에 남은 텁텁한 맛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 쓰다. 하지만, 왠지 모를 고양감이 신체를 감싸 안은듯한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변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였다. 드문드문 앉아 저마다의 음료를 즐기는 손님들이 있다.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나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위화감으로부터 도망치듯이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빗소리는 규칙적이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의 박자와 일치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단순히 착각이라거나, 우연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강렬했고, 그것은 분명 나를 향해 있었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주위를 살폈다. 변한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변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있었다. 인테리어용 가구도, 카페의 메뉴도, 손님들의 위치도, 곳곳에 놓인 화분과 이름 모를 식물들도, 심지어 입구도 그대로였다.


나는 인식의 범위를 넓혔다. 통유리를 통해 건물 외부를 바라보았다. 바깥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다. 색색의 옷과 우산들이 교차하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번쩍이고, 또 몇 가지 대중적인 색의 자동차가 도로를 지나쳤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붉은색이었다. 도로에 칠해진 흰색 페인트의 위로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온통 검정색인 실루엣은 빗물에 가려 확인이 불가능했다. 조금 작은 체구였고, 4분의 3 지점에 주황색의 작은 빛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향한 시선의 주체라는 걸 깨달은 나는 생각을 관통하는 기묘한 감각과 함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포식자를 눈앞에 둔 먹잇감처럼, 공포감에 휩싸인 나는 카페의 정문 이외에 빠져나갈 수 있는 문을 찾기 위해 살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문으로 뛰쳐나가야 할까 고민했다. 우두커니 서서 수많은 선택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다른 통로를 찾지 못했고, 정문으로 나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빠르게 뛰어 카페 내부를 가로질렀다. 불투명한 시트가 붙은 정문을 당겼다. 먹먹하던 빗소리는 순간 증폭되어 실감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의 경계선 안쪽에는 흰색 운동화가 크림색 타일 위에 서 있었다. 내 발이었다. 문의 경계선 바깥쪽은 우중충한 날씨로 인해 어둑어둑했고, 끈이 정교하게 교차되어 있는 검정색 가죽 워커가 존재했다. 물방울이 앞코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신발에 익숙함을 느끼고,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검정 바지에 검정 셔츠, 품이 큰 검정 블레이저를 걸친 여성. 뻗어나온 흰 손으로는 검정 우산을 들고 있었다. 흑발에 머리카락이 얼굴 뒤에 드리워져 있었고, 지겹도록 맡았던 담배 냄새가 그제야 느껴졌다.


“찾았다.”


희열에 가까운 미소로 입가를 일그러트리고 행복으로 가득찬 목소리의 색채는 행복 이외에도 다채로운 감정이 물들어 있었다. 결국, 나는 그녀와 다시 만나버리고 말았다.


“……어디 가?”


째릿하게 눈꼬리를 기울이며 내 표정과 커피가 놓인 빈 테이블을 이어서 바라보는 그녀였다. 차가운 기운이 서려있는 질문에 나는 경직되었다. 끝을 알 수 없이 깊게 물든 눈동자에 영혼을 빼앗길 것만 같았다. 우리 둘은 마주선 채로 침묵을 이어갔다.


그녀는 정문을 지나쳐 우산을 접어 보관대에 두고 문을 닫았다. 실감나게 들리던 빗소리는 이내 잦아들어 내부와 외부가 분리되었음을 알렸다. 그녀는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내 왼쪽 쇄골과 오른쪽 날개뼈에 살포시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천천히 힘을 주어 내 몸을 내부로 돌렸다. 그 힘을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각인된 두려움이 그것을 거부했다.


카페를 들어왔을 때 보았던 벽면의 메뉴와 친절한 아르바이트생이 새로 온 손님에게 인사했다. 그 사람은 위화감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핫 커피, 한 잔이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두 팔로 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예전처럼 팔짱을 끼고, 그녀는 쓰러지듯 내 몸에 고개를 기대었다. 감아든 팔의 조임에 어깨 아래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진동벨을 건네주자 그녀는 그것을 받고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나를 끌고갔다.


나와 그녀는 몸을 강하게 맞붙은 채로 휘청거리며 걸어갔고, 자리에 앉았다. 내 어깨에 뺨을 기댄 그녀가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차마 그 눈빛을 마주할 수 없어 컵에 손을 대었다. 커피에는 온기가 사라져 있었다. 목덜미에 닿은 머리카락은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커피를 마셨다. 따뜻함이 가져다주는 고양감은커녕, 씁쓸한 맛만이 남아 있었다. 컵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살고 있었어?”


빤히 보는 시선에 순수한 호기심 따위는 없었다. 왼쪽 귀에서 명확하게 들리는 원망 섞인 목소리에는 잔잔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려 해도 금방 문장들이 단어로 부서지고, 또 부서져서 이윽고 분해된 자음과 모음만이 빙빙 맴돌 뿐이었다. 또한, 겨우 모래를 뭉쳐 만든 조잡한 대답이 그녀에게 있어 만족스러운 대답인지 자신할 수 없었다.


어색한 몇 분이 흘러가던 중, 테이블 위의 진동벨이 울렸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긴장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고개만 살짝 숙여 그걸 무심하게 보았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몇 번이고 울리는 진동벨을 무뚝뚝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집어들었다.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가지러 갔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한, 두 번 뒤를 돌아보며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미 그녀가 정문까지의 경로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도망치는 걸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컵이 놓인 짙은 갈색의 쟁반을 두 손으로 들고 다시 돌아왔다.


“다행이야.”


그녀는 다시금 내 옆자리에 앉은 후에, 팔로 나를 감싸고 진한 숨소리와 함께 그렇게 말했다.


“최소한의 상황 파악은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목소리는 또렷하게 변하며 마치 경고하듯, 한 글자, 한 글자, 신중하게 발음했다. 문장이 이어질수록 소리의 진원이 가깝게 다가옴을 느꼈다. 말은 끝맺어지지 않은 상태로 길게 늘어져서 귓가에 맴돌았다.


“정말 다행이야.”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함께 목덜미에는 그녀의 이마가 닿았다. 이마가 닿음에 따라 코 끝도 어깨와 목을 잇는 근육에 한 부분을 간질였다. 그녀가 뱉은 마지막 음성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묻어났다. 그렇게 몇 분 동안이나 붙어있었는지 모르게 되었을 때, 이마가 천천히 떼어지고 그녀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우리, 할 얘기가 많아. 정말로 많아서 지금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다 끝낼 수 있을 지 모르겠어.”


그녀는 어딘가 먼 곳을 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지 가늠할 수 없었다.


“여기는 사람도 많고, 탁 트여 있어서 좋은 곳은 아니야. 우리 집으로 가자. 다 준비되어 있어.”


내 몸을 감은 팔이 점점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지금 쓰고 있는 모자랑 마스크, 귀마개는 절대 벗지 마. 알겠지?”


다시 나를 향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대답조차 할 수 없어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좋아.”


“좋아…….”


그녀는 그 말을 되뇌었다. 그 단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는 듯이 애타게 되뇌었다.


*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