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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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사람에 따라서 고어할 수 있는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성이 없는 분들은 뒤로가기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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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스 대삼림.

끔찍했던 기억만 남은, 그 숲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흉측한 마수들이 저 숲에서 숨을 죽인채 기회를 노리고 있을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렀지만 별수 없었다.

왕국을 해자처럼 두르고 있는 삼림을 경유한다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간사하고 연약한 사람의 마음처럼.

이미, 몇 차례나 죽어나자빠진 숲으로 가는것은 정말로 괴로웠다.


"그래서, 어디로 갈꺼야?"


어느새 내 옆을 걷고있던 닉스가 열매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아직도 먹는거냐.

도대체 얼마나 주머니에 쑤셔넣었는지, 그녀는 다람쥐처럼 쉴틈없이 열매를 입에 털어놓고 있었다.

닉스.

지금에 들어 그녀에 대한 감정은 나름 오묘했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신.


처음에 그녀를 봤을때는 절망했다.

있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부정하며, 정신이 파괴되는 듯한 고통속에서 두려워했다.


그녀가 날 되살리기 시작했을때는 분노했다.

희롱같은 기적속에 육신을 일으키면서도 마치 어린 아이의 손에 들린 작은 곤충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멸망한 왕국을 보고 절망하고 있던 내게, 그녀는 이 반지를 주면서 다음 여정을 종용하고 있었다.

즐기고 있는가?

그녀는 내가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끝도 없이 좌절시키며.

끔찍한 절망을 맛보여주면서도 길을 제시한다.


왕국에 대한 과거를 본 대가로, 멋대로 죽이고는 다시 되살린다.

다시 멋대로 되살린 그 힘에 대한 대가는 다시 죽음.

시련에 시련을 내리면서도,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좌절하기를 바라는가?

울며 몸부림치는 날 보면서 희열이라도 느끼는건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에게 가져야 하는 것은 끓어오르는 분노인가?

아니면 심연과도 같은 끝도 없는 절망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애써 갈무리한채 굳은 입을 뗴었다.


"...제국."


"호오? 혼자?"


내 말에, 닉스가 흥미로운 미소를 띤다.

복수.

혹은 보복.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하는지,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어림도 없지.


"뭔가 착각하는것 같은데, 아무리 죽지 않는 몸이래도 혼자서 제국에 맞설 생각은 없어."


"흐응? 가능하지 않아?"


태연히 물어본다.

도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거냐.

아무리 죽지 않는다고 해도 고통을 못느끼는 것은 아니다.

전장에서 검만 휘두를줄 아는 놈이, 제국을 단신으로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죽어야 할까.

수십, 수백은 커녕, 수만번 죽어도 불가능 할 것이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순간까지 내가 제정신일 수 있을지 부터가 의문이다.

닉스니까 가능하다는 소리겠지.

그녀는 시간과 고통에 구애받는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


"모든 기준을 너에게 맞추지마. 그런건 불가능해."


"너무 함부로 단정짓는것 같은데? 난 객관적으로 말한거야. 충.분.히."


속을 읽을 수 없는 그녀의 얼굴이 참 밉상스러웠다.

말을 말자.

결국 먼저 입을 닫고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마수.

마수.

마수.

어디를 둘러봐도 마수가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숨을 내쉬며.

침을 흘리며.

내 뒤를 노리는 듯한 느낌에,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숲은 적막했다.

불길할 정도로 적막했다.

아우스플루그시여, 부디, 남은 여정을 축복해주시길.

여행자나 탐험가가 믿는다는 여정의 신에게 속으로 빌었다.


"제국을 무너뜨릴것도 아니면서, 그럼 왜 가는거야? 응?"


아무리 빨리 걸어도 그림자처럼 달라붙는 닉스가 계속 질문했다.

호기심도 많으셔라.

그렇게나 위대하신 존재면서, 한낮 사람 하나의 마음도 읽을 수 없는걸까?

알다가도 모를 닉스의 귀찮은 질문들을 대충 받아줬다.


"제국은, 그나마 멀쩡할테니까."


"...이유는?"


"비록 제국에 한번 멸망당하긴 했지만, 네가 말한 '마수 대침공' 때문에 왕국이 완전히 파괴됬어. 그 말은 즉 그것들이 평범한 마수들이 아니라는 거지."


제 얼굴에 금칠하는 기분이었지만, 데우스 왕국은 그리 군사력이 약한 국가가 아니었다.

그 어떠한 생명체도 살지 못하는 '신들의 땅' 바로 아래에 위치한 데우스 왕국은, 그로스 대삼림이 없었다면 아예 생존하기도 힘든 위치에 있었다.

때문에, 왕국은 주변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그로스 대삼림을 절대사수 하기 위해서라도, 군사력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북방의 사자.


이유도 모를 배신을 하기 전, 우리와 잦게 교류하던 제국이 데우스 왕국에게 일컬은 말이었다.

설령 제국에 한번 멸망당했다 하더라도, 왕국민 모두가 여타 왕국들보다 더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는다.

그것은, 생존은 물론 외세에 대항하기 위한 단결력의 기본이었다.

혼자로서는 약하지만, 둘이라면 강하다.

제국이, 들끓는 마수들로 인해, 왕국을 버렸더라도 왕국의 백성들은 끝까지 왕국에 남았다.

그리고 그런 용맹한 왕국민들을 상대할 위험천만한 마수들은 대삼림에는 거의 없었다.

우그러진 성문.

무언가 강력한 일격에 맞은듯한 그런 형태의 문은, 아무리 강력한 투석기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마수.

그 중에서도 거대종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옛 영웅 마수 사냥꾼 키론이 십수 년에 걸쳐 겨우 멸종시켰다던 거대종.

그것들이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부활한게 틀림없었다.

불길한 추측이었지만, 어쩐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문이라도 제국으로 가야만 했다.

거대종이 부활했고, 그것들이 연유모를 악의로 인간들의 거처를 침략하기 시작했다면, 주변의 약소국들은 진작에 전부 멸망했을 것이다.

그 시절, 인간들이 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었던 시절.

그 이유가 거대종이라는 존재 하나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 거대종의 존재는 인간을 뒤로 몇백년은 쇠퇴시킬만큼 강력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제국은 그런 마수들에게서 어느정도 대비는 해 놨을 거다. 일단은, 마수 사냥에 가장 빠삭한 놈들이니까."


영웅 키론은 제국 출신이었다.

그에 걸맞게 그 외에도 이름 높은 마수사냥꾼들을 많이 배출해낸 국가다.

어느정도 마수를 상대할 줄 아는 국가.

오지와 광야를 떠돌다가 마수에게 끝도없이 뜯어먹히고 싶지 않았던 나로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복수는 뒤로 치더라도, 죽음에서 벗어나는게 우선이니까.

다만, 잊지는 않았다.

제국이 왕국에게 무슨 짓을 벌였는지는, 잊지 않았다.


"양인척 하는 늑대라...재밌겠네."


닉스는 그렇게 말하며, 키득였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라 생각한다.

늑대라.

좋다. 그렇다면 늑대가 되겠다.

기회가 다가온다면, 아가리를 벌려 무참히 찢어발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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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가 보인다.

대삼림을 걸은지 일주일만에 보는 사람의 언어였다.

그것은 문명에 목마른 내게는 단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을..."


이 이정표는 제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키고 있었다.

썩어문드러지고, 거미줄이 잔뜩 쳐져있었지만 아직 이정표는 제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정표를 향해 가다보면 중간에 마을이 하나 나온다.

제발, 그들이 안전하기를.

흉폭한 마수들 때문에 불가능한 것임을 알면서도 쓸데없이 기도하고 있었다.


"마을? 지금 마을이라고 한 거지?"


옆에서 닉스도 살짝 흥분한채 말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다행이었지만, 일주일동안 숲에서 아무일도 없었다 보니, 꽤나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마수라도 나오길 바랬던 건가.

참으로 사악한 신이 아닐수 없다.


"지명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조그마한 마을이 하나 있다. 비록 타국의 마을이지만."


"좋아, 좋아. 그럼 어서 가자고."


방방 뛰면서, 처음으로 닉스가 내 앞에 섰다.

천진난만하군.

그러면서도, 조금은 기대하게 되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다만.

그로스 삼림에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이 조금은 불안하게 다가온다.

왕국으로 향하면서 적어도 몇 번은 마주쳤던 마수였다.

얼마나 떨어져 있던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는 추적해오던 마수들이 조용하다는 것이 불안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으레, 이렇게도 고요하고 소름끼치도록 조용하다면, 무언가가 있다.

예로,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 흔한 소작농 하나 보이지 않지 않는가.

자꾸만, 불길한 상상이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가자."


자기 자신에게 말하며,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는 닉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잘 안보이는군.

자주 있는 편이긴 하지만, 마을로 향하는 길에는 매우 짙은 안개가 껴있었다.

시야가 잘 보이지 않자, 몸에 긴장이 감돈다.

마을은 어디에 있는거지.

반쯤은 뛰다 싶이 닉스에게 달려가 옆에 붙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조금은 기대가 서려있었던 내 희망을 산산히 부수는 것처럼 진득한 공포가 옥죄어 왔다.


"...헤에. 뭐야?"


닉스가 무언가를 봤는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마을의 입구를 나타내는 간판같은 것이 걸려있었다.

....리....튼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간판을 둘러싼 드문드문 보이는 수많은 거미줄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불길한 상상이 들어맞았는가.

드문 드문 보이는 집은, 형체는 고스란했지만 관리가 되지 않은듯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었다.

이상하군.

세월에 의해 마모된 것 뿐이지, 파괴되거나 불에 탄듯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피난을 갔다거나 하는 흔적또한 없었다.

시장의 가판은 그대로 열려있고, 대로는 깨끗하다.

어느 순간 사람들만 사라진것처럼, 너무나도 기이했다.


터벅, 터벅.


발소리가 들린다.

닉스와 나는 아니었다.

곧장 검을 뽑아, 발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겨누었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다가오고 있었다.

안개로 잘 보이지 않던 형체가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인가?

사람의 형체가 분명하지만, 걷는것이 기이하다.

하반신에 장애가 있는 것처럼 비척거리면서도, 질질 끌듯이 걷고 있었다.

확실한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점차 다가올 때마다, 신형이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안개를 헤치며 다가오는 것은...


"흐읍!...."


"으....어...에....."



저도 모르게 새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니, 마음같아서는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공포를 떨치듯이 내지르고 싶었다.


괴인이었다.

마을의 주민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괴물은, 번뜩이는 수 개의 겹눈과 곤충에 가까운 더듬이를 괴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피부는 회반죽처럼 잿빛이었고, 가슴에는 추악하고 역겨운 알들이 가득박혀 있다.

이미 내장이 전부 먹혀 없어졌는지, 텅빈 배에는, 몇개의 곤충다리가, 썩어버려 제 구실을 못하는 다리를 보조해주고 있었다.


역겨웠다.

저도 모르게 걸음을 뒤로 물렀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입 밖에 없었다.

다만,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이라고는, '으, 아 '와 같은 이지를 상실해버린 것들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검 끝이 떨렸다.

이런 말도 안되는 곳에서 당장 빠져나가야 한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으...어...? 아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눈 앞의 괴물은 그런것을 허용치 않았다.

이미 나를 완전히 인식한듯, 겹눈을 고정시킨채, 그 괴기한 음성을 높여간다.

하지마.

제발 하지마..

들리지도 않을 속으로 괴물에게 바라고 있었다.

더이상 하지마...

이 이상 나에게 다가오지 말아줘.

눈물이 쏟아졌다.

곧 다가올 절망을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


고막을 때리는 세찬 고성이 마을을 울렸다.

눈 앞의 괴물이 지른 소리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아니, 이 안개부터가 함정이었다.

걷히는 안개속에서, 같은 괴물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침을 흘리며, 괴기하게 머리를 비틀어대며 오고 있다.

그제서야 안개에 잘 보이지 않던 마을 풍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온통 거미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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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트'의 거미 크리쳐를 조금 빌려왔음.

미리 경고함.

아래 짤 있다.












출처 : 영화 '미스트'

흑형한테 알깐 사진도 있던데 이건 진짜 비위상할까봐 내성없으면 보지 않기를 추천함.

(근데, 저작권 걸리면 글삭되려나)



워낙 강렬했던 괴물인지라...

근데 막상 상상하면 좀 비위 상할듯.

댓남겨주신 분들 감사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