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투표권과 인형들의 무대

"정면에 오토마톤 정찰대! 커미사르 한 마리, 보병 여섯!"

사관학교 수석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A2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허둥지둥 엄폐물 너머로 리버레이터의 총구를 겨누며 교과서적인 사격 자세를 잡으려던 찰나였다.

탕—!
어디선가 날카로운 폭음이 협곡을 갈랐다. 경쾌한 소리와 동시에 저 멀리 수풀 너머에서 붉은 안구를 빛내며 순찰대를 지휘하던 커미사르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목이 잘린 기계 본체가 무참히 진흙탕에 처박혔다. 적들이 경보 신호탄을 올릴 권한을 가진 지휘관을 단 한 발로 침묵시킨 것이다. 그 뒤로 유탄 두 발이 날아들어 지휘관을 잃은 녀석들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E1은 딜리전스의 연기 나는 총열을 내리며, 헬멧의 푸른 센서로 남은 기계들을 슥 훑었다.

"조준선 정렬이 늦어. 실전에선 적이 먼저 널 조준한다."

"어…… 아, 예! 사관학교 전술 교본 제3조에 따르면 지휘관 사살 후 보병 전멸을……!"

A2가 멍하니 말을 더듬는 사이, 뒤에서 대기하던 L3가 씩 웃으며 유탄 발사기의 노리쇠를 철컥 당겼다.

"제독님, 주 임무지로 가기 전에 이 구역 레이더랑 전술 지도가 깡통들 통신망 때문에 먹통입니다. 제가 저 깡통 놈들 눈을 좀 속이고, 통신 업링크 기지에 한 표 던지고 오겠습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서둘러라."

E1의 짧은 턱짓이 떨어지자마자 L3는 사방에 요란하게 유탄을 뿌려대던 기세는 어디 가고, 말레벨론 크릭의 망령이라는 별명답게 바위 그림자 사이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L3가 이탈하자 협곡의 전선은 기묘할 정도로 차가워졌다.

"우리가 놈들의 시선을 끈다. 신병들은 내 후방 45도를 맡아라. 전진."

 E1의 지휘 아래 남겨진 세 사람은 주 임무지인 민간인 후송 구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적들의 심장부로 들어갈수록 오토마톤의 매복은 흉포해졌다. 협곡의 모퉁이를 돌자마자 사방의 바위 절벽 위에서 붉은 레이저 탄환과 소형 로켓포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과광—! 콰앙!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귀를 찢는 기계들의 모터 소리와 탄막 속에서, 실전이 처음이었던 A2와 T4는 극심한 패닉에 빠졌다. 사방이 가욱한 검은 연기로 뒤덮여 1미터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A2! 우측이야! 우측에서 기계 놈들이 온다!"

 T4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무전기를 때렸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온몸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친 A2는 연기 속에서 정체불명의 실루엣이 자신을 향해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이 악마 같은 기계 놈들! 민주주의를 위하여!!!"

 A2는 반사적으로 리버레이터의 트리거를 끝까지 당겼다. 연사 모드로 고정된 소총이 불을 뿜으며 십여 발의 탄환을 연기 속으로 사정없이 박아 넣었다. 장탄이 바닥나 철컥거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A2는 광기 어린 비명을 지르며 총을 난사했다.
 하지만 연기가 걷히며 바닥에 쓰러진 것은 차가운 고철 더미가 아니었다.먼지 하나 없이 번쩍이던, 그러나 이제는 가슴팍이 붉은 혈흔과 탄흔으로 엉망이 된 B-01 갑주. A2의 사관학교 동기이자 방금 전까지 함께 영웅을 꿈꾸던 T4였다. T4는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원망 어린 눈빛을 채 거두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허무하게 숨을 거두었다.

"어……? 내가…… 내가 무슨 짓을……."

A2는 손에서 소총을 떨어뜨렸다. 자신이 동기를 직접 사살했다는 충격에 손이 덜덜 떨렸고, 비명이 헬멧 내부를 가득 채웠다.

"미안해, T4! 내가 눈이 멀어서…… 내가 널 죽였어! 제독님! 제가 T4를……!"

 A2가 정신적 붕괴를 일으키며 진흙탕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을 때, 옆에서 묵묵히 딜리전스의 탄창을 갈아끼우던 E1은 잔인할 정도로 덤덤했다. 그는 무릎을 꿇은 A2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왼팔의 패드를 단 1초 만에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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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1의 손끝에서 튕겨 나간 파란색 증원 비콘이 시체로 변한 T4의 발밑에서 번쩍였다.
몇 초 뒤,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강하 포드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포드의 유압식 문이 폭발하듯 열리며, 한 명의 헬다이버가 철컥 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다.
 A2는 눈물범벅이 된 채 새로 내려온 대원의 다리를 붙잡았다. 헬멧의 미세한 틈새로 얼핏 보인 체격이나 골격, 목소리의 톤은 방금 자신이 죽인 T4와는 완전히 다른 생판 남이었다. 하지만 그가 다가와 A2의 어깨를 툭 치는 동작과 어조는, 사관학교 시절 T4가 가졌던 지극히 개인적인 버릇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슈퍼 지구 사령부가 전사한 T4의 데이터화된 기억과 인격을 또 다른 무명(無名)의 신병 뇌에 그대로 주입해 전선으로 사출한 것이다. 주입된 인공 기억 때문에, 새로운 T4는 자신의 진짜 육체가 죽은 것이 아님에도 그것을 자신의 '고결한 희생' 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새로운 T4가 아무런 원망도, 슬픔도 없는 쾌활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과할 필요 없다, 생도! 이전의 나는 슈퍼 지구와 대의를 위해 고결한 희생을 마친 것이다! 영광스러운 통제민주주의의 전진에 사소한 오차는 있을 수 있는 법! 자, 무기를 들어라!"

E1이 다가와 멍하니 서 있는 A2의 헬멧을 거칠게 쳐 정면을 보게 만들었다.

"정신 차려라, 생도. 여기에 네 감정을 낭비할 시간은 없다. 저 녀석 말대로 우린 계속 갈 뿐이다."

그때, 협곡 너머 오토마톤 통신 기지 방향에서 쾅! 쾅! 쾅! 쾅! 하는 유탄의 연속적인 폭음이 대지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직후 전술 패드에 황금빛 문구와 함께 웅장한 경보음이 울렸다.

[보조 목표 완수 : 통신 업링크 활성화 완료]

폭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잠시 후 저 멀리 방치되어 있던 구시대의 유산, SEAF 야포 기지의 거대한 포신이 수동으로 회전하는 소리가 육중하게 울리더니, 대지를 주저앉힐 듯한 초거대 포성이 행성을 뒤흔들었다. L3가 혼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소형 핵탄두를 포구에 밀어 넣고 발사 버튼을 누른 것이다.
하늘을 날아간 야포 탄환이 주 임무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오토마톤의 중장갑 기지 건물 위로 떨어지며 거대한 버섯구름을 피워 올렸다.
초토화된 연기 속에서, 유탄 발사기를 어깨에 척 걸친 L3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걸어왔다. 그의 보급 배낭에서는 빈 탄약 상자들이 철컥거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보조 목표 완수 : SEAF 야포 재가동]

[보조 목표 완수 : 상급 오토마톤 전초기지 파괴 완료]

"제독님! 통신망 연결하고 장부 정리 좀 한 다음에, 오는 길에 깡통놈들 전초기지가 있길래 크게 하나 넣어주고 왔습니다!"

새로 온 T4는 "과연 크릭의 베테랑이십니다!" 라며 환호했지만, A2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 기괴한 전쟁터에서, 베테랑들의 세계는 신병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미쳐 있었다.
E1이 딜리전스의 총열을 닦으며 L3의 어깨를 툭 쳤다.

"수고했다, 훈련병. 이동한다. 진짜 지옥은 지금부터다."

4인 분대는 야포가 열어젖힌 불타는 화로 속으로, 마침내 30명의 시민이 기다리는 후송 기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