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 한계선 (The Red Line)

 후속 진입할 SEAF 본대를 위해 구역 내 모든 대공포와 요새를 뿌리 뽑는 사후 소탕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사방에서 기계 군단이 물밀듯 밀려오는 와중에 대원들은 몇 번이나 죽고 다시 강하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붉은 경고음과 함께 네 사람의 헬멧 내 스크린에 잔인한 문구가 비쳤다.

[경고: 증원 예산 고갈]

더 이상의 증원은 없었다. 하늘을 메우던 강하 포드의 폭음도 완전히 끊겼다.
이제 네 사람에게 남은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핵심 방어 시설을 잃은 오토마톤의 경계 시스템이 최고 단계로 치솟았다. 행성 전체의 기계들이 눈이 뒤집힌 채로 4인을 추적하기 시작한 순간, 저궤도 상공의 슈퍼 구축함에서 민주주의 장교 '저지'의 무전이 무겁게 떨어졌다.

"현재 저궤도 전술 한계선 유지 잔여 시간 6분 30초. 이 시간이 지나면 구축함은 궤도를 이탈하며, 모든 스트라타젬 및 탈출선 추가 지원이 전면 중단된다. 반드시 시간 내에 구역을 소탕하고 복귀 셔틀을 호출해라."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잔여 시간 5분. 탈출 지역으로 향하는 유일한 협곡 길목이 수십 대의 헐크와 탱크, 그리고 사방에서 스폰된 오토마톤 순찰대 부대로 완전히 봉쇄되었다. E1이 소녀를 안고 전진하는 속도로는 시간 내 돌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때, 슈퍼 훈련병 L3가 자신의 보급 배낭에서 마지막 유탄들을 철컥 장전하며 씩 웃었다.

"제독님, 어차피 누군가 한 명은 남아서 저기 깡통 새끼들과 놀아줘야 합니다. 저 얼뜨기들을 보낼 바엔 제가 가는게 낫겠죠. 먼저 가십쇼, 뒤따라가겠습니다."

"L3, 총알 아끼지 마라."

E1의 짧은 작별 인사에 L3는 소녀의 머리를 한 번 툭 쳐준 뒤, 반대편 능선을 향해 홀로 소리를 지르며 질주했다.

"야 이 빨갱이 깡통 새끼들아! 오늘 내가 네놈들의 CPU를 모조리 포맷해주마!!"

L3는 적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추가 지원이 끊기기 전까지 무려 4분이 넘는 시간 동안 홀로 유탄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발등에 까며 기계들의 시선을 완벽하게 분산시켰다.
협곡 너머로 쉴 새 없이 터지는 유탄의 불꽃과 웅장한 폭음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그의 생체 신호가 뚝 끊기며 완벽한 신호 두절(전사) 상태가 되었다.
 L3가 목숨을 바쳐 벌어준 4분의 시간 덕분에, E1은 소녀를 안고 A2, T4와 함께 오토마톤의 삼엄한 포위망을 피해 탈출 지점 근처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구축함 철수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분 남짓. 사방에 기계 순찰대들의 차가운 모터 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잔뜩 얼어붙은 채 주변을 경계하며 걷던 신병 T4가 발걸음을 옮기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딸깍—
진흙탕 속에 교묘하게 매설되어 있던 오토마톤의 접촉지뢰가 작동하는 불길한 기계음이 고요한 전장에 울렸다. T4가 헬멧을 돌려 E1을 바라보며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쾅-------!!!
눈을 멀게 하는 눈부신 붉은 화염과 폭음이 대지를 찢어발겼다. 흠집 하나 없던 T4의 B-01 갑주는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이 났고, T4는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허무하게 폭사했다.
 폭발음과 동시에 근처에 매복해 있던 오토마톤 커미사르가 하늘을 향해 붉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사방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며, 거대한 전기톱을 휘두르는 헐크들과 중장갑    
 데바스테이터들이 가득 실린 오토마톤 드롭쉽 수십 대가 대지를 짓누르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완전한 파국이었다.
 구축함 철수 시간은 단 1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품에 안은 소녀가 공포로 울부짖자, 낡은 황금빛 DP-99 갑주의 슈퍼 제독 E1이 질주를 멈추고 돌아섰다. E1은 품에 안고 있던 소녀를 A2의 품에 거칠게 밀쳐 넣었다.

"생도. 지금부터 네가 지휘관이다. 뒤를 보지 말고 착륙 지역으로 뛰어라."

"제독님?! 안 됩니다! 같이 가셔야 합니다!"

"내 탄창은 아직 세 개나 남았고, 무반동포 포탄도 여유가 좀 남아있다.
……사관학교 교본 마지막 장에 '미래를 남긴다'고 적도록."

E1은 궤도의 장교 저지를 향해 마지막 통신을 보냈다.

"내 구역에 펠리칸을 내려라. 통신 종료한다."

E1은 몰려오는 헐크 부대와 드롭쉽들을 향해 혼자서 무반동포를 장전며 적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붉은 레이저와 거대한 기계들의 전기톱 소리 속에서 홀로 불꽃을 뿜어내던 E1의 생체 신호가 이내 뚝 끊기며 완전히 통신이 두절(전사)되었다.
눈앞에서 1차 대전쟁의 살아있는 신화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E1마저 잃은 사관생도 A2. 이제 전장에 남은 인간은 자신과 품에 안긴 작은 소녀뿐이었다.
 잔여 시간은 이제 수십 초 단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A2는 눈물을 흘릴 새도 없이, 번쩍이던 노란색 B-01 갑주가 흙먼지와 동료들의 피로 떡이 된 채, 오직 소녀를 품에 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펠리칸-1의 엔진 불빛을 향해 미친 듯이 진흙탕을 밟으며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