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가면, 그 아래 섬세한 소녀의 마음까지, 이거 완전 의존형 얀데레 최적화 아님???








"안녕 모나크, 잘 부탁해."


여차저차 모항에 부임한 모나크에게 지휘관이 생글생글한 미소와 함께 내뱉은 한마디, 장갑을 벗어 손을 내미는 것도 잊지 않았어. 악수를 하자는 뜻이었지.


"초면에 실례하지. 나는 전함, 모나크다. 흥. 이 한 번 버려진 몸에게까지 도움을 구할 줄이야…. 로열은 그렇게도 쇠락하였는가?"


그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은 모나크였기에, 또다시 강압적인 척 가면을 쓰고 지휘관과 손을 맞잡지. 


사람의 손을 타고 오르는 온기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야.


"모나크, 안색이 안 좋아. 혹시 무슨 일 있어?"


"아, 잘 됐다. 마침 좋은 차가 준비되었는데, 같이 마실래? 서로 기탄없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말이야."


"네가 가장 우수하다고? 응. 맞는 말이야."


지휘관은 모나크를 가까이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어. 이따금 열등감에서 비롯된 그녀의 히스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저 웃으며 넘어갈 뿐이었지.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 수록 지휘관을 향한 모나크의 감정은 차츰 붉은색으로 물들어가, 늘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그녀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으니까. 당연한 수순이었지.


"늘...고맙다. 지휘관."


결국에는 모나크가 지휘관에게 감사를 표하는 일도 잦아져. 그럴 때 마다 지휘관은 뭘 그런 걸로 감사를 표하냐며 넘어갔지.


그렇기에 모나크는 이 행복이 영원할 거라 믿었어, 자신을 인정해준 사람, 지휘관이 자신을 봐주며 언제나 가까이 하는 상상.


하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모나크와 지휘관이 만나는 날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어. 모나크는 단순한 기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지. 약 이틀간 지휘관을 만나지 못하고 내린 결론이야.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극도의 불안감이 그녀의 몸을 뒤덮기 시작해, 스멀스멀, 말단부위부터 타고 오르는 익숙한 기운, 마치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닌다 해도 믿을 수준이었어.


때문에 모나크는 지휘관을 찾아나서, 설마, 자신을 버리진 않았겠지,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해. 자기 암시를 반복하며 말이야.


그렇게 하염없는 걸음을 옮기다가, 모나크는 결국 환한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지휘관을 발견해. 그 동안의 고민이 눈녹듯 녹아내리는 순간이지.


그래, 역시, 그럴 리 없다. 지휘관이 설마 나를...


"이 모항에 오길 잘 한 거 같아요... 지휘관님 같은 사람도 있고."


"에이, 과찬이지. 뭐 그런 걸로."


하지만 그제서야 주변 환경이 들어오기 시작해. 지휘관은 홀로 웃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함선소녀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휘관?"


당황한 모나크가 그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닿지 않아. 지휘관은 다른 함선소녀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고, 또 웃고 있었으니까.


바로 그 순간, 모나크의 머리에 번개가 내리쳐. 깨달은 거야.


아. 저 남자의 친절은 나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었구나.


충격적이지. 지휘관은 단순히 새로 온 함선소녀가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거 였지만, 모나크는 착각한 거야. 이 친절이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고.


모나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 무릎에 얼굴을 묻어, 생각을 거듭해.


"역시 나는 쓸모 없는 존재 였던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지휘관의 미소는 진짜였어. 잃고 싶지 않았어. 그 찬란하고 부드러운 웃음을.


결국 그 날 새벽, 모나크는 지휘관실의 문을 두드려, 똑똑, 하고 말이야.


"모나크?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지휘관."


평소보다 약간 탁한 눈동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지휘관은 조용히 모나크를 쇼파에 앉히고 차를 대접해. 첫 만남 때 대접한 홍차랑 같은 것이야.


"그래서, 어쩐 일이야?"


그렇게 우물쭈물, 잠깐의 침묵 후에 꺼낸 지휘관의 목소리, 모나크는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깨물다 결국 입을 열어.


"지휘관...나는 너에게 특별한 존재인가?"


"그럼, 당연하지. 모나크, 너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야."


미소와 돌아온 대답, 하지만 이건 모나크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어.


"그럼... 그렇다면...이 모항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인가?"


"당연하지. 모나크. 하하, 무슨 소리를 하나 했네. 우리 모항에 있는 함선소녀들은 '전부' 나에게 특별한 존재인 걸."


미소와 돌아온 대답, 하지만 이것 역시 모나크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어.


"아니. 그게 아니다. 나는... 나는 내가 너에게 단 하나 뿐인 소중한 존재인 걸 묻는 거다."


"응. 맞아. 너희들은 나에게..."


"그게 아니란 말이다!!!"


결국 참지 못 해. 쾅, 하고, 책상이 무너지는 소리. 지휘관의 동공이 크게 수축 돼.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


"지, 지휘관. 제발, 제발, 제발, 나는 너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말해다오, 유일무이하고, 특별하기에 이 모항에 있는 함선소녀 중 가장 특별하다고, 가장 소중하다고, 가장, 가장, 가장...소중하다고, 제발..."


반쯤 울부짖듯 말하는 목소리, 그가 당황해 정신 차리지 못하는 사이, 모나크는 어느새 그의 지척에 도달했어.


"말해라, 어서! 지휘관! 내가 가장 특별한 존재라고!!!"


이미 선을 잔뜩 넘었다는 걸 알지만 괜찮아. 여기서 긍정의 대답만 듣는다면, 그녀는 그 어떤 엄벌도 버텨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기다려, 지휘관의 입에서 긍정의 뜻이 나오리라 믿으며 조용히, 조용히...


"아, 아니. 그럴 순 없어. 나는 이 모항에 지휘관. 모두를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 걸..."


"……아."


그리고 툭, 그녀의 마음에 무언가가 끊어져.


호흡은 진즉에 잊어버린 지 오래, 시야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아, 그저 지휘관의 대답을 곱씹으며, 멍청한 자신에 대한 조소를 내뱉을 뿐이지.


아.


나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구나.


-쾅!!!


지휘관은 어느새 벽에 몰려 있었어. 아플 정도로 강하게 붙잡힌 상황, 절대 도망칠 수 없는 위기였지.


"모, 모나크, 나 조금 아픈데..."


"..."


하지만 닿지 않아, 모나크는 어느새 눈물 흘리며 비틀린 미소를 그리고 있었으니까.


"이, 이건, 지휘관이 나쁜 거다. 나, 나를, 나를 특별하게 봐주지 않은... 지휘관이 나쁜 거다."


끊어진 마음은 더이상 제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 해. 붉은 빛은 사라진지 오래. 지금 그녀의 마음에 멀쩡한 부분은 없었어.


그저, 보라색이지.


"잠깐, 모나크... 이, 이건 아니야... 이건 정말로..."


"아니, 아니다. 이건 전부... 나를 봐주지 않은... 나를 사랑해주지 않은... 네 잘못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 일어날 일도 전부, 네 잘못이다. 지휘관.


그렇게, 차츰, 보라색으로, 물든, 그녀의 마음을 보며.


지휘관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