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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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박, 찰박.


질척거리는 느낌이 불쾌하게 달라붙는다.

갑주 사이에 끼이는 진흙이 한층 더 몸을 무겁게 하는 기분이었다.

하늘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나 많이 쏟아질 줄이야.

칼카라스 평원을 벗어나자마자 쏟아지는 소낙비를 뚫고 묵묵히 걸음을 떼었다.

조금도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목적지는 왕국.

어떻게든 왕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다 쓰러지겠네. 좀 쉬어가는게 어떤가?"


뒤에서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느긋하면서도, 여유로운...

그저 뒤를 슬쩍 보고는,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닉스는, 세찬 비 속에서도 한 방울의 물조차 닿지 않은채 능글스럽게 웃고 있었다.

가히, 신비한 광경.

마치 비가 그녀를 피하는 듯한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마법사가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떨것이다.

마법사라고?

웃기는 얘기지.

난 저 존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닉스.

그것은 심연에 사는 신이었다.

사람들은 신을 믿는다.

내 왕국은 물론 모든 인간들이 저마다의 신을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신으로 '정의'할 수는 있었다.

무릇, 인간이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괴물' 혹은 '신'이라 지칭하니까.

그래서 난 저것을 '신'이라고 정의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 그녀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그것이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불경하다.

저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도 공포가 인다.

저런 것과 말을 섞는다는 그 행위만으로도 천벌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라도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참으로 어리석군. 그러다 열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겐지?"


그런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닉스는 걷는 내내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단 한마디도 대답해주지 않았음에도, 닉스는 내색조차 없었다.

질리지도, 지치지도않고.

아무리 초월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솔직히 말해 짜증이 일었다.

지금 내가 어떠한 심정으로 걷고 있는지.

왕국으로 향하는 내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지도, 헤아리려는 노력조차 없이, 정말 재밌는 여정인 것처럼 치부하고 있었다.


"이것 참, 안되겠군. 자네 좀 멈추어보게."


덜컥.


끓는 마음을 비에 씻어내며, 걷고 있던 나를 닉스가 멈춰세웠다.

물론, 생각으로는 지금도 계속 걷고 싶었다.

마법 때문에 멈추어버린 내 몸이 참으로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렇게나, 말을 걸었네만 자네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 할 셈인가?"


멈추어선 내 앞으로 닉스가 짐짓 화난 표정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것 또한 거짓된 감정.

양 팔을 허리에 댄채, 뚱하니 볼을 부풀리고 있었지만 그것도 거짓되게 보인다.


"마치, 장님 같구나. 정작 진짜 눈을 감은 이는 바로 '이 몸'일진데. 하하!"


농담같은 소리를 내뱉으면서 과장되게 웃어보이지만, 전혀 웃기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마법을 풀어주길.

그렇게 생각하며, 그저 왕국으로 가는 길 만을 바라보았다.

걸어서 사흘 정도 거리지만, 밤낮없이 걷다 보면 이틀이면 충분하다.

비 때문에 체력을 뺏기고 있지만, 그렇기에 항상 몸을 단련하지 않았는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풋.


돌연 빗소리를 뚫고 들리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살짝 찡그린듯한 표정.

혐오스러울 정도로 빙긋히 올라간 입.

닉스였다.


"푸흡...아 이거 참 미안하군. 좀 웃겨서 말이야."


뭐가 웃기다는 거지?

멍했다.

그녀가 나를 보고 비웃고 있었다.

입을 파들 파들 떨면서도, 정말 웃긴듯이 숨죽이며 웃고 있었다.

뭐가 웃기단 거야.

지금 이게 웃겨?

분노에 손이 덜덜 떨린다.

당장이라도 칼을 빼들어 그 비틀어진 얼굴에 쑤시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당장이라도!


"자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네."


심장을 꿰뚫는 말이었다.

헛되다고?

아니다.

헛된게 아니다.

주군의 옆을 지키는 것이 기사의 소명.

설령 어떤 오지에 떨어지더라도, 반드시 귀환해, 주군을 뵈어야 한다.

그것이.


"충고하겠네. 왕국으로는 가지 말게."


얼음장 같은 미소였다.

난 그녀에게 왕국으로 가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닉스는 모든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먼저 왕국이라는 말을 들먹였다.


"...무슨, 소리야."


그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와, 다짐을 깨고 입을 열어버렸다.

왕국으로 가지 말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일어나는 것인가?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비틀어보지만, 몸은 미동도 없었다.


"이것은 그대들이 말하는 예언일 수도, 혹은 그저 미치광이의 헛소리일 수도 있네. 다만 방금 내가 '보고' 말았으니 앞으로도 그대의 길이 순탄치는 않을걸세."


"알기 쉽게 말해! 왕국을...데우스 왕국을 알고 있어?! 그리고...그리고! 왕국은 어떻게 된거야! 당장 말해!"


조급해진 마음은 화를 일으켜, 쏘아낸다.

나도 모르게 위협하듯이 으르렁 거렸음을 느꼈지만,  작금의 상황이 급하여 신경쓰지 않았다.

닉스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하하하! 정말 무지하군. 그래서 용감한 것일수도 있지. 정말 내가 더 말해주길 원하는가?"


그렇게 말하면서, 닉스는 잔인한 미소를 띠었다.

마치, 더 말해주기를 원하는 행동같았다.

그 모습에, 조금이지만 아주 조금이지만 망설였다.

불길했기에.

바라는듯한 그 행동에서 왠지 모를 꺼림칙한 감각이 일었다.


"후후, 그럼 됬네. 이제 내가 더 할 말은 없네."


그것을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닉스는 마법을 거뒤들이고 나를 풀어줬다.

다시 자유를 찾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도, 나는 닉스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예언.

혹은 헛소리.

그녀는 무언가를 본 것이 분명했다.

'신'이라는 것이니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언이라는 말을 되새긴다.

그렇다면 그것은 왕국의 미래의 모습을 본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썩 좋지 않은 미래라는 것.

이 추악한 존재가 미소를 짓고있으니, 그것만은 분명했다.


"아, 이 말을 깜빡했군."


상념에 빠진 나를 뒤로 하고, 그녀가 말했다.

깜빡했다고?

농담이 심하군.

닉스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빙긋히 말을 이었다.


"왕국으로 가지 말라고 한 이유에는 이런 것도 있네."


퍼억!


순간적으로 몸이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몸이 붕 뜨는 듯한 괴의한 감각에 저도 모르게 의문이 떠올랐다.

모든것이 느려지는듯한 착각속에서, 몸이 천천히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땅에 닿기 직전까지 들었던 생각이었다.


쿠당탕!


"크하아악!"


극심한 고통에 비명이 터져나왔다.

땅에 떨어진 충격, 그리고 내 몸을 날려버렸던 어떤 충격까지 일순간에 짓쳐들어와, 온몸이 삐걱대는 기분이었다.

늑골이 몇대 나갔는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기습인가.

빗소리에 묻혀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다만, 인간의 공격은 아니었다.

아무리 힘이 장사라도, 갑주를 입은 성인 남성을 날려버릴 정도의 힘은 사람에게는 없다.

그렇다면...


[........]


그제서야 날 공격한 놈을 볼 수 있었다.

괴악하게 생긴 눈.

추악하게 푸들거리는 코.

징그럽게 불뚝거리는, 혈관.

뚝뚝 떨어지는 붉은 침.

마수였다.


"자네는 선택을 했네. 그럼 그 대가를 치러야 하지."


오물과 토한 피로 뒤덮힌채 누워있는 내 옆에 닉스가 다가왔다.


"마음껏 싸우게. 마수와의 싸움이 처음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네."


눈을 적시는 비 때문에 눈이 자꾸 감겼다.

하지만, 닉스는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듯, 그 손으로 내 눈꺼풀을 찬찬히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감은 눈을 정확히 내 시선에 맞추며, 조용히 속삭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게, 내가 있는 한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야."


허황된 말이지만, 그녀이기에 꺼낼 수 있는 말이었다.


절그럭, 절그럭.


천천히 진창에서 몸을 일으켰다.

푸들대고 있었지만, 이가 부서질정도로 꽉 물고, 어떻게든 일어섰다.

죽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마수와의 전투가 처음은 아니었다.

왕명에 따라 수많은 전장을 돌면서 사람만 죽인 것이 아니었다.

다만.


마수를 상대로 '혼자' 싸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


몸을 일으키자마자 마수가 기괴하게 포효했다.

이내 육중한 거체를 들이밀며, 무섭게 쇄도한다.


"크흐읍!"


일어난지 수 초도 안되어 다시 진창을 굴렀다.

다만, 마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선택일 뿐, 다행히도 저 비정상적으로 큰 팔에 채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땅을 구른 탓에 오른쪽 가슴이 숨을 쉴때마다 시큰하게 아파왔다.

폐를 다쳤다.

이미 마수에게 맞은탓에 흉갑이 잔뜩 찌그러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편하기 위해, 그 고철을 벗어던졌다.


덜크렁.


마수는 기습할때의 은밀함과는 다르게, 꽤나 몸이 굼떴다.

혹은, 눈이 나쁜 것인지 한차례 돌진한 이후에는 연신 나를 찾는듯 등을 훤히 드러낸채 코를 킁킁대고 있었다.

그렇다면 운이 좋군.

이 마수가 후각으로 사냥감을 찾는것이라면, 지금 내리고 있는 비 때문에 쉽게 찾지 못할 터.

물론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가는, 결국에는 냄새를 맡고 다시 달려들게 뻔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침착하게 검을 뽑았다.

나는 아주 조금씩 마수와의 거리를 좁히며, 검 끝을 마수에게로 향했다.

놈은 아직 나를 찾지 못했다.

아직은.

몸의 격통을 애써 잠재우며, 차분히 베어낼 대상을 바라본다.

어딘가 약점은 없을까.

눈이 나쁜게 맞는걸까.

만약 아니라면?

몇몇 영악한 마수들은, 일부러 자신의 약점처럼 보이는 곳을 드러내며 상대를 농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불쌍한 프랭크.

그런 마수에 당해 머리가 뜯겨나간, 초급 기사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방심했다간, 나 또한 그렇게 될지 모른다.

확실한 약점.

그 약점은 머지 않아, 알 수 있었다.


[...!!...!!....!]


가까워질때마다 마수의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가 커진다.

냄새를 맡은 걸까.

마수와의 거리는 겨우 열 발자국도 되지 않는다.

발작하듯 몸을 푸들대는 마수의 모습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킁, 킁.

돌연, 마수의 떨림이 멈추었다.

그것이 나를 느낀듯, 고개를 돌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지금이다.

그 순간, 나는 번개처럼 달려가 칼을 찔렀다.

약점이 명확히 보인다.

비곗덩어리 처럼 부풀은 코.

그걸 확실히 없애 녀석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할 셈이었다.

짓쳐드는 칼이 녀석의 코에 닿는다.

이대로 끝까지 찔러넣은뒤에는, 곧장 몸을 피할 생각이었다.

근데.


쩌어억.


돌연 마수의 코가 벌어졌다.

내 검에 의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좌우로 벌어지는 코에는 흉악한 이빨이 가득하다.

아, 프랭크.

영악한 마수.

마수의 코, 아니 입이.

있을수 없는 크기만큼 벌어져, 내게 다가왔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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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갈것 같아.

정신 나갈것 같아.

정신 나갈것 같아.

정신 나갈것 같아.

정신 나갈것 같아.

댓 남겨주신 분들 감사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