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이야기 시리즈>

벽람항로

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7화 8화 9화 10화 11화 12화 13화 14화 15화 16화 17화 18화  19화 20화(完)

번외편-1 -2

학교생활

1화 2화 3화(完)

신데마스

1화 2화 3화


"메이드 주제에 건방지시군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는 말이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함박웃음을 띤 채

차가운 눈빛으로 이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론"


"안녕하세요, 지휘관 초콜릿 소감을 들으러 왔어요"



그녀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짓고있으면서도, 시선은 여전했다

평소보다 미소를 강하게 짓는 론이였다



"그런데 제가 봐선 안되는 현장을 본 것 같네요

설마 메이드가 주인님에게 무리하게 키스를 할 줄이야"



"키스가 아닙니다

주인님의 입이 더러워져,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청소를 했을 뿐입니다"



"어머, 그럼 손으로 하면 되잖아요?"



"저건 일부 메이드 분들이 아침부터 직접 만든 거에요

그런데 그것을 그저 버리는 것은 그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셰필드가 처분을 했을 뿐 입니다"



"손으로 닦아줘도 되는 거잖아요?"



"셰필드는 보다시피 해충과 노닥거리느라 손이 더러워졌어요

주인님의 손 따위는 말 안해도 알 것이고

그렇다면 아직 때묻지 않은 입을 썼을 뿐입니다"



"어머나, 그러면 이제 그 입도 더러워졌겠네요"



"네, 이것은 이제 지워지지 않는 더러움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뭘 하든

이 더러움은 이제 깨긋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격렬함을 더 해졌다

지휘관은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어떻게 할까 생각할 뿐

하지만 사고를 돌이킬 시간도 없이 2회전이 시작되었다



"론 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여기는 주인님의 업무방

어지간한 일이 없으면, 이 방에 함부로 들어오심 곤란합니다

심지어 노크도 하지 않으시고, 들어가시다뇨"



"노크는 제대로 했는데요?

다만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지휘관님의 큰 소리가 들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녀가 욕정을 부리며 주인에게 풀려고 했다니...!"



"욕정이란 없었습니다

단지 이건 주인님에게 예절과 처벌을 가르쳤을 뿐"



"예절과 처벌이라니......

불쌍한 지휘관... 메이드 따위에게 개 취급을 당하다니

저라면 그런 일은 하지 않을 텐데요"



"개 같은 거라뇨

총대를 메고, 여러 여자에게 손을 대는 주인님에게

브레이크라는 것을 주입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여자를 원하신다니, 다른 메이드들을 옭아맬 바에

셰필드가 대신 응했을 뿐입니다"



"어머나, 그럼 저는 어때요?

이런 건방진 말괄량이 메이드와 달리

저라면 지휘관을 언제든지 위로해 드릴 수 있답니다

꽉 하고 포옹, 언제든지 해줄 수 있답니다?"



"당신처럼 지휘관을 응석받이로 대하는 사람이 있으니

셰필드가 이런 역할을 자칭하는 걸 이해하세요

모두가 자중하다면, 이런 교육은 필요 없었을 테지만요"



"응석받이로 하면 안돼나요?

열심히 하는 얘에게 상을 주는 게 나쁠 건 없지 않나요?"



"열심히 하는 상도, 열심히 하기 위한 조치도 셰필드가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다른 분들은 그런거 신경 쓰실 필요 없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주인님께 가장 큰 봉사가 될 것입니다"



"비서함이 말한다면 모를까, 왜 당신이 그런 결정을 하는 건가요?"



"간단합니다

시리우스도 벨파스트도 다른 함선들도 주인님을 응석받이로 대하니까요

여기는 셰필드가 까다롭게...... 때로는 부드럽게 훈육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인님은 스스로를 지배하는 힘을 얻어가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함선들의 친전함에 흔들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것입니다"



"......지휘관은 그런 걸 원치 않을걸요?

자상한 지휘관은 당신처럼 독선적인 함선을 빨리 제거하고

모두 사이좋게 이 함대에서 지내고 싶어하는데 말이죠

그렇죠 지휘관?"



"아, 그게......"



갑작스러운 질문에 지휘관은 당황하고 말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빠른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기에

그는 그런 시선에 고개를 숙이며, 하고 싶으 말을 뱉어냈다



"음... 키스는 너무 심했던 것 같아"



"그렇죠, 지휘관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론은 지휘관의 동의를 얻자

자신에게 차례가 왔음을 가리키듯,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의 함선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다니, 정말 최악이죠?"



"그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지만......"



"아니요, 거기까지 말해도 괜찮아요

확실하게 말해야 전달이 되잖아요

말을 숨기고 있으면, 무릎에 있는 발정난 고양이가

계속 지휘관에게 찰싹찰싹 달라붙어 숨이 막혀버리실 걸요?"



"늘 붙어다니진 않아요

필요할 때만 찾을 뿐이죠"



"지금이 그 필요할 때란 말인가요?

나에겐 독선적인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필요합니다

이건 주인님에 대한 예의이자, 처벌이며

셰필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니까요"



"마음?

자신은 지휘관에게 욕정하고 있다고 전하기 위해서 말인가요?"



"그런 추잡한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셰필드는 론의 말은 모두 무시하며, 위를 올려다보고는

주인님의 얼굴을 응시했다


창백하게 얼굴을 붉히며, 갈팡질팡하고 있는 주인님의 얼굴을 말이다



"주인님은 사랑받는 분

분명 많은 선물을 받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케이크를 통째로 받는 음식은 피해야 합니다

형태가 남는 것일지라도

그런 물건은 언제까지나 놓아두면 방해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태가 남지 않는 것으로 평소의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늘 따르는 주인에게 셰필드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졌으면 하고..."



"그래서 일부러 키스를 했다고... 그런 거 핑계거리도 안될껄요?

감사를 전하고 싶다는 등으로, 지휘관의 기분을 무시하고

멋대로 하다니 정말로 최악이네요 당신"



"무시하지 않았어요

분명 주인님도 기뻐하셨을 거에요"



"아......저기"



내게 던져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할 말을 완전히 잃었다

긍정의 마음은 있었다

실제로 좋아한다는 생각을 거부하지는 않을테니까


하지만 부정의 마음이 더 강했다

론의 말대로 모든 것을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칭찬받을 일은 아닐테니까


그러나 여기서 그런 말을 할 순 없었다

셰필드에게 상처 입히는 소리를, 지휘관으로서는 하면 안 될 것 같았고

분명 여기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줬다간, 말썽이 더 커질테니 말이다



"지휘관님이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그런 식의 대답은 해선 안돼요오"



"글쎄요, 주인님은 평소에 말이 없으신 분

자상한 면이 거기서 나오는 걸까요

그렇기에 셰필드가 관리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



"관리"



지휘관은 론과 함께, 그 불길한 말에 걸려들었다

셰필드는 가슴에 묻어둔 그리움을 입에 올렸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를...



"주인님은 혼자 일을 결정하는 데, 아주 부적합한 분

그러면서도 한심하고 여린, 해충 같은 존재

그래서 셰필드가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명확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다른 함선들처럼 다정하게......무의미하게 응석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먹는 것도, 운동량도, 일하는 량도, 수면시간도, 

다른 함선들과 커뮤니티를 도모하는 시간도

모두 셰필드가 관리할 것입니다

이렇게 훈육을 마친다면, 주인님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 플랜을 준비해보았습니다"



"그런 거 완전히 지휘관을 독차지하겠다는 소리내요"



"네

물자라는 것은 반드시 한계가 있습니다

주인님이라는 존재도, 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걸 모르고 오늘처럼 모든 함선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분투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셰필드가 그걸 다 관리하면, 일이 잘 풀릴 것입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나눠주도록, 모두의 빈틈을 꼼꼼히 메워주도록

더 나아가 주인님이 마음에 여유를 갖도록 분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휘관님을 독점하겠다는 소리입니까!?"



론은 분명한 분노를 나타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숨길 수 없을 정도의 초조함을 드러냈다



"뭐... 말로 하면 그렇겠죠"



"그게...... 당신이 할 일인가요?"



"네, 셰필드야말로 가장 평등하게 나눌 수 있고

적당히 주인님을 관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휘관을 독차지 하다니......그런 최저의 일...... 용서할 리가 없어!!"



지휘관은 모두의 것

론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그 반대

지휘관은 자신의 것



누가 정한 것도 아니였다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막연한 그 사상은 그녀 안의 상식이였다


철혈 진영이 가진 그에 대한 애정의 무게

이 모든 것을 섞어 만들어진 그의 사랑 또한 셰필드와 같은 독점욕으로 나타났다



"지휘관이 그런 거 원할리가 없어!!

그리고 당신의 그런 오만한 태도도 용서 못해!!"



"......뭐, 당신이 애해해 주시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셰필드가 우선시해야 할 것은 주인님입니다

무슨 말을 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



갑작스러운 변모에 당혹감을 느끼는 지휘관

반면 셰필드는 무심한 듯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우선시해야 할 것은

주인인 지휘관이자, 폐하인 퀸 엘리자베스


그 외의 물건...... 특히, 그 외의 진영이 무엇을 생각하든

어떻게 말하든 그녀가 신경쓸 것은 없었다


특히 지휘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듯한 함선들...



그런 그녀의 자세에

론은 분노의 감정과 함께 기가 막힐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주인님은 어떻게 하시길 원하십니까?"



"그런거 물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휘관은 그 질문에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함대의 모습



"지휘관님은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해요

함대에 있는 모든 이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유일한 이 함대의 낙이거든요"



"그렇죠, 주인님은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죠

하지만, 너무 필요 이상으로 사랑할 필요가 있을까요?

뭐든 적당히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 적당히를 측정할 수 없는 해충을 관리할 함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게 당신이란 말인가요?"



"당신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둘은 서로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한 쪽은 노려보고 있었고, 한 쪽은 신경 쓰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주인님은 관리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셰필드는 훈육을 잘 하는 편입니다

적임일 것 같은데요"


"방생도 때론 좋답니다

하고 싶은 대로 놔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그저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알 수 없군요"



"당신의 생각이 더 알 수 없어요"



전혀 누구하나 자신의 의견을 굽힐 것 같지 않은 이 상황

그 종착을 찾듯 같은 타이밍에 둘의 시선이 바뀌었다


허둥지둥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필사적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지휘관에게 말이였다



"주인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단지.....이것은 주인님이 허술한 태도와 기분으로 함선들을 마주한 결과입니다

셰필드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빈틈없이 관리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죠?

지휘관님은 지휘관님 마음대로 행동하고, 사랑받고 빠져가는 것을 좋아하시죠?

전 그런식으로 좀 덜렁대는 지휘관님이 제일 좋아요"
 


입가의 미소와 달리 전혀 웃지 않는 눈을 가진 론과

여전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 시선을 보내는 셰필드


둘 사이에 끼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지휘관


어느 한쪽에 찬동했다간, 반드시 큰일이 벌어질 테니까 말이다


말만 곧이곧대로 듣는다면, 론 쪽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미소는 어딘가 이질적으로 느껴저서, 쉽게 찬동할 수 없었다


하지만 셰필드에게 관리란 분명 지뢰일 것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저기요"



내 등 뒤에서 난처한 소리가 났다

이것은 어쩌면 구원의 소리

늘 사지에 몰릴 때마다, 들려오는 구원의 목소리였다



"주인님은 주인님의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론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시리우스는 늠름한 목소리를 내뿜었다

지휘관은 자신도 모르게 안심의 숨을 내쉬었다


"어서와 시리우스"


"다녀왔습니다. 자랑스러운 주인님"



시리우스는 론을 피해, 방으로 들어가며, 그의 옆에 섰다

선배의 무릎 위에 있는 지휘관의 모습에 고개를 조금 갸웃거렸지만

지금은 그것을 추궁할 때가 아니였다



"주인님은 주인님만의 생각을 가지고 여러분과 접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누군가의 관리 등은 필요없겠지요

마음대로 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주인님은 항상 함대의 일을 함선들과 생각하며 움직여주고 계십니다

시리우스는 자랑스러운 주인님이 그리는 함대를 보며

언제까지나 곁에서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 길에서 의견을 말하는 것은 함대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지만

주인님의 사상 자체를 바꾸는 의견은 올바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리우스가 당연하다는 듯, 지휘관 옆에 선 모습에

두 함선은 순간 싸늘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같은 메이드라고 해도

스스로 당연하듯이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적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을

부러움 등, 그런 마음이 아닌 

단순히 질투로 인한 감정도 아닌

당연한듯이 지휘관 옆에 선 모습을 본 두 함선은 

일순간 싸늘한 태도를 취했다 


"...뭐 시리우스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게 제일일지도 모르겠내요"


론은 미소와 함께, 자신의 의견을 취하했다



"시리우스의 의견은 너무 무릅니다

하지만 주인님이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은 더 이상 말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셰필드는 한숨과 함께, 눈빛의 감정을 지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였다


다만 여기서 더 세게 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이익일 것이다


지휘관의 이야기를 하고 잇는 가운데

그가 좋아하는 시리우스에 해당하는 일은

자신들을 나쁘게 보일 수도 있었기에

그들은 여기서 이만 철수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고보니, 잊고 있었네요!!"



론은 이야기를 억지로 끝내려고 손뼉을 치며

주목을 받은 뒤,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지휘관에게 보여주었다



"오늘 전달했을 때

반응이 좋아서, 다시 만들어버렸어요~"


그러면서 앙증맞게 포장된 상자를 다시 지휘관에게 건넸...


그녀가 손을 뻗치는 동시에, 셰필드가 그 물건을 낚아챘다



"......그거 지휘관 선물인데요"


"알고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전해드리겠습니다"



셰필드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을 지휘관에게 건네주는 일없이 자신의 손에 넣었다


그 모습은 론의 분노를 다시 일으키는데 충분했다



"지휘관에게 초콜릿 하나 건네는 데에도 당신의 허가가 필요한가요?"


"글쎄요, 주인님 입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 우리가 한 번 본 것이 아니라면 곤란합니다

영양균형은 인간에신 주인님께는 중요하니까요"


"당신들은 저런 커다란 케이크나 보내놓고.....

남한테 참견할 입장은 아니지 않나요?"


"저건 다른 메이드 분이 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건으로선 입에 대도 문제 없으니 괜찮겠죠"


"저것도 초콜릿이고, 내 것도 같은 초콜릿인데 문제 없잖아!!"


"글쎄요, 그것은 일반적인 초콜릿에만 해당되는 사항이겠죠"


"........"



론은 그 말에 자신의 손을 숨기듯, 등 뒤로 돌렸다


그 반응과 함께 찾아온 정적에, 지휘관은 그녀의 손끝을 가리키며




"론, 부상이 또 늘었어?"


아침에 봤을 때보다, 반창고의 위치가 더 많이 바뀌어 있던 것 같았다

그것은 다시 붙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엔 위치가 난잡하게 바뀌어 있었다


"...아핫, 너무 의욕이 넘쳐서 또 저질러버렸어요"


핑계 대는 듯한 씁쓸한 웃음이였지만, 셰필드는 그런 것또한 놓치지 않았다



"그래요

요리에 상처를 입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어쩔 수 없죠

그것이 만일 들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우리 몸에 흐르는 것이 

주인님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괜찮다고 해도, 그런 것은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번 검품해 보고, 나중에 제공하겠습니다"



"...글쎄요,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내요

지휘관님, 죄송합니다"



"어? 아니, 됐어

또 만들어 줘서 고마워"



지휘관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도, 용서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또 셰필드의 골머리를 앓게 되는 원인이였다



"그렇게 친절한 말을 또 해버리니까, 이런 걸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지휘관님은 평소 메이드들이 만든 맛있는 것을 먹어서

제가 만든 음식 같은 것은 필요 없겠죠?"


"아냐, 그렇지 않아!!

론이 만든 것을 받을 수 있어서 기뻐"



론은 셰필드의 꾸중에 우는 듯한 기색을 보였고

그런 기색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도 뻔했다

지휘관의 그런 반응에 그녀는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래요? 그거 잘 됐내요

그렇다면, 이번엔 보통 식사도 대접해드릴게요

......그 옆에 있는 방해되는 해충이 없을 때 말이죠"



스스로 해충 취급을 받는 것에 초조함을 느끼는 셰필드

론에 대해 응수하듯 강한 말로 반격했다



"그렇군요, 그러시다면 조심하세요 주인님

이전 책에서 본 이야기인데

극히 드물게 자신의 체액을 넣은 요리를 대접하는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걸 먹었다간 해충처럼 몸이 약해져, 곧 망가질 것 같으니까요"



"......그런 건 픽션의 이야기죠

초콜릿 만들기 치고는 너무 심한 부상 같지 않나요?

제가 무슨 시리우스 씨도 아니고... 그렇게 다치진 않을 것 같은데요"



론은 당당한 말투였긴 하지만, 스스로에게서 나는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다

신이 나서 두 번째를 만들어 온, 자신의 오만에 벌이 왔음을 절감했다

그런 그녀에게는, 그녀대로의 구원의 손길이 왔다



"...뭐, 직감이 나쁜 사람은 손으로 만든 요리에

무엇을 넣었냐고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이야기겠지만 말야"



셰필드는 지휘관이 그런 말을 한 것에 쓴웃음을 지었고

시리우스 또한 부상을 당하는 비유에 자신이 걸린 것에 대한 자책감에 빠졌다



"맞아요, 지휘관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애정이라고 생각해 줄지도 몰라요"



"여기에 당신의 애정이 담겨져 있다구요?"



"후훗, 물론이죠

딱히 뭘 넣었는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모두에게는 비밀로 해드리죠

왜나면, 모든게 애정으로 되어있으니까요"



셰필드는 론의 그런 농담 같은 말에, 더 이상의 대응을 포기했다

론 또한 더 이상의 비유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응"


지휘관은 미소를 보내며, 이별을 통보했다



"다른 초콜릿도 먹었지만, 모두 맛있었어

처음 먹었던게 제일 인상에 남았지만, 다른 것도 보통급으로 맛있었어

고마워"



"...정말이지, 그 감상을 듣고 싶어서 왔는데, 그렇게 말해주어서 기뻐요!!"



마지막에 그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기쁜 것일까

지휘관은 그러면서 남은 두 사람의 모습에 눈길을 줬다


침울해 보이는 메이드와

이야기는 끝났다는 듯, 여전히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메이드



론은 계속 지휘관의 사랑을 갈구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더 이상은 무리 일 것임을 판단했다


그녀는 천천히 문을 닫으며, 

여전히 지휘관을 독차지하고 잇는 메이드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 저 메이드들을 다 부숴버리면, 그 곳이 내 자리가 되는 건가?



그녀는 자신의 질투에 흥분해가며, 문을 닫았다











"...셰필드 씨, 주인님에게 언제까지 붙어있을 생각인가요?"


그것은 론이 퇴실하고

시리우스가 곧바로 간신히 할 수 있었던 말이였다



"이건 주인님을 향한 벌이에요

아직 이것으로는 부족하지만 말이에요..."



셰필드는 아무래도 슬슬 떠나야 겠다고 생각했다


시리우스의 불만스러운 얼굴과 그녀가 온 일로 인해

아군이 늘어나면서, 자신감이 늘어난 지휘관


부정은 몇 번이나 당했다



남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몰아붙이는, 추태를 보일 수는 없다



"......뭐, 일단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셰필드는 그러면서 지휘관을 떠났다


그는 겨우 일단락된 일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시리우스를 데리고 상자더미로 향하는, 셰필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론의 등장에 흐지부지되었지만

그녀가 한 행동을 되짚어보며, 혼자 얼굴을 붉혔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었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큰 고민거리를 준 그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럼 시리우스와 함께, 남은 초코를 넣어두겠습니다

론님의 것도 포함해서... 다른 분의 것도 검품한 후에

주인님께 건네드릴것이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올해도, 메이드분 일동이 고생하실 것 같네요"



셰필드는 최대한 들 수 있는 만큼의 초코더미를

시리우스에게 건네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리우스, 당신은 초코를 운반하세요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하시군요"


"셰필드 씨는요?"


"저는 다른 메이드분들에게 말을 걸어,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시리우스는 그 지시를 듣고, 두 사람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또 자신의 선배와 주인이 단 둘이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그녀도 방을 나선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불안한 기색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나섰다



"......그럼 주인님의 처벌은 훗날 또 할 테니까요"



셰필드는 시리우스를 따라, 방을 나섰다






*





"......피곤해"


지휘관은 그런 말을 남기면서

소파에 축 쳐진 채, 중얼거렸다


오늘의 업무는 커녕, 케이크를 먹고, 함선들의 실랑이에 하루를 보냈다

오늘의 일정은 내일로 미뤄야 되겠지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시리우스는 그런 위로와 함께, 그녀는 살짝 홍차를 건넸다


지휘관은 테이블의 홍차를 보고, 그것을 들었다


입에 머금은 순간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단맛이 싹 지워져

이번에는 단맛이라고 하는 감각을 무너뜨리는

쓴맛이 위를 엄습했다


그는 한 모금을 마시고선

테이블로 내려놓으며, 토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음, 쓴 것을 마시고 싶었는데 고마워"


"네, 단 음식 뒤에는 쓴맛이 좋다고 하니까요"



그런 말 들은 적 없었다

그리고 이 쓴 맛은 대체 어떤 원리로 내는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도, 이미 지칠 때로 지친 소년에겐 말할 힘 따윈 없었다


심지어 오늘도 자신을 위기 속에서 구원해주었으니 말이다



"......오늘도 지쳤어"


셰필드와의 키스

게다가 론과 셰필드와의 말다툼

자신이 중간에 끼어, 중간되는 일이 생기면 좋으련만

어짜피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물어버리는 자신이였다


무슨 말을 해도 불에 기름을 붓는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마는 지휘관



"......"



시리우스는 그런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주보고 그저 조용히 지켜볼 뿐이였다


어쩌면 그런 그녀의 모습이 지휘관이 치유되는 것이기도 했다



누군가와 부딪치는 일은 있어도, 그저 자신을 지켜보려는 그녀에게

마지막에는 자신을 기분을 우선시 해주는 그녀에게

그리고 도망갈 수 밖에 없는 자신을 자랑스럽다고 해주는 그녀에게


그런 그녀가 있기에

가슴을 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지휘관이였다



지금은 그 말과 기대가 너무 무거워서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발렌타인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선물로 전달하는 이벤트

의리와 감사의 마음을 선물로 전하는 이벤트



혼자만, 선물이라고 칭하며

물건이 아닌 말과 키스를 건네준 함선도 있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정리했지만

조금 전까지 방에는 많은 선물이 있었다


사랑인지 아니면 의리 초콜릿인지

정확히 어떤 의미로 건네 준 것인지는 

건네준 본인 밖에는 모를 것이다



사랑으로 착각하고, 날아올라서도 안되고

의리 초콜릿이라고 단정짓고, 기죽어서는 안되었다


단지, 건네준 상대에게 적당한 태도와 대응을 해야했다



그렇게 올해도 이것으로 거의 무사히 마쳤다


안도와 함께

해가 떨어지는 노을이 비치는 방을 둘러보았다

주황색으로 물들인 이 방이 어째서인지 매우 기분이 좋았다



다만 이 풍경에 취해

나도 모르게 홍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가

오늘 먹었던 모든 것을 역류해 버릴 뻔했다는 것...



"시리우스,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 말이야"



그러고보니 시리우스에게서 초콜릿을 받지 못했다

내 비서함 일에 열중하느라, 준비하지 못 했던 걸까?

아니면 이제까지 주지 못했던 걸까?



"......시리우스도 초콜릿 만들었어?"


"네, 시리우스는 아까의 케이크에 동참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안심했다

다이도나 셰필드처럼 일부 메이드는 참여하지 않은 케이크 만들기

불참한 이들은 개인적으로 지휘관에게 선물을 보냈었다

시리우스도 참가했다는 것은, 그녀가 줄 선물은 없다는 것이 되겠지



"하지만 메이드가 아닌 비서함으로서

지휘관님에게 줄 초콜릿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아...... 그렇구나....올해도....만들었구나......"


나는 시리우스가 가져온 작은 상자에 주목했다



시리우스의 음식은 맛이 별로 없었다

그것은 본인도 알고 있었던 것인지

평소 내 식사와 디저트는 다른 메이드들이 준비해주었다


요리와 관련된 일이란

식사를 운반하거나, 내가 요청할 때 차를 끓이는 정도...


그런 그녀가 만드는 초콜릿은

발렌타인을 아주 그냥 지옥의 날로 바꿔놓을 정도였다



못 먹는 건 아니다


한입 씹는 것만으로 닥쳐오는 쓴맛과 단맛의 판타지를 견뎌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1년을 두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씹어먹기만 하면 되겠지


그래... 들키지만 않는다면 말야...



".....그럼 주인님"


시리우스는 내 옆에 앉아, 초콜릿 한 덩어리를 내게 내밀었다



"......아"


배가 불러서 못 먹겠어

입안이 이미 너무 말아서, 이젠 무리야

나중에 먹을테니까 치워



그런 말들이 머릿속에서 줄줄이 떠올랐지만

나를 위해 노력하는 그녀에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모처럼 만든 거야


발렌타인이라는 특별한 날에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모처럼 만든 거니까



"..........."



평소 같으면, 그런 기분에 휩쓸려 입을 열 것이다

하지만 내 위는 단 것을 거부하고 있다

내 뇌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강력한 거부를 외치고 있다

그것을 나타내듯, 시선을 옆으로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


"주인님......"


그녀는 아쉬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살짝 뺨에 손을 댔다

부드러운 한 손 하나로, 옆으로 돌려진 시선은 강제로 정면을 향하게 되었다

시리우스는 서글픈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주인님

확실히, 주인님은 조금 전까지

많은 양의 케이크를 입에 넣은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뭔가를 입에 담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시리우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론 님의 것을 입에 넣고 잇는 것을 봐버렸기에...

시리우스가 만든 초콜릿도 꼭 드셔 주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우스가 먹여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 버렸습니다

메이드로서, 본래라면 주인님께 무리를 강요해선 안되는 일입니다만

제발, 오늘 이 때만은 시리우스의 방자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자랑스러운 주인님......"



그녀는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질투와도 같은 기분을 띠었다

론도 했는데, 자기 차례에서 거절하는 것은 용서 못한다는

그런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말이다



"......조금만"


".....예, 알겠습니다"



다른 함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녀만 특별하냐고 따지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나는 슬그머니 입을 열어, 혀끝에 놓인 초코를 물었다


꺼칠꺼칠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삼키려고 해도

혀가 도저히 움직여 주지 않았다


삼키기 쉽도록, 필사적으로 씹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것도 눈 앞의 여자에 맞추듯 미소를 짓고 말이다



간신히 삼키자

그녀는 새로운 초콜릿을 낼까 말까 고민하듯

내 얼굴 주위를 방황하고 있었다


조금만이라고 해서, 이미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였다


그녀는 하지만, 조금만 더.... 그런 기분을 표출해내고 있었다



"......좀 더"


늘 신세를 지고 있는 함선의 난처한 얼굴에서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절망적이였지만

기뻐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이것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며시 운반되는 손 끝과 함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리우스는 주인님 옆에 있는 함선

주인님 옆에 있는 것은...... 오직 시리우스 만입니다

주인님의 더러운 곳은 시리우스가 깨끗하게 해드릴 테니

앞으로도 마음껏 다른 분들과 접촉해 주십시오

시리우스만의 자랑스러운 주인님......"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자신이 만든 '가치'를 강제로 밀어넣어갔다


병든 KAN-SEN가 완결되었습니다

정확히는 연중이라고 하는 편이 맞지만

아무튼 이 길고 길었던 이 웹소설을 마무리 짓게 되어 기쁩니다

벽람항로 중간에 접은 게임이지만, 다시금 이 함선들의 캐릭터성에 대해 아는 계기가 되었내요

아무튼 본편 20화, 외전 3화, 총 23화로 병든 KAN-SEN이 끝났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