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3장                          4장                         5장                  1장(4편~6편)         2장(6편~8편{예정})



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1편  https://arca.live/b/lastorigin/9679372

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2편  https://arca.live/b/lastorigin/9756344

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3편  https://arca.live/b/lastorigin/9875022

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4편  https://arca.live/b/lastorigin/11385415

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5편  https://arca.live/b/lastorigin/13814933

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6편  https://arca.live/b/lastorigin/16908026

오르카 호는 꿈을 꾼다 7편  https://arca.live/b/lastorigin/19013937


※해당 작품은 픽션입니다. 이 작품의 설정은 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채 주저앉아있는 아르망을 흘끗 본 닥터는 방금까지만 해도 사령관을 보여 줬던 새카만 화면을 응시하며 손톱을 질겅질겅 씹었다.


두뇌 파에 속하는 이 둘이 평상시의 컨디션이라면 문제를 대면한 즉시 침착하게 원인을 짚어내고 해결해 나가겠지만


사령관의 생명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녀들의 강점인 유연한 사고를 불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두뇌만큼이나 침착하기로 유명한 바이오로이드.


몇 초 지나지 않아 아르망이 먼저 제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 고뇌에 차 있는 닥터에게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닥터 양. 저한테 말한 것 이외에 닷새 동안 있던 일 중 폐하와 관련된 것들은 아는 것 내에서 전부 상세하게 적어 주세요. 저는 지금 당장 제 개인실에 다녀오겠습니다."


"어...? 아, 알겠어."


그 말을 끝으로 아르망이 닥터의 방을 나섰다.


선원들이 잠든 고요한 새벽이 몇몇 이들에겐 긴급상황을 방불케 할 만큼 급박하게 흘러갔다.



-


-



'거의 다 왔다.'



마치 자신이 여기에 있는 걸 아는 듯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던 발소리는 이제 또렷하게 들릴 만큼 가까워 졌다.


저벅.


저벅.


차분하게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와는 달리 사령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발키리로 보이는 개체가 다가오는 동안 마음은 추슬렀지만, 그의 뇌는 여전히 강렬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차분히 심호흡하며 사령관은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머지않아 그의 앞에 조금 전과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발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만히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령관을 본 발키리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더 도망치실 줄 알았는데 벌써 포기하신 겁니까?"


"..."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가 위협을 줄 만한 칼을 든 채 다가온다면 보통 이들은 소름이 돋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피투성이의 그녀가 내뱉는 말 하나, 행동하나가 평상시의 발키리와 오버랩되어 그런 공포심은 들지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발키리임을 확신한 그는 자기 생각이 얼추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미안해."



고개를 숙이고 먼저 사과하는 것이다.



"...예?"



사령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의외라고 느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사령관의 행동에 불만이 있는 걸까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을 못 본 사령관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실책이었다.



"3p 하자고 제안한 거 사실은 내가 먼저 생각한 거야. 너와 레오나의 관계를..."


"그 입 닥쳐."



발키리에게서 들어본 적 없는 강렬한 욕설에 사령관이 곧바로 고개를 올렸지만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온 발키리의 살기 어린 두 눈과 마주치는 순간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몸이 경직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그녀의 공격에 방어 자세를 취하지 못한 대가는 매우 컸다.


전차처럼 달려드는 발키리의 숄더 태클에 직격한 사령관은 컥 소리를 내며 뒤로 날아갔다.


우당탕!


꿈속임에도 불구하고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사령관이 숨을 들이켰다.


고통을 참고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어느새 발키리가 그 체구에 나올 수 없는 힘으로 그의 위에 앉아 마운트 포지션을 취하여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그녀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시뻘건 칼이 유난히 섬뜩해 보였다.


이내 그 흉기를 높이 들어 망설임 없이 자신에게 내려꽂히는 걸 본 사령관은 본능적으로 두 팔을 교차시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앞으로 벌어질 참사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총성이었다.


탕!



'탕?'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소음에 두 팔을 살짝 벌려 발키리를 바라본 사령관은 그녀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정면을 향해 있는걸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자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품있는 발할라의 정복을 걸친 채 위풍당당한 기세를 뽐내며 서 있는 그녀를 그는 알고 있다.



"발…키리?"



그곳에는 겉모습이 멀쩡한 또 다른 발키리가 그녀의 주 무장인 모신나강을 든 채 피를 뒤집어쓴 발키리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초창기부터 자신과 같이 지내온 발키리를 잘 아는 사령관은 표정을 통해 저 발키리가 심히 화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 모습으로 사령관님을 해하려 하다니 질 나쁜 장난이군요."



탕 탕 탕!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생긴 그녀를 향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쏜 탄환은 피에 적셔진 정복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 충격에 피를 뒤집어쓴 발키리가 숨을 들이켰고 총을 쏜 발키리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지만, 힘이 빠진 듯 이내 칼을 떨어뜨리며 사령관을 향해 털썩하고 쓰러졌다.


챙그랑!


그러자 총을 쏜 발키리가 급히 사격 자세를 흩트리고 사령관을 향해 한걸음에 달려왔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지금 바로 일으켜 드리겠습니다."



발키리는 한 손에 총을 쥔 상태로 사령관의 위에 얹혀있는 발키리를 거칠게 옆으로 치운 뒤 사령관을 일으켜 세웠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어보려던 그보다 먼저 그녀가 검지를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살포시 갖다 대자 하려던 질문이 쏙 들어갔다.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살핀 발키리가 사령관의 두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궁금한 게 많으시겠지만 일단 여기서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발키리가 그의 손을 잡아 이끄는 방향으로 걸어가자 사령관 또한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순간 묘한 느낌이 들어 잠깐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그곳엔 피칠갑을 한 발키리가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그 광경을 본 사령관은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내 발키리에게 이끌려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


-



몇 분 지나지 않아 발키리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을 본 사령관은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함께 지나오면서 봐온 주변 시설은 모두 폐허를 방불케 했는데 유독 이곳 발할라의 구역만 시간을 비껴간 듯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널찍한 공간에 다른 이 없이 발키리 홀로 있다는 것은 이곳이 꿈속이라는 것을 방증했다.


사령관을 소파에 앉힌 발키리가 자연스럽게 옆에 따라 앉아 살포시 머리를 어깨에 기댔다.


고요한 침묵이 계속되자 주위를 둘러본 사령관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벽에 달린 달력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걸 본 발키리가 쓰게 웃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보름."


"..."



침묵을 깬 그녀의 첫마디, 그 한 단어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사령관은 알아챘다.


말없이 자신의 말을 경청해 주는 사령관을 한번 흘끗 본 발키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꿈에서 사령관님을 만나기 전까지, 제가 이곳에서 생활한 날짜를 대략 계산해서 그 정도예요. 더 오래됐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정처 없이 떠돌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탐색 도중에 자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피투성이의 발키리)를 만나 피 튀기며 싸운 이야기,


자신(사령관)이나 레오나로 변장해 꼬드기려던 자를 벌집으로 만들어버린 이야기 등


그녀의 입에서 보통 이들이 믿기 힘든 이야기라고 웃어넘겼을 것들이 흘러나왔지만, 사령관은 발키리가 말해준 일이 대부분 사실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보다 더한 난장판을 다른 이의 꿈속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키리의 얘기를 듣고 있는 도중 텔레파시처럼 지직거리는 소리가 그의 머리에 들려왔다.


평소처럼 닥터의 무전이라고 생각했으나 예상치도 못한 목소리의 주인공 때문에 사령관은 소리 없이 기함했다.



[폐하, 아르망입니다. 들리십니까?]


'아, 아르망? 어떻게.'


[놀란 마음 가라앉히시고 들어주세요. 일시적으로 연결이 된 상태라 언제 끊길지 알 수 없습니다.

 일단 지금 계신 발키리 양의 꿈속에서 나이트메어의 존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발키리 양으로 보이는 정신이 둘 있습니다. 그것ㅇ…]



쾅!


아르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폐허가 된 오르카와 시간의 흐름이 멈춘 이곳의 경계선인 출입문이 폭발하며 터져나갔고 그와 동시에 텔레파시가 끊겼다.


아무런 전조 없는 폭발에 발키리가 살짝 놀랐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사령관의 앞에 서서 연기가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는 입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아르망이 말하려는 뒷내용을 다 듣지 못했으나 앞부분만으로도 사령관은 그녀가 전하고자 한 게 무엇인지 알아챘다.



"나이스, 아르망."



비록 대답을 못 듣는 상태겠지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준 아르망에게 감사하며 사령관은 서서히 내려앉고 있는 먼지 너머에 선 익숙한 실루엣에 시선을 고정했다.


먼지가 걷힌 그 자리에는 바닥에 쓰러져있던 피투성이의 발키리가 언제 탄환에 꿰뚫린 듯 멀쩡한 상태로 오른손에 칼을 쥔 채 자신에게 겨눠진 총구를 마주하며 태연히 서 있었다


그리고 총 너머에 있는 사령관을 본 그녀는 소중한 걸 되찾은 아이처럼 해맑게 미소지으며 나릇나릇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알려 드렸었죠? 어디 계시던지 저는 사령관님을 찾아낼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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