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옷을 벗었다.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처럼, 거침없이. 유두를 가리는 찌찌 가리개와 아래쪽을 가리는 보지 가리개를 벗어 저편에 가지런히 개어 쌓아두었다.




유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옷을 모두 벗고 유리의 앞에 서있는 여인은, 그야말로 무방비했다. 누가 이 아름답고, 당장에라도 덮치고 싶은 섹시미를 자랑하는 여인을 이 신전의 신관이라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무표정한 얼굴의 여인은 아무런 속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유리를 위해서, 라는 기특한 마음가짐으로 조금이라도 남자를 더 꼴리게 만들게 하기 위해 몸에 그림을 그렸을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물로 된 문신처럼, 가슴과 복부, 보지 둔덕을 가리고 있었다. 물론 그저 그림만으로 그 탐스러운 과일과도 같은 분홍색 유두와 새까맣게 뒤덮여 있는 보지털을 전부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야한 여자는 싫어하시나요?"


"아, 아니, 그, 그게요..."


"남자 분들은 이런 걸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미치도록 저었다. 마치 그래야 하도록 선천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절대 싫어하지 않아요... 야한 걸 싫어하는 남자애는 단 한 명도 없어요. 단지... 미칠 것 같아요."








유리는 소위 말하는 이고깽이었다. 정확히는 이초깽이었다. 강도 높은 학대에 왕따에, 금방이라도 자살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다 동급생들에 의해 떠밀려 그날 밤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괴물들 투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다.




괴물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에 진짜 괴물은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세계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인간이 괴물이었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다했다. 심지어 남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어떻게든 빌고 빌어서 구타와 감정 쓰레기통의 대상이 되어 목숨을 부지한 후, 기회를 보아 남을 죽이는 것 또한 해보았다.




강제로 군에 입대되어 가혹한 훈련과 괴롭힘을 받고, 전장에서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죽여야 했다. 그저 살아남으려 노력하다 보니 전공이 쌓여지게 되었다. 어느새 유리는 어린데도 불구하고 강하고, 잘 살아남으며, 자기보다 약한 병사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고, 자연히 많은 병사들과 좋은 관계를 쌓게 되었다.




유리의 신체는 어느새 훈련과 전쟁터로 인해 단련되어 있었다. 병사가 아닌 그저 평범한 일반인 남성이라면 압도적으로까지는 아니어도 힘에서 이길 수는 있게 되었다. 유리가 동양인이고, 이곳의 사람들은 서양인이다. 그런 점에서, 보통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힘이 약하다는 점에서 보면 어린 체구로 그런 짓이 가능하다는 게 정말로 대단하다고 평가받을 만할 것이다.




아무리 전쟁터를 경험했어도 성인이 아닌 어린 소년이었는지라 경험이 적었음에도, 아무런 무술, 창술 같은 것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병사 두 명까지는 어떻게든 죽일 수 있게 되었을 시점이었다. 그때 유리는 유리의 어떻게든 살아 돌아오는 생존성과, 최대한 근처의 병사들만큼은 어떻게든 구해내려 노력하는 선량함을 눈여겨 보았던 남자에게서 무술을, 무기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이 쓰레기 같은 이곳에서, 남자는 유리의 선량함을 보고서는 유리를 이상한 꼬맹이로 취급했다. 하지만 그 이상 간섭은 하지 않았으며, 단순히 흥미 본위로 가르친 것 치고는 이상하게도 많이 가르쳤고, 유리 역시 대련에 전쟁에 식량 나르기, 유리를 선망하거나 좋아하거나 귀엽게 여기는 여자 병사들의 부탁으로 처녀 떼주기, 그 와중에 일어나는 가혹행위 등 여러가지 일로 바쁜 상태에서도 틈틈이 그것을 습득하려 노력했다.




결국, 남자가 죽었을 시점에서 유리의 기술은 일취월장해, 10여 명의 병사를 순식간에 베어내고 찌르는 등의 활약을 하고, 전장 한복판에서 유리가 속해있는 수십 명으로 구성된 작은 부대가 100명의 병사들에게 포위당하자 어떻게든 한 자루 창만으로 병사들과 함께 포위를 꿰뚫고 일시적으로 후퇴한 후 다시 적군의 약한 곳으로 돌입하여 싸우는 등, 보이지 않는 전공을 세울 수 있었다.




분명 보이지 않는 전공이었건만, 의외로 그것이 누군가의 눈이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잠시 전쟁이 휴전 상태에 들어가자, 곧 후방의 부대로 재배치된 후 교육을 받아 전략과 전술, 기교 등을 배웠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군을 운용하는 교육은 비교적 조금밖에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전투에서 활용하는 기교적인 응용법 역시 실전으로 배웠고, 시간이 흘러 12살이 되자, 유리는 배운 모든 기술과 전투 실력, 지식을 총동원하여 하나하나가 100명의 병사를 상대하거나 제압한다는 최정예병 부대의 둘과 싸워 겨우 겨우 그들 모두를 이길 수 있었다.




12살의 어린 아이가 이 정도의 실력을 손에 넣자, 왕국의 군대도, 백성들도, 왕족과 귀족들도 환호했다. 왕국의 군대는 영웅이 탄생했다며 곧 이웃나라 왕국에 복수할 생각에 이를 갈고 있었다. 백성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영웅의 탄생에 환호했다.




왕족들과 귀족들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유리라는 전력을 손에 넣으려 했고, 그러면서도 모두가 예외없이 유리의 아이를 만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려 들지 않았고, 시도란 시도는 다 하고 있었다. 이런 시도를 알게 되자, 유리는 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을 사태에 놓이고야 말았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유리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무척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아이였다. 아직 12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인생을 다 산 것 마냥, 이 세계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다. 




기독교에서 죄악으로 여겨지는 자살을 하려 했다면 그런대로 자기 잘못이라며 어떻게든 납득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유리 자신은 자살하려 했던 게 아니라, 그저 나쁜 아이들에게 떠밀려진 것 뿐이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저절로 몸이 떨려왔다. 이렇게나 강해졌는데도, 트라우마는 아직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어른이 되면 뭔가 달라질려나.




하지만 이런 짓은 하지 않았다. 강간은 물론이거니와, 누군가와 섹스를 해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쪽에서 먼저 들이대려는 무례는 저지르지 않았다고만 봐야 했다. 이미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에 섹스당한지 오래였고, 그렇기에 누군가가 부탁한다면 대부분 다 대주는 동안의 절세 미소년이 유리였다.




어쨌든, 그런 유리에게 성적인 경험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때문에 유리는,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를 덮쳐 따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면 그녀가 놀랄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허락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절은 있는 법이었다. 이 세계에도 분명 그것이 있을 거라고, 유리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유리는 잠시 자신이 이곳으로 떨어져, 경위를 생각했다. 이웃나라 왕국에서, 최근 들어 크고 작은 전쟁에서 패퇴되어 그 수모에서 벗어날 생각인지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첩자가 보고한 바로는, 그들의 대군은 2만 정도는 가볍게 넘어서 있는 엄청난 숫자의 대군이었다. 인구가 4백만에서 5백만까지는 되는 만큼 당연할 것이다. 이에 반해 왕국의 군대는 고작 1만 5천. 인구는 3백만. 숫자부터가 게임이 되지 않는 형국이었다.




왕국이 위치한 곳 역시 산악지대 같은 험준한 지형이 아닌, 그저 평평한 지형에 불과했다. 높은 고지대를 점령한 채 유리하게 싸워 시간을 버텨내는 전략은 쓸 수 없었다.




왕국에도 몇몇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지만, 저들의 왕국에는 그보다 더 뛰어난 인물들이 수없이 있었다. 왕국의 멸망은 확정된 사항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유리는 이웃나라와의 전쟁에서 군대를 지휘하거나 직접 나가 싸워 전공을 세우고, 그 전공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작전에 관한 건의를 해보았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에 불과한 자의 건의를 누군가가 받아들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고.. 결국, 왕국은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들의 왕국의 군대 역시 적지 않은 숫자의 병사들과 병사들을 지휘하는 기사들이 매복에 걸려 많이 죽어버린 것은 사실이었다. 이웃나라 왕국은 국력이 소모된 틈을 타서 다른 적국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몰려올까 두려웠고, 결국 지휘관에게 퇴각의 권고를 보내 왕국에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유리를 비롯한 아군은 너무나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유리는 왕국의 영웅들 중 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피로와 입었던 상처가 너무 극심했던 탓일까, 치료를 받는 중이건만, 유리는 치료하는 사람의 마음도 몰라주고 결국 정신을 잃어버렸고, 다시 깨어나 보니 이 신전이었다, 라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유리는 생각했다. 만약 여기가 지구를 닮은 행성이고, 세계라면. 그렇다면 자신이 있던 곳은 중세 유럽의 수많은 크고 작은 왕국들 중 하나 정도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이곳 역시 어쩌면 그 유럽 어딘가에 위치해 있을 장소는 될 것이라고. 여기가 또 다른 세계라기 보다, 또 다른 국가의 영토 내에 위치해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는 편이 현실적이었다.




그녀는 금발의 백인이 아닌 흑발의 백인이었으며, 무표정한 인상은 선하다기 보다는 어딘가 악녀라는 느낌을 주었다. 다만 정말로 사악하다는 것이 아닌, 강인한 여자라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전장터를 전진하며 온갖 인간군상을 본 유리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저는... 그동안 엄청 외로웠어요. 이곳에서 사람들도 만나지 못한 채 오직 책만을 보면서 세상을 배워야 했죠."




유리는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의 첫 시작은 한탄이었고, 마지막은 유리에 대한 고백이나 마찬가지인 말을 하며 끝이 났다. 첫 만남부터 하는 말 치고는 너무나도 적극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힘이 약하던 시절의 유리에게도 잘 대해주며 성적인 욕망과 애절한 사랑을 유감없이 동시에 드러내던 길거리의 창녀 린도, '어린 영웅'이 되어 이웃나라와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이기고 귀환하는 유리를 꽤나 노골적으로 유혹해오던 여식 엘리자베스 체펠린도 아니었다.




유리가 보기에, 그녀는 많은 지식을 알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모르는 것 역시 많아 보였다. 이곳에서 태어났고, 신전의 구조로 인해 바깥에는 나가지도 못했다는 것은 사실인 듯했다.




"저는 오랫동안 남자를 갈망했어요. 하지만 저의 어머니는, 그리고 책에서는, 남자들은 다 나쁜 것들이라고만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남자를 좋아하는 저도 나쁜 여자인가 하고, 오랫동안 갈등했어요. 하지만 그건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어머니한테도 말이에요. 왜냐하면... 두려웠으니까요."




유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 말을 결코 부정할 수 없었던 탓이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자기를 때리고 괴롭혔던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하지만, 여자들 또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모든 남자가 나쁜 것은 아니에요. 물론, 사실 이곳의 사람 대부분이 다 나쁘거나, 적어도 착하지는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아니, 솔직히 말할게요. 예를 들어서 그런 야한 차림으로 바깥으로 나간다면 순식간에 잡혀서 밤낮으로 범해진 후 성노예가 되어 팔릴 거예요."




어린아이의 선량하고 얌전한 어조 치고는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천박한 말투였다. 이런 야만적인 세상에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변한 것이겠지. 유리는 그것을 자각하고 눈치채고 있었지만, 굳이 그 말투를 고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세상에는 우아하고 권위적인 왕족들, 귀족들조차 때와 상황에 따라서는 노골적이고 야한 말투를 쓰던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야먄의 시대, 잔혹한 세상이었다.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저를 지켜줄 수 있나요? 물론, 공짜로 부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계약이로군요. 그렇죠, 세이라 누나?"




그녀는, 신관 세이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계속 무표정한 표정으로 있다가 미소를 지으니,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이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 같았다. 신관이면서도 신을 모시는 신성한 꽃을 떠올리기 보다는, 온갖 세상의 풍파에도 견딜 수 있을 강인한 무인을 보는 것 같았다.




일당백을 자랑하는 왕국 최정예 부대의 굳게 다문 입술에 근육질의 남자다운 얼굴이 떠오르자, 유리는 순간적으로 웃어버렸다. 그걸 보며 그녀 역시 순간적으로 놀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 멍한 표정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계약이라기 보다... 전, 영웅님이 정말로 좋아요. 아무리 아름답고 강한 분이라고는 하나, 어린 소년에게 이런 감정을 품는 것이 정상적인 감정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제가 영웅님을, 유리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처, 첫 눈에 반했다는 그건가요?"


"예, 사실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1년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아니, 지금은 이런 말 할 때가 아니었죠. 네, 정말로 당신이 좋아요. 사랑해요."




유리는 어버버 하고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피지 못했다. 세이라처럼 진지한 인상의 그녀가 이런 감정을 표출하니, 유리는 더욱 부끄러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얼굴에서 거짓말 같은 감정을 파악해내는 것도 어려워, 결국에는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세이라가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벗어버린 것은 그때였다. 몸을 가리는 엄숙하고도 신성스러운 신관의 의복을 모두 벗어버리자, 드러난 것은 나신보다 더 야하고 섹시한 그녀의 그림으로 가려진 젖꼭지, 유방, 한 점의 지방도 없는 날씬한 복부, 단련된 신체, 일견 가녀리게 보이면서도 실상은 강인한 팔뚝, 새까맣게 수북해서 더 안정감 있고 좋은 보지털.




그야말로 유리가 원하던, 이상적이고 의지가 되는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자의 표본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안고 싶을 정도로 예뻤다.




그래도 첫 만남부터 이래서는 안 된다. 그런 의사 표시를 하려 했다. 하지만 유리는 아까 자기가 말했던 것처럼 지나치게 흥분되어 미쳐버릴 것 같아 그 말을 할 타이밍을 놓치고야 말았다. 따지고 보면 린 누나도, 귀족가의 여식 엘리자베스 체펠린도 유리 자신에게 알몸이 되면서까지 유혹하려 들진 않았다. 물론 그 손을 잡았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유리가 미칠 것 같다고 했을 때, 세이라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잠시 자기 몸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이 그녀의 아래쪽 수북한 털을 보게 되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정말로 잘못했다는 듯, 두 손으로 보지털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미안해요, 너무 긴장해서 보지의 털을 깎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아, 그, 섹스 도중에는... 자지나 보지를 말해도 예의에 어긋난 게 아니죠? 기분이 나쁘셨다면 취소해..."


"아, 아니에요...! 오히려 좋아요."




그토록 완벽해 보이는 무표정한 여자, 세이라 누나가 다른 표정을 지을 때, 그리고 자신에게 잘 대해주고, 부끄러워하면서 소중한 곳을 가리면서 사과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좋았고, 아래의 그곳이 불끈거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세이라는 유리의 좋다는 말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마에, 다음에는 양 볼에 각각, 그 다음에는 입술에 입맞춤을 하였다. 세이라와 유리의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유리는 세이라의 검은 그림에 일부 가려져 있는 분홍빛 유두가 그녀의 몸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당연하지만 그것을 일부러 말하지는 않았다.




"정말로 죄송해요... 물어봤어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이런 짓을..."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 의사는 물어보지 않으셔도 돼요. 정말로 싫으면 제가 하지 말라고 제대로 말할 테니까, 그때 잠시 그만하시면 돼요. 그때까지는 세이라 누나 마음대로 해주세요."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가요?"




유리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떨면서 물어오는 세이라에게, 그녀의 손을 대신 잡아주면서 말했다.




"당연하죠. 이건 제 생각이지만, 섹스하는 것까지 상대방을 필요 이상으로 배려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섹스는 두 남녀가 옷을 다 벗고 서로를 사랑과 욕정으로 끌어안으며 기분 좋은 일을 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아, 아아아아...!!"


"?? 세이라 누나 왜 그러세요?"


"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하, 하지만 이 무슨... 이 무슨 선량하신 분, 이 무슨 야하신 분... 사랑과 성욕의 화신 같으신 분... 마치 제가 생각하던 그대로의 영웅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잊어버려 주세요."




잊어버려 달라고 하니 잊어버리기로 했다. 세이라 누나가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것까지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나저나 사랑과 성욕의 화신이라니, 유리는 혹시 여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저, 그럼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이 그림을 모두 지우겠습니다."


"괘, 괜찮으신 건가요? 부끄러우시면 하지 않으셔도..."


"아닙니다. 물감이 당신의 입에 들어가면 병에 걸릴지도 몰라요.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세이라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 어떻게든 무표정을 유지하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성인 여자가 자기 입으로 이 나신을 어떻게든 명목상으로나마 가리고 있는 그림을 스스로 지우겠다는 말을 하다니, 세이라의 얼굴은 지금 당장이라도 수치심과 성욕으로 폭발할 것만 같아 보였다. 괜히 유리가 괜찮으신 거냐고 말한 것이 아닌 것이다.




"......."




세이라는 두 눈을 감은 채 뭐라고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떤 언어인 걸까. 고대의 언어, 아니면 일반적인 사람은 알지 못하는 높은 계급의 사람들만이 알거나 사용하는 언어일 수도 있었다.




세이라가 주문을 읊기 시작하자, 세이라의 나신을 가리고 있던 검은 물감의 그림이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세이라의 몸에서 빛이 나며, 어둠을 쫓아내듯, 검은 물감을 치움으로써 그림 또한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 우와아아..."




세이라의 주문이 끝나자, 빛 역시 사라지고, 두 눈을 뜬 세이라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고,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깨져가기 시작했다.




딱 알맞게 나온 커다란 젖가슴, 보지, 그 이외의 곱고 단련된, 적당히 탄 살결. 결코 보여서는 안될 여자의 부위가, 유리의 두 눈에 모조리 비추어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