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대회도 하길래 간만에 글 써봄. 지금 보니 너무 진지하게 썼나 싶네.

성유물 스토리 좋아해서 주제는 대충 엔딩 후 이브의 여행으로 했다.

내용은 어디까지나 if니 적당히 봐주세오.















 언젠가, 이런 밤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었다.



 여행의 시작점. 흩어진 빛을 모아 세계를 구하고자 떠났던 그 날의 밤.

 그 때는 셋이었으나, 지금 그녀는 홀로 별을 바라보고 있다.



 "내일이면 도착하겠네."



 아니, 혼자는 아니었지.

 이브는 옆에 앉아 있는 임두크에게 몸을 기댔다. 작은 용의 존재는 서늘한 밤에도 그녀에게 온기를 가져다 주었다.


 흐릿한 별빛 아래에서, 그녀는 항상 곁에 두는 검을 바라본다.

 셋이 떠났던 여행은 종막을 맞이했지만 그녀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건. 별의 열쇠.

 신의 힘을 둘러싼 또다른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브는 성건을 봉인할 땅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났던 것이다.


 하지만...




 "무서워?"



 침묵 속에서 문득, 그런 물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든 임두크가 이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 시선에서 도망치듯 고개를 돌렸다.


 두려움. 그럴지도 모른다.

 이렇게나 번민하게 될 것이었다면,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걸.



 '아니야.'



 이브는 순간 그렇게 생각한 자신에게 놀라 흠칫 몸을 떨었다.

 몰랐다면 좋았을 거라니.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에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얼마 전, 그들이 발견한 고대 기계 문명의 잔해.

 그곳에 있었던 것은 별의 종말에 맞설 최후의 수단으로 연구되던, 과거로 돌아가는 비술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 작동에는 온전한 열쇠가 필요했기에 과거의 사람들은 실행하지 못했던 듯 하지만...



 이브의 눈길이 성건에 닿았다.


 그녀는 가능하다.

 그녀라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


 남겨진 기록을 따라 고대의 유적을 찾아가면서도, 이브의 머릿속에서는 그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별을 되살리고 사라진 아우람은, 그녀에게 성건을 맡긴 그는 분명 이브가 이 힘을 사사로이 쓰지 않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걸 이렇게 사용하는 건 그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그녀가 멋대로 세계를 바꾸더라도 정말 괜찮은 걸까?



 알 수 없다. 이브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이렇게도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무서워."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더 망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번민하면서도.


 하지만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그 세계가 너무나 빛나 보여서.

 손에서 놓지도 못하겠어.



 어둠 속에서 몸을 떠는 소녀를 위로하듯 용은 날개로 그녀를 감쌌다.




 "네가 원하는 일을 해, 이브."




 원하는 일.


 마침내 도달한 과거로 돌아가게 해 준다는 그 유물은,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법한 크기의 반투명한 원통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만약 모든 것을 알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브가 성건을 꽂아넣자 문이 닫혔다.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었다. 기록에서 읽은 대로 장치를 움직이자 반투명한 벽은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 고통, 배신, 죽음, 절망을.


 시야가 새하얀 빛에 물들어 사라지고, 이윽고 소리마저 녹아내린 자리에 침묵만이 남았다.


 모두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다면...





 무의 세계 속에서, 그녀는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를 자각했다.

 아무것도 없던 세계에는 어느샌가 수많은 풍경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과거였다.

 리스의 말을 따라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시작한 여행은 음모와 배신으로 얼룩졌다.


 크롤러와 싸우고, 잭나이츠에게 납치되고, 리스에게 배신당해 육신을 뺏겼다.

 그리고 임두크의 도움으로 잠시나마 의식을 되찾았던 이브는...


 스스로 들고 있던 검으로 자신을 겨누고.




 '역시,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기억이 생생히 되새겨진다.

 스스로를 찌른 고통보다도, 그 마지막 순간 귓가에 들려오던 절망이 뇌리에 남았다.


 분명 여행의 끝에 세계는 평화를 찾았다.

 그녀도 되살아났다.

 이것도 분명 해피엔딩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도달하기까지의 그 모든 고통을, 절망을,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세계에, 좀 더 행복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브."



 그녀의 생각이 멈춘다.

 그리운 목소리였다.


 이브는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그가 있었다.

 그녀에게 성건을 맡기고 사라진 신 같은게 아닌, 그녀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으로.


 그렇다는 건, 이건 그저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인 것은 아닐까.



 "아우람."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그녀의 환상이라도.


 누구라도 답을 주었으면 했다.

 그가 그녀 자신일 뿐이더라도.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고해성사라도 하듯, 소녀의 목소리가 세계의 틈새를 물들인다.



 "리스를 막지 못했고, 내 죽음조차도 또다른 비극을 만들었지. 그러니까 난..."



 그리고 여기에 와서야, 소녀는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원하는 일.

 내가 원하는 건.




 "이번에는 내가 오빠를... 그리고 너를, 구하고 싶어."




 겪을 필요 없는 고통이었다면.

 알 필요 없는 절망이었다면.


 그 모든 걸 안고 갈 필요는 없잖아.





 그 말을, 아우람은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소녀의 공상일지도 모를 그는 과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처음 여행을 떠날 적엔... 이런 미래를 원했던 건 아니었지. 어쩌면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지도 몰라."


 "그럼..."


 "하지만, 이브."



 시선이 마주치자 소녀는 말을 멈췄다. 마주한 소년의 눈에서 그녀는 익숙한 빛을 보았다.


 세계가 다시 시작된 그 날,

 눈을 뜨자 그곳에는

 평온한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지.


 그 때 보았던 별들의 빛.



 아, 이 사람은.

 정말로.

 환상 같은 것이 아니라.




 "최고는 아니었더라도, 최선을 택해가며 여기까지 왔잖아."




 비록 후회가 있더라도.

 잃은 것들이 있더라도.


 언제나 찬란히 빛나던 별의 온기가 그녀의 손 끝에 닿았다.




 "이 결말이야말로, 우리의 여행인걸."






 이브가 눈을 뜨자, 그녀는 아직 유적에 있었다.


 별은 다시 소녀의 곁을 떠나갔다.

 당연한 일이다. 별은 본래 닿을 수 없는 하늘에서 빛나는 법이니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때때로 깜빡이듯 발하는 성건의 희미한 빛을 바라보며.


 검을 다시 손에 쥐고, 소녀는 용과 함께 유적을 떠났다.




 더는 뒤돌아보는 일 없이.

 그렇게 그녀는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그들이 도달한 결말에서, 계속해서 걸어나간다.




 별이 맡긴 세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