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TIME STREAM

시간의 강물




~우유빛 길(The milky way)~






  군데군데 이끼로 덮힌 방안은 은은한 촛불빛만이 방의 유일한 주인인 마냥 흔들거리고 있었다. 습기찬 벽돌냄새가 가득한 이 방은 바닷소금 냄새만으론 쫓아 낼 수 없는 축축하면서도 생명력 없는 메마른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방 안에는 두명의 사람이 있었다.


  침묵하는 두사람에게선 서로에게 낯익은 눈빛을 던지면서도 둘 사이에 떠도는 공기는 낯설기 짝이없는 냉혹함, 혹은 혐오감이 떠돌고 있었다.


  둘 중 손님용으로 보이는 푹신한 빨간 소파에 비스듬히 앉은 사람은 금발의 녹색눈을 띈 소녀였다. 진주도 닮을 수 없는 매끄럽고 새하얀 피부는 흡사 만년설의 변하지 않는 눈을 닮았고 녹색 눈동자는 에메랄드 빛처럼 빛나서 빠져들 것 같았다. 소녀는 무릎까지 오는 흰 레이스가 달린 파란색 ?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비스듬히 앉은 그녀의 하양달같은 다리가 매끄럽게 드러나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허벅지 안쪽에서 가죽벨트와 단검 두자루가 매여있었다.


  방 안쪽, 이 방의 주인으로 보이는 노년의 남자가 말했다.


  “다시 말해보자.”


  “......”


  소녀가 계속 침묵을 지키자 남자는 마저 말을 꺼냈다.


  “네가 갑자기 내 방에 찾아왔을 때, 나는 대륙의 백작가로 너를 시집보내겠다고 말하려고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너는 대륙으로 가서 네 오라비를 찾겠다고 했지.”


  “그럼 모두 해결되는게 아닌가요? 제가 오빠를 찾아서 이 섬으로 돌려보내면 아버지는 유능한 후계자를 얻게되고 섬을 다시 일으킬 수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되지. 너는 백작가로 시집가서 백작의 후원을 받으며 오라비를 찾고 나는 백작가의 후광으로 섬을 다시 일으킨다. 어떠냐, 아에사.”


  그럼 직접 오빠를 찾을 수 없다.


  아에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흔들리는 턱선이 촛불에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의 아버지 뮈벤 드 미노타는 아릿하면서도 정체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그녀는 그의 부인보다도 더 아름답게 성장했다. 처음에 일곱살 남짓했을 때 그녀는 누구나 깨물어주고 싶을만큼의 귀엽고 아름다운 소녀였다. 발랄하면서도 꽃을 좋아했던 그녀가 파란 드레스를 펄럭이며 맨발로 꽃밭을 뛰어다닐 때 누구라도 한숨을 쉬게 할 만큼 빛나는 소녀였다.


  열셋쯤 됐을 때 그녀는 죽은 어머니를 닮은 성숙한 소녀로 성장해갔다. 그리 크지 않지만 풋소녀라는 느낌을 줄 정도의 도톰한 가슴이 나오고 그 반짝이는 금발을 뒤로 묶은채 쪽빛 드레스를 입고 대륙사람들을 초대한 파티에 처음 나왔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만큼 아름다운 소녀였다. 지금 뮈벤이 시집을 보내기로 한 백작가도 그때 초청되어 아에사에게 반한 귀족 자제 중 한명이었다.


  지금 그 아름다운 16살의 소녀가, 내 곁을 떠나 다른 이의 손에 안기게 된다.


  뮈벤은 그것에 정체모를 안타까움에 엮였다.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지각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한창 젊을때의 만난 부인보다 훨씬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자 흔들린 것이다. 뮈벤은 자신의 딸 아에사를 죽 훑어보았다. 새의 목덜미를 닮은 잘록한 발목, 하양달같은 종아리 ?은 파란 치마에 슬쩍 드러나는 새하얀 허벅지, 코르셋을 하지 않고도 아름답게 휘어진 곡선을 그리는 허리 선과 푹 파인 흰 옷으로 드러난 가슴팍과 둥근 볼륨, 흰 목덜미...


  안고싶다.


  뮈벤은 무의식 중에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그러곤 스스로 흠칫 놀라 손에 들고 있던 깃털 펜을 떨어뜨렸다. 아에사는 의아한 눈길로 아버지인 뮈벤을 바라보았다. 뮈벤은 자신의 마음을 추스렸다.


  아냐, 이건 내 감정이 아냐. 밤의 마력이 나를 나락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아빠? 괜찮은 가요?”


  “아아, 괜찮다. 잠깐 졸았을 뿐이야.”


  뮈벤은 그렇게 말하면서 두 손으로 눈과 머리를 꾹꾹 눌렀다. 정신차려라. 아에사는 그런 아빠가 염려되는지 다가와 허리를 숙여 이마에 손을 댔다. 뮈벤은 흠칙 놀랐지만 가만 있었다. 오래 찬 방에 있었던 아에사의 손은 차가와서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아에사는 그러더니 이번에는 이마를 뮈벤의 머리에 대었다. 뮈벤은 눈을 뜨고 가만 앉아있었다. 눈을 감고 자신의 이마에 댄채 자신을 염려하는 아에사의 사랑스러운 얼굴은 아마도 마지막 얼굴이 될 것이다. 내일이면 그녀는 배를 타고 백작령으로 갈테고, 두번 다시 만날 수 없거니와 만나더라도 지금같은 애정표시는 할 수 없겠지. 뮈벤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밑으로 내려깔다 아에사의 늘어진 목덜미 부분을 보았다. 헐렁했던 흰 상의가 축 늘어져 안의 주먹만한 유방이 한눈에 보였다. 분홍빛 유두는 은밀하게 드러나 부끄러운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의 배꼽까지 한 눈에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뮈벤의 남성은 단숨에 발기해버렸다. 허둥지둥 아에사의 이마에서 뮈벤이 머리를 떼자 아에사가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가라. 내일은 일찍 출발해야지.”


  뮈벤은 더이상 있다간 정말 자신이 딸을 범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감정에 뮈벤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아에사는 그런 그를 시집보낼 딸의 정떼기쯤으로 여기고 슬픈 표정으로 물러섰다.


  “예. 안녕히 주무세요.”


  아에사가 문을 닫고 나가자 뮈벤은 충혈된 눈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머리에 벽을 기댔다. 차가운 벽의 감촉이 동요하는 자신을 묶어주길 바랬지만 일어선 감정은 도무지 식을 줄을 몰랐다. 뮈벤은 애써 태여한 척 중얼거렸다.


  “나도 아직 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