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람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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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

1화 2화 3화(完)

철혈 전함 비스마르크


조직


그것은 하나의 커뮤니티

그 명칭 아래 여러 사람이 협력하면서 일을 하게 되는 것


하지만, 이름만으로는 사람이 모이지 않으며, 통솔이 될리가 없었다

그 조직을 통일시키는 사람이, 비로서 그 위에 서야 성립되는 것

그리고 그 아래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여야 커뮤니티가 완성되는 것



그것이 고리와 고리를 이루면서

모두 간에 다양한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이였다


그리고 인연이 늘어갈 수록 서로간의 갈등도 커진다

그건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00명이라고 100명 모두 친구가 될 수는 없는 법

인간도 그런데 인간을 본뜬 그녀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


서로가 모르는 상대끼리 다툼을 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녀들에겐 기억이라는 것이 있던 것 같았다

어떤 것은 뚜렷하면서도 어떤 것은 애매모호 했다


그것은 그녀들이 KAN-SEN이 되기 전의 기억이라고 들었다


이것은 이 함대에서 모두가 하나의 고리 속에서 보내는

아련한 기억과는 거리가 먼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다툼의 기억이였다


사쿠라가 유니온을 미워하듯이

그리고 철혈이 로열을 증오하듯이 말이다


애당초 이미 엉킬대로 엉켜진 고리들



그리고 지휘관으로서의 나의 임무는

그 고리들을 엉켜지지 않도록 잘 풀어나가는 것


위에서 내려진 임무는 아니였지만

여기 처음 올때부터 그런 것을 느끼고 있었다


큰 조직 안에 있는 고리 하나

그리고 그 고리 위에서는 것이 바로 나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외적을 무찌르고 전과를 올린다

그 흐름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임무


과연 나는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자문자답도 할 필요 없다

대답은 누가 해 주지 않아도 알 것 같으니까 말이다


어두워지는 속내를 감추듯,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나의 경망스러운 태도는 항상 일을 만들어갔다

고리를 통일시켜야 할 입장인데도, 오히려 흩뜨리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아는데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성장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도대체 어떤 잘못을 한 것인가

어디를 고쳐야만 좋은가


성장하는 방법도, 고치는 방법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기분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위에 선 사람으로서 불안감을 아래에게 보여선 안된다

그것은 그녀가 알려주었던 말 중 하나


안되는 아이에게 안된다고, 분명하게 말해주는 어른의 말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함대에서 가장 신뢰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였다


살짝 문을 몇 번 노크하자 대답이 들렸다

문고리를 잡으려 하니, 잠시 손이 멈추었다


이 느낌은 뭔가

그래, 나쁜 짓을 한 후에 엄마에게 사과하러 가는 듯한 느낌


뭔가 느낌이 이상하지만, 딱히 싫은 것은 아니였다


현재 나를 꾸짖어 주는 사람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그녀 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미카사 씨도, 시리우스도 아마기 씨도, 다른 함선들도...

상냥하게 주의는 주지만, 확실하게 화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미카사 씨를 제외하면, 나는 그녀들의 상사이자 지휘관이니까



미카사 씨는 화를 내기보단, 타일러 주는 식이였다


아마 집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는 곳도 있겠지만

어렴풋이 남아 있는 기억으로는

우리 집이 그런 느낌은 아니였다


역시 그녀처럼 확실하게 꾸짖는 사람이였던 것 같다

이젠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 기억이지만...



문 끝에서 뭔가 압박 같은 것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일부러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에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딱히 혼나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취향은 아니였기 때문에

조심스레 문을 열면서, 그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들고 있던 시선에서 서류를 떼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몇 초만에 한숨을 동반한 채, 입을 열었다


"할 얘기가 있을 땐, 미리 연락하라고 부탁했을 텐데"


그녀, 비스마르크는 시선을 서류로 돌리며, 그렇게 내게 차갑게 말했다



"미안해"


"게다가 지휘관의 귀가 시간은 지금이 아닐텐데

일찍 퇴근했으면 제대로 알려야 하는거 아닌가?"


"...미안"


"그리고, 당신과 함께 간 론은 어디있지?

설마 그녀를 혼자 두고 돌아온 것은 아니겠지?"


"......미안해"




다시 무거운 한숨이 방을 채워나갔다

나는 조금이라도 바람을 쐬려고, 문을 활짝 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손에 쥔 서류를 책상에 내려 놓은채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응? 왜... 왜 그래?"


"뭐야, 응석부리고 싶어서 온 거 아니였어?"




그녀는 이리오라고 가리키듯 

두 팔을 앞으로 활짝 벌리면서,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아, 그러고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바로 얼마 전 일인데도, 옛날처럼 느껴지는 사건을 떠올랐다




"이봐"


"아, 미안해. 오늘은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됬고, 자"


"아, 그러니까"


"이봐"




...일단 내가 고쳐야 할 점을 하나 찾아낸 것 같다

그것은 무거운 분위기를 거스를 수 없다는 점



엉덩이와 등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과

나를 놓치 않겠다고 주장하듯 강하게 감겨진 팔의 감각


심지어는 은은하게 느껴지는 달콤한 냄새가

마치 지금의 내가 미끼로 낚인 사냥감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래... 나는 눈앞의 유혹적인 미끼에 거스를 수 없는 새끼 사슴 한 마리



"뭐, 여러가지 할 말이 있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네

그럼 지휘관 이야기부터 들어볼까?"


그녀는 내 귓가에 속삭였고, 숨결 때문에 너무나 간지러웠다



비스마르크는 가볍게 떠는 내 반응을 보고, 즐거운 듯 쿡쿡, 웃었다

평소 같으면 그녀는 이런 장난스러운 일을 피할 터였다

특히 지금처럼 일하는 중이였다면 말이다


그만큼 기분이 좋은 거겠지



"...MVP 축하해"


우선은, 라고 생각하며

순수한 마음에서의 말을 늘어놓았다


모든 일을 크게 뒤틀리게 만든 원인이 된 역할을 쟁취한 비스마르크

분명 그녀가 기분이 좋은 것은 이것이 큰 비율을 포함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고마워

이것은 모두 철혈이 노력한 결과야

최근 특별 개발인가 뭔가 해서, 다른 진영보다 출격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세세한 연계나 실전 경험치 같은 것도, 다른 진영보다 한 발 앞선 것 같아"


그녀는 이 말 또한 드물게도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확실히 승리의 달콤함에 취해 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전하기 위해서,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기 시작했다



"여기의 훈련에서

철혈이 다른 진영을 상대로 성과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모두가 크게 기뻐하더라

구축함이나 잠수함 얘들은 아주 난리가 났어

당신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구나"


분명 성과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기뻐하는 얼굴을 봐서 기분이 좋겠지

누구보다 철혈의 함선을 아꼈던 그녀

소중한 동생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만족한 것 같았다



"그리고 MVP도 받았고 말이야"


"...그렇군"



여기서 말문이 막혀버렸지만, 맞장구는 쳤다

역시 지금은 도저히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일단 그녀들이 이번 훈련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얼마나 기쁨에 즐거워하는지 물어봐야지


그리고 그것들을 듣고, 그녀들의 분노를 받아야만

비로소 나는, 나의 멍청함을 알 수 잇을 것 같으니까 말야



"평소의 나라면... 이런거에 그다지 흥미는 가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보상이 있었으니까 너무나 기쁜 걸

오이겐이 내가 더 지휘관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으니까

자신에게 보상을 달라는 소리를 내게 했지만

그럴 수는 없어

지휘관을 기쁘게 할 함선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말이야"


"그..."


맞장구를 치려고 하니, 그보다 빨리 입이 닫혔다

그녀가 내 두 뺨을 살짝 눌러, 억지로 위를 향하게 했기 때문

그것 때문에 순간 혀를 깨물 뻔하기도 했다




"야, 지휘관"



부드러운 목소리면서도, 거꾸로 보이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

그 강직한 눈동자를 도저히 보기가 두려웠다


"너를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함선은 누구일까?"
 



나를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함선......?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

하지만 애매한 대답으로 돌려선 안될 것 같았다


"곁에 있으면,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함선이야

어렵게 생각하지말고, 네가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해줘"



편안하고.... 아늑한 함선....


머릿속은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입은 신기하게도 머리보다 앞섰다


"없어"


나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건 없어"



순간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비스마르크에게 한 것이 아닌

아마도 나 스스로에게 한 말


"나는 모두가 중요하니, 특정 하나를 편애하진 않아"



나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갑자기 조금의 혐오감이 나를 덮쳤다

온몸에 느껴지고 있던

비스마르크의 따스하고도 부드러운 감촉이 갑자기 싫어졌다



"비스마르크, 미안하지만 내려줘"


"...아, 알았어"



그녀는 말없이 내게서 손을 뗐다

나 또한 살며시 그녀 곁을 떠나서 앞에 섰다


비스마르크가 아무리 장신이라고는 하지만

앉아 있으면, 역시 내가 그녀보다 키가 컸다

나는 시선을 내려다도며, 그녀의 온몸을 응시했다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징그러워



인간의 모습으로 남들과 똑같이 사고하고

대화하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화합하고, 친목을 다지고

손을 잡고 살아가는 모습이....


사람을 만지는 것처럼 따뜻함이 있고

감정이 있고, 생각하는 모습이...


함선은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을 제외하면 남과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미카사 씨가 내게 전해준 것이였다

하지만 그 말은 아직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면, 비스마르크나 다른 함선들은...


무서웠다



알 수 없는 힘으로

인류를 공격해 오며, 인외의 기술들을 사용해 태어난 그녀들



너무나 무서워




"지휘관?"


"...어, 왜 그래?"


나는 떨리는 손을 숨기듯 뒤로 돌려,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이제 와서 그런 걸 해봤자, 늦은 것 같지만



"....글쎄, 왠지 미안한 걸

심술궂은 질문을 해서 말야"


다만 다행인건

그녀가 내 모습을 다르게 해석했다는 것


"내 앞이여서 그렇게 말했던 거겠지?

하지만 솔직히 말해주길 바랬는데, 시리우스가 최고잖아?"


"시리우스?"


"그렇잖아

지금까지 줄곧 곁에 뒀으면서

특별한 감정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인걸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어"


그런가?

하기야 여기서 제일 오랫동안 교류한데다

내 옆에 항상 있어주었던 함선이니 말이다


함선이라는 존재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억지로 잠깐 치워놨다면

나는 분명 시리우스의 이름을 밝히며, 긍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옛날 회상을 했던 탓인지, 미카사 씨가 떠올라 버렸다

또한 시리우스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보여

내 생각이 점차 달라지려 하고 있었다




...시리우스

이젠 조금씩 그녀가 무서워지고 있었다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함선


그것은 남과 같아 보이지만, 그 힘은 남을 훨씬 능가했다

때로는 괴물로 낙인찍혔을지도 모르는 존재

아니... 그들은 실제로 괴물이다

그들의 원천이 되는 존재가 바로 괴물이니까...


그리고 그런 함선들과 지내는 것이 나의 일


그러니까, 그녀들이 괴물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그녀들이 불안정하게 되지 않도록

예쁜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 분수를 크게 넘은 일이였다




"음... 시리우스도 중요하지만, 역시 최고라고는 말할 수 없어"


아마 이걸로 괜찮을 것이다

이것이라면 가장 불만이 남지 않을 것이다


로열메이드를 비스마르크 앞에서 칭찬하다니

두고두고 응어리가 남을 것 같지만

일단 이 대화로 무난하게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런가, 아쉽내

비서관을 그 여자애로 삼으려고 했는데"


"그렇군......뭐?"


생각치도 못한 말에 놀랐다


"...비서관, 안 하려고?"


비스마르크는 나의 반응을 보고

즐거운듯이 입을 일그러뜨렸다

아까의 내 얼굴을 봤던 것 같았다


"응, 그래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는 철혈의 리더로서 일이 있어

지휘관이 정 하라고 한다면, 내가 비서관을 하겠지만 말야"



"...그건"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만약, 시리우스가 계속 비서관이 된다면

그녀도 점차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말을 그렇게 수긍해도 되는 것일까

불과 몇 분전에 모두가 특별하지 않다고 했던 혀도 마르지 않았건만



"지휘관"


"...응?"


"난 지휘관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이대로 철혈의 아이 중 누군가에게 양보하면

거기서 싸움이 일어날 것이고

만약 그 아이가 비서관이 된다하면

당신은 분명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겠지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시키고 싶진 않아

우리 얘들의 반기는 얼굴 기억하지?

비서함보단 얘들에게 기뻐하는 모습을 안겨줬음 좋겠어"



"...비스마르크"


그녀는 입가에 강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 이상으로 부드러운 그녀의 상냥함에 매력을 느끼고 말았다



"정말 고마워"


나는 내 미안함과 한심함을 느끼며,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현실이란 것은 그렇게 만만하진 않았다


"별거 아냐"


어떤 일에는 무엇이든


"이것은 나 뿐만 아니라, 철혈 모두의 힘으로 얻은 것"


등가 교환이라는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 난 아직 받은 게 없는 걸"


"응? 받은 것?"


"그렇지

이 권리를 시리우스에게 넘기는 대신, 네게 부탁이 있어"


조금 전까지 내 아래에 있던 비스마르크였지만

의자에서 일어서니, 모델처럼 매우 키가 커졌다


나는 그녀의 미소에 이끌려, 시선을 들어 올리자

그녀는 곧 대가를 발표했다



"나한테 키스해줘"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아, 우리는 함선이니까 너의 소유물이나 마찬가지야

적어도 지금의 나를 그렇게 생각해줘

주인이 물건을 아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팽개치고, 던지기만 하면, 물건 쪽에서 주인을 몰라보는 법

그래서 그렇게 되기전에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키스만 하면 돼, 그 이상은 아직 바라지 않아

함선이면서도 여자인 나를 당신의 마음으로 사랑해줘"



"아... 안돼!"


"어머, 왜 그럴까?

함선을 사랑하지 말라는, 그런 규칙은 없잖아"


"무...물론, 그런 규칙은 없지만!!"


"그럼 됐잖아"


"아무튼 그건 안돼!!"


언성을 높여서 필사적으로 저항해보니

그녀는 재빨리 내게 매정하게 되받아쳤다


"그래? 그렇다면, 지휘관의 새 비서관은 론이야"



"론!? 어째서!?"



"이번 훈련에 참가하지 못해서, 억울해하고

그녀는 남들과 다른 특별개발함이라 

여기서 비서함 자리를 주면 잘 풀릴거 아냐

지휘관 옆에 두고, 효율적으로 데이터 수집을 시키던가 말야

그녀는 분명 당신을 있는 힘껏 응석받이로 받아줄 수 있을거야

비서함한테는 방 열쇠도 건네지니, 밤도 같이 보내지 않을까"



론....밤....

그것은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거 매일 계속되는 건 싫어!!


그리고 그녀는 무섭다...

라고 할까, 왠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집요하게 응석을 원하는 것도 아닌

반대로 내게 공격해오는 그 모습은 너무나도 버거웠다


"적어도, 다른 함선으로..."


"안 돼, 시리우스와 론 중에서 선택해

그 외에 다른 함선을 고르고 싶다면, 나와 키스를 하던가"



......정말 매정하군



"안 돼, 차라리 다른 조건을 걸어줘"
 


"조건을 거는 것은 나야

그리고 난 이것 말고는 다른 걸 원하지 않아"


"..........."


무슨 말을 해도

비스마르크의 의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미소를 유지한 채, 어투를 강하게 해갔다


"지휘관, 난 당신 거야

나는 충직한 당신의 물건

그러니 애정을 쏟는 것은 주인의 의무이자 책무야"


"비스마르크는 물건이 아니야

함선이라고.... 살아있어... 그렇지?

그렇다면 물건 취급 같은 것은 할 수 없지

게다가 설사 물건이라고 해도

철혈은 본부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함부로 할 수 없어"



"확실히 우리 모두 본부의 소유물일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직접 사용하는 주인을 사랑해

우리를 사용하는 자는 바로 지휘관"



"아니야... 그건 아니야"



"뭐가 아닌데?"



"키스는 너무 지나쳤어

더 좋은 것이 있을거야"


"음... 지휘관은 나랑 태생이 다르니까, 가치관이 다르겠지

하지만 키스를 인삿말처럼 쓰는 문화가 있는 나라도 있어

인사처럼 하는 키스가 있는거고,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키스가 있는거야

지휘관은 부담 갖을 필요 없어, 그저 인사처럼 하기만 하면 돼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내가 할테니까 말이야"


반박할 말은 또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녀가 내게 무언의 말을 건네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분명 원할하게 끝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휘관이 우리 철혈을 사랑하는 것을 믿어

우리는 지휘관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하지만 요즘 그것이 시들시들해지는 거 같아

그래서 증명을 해줬으면 하는 거야

당신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그러니까 부탁이야

내 소원을 들어줘"



소원을 들어주는 것 뿐

그것은 내가 몇 번이나 해왔던 일

그리고 그걸 이루어주면, 그것은 더 큰 화로 불어나 내게 닥쳐오곤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처음엔 벨파스트의 소원을 들어줬다

비서관을 교체해달라는 부탁이였다


아마기

비서관을 바꾸는 것을 훈련에 관련시킨다면

모두의 동기가 늘어날거라고...


내가 없어도 상관없을텐데

무리하게 본부로 가게 되었다


그 바람에 엔터프라이즈의 훈련을 지켜보라는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 만나서 제대로 사과해야지


그리고 시리우스

그녀가 비서관으로 있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여기서 론을 비서관으로 지명한다면

그녀를 강경하게 몰고 갈 수도 있겠지



다들 소원을 내게 말한다

직접 말하는 것도 있고,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이렇게 협박하는 것마냥, 밀어붙이는 것도 있었다


천차만별

진짜로 사람 같잖아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눈 앞의 사태에서 시선을 돌리니

신기하게도 웃음이 넘쳐 흘렀다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꾸었다

비스마르크도 대강 알아차린 것인지

무릎을 살짝 구부려서, 내 얼굴에 맞추었다


...이런건 원래 남자가 맞쳐주는 것 같았는데...


뭐, 어쩔 수 없지



튀어나온 빨간 입술

평소엔 그닥 신경쓰진 않았지만

이렇게 내밀어지니

요염한 빨강과, 조금 젖은 입술이 빛을 난반사시켜

더욱 더 야릇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이제 지금부터...



여느 때와 같아

난 언제나처럼 모두의 소원을 이루어 줄 뿐이야



함선들의... 조금은 남들과는 다른 소원을 들어줄 뿐...



거기엔 특별한 감정도, 의사도, 의미도 없다


나 자신을 정당화시키지 못하면서

나 자신을 납득시키지 못하면서

그렇게 나는 이번에도 하나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늘 이렇다

주위에 말려들어, 불합리하게 휩쓸리듯 마구잡이로 일이 진행되어 버렸다

거기에는 나의 의사 따윈 없었다


이것을 고치려고, 나는 여기에 왔는데...

내가 상사임을 재확인하고,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할지

조언을 구하려고 왔지만


이번에도 어느 하나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아니,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있었다



나는 역시 지휘관 따위에 적합하지 않다

남의 위에 서는 것은... 내 적성이 아니야


비스마르크가 지그시 눈을 감은 것은

내가 서서히 그녀의 얼굴에 입술을 가까이 대었을 때


서로의 양 볼이 빨개졌다


비스마르크의 이런 얼굴을 볼 수 있다니 신기하군



그런식으로 나는 문제에서 눈을 회피하면서

살짝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






후후후후후후후

아아, 미안한 걸

설마, 진짜로 해줄 줄이야


괜찮아, 이번만이야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조금 기쁜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다는 것은 역시 기뻐

나도 여자라고?

자신을 채우고 싶을 때쯤은 있어


고마워 지휘관

그래,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키스를 해줬으니까

나도 꽤 붉혔다고?

당연하지, 나도 첫 키스였으니까


키스를 인사로 하는 문화도 있다고 했지?

후후후, 사실은 나도 잘 몰라

일단 철혈에 그런 문화는 없어



후훗, 너무 화내지는 말아줘

철혈에 있다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잖아



하지만 이걸로 지휘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소원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그 대신... 대가를 꼬박꼬박 치러야 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