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 자유의 연결고리
"앞만 봐! 뒤는 보지 마!"
사관생도 A2는 피와 진흙으로 범벅이 된 B-01 갑주를 이끌고 비틀거리며 달렸다. 저 멀리 탈출 지역에는 저지가 강제 호출한 복귀 셔틀,
펠리칸-1이 푸른 엔진 불꽃을 내뿜으며 막 지면에 안착하고 있었다. 구축함의 철수 제한 시간은 이제 단 20초 남짓.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고지가 눈앞이었다.
그러나 오토마톤의 탄막을 피해 언덕을 오르던 순간, 폭발의 충격파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A2의 품에서 내려와 필사적으로 발을 구르던 어린 소녀가 진흙탕 위로 거칠게 넘어져 굴렀다.
"앗……!"
아이가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며 제 다리를 감싸 쥐었다. 발목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여 있었다. A2가 황급히 소녀를 일으켜 세우며 고개를 돌린 순간, 절망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방금 전 홀로 사투를 벌이다 전사한 슈퍼 제독 E1의 찢겨 나간 DP-99 갑주와 유해를 잔인하게 짓밟으며, 붉은 안구를 번뜩이는 헐크와 중장갑 데바스테이터 대군이 언덕을 가득 메운 채 무서운 속도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강철들의 서슬 퍼런 전기톱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셔틀까지의 거리는 수십 미터, 소녀의 다리는 부서졌고, 자신에게 남은 탄창은 단 한 개뿐이었다.그 순간, 사관생도 A2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관학교의 온실 속 엘리트 소년은 마침내 허울뿐인 교과서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한 명의 병사로 각성했다.
A2는 거친 손길로 자신의 B-01 갑주 등 뒤에서 펄럭이던, 슈퍼 지구의 고결한 영웅을 상징하는 황색과 검은색의 헬다이버 망토를 거칠게 찢어냈다. 그는 덜덜 떨고 있는 소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 망토 조각으로 소녀의 온몸을 단단히 둘러싸 기계들의 파편과 유압유 열기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허리춤에 꽂혀 있던, 마지막 하나 남은 각성제(Stim) 주사기를 뽑아 들었다.
자신을 치료할 유일한 수단이었지만, A2는 망설임 없이 소녀의 작은 어깨에 주사기를 깊숙이 꽂아 넣었다.
치이익—!
주사기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 약물이 주입되자, 소녀의 흐려지던 눈동자에 일시적으로 부상과 고통을 완벽하게 마비시키는 초인적인 생기가 돌아왔다. 각성제의 강력한 효능이 아이의 신경계를 강제로 각성시킨 것이다.
A2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소녀의 어깨를 붙잡고 마지막 유언이 될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넸다.
"잘 들어, 꼬맹이. 이 주사약이 네 다리를 저 비행기 앞까지 끝까지 뛰게 만들어 줄 거야. 내가 신호하면, 뒤는 절대 돌아보지 마. 저 비행기를 향해서 앞만 보고 네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뛰어서 타는 거야. 알겠지?"
소녀는 피눈물이 맺힌 눈으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A2는 리버레이터 소총을 굳건히 고쳐 잡고, 언덕을 넘어오는 오토마톤 대군을 향해 홀로 몸을 돌렸다.
"지금이야! 뛰어!!!"
A2의 날카로운 외침과 동시에 소녀는 각성제의 초인적인 힘으로 고통을 잊은 채, 펠리칸-1의 열린 해치를 향해 진흙탕을 박차며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다, 이 고철 덩어리 놈들아! 민주주의의 맛을 봐라!"
A2는 몰려오는 기계들의 한가운데로 돌진하며 소총 탄창을 통째로 비워냈다. 붉은 레이저가 그의 사지를 관통했고, 버서커의 칼날이 갑주를 찢어발겼다. 처절한 난사 끝에 소총이 철컥거리며 바닥나고 A2가 피를 토하며 대지에 무릎을 꿇었을 때, 소녀는 마침내 펠리칸-1의 내부로 안전하게 몸을 던졌다.
철컥!
소녀가 탑승하자마자 셔틀의 센서가 작동했다.
[분대 전원 사망 / 생존자 탑승 완료]
인공지능의 냉혹한 프로토콜에 따라, 펠리칸-1은 헬다이버들의 전멸을 확인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엔진 출력을 최대치로 높여 급격히 고도를 높이며 이륙했다.
그와 동시에 무릎을 꿇은 A2의 왼손 손가락이 피로 얼룩진 패드 위에서 마지막 스트라타젬 코드를 완성하고 있었다. 구축함이 저궤도를 완전히 이탈하기 직전, 장교 저지가 승인한 마지막 전술 폭격이었다.
A2는 자신의 발밑에 붉은색 이글 신호탄을 내리꽂으며, 헬멧 너머로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Sweet Liberty...... 이글 500kg 폭탄, 내 좌표에 투하해라. 슈퍼 지구 만세……."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펠리컨-1이 하늘 높이 솟구치는 순간, 창문 너머 지상에서는 A2의 좌표를 타격한 500kg 폭탄의 눈부시고 거대한 불꽃이 지옥 같은 버섯구름을 피워 올렸다. 그 압도적인 대폭발은 남겨진 오토마톤 대군과, 사투를 벌였던 헬다이버들의 흔적을 바릴리아 V의 대지 위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슈퍼 구축함의 차가운 함교. 민주주의 장교는 전술 모니터를 가득 채운 황홀하고 잔혹한 화염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말없이 군모를 벗어 가슴에 얹었다. 그리고 오직 A등급 시민의 소녀 한 명만을 태운 채 궤도로 진입하는 수송선을 맞이하기 위해 보고서를 고쳐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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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다. 전장의 참혹한 피비린내와 매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나치게 밝고 평화로운 슈퍼 지구의 어느 초등학교 교실.
칠판 위에는 '통제 민주주의 만세' 라는 거대한 글귀가 황금빛으로 적혀 있었고, 창밖으로는 군복을 입은 영웅들이 우주를 호령하는 화려한 헬다이버 모집 프로파간다 광고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교실의 맨 앞자리, 한 소녀가 학교에서 나눠준 '나의 장래희망' 종이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깨끗한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책상 바로 옆에는, 그날 지옥의 협곡에서 A2가 거칠게 찢어 제 몸에 둘러주었던 그을음과 흙먼지가 묻은 노란색 망토 조각이 보물처럼 소중하게 놓여 있었다.
소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제각기의 자리를 지키며 오토마톤 떼거지를 향해 유탄을 날리던 L3, 지뢰 속에서 허무하게 스러진 T4, 마지막 길목을 지키며 무반동포를 뿜어내던 E1 제독의 낡은 황금빛 뒷모습.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아픔을 잊는 주사기를 꽂아주고 앞만 보고 뛰라던 소년 헬다이버 A2의 마지막 다짐까지.
그들의 희생은 프로파간다 선전 기사 한 줄로 대체되어 사라졌지만, 소녀의 심장에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새겨져 있었다.
소녀는 확신에 찬 손길로 연필을 꾹 눌러 쥐었다. 그리고 장래희망 칸에,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삐뚤빼뚤한 글씨를 적어 넣었다.
( 헬다이버 )
창밖의 화려한 광고 불빛이 소녀의 해맑은 미소와 종이 위를 부드럽게 비추었다.
[HELLDIVERS : 자유의 연결고리 - 전편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