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오늘의 출석 내용 - 3


오늘의 출석내용

넬리 블라이와 세계일주



 1872년 쥘 베른의 대표적인 명작, 80일간의 세계일주. 한 영국인 신사가 가볍게 시작한 내기로 큰 준비 없이 세계일주를 떠나 80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이 나왔을 당시 많은 이들이 80일 만에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에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는 가능할까? 를 넘어 오히려 80일이라는 기록을 깨겠다며 당당히 세계일주를 시작한다. 작은 손가방 하나만 챙겨서 혼자 세계일주를 떠난 여인, 엘리자베스 코크런. 필명, '넬리 블라이'. 오늘은 그녀의 세계일주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넬리 블라이는 성차별 성향의 칼럼을 반박하는 글을 시작으로 저널리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1887년 조셈 퓰리처의 회사인 <뉴욕 월드>의 소속이 되어 블렉월 섬의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가해지는 학대에 대한 기삿거리의 취재한다. 그녀의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정부가 블렉웰 섬의 상황을 개선하고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889년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은 그녀는 편집장에게 "내가 이 기록을 깰 수 있다"고 제안했고 며칠의 준비를 한 후 작은 손가방 하나만 가지고 세계일주를 떠난다.


 1889년 11월 14일 뉴욕에서 출발한 넬리 블라이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수에즈 운하를 거쳐 스리랑카의 콜롬보, 홍콩, 페낭 반도, 일본을 거쳐 1890년 1월 25일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자신이 얘기한대로 80일이라는 기록을 깨고 72일만에 세계일주를 달성한 것이다. 그녀의 여행기는 매일 신문에 실리며 전 국민적 인기를 끌었고 그녀가 여행 내내 입었던 체크무늬 코트와 모자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미국 여성들 사이에서 큰 유행이 되기도 하였다.


 넬리 블라이의 세계일주에는 라이벌이 존재했다. 그녀가 여행을 출발했던 날 <뉴욕 월드>의 경쟁사였던  <코스모폴리탄>은 엘리자베스 비슬랜드라는 기자를 반대 방향으로 출발시켰다. 넬리 블라이는 홍콩의 증기선 사무실 직원이 사흘 전에 비슬랜드라는 여성이 이 곳을 지나갔다는 얘기를 하여 그제서야 라이벌의 존재를 알아챘다. 실제로 마지막 뉴욕으로 돌아가는 것만 남았을 당시 비슬랜드가 며칠 더 앞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슬랜드는 뉴욕으로 가는 고속 증기선을 놓쳐 느린 배를 타야 했고, 대서양의 겨울 폭풍까지 만나 며칠을 허비해야 했다. 반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넬리 블라이를 위해 퓰리처는 '특별 전세 열차'를 대기시켰고 이 열차는 단숨에 그녀를 뉴욕으로 보내주었다. 결과적으로 넬리 블라이는 72일, 비슬랜드는 76일에 세계일주를 끝마쳐 넬리 블라이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넬리 블라이는 그 후에도 수많은 기사들을 남겼다. 위험천만한 일들도 많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헤쳐나가고 여성 기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험난한 파도와 낯선 이국땅 앞에서도 결코 펜을 놓지 않았던 그녀의 치열한 기자 정신은 후대 여성들에게 '갈 수 없는 곳은 없다'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단 하나의 손가방을 들고 세상 밖으로 뛰어든 넬리 블라이. 그녀가 남긴 72일의 기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불가능에 맞서 싸운 한 여성의 뜨거운 승전보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짦막

넬리 블라이는 일주 도중 프랑스에서 쥘 베른 부부를 만났다.

그녀는 싱가포르에서 소설의 내용처럼 원숭이를 구입해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비슬랜드는 회사의 강압적인 명령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세계일주를 시작했다. 심지어 그녀는 넬리 블라이처럼 탐사보도 기자가 아닌 문학 편집자였다.

비록 엘리자베스 비슬랜드는 일주 경기에서 졌지만 영국으로 가서 여행 자체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체험에 대해 서술한 여행기를 출판했다. 그 여행기도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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