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동아리 시간이 끝나자 나는 부원들을 보내고 혼자서 찻잔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직 찻잔에서는 페퍼민트 향이 조금 남아있었다. 과연 부원이 모이긴 할까 싶었던 ‘차와 독서를 함께 즐기자’는 다소 고상한 취지의 동아리는 책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이 모여준 덕분에 폐부의 위험은 없었다.
사실 ‘책을 좋아하는 학생’은 틀린 표현이었다. 대부분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책으로 도피한 ‘찐따’거나, 읽는 거라고는 라이트노벨 뿐이면서 자신은 독서를 좋아하는 책벌레라고 자칭하는 ‘씹덕’인 탓에 동아리는 사회성이 결여된 학생들만 모여있었다.
“뭐, 사실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
접시와 찻잔을 쌓아 책상에서 치우고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했다. 원래 이곳은 실험실이었던 모양이지만, 새로 신설된 다른 실험실 때문에 여기는 잘 쓰이지 않고 실험과 같은 일을 하던 동아리도 그 곳으로 옮기는 바람에 우리 동아리가 이 실험실에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실험실이었던 덕분에 싱크대가 있어 여기서 설거지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도중, 뒤에서 누군가가 내 등을 톡톡 두드리자 나는 고개만 휙 돌려서 그 원인을 살펴보았다.
“아, 너구나. 지난번에 빌려간 책 돌려주러 왔어?”
그녀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듯 우물쭈물 거렸다.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귀여운 소녀는 나보다 1살 어린 후배인데, 아까 앞서 설명했던 ‘찐따’에 속하는 학생이었다. 참고로 찐따와 씹덕의 공통점은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한 번 그녀가 읽고있는 책을 보고 “아, 나도 이 작가 좋아해.”라며 이야기하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나서 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다 이야기하고 나서는 흠칫 놀라더니 얼굴을 붉히고 “죄송해요… 제가 너무 분수에 맞지 않게 떠들었죠?” 라고 말하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파르르 떨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한 손에 편지 비스무리한 것을 들고 있었다.
“…이거 받아주세요.”
내 앞에 편지 하나를 밀어놓고 나간 그녀는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아, 이거 그거구나.”
나는 단번에 이 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었다.
##
하교 후 그녀가 편지로 불러낸 놀이터에 갔더니 그녀가 벤치에 다소곳하게 앉아있었다.
“안녕.”
나는 평소에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리를 조금 숙여서 눈높이를 맞춰 주는 것은 매너이기에 그것 또한 잊지 않았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기에는 부끄러운지 시선은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불러낸 이유는 알고…계시죠?”
“응. 편지 읽었으니까. 글씨 예쁘게 잘 쓰네.”
진심으로 한 칭찬이었다. 나는 글씨가 예쁘지 못해서 그녀의 글씨를 보며 감탄했다.
“그, 그런가요…”
그런 사소한 칭찬에 그녀는 표정이 밝아지며 고개를 들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얼굴이 빨개지며 다시 고개를 내렸다.
서로 아무런 말도 없이 긴 침묵이 이어지자 그녀는 윗 이빨로 입술을 씹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다시 들고 내 눈을 주시했다.
“좋아해요, 선배. 저랑 사귀어주세요.”
아까까지의 부끄러워 하는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미안해, 조금만 시간을 줄래?”
처음부터 결심했던 말을 꺼냈다.
“지금 당장 말을 못해주는건 너를 힘들게 한다는 거 알아. 그래도, 시간을 줄 수 없을까?”
그녀는 거의 울상이 되어있었다.
“미안해.”
그녀의 어깨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저기…괜찮아?”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간, 드릴게요.”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 순간, 그녀의 손에 들린 전기충격기를 발견했고,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쓰러졌다..
“시간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아주 천천히. 공을 들여서. 선배가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마쉬고 다시 내쉬었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사랑해요. 선배.”
그것은 광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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