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세요? 오르카호에는 의무실이 두군데가 있어요. 다프네가 운영하는 의무실하고 리제가 운영하는 의무실 두 곳이 있죠.

   

     

다친 바이오로이드들은 대부분 다프네의 의무실을 이용해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다프네는 모두에게 부드럽고 친절하잖아요. 다른 분들도 그런 다프네에게 치료받기를 항상 원하기 때문에 다프네의 의무실은 항상 붐비죠.

   

     

반면에 리제의 의무실로 가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평소 이미지 때문에 그런지 리제를 무서워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항상 바쁜 다프네와는 다르게 리제의 의무실은 늘 한산하죠.

   

   

하지만 그런 리제의 의무실을 꼬박꼬박 이용하시는 손님이 한분 계세요. 다프네는 그 손님 때문에 요즘 리제를 굉장히 부러워하더라고요.

   

   

   

<리제의 의무실>

   

   

“리제야. 나 병에 걸린거 같은데 치료해줄 수 있니?”

   

   

“앗, 주인님 오셨군요! 무슨 병에 걸리셨는데요?”

   

   

“너를 12시간넘게 못 봤더니 리제 너가 너무 그립고 보고싶어. 아무래도 상사병에 걸렸나봐. 이런 나는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까?”

   

   

“간단해요. 저의 향기로 주인님을 가득 물들이다보면, 주인님의 상사병이 치료가 되실거에요. 자, 어서 제 품에 안기세요...”

   

   

   

   

(문 벌컥) “리제언니. 아직도 일 안 끝나셨나요? 레아언니가 기다리세요.”

   

   

“하아... 하아... 주인님 어떠세요? 치료가 되시나요?”

“그럼. 완벽하게 치료되고있어. 10분만 더하자.”

   

   

(조용히 문을 닫는다) “아아... 오늘도 주인님 때문에 늦는거였군요. 곧 알아서 돌아오실테니 저는 그냥 가봐야겠어요.”

   

   

   

<페어리 숙소>

   

   

“레아언니... 리제언니는 오늘도 주인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느라고 늦는거였어요.”

   

   

“그랬군요. 그런데 다프네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레아언니. 왜 주인님은 제 의무실대신 항상 리제언니의 의무실만 이용하시는걸까요? 제 치료실력이 부족해서 그런걸까요? 아니면 주인님이 저를 싫어하셔서 그런걸까요?”

   

   

“다프네의 의무실은 항상 바쁘잖아요. 아마 주인님은 그런 다프네를 배려해서 덜 바쁘게 하려고 리제의 의무실을 이용하는거라고 생각해요.”

   

   

“아니요.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님이 저를 싫어하셔서 리제언니한테만 가는거같아요. 저는 리제언니에 비해 아무런 매력이 없는 평범한 여자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다프네에게도 얼마나 많은 매력이 있는데요? 표현은 하지 않았어도 주인님은 분명 다프네를 사랑하고 있을테니까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마세요.”

   

   

“레아언니. 그런 말을 해도 위로가 안돼요...”

   

   

(문 벌컥) “히히히, 오늘도 주인님에게 선물을 잔뜩 받았어...”

   

   

“리제 오셨나요? 손에 든건 뭐에요?”

   

   

“주인님한테 방금 받은 선물. 이건 절대로 아무한테도 안줄거야. 히히히, 일단 주인님이 주신 편지부터 읽어볼까?” 

   

   

(자신의 침대에 누운 뒤 편지를 읽는다) “꺄아, 이런 달콤한 말을 나에게 해주시다니... 역시 주인님은 최고야.”

   

   

“부럽다... 나도 리제언니처럼 주인님에게 사랑받고 싶은데...”

   

   

‘가만히 놔두면 다프네의 우울이 점점 더 심해질거 같아... 내가 다프네를 위해 해줄 수 있는게 없을까?’

   

   

   

   

   

<다음날 아침. 생각에 잠긴 채 오르카호 복도를 걷는 레아>

   

   

   

‘흐음, 적어도 다프네가 주인님과 얘기를 나눠볼 기회라도 있으면 괜찮을거 같은데. 하지만 주인님은 항상 리제한테만 치료받으러 가셔서 다프네를 만날 틈이 거의 없잖아... 둘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아야야... 뛰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버렸네. 얼른 다프네님한테 치료받으러 가야겠다.”

   

   

“...!”

   

   

“잠깐만요 테티스님! 멀리 있는 다프네의 의무실보다는 그냥 리제의 의무실을 이용해보는건 어떠세요? 바로 앞에 있잖아요.”

   

   

“네? 거긴 좀 무섭... 으아, 끌고가지 마세요! 무릎이 아파서 빨리걷기 힘들단 말이에요.”

   

   

   

   

<리제의 의무실>

   

   

“뭐야, 웬일로 환자가 왔네. 여긴 무슨 일이야?”

   

   

“테티스양이 무릎이 까졌대요. 리제가 치료해줄 수 있나요?”

   

   

“아, 아니 전 괜찮아요! 이정도는...”

   

   

“무릎이 제대로 까졌군. 내가 제대로 치료해줄테니 가만히 있어봐.”

   

   

“으아아아 쓰라려! 리제님 지금 뭐하는거에요?”

   

   

“소독약 바르는 중이니까 아픈게 당연하지. 무릎 망가뜨리고 싶으면 치료 받지 말고 나가던가.”

   

   

“알겠어요. 그냥 얌전히 치료 받을게요...”

   

   

“후훗. 그럼 저는 나가볼테니까 테티스님은 얌전히 치료받으세요~”

   

   

“앗, 가지마요! 여기 혼자 남겨지는건 여전히 무서운데...”

   

   

   

“콜록콜록! 기침이 계속 나오잖아. 어제 다 벗고 잤더니 감기라도 걸린건가? 다프네한테 한번 진단 받으러 가봐야지.”

   

   

“펜리르님! 다프네한테 가지말고 리제한테 진단 받아보는건 어떠세요? 리제는 감기치료 전문이라고요.”

   

   

“정말? 그럼 리제한테 한번 가볼게.”

   

   

   

“머리 아파... 다프네님한테 게보린 받으러 가봐야겠다.”

   

   

“레이시님. 게보린 받을거면 그냥 리제한테 받으세요. 지금 다프네의 의무실은 환자가 많아서 줄을 꽤나 기다려야할거에요. 하지만 리제한테 가면 금방 약을 받으실 수 있을거에요.”

   

   

“그래요. 그럼 리제님한테 가봐야겠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아, 마스카라로 눈을 찔렀더니 진짜 아프네. 별 이상 없는건지 다프네님한테 물어보러 가야겠다.”

   

   

“린트블룸님. 다프네 말고 리제한테 가보는건 어때요?”

   

   

“네? 리제님의 의무실은 아무도 안가잖아요. 아무도 없는데 거기로 가는건 좀 그런데...”

   

   

“리제의 의무실에 아무도 없긴요. 안을 보세요. 리제의 의무실 안에 무려 3명이나 계시잖아요.”

   

   

“그러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거지? 그럼 나도 오늘은 여기 가야겠다.”

   

   

   

“테티스양. 무릎은 이제 괜찮아요? 근데 웬일로 리제님의 의무실에서 치료받는거에요?”

   

   

“어쩌다보니 여기서 치료받게 됐어요. 근데 리제님한테 치료받는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고요. 부함장님도 아침에 배아프다고 하지 않았어요? 리제님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그래요. 여기 온김에 리제님한테 진단좀 받고 가야겠어요.”

   

   

   

“리제야. 나 밥을 급하게 먹어서 그런가 체한거같은데.... 뭐야, 오늘따라 리제의 의무실에 환자가 유독 많네. 무슨 일 있나?”

   

   

“주인님 안녕하세요! 치료받으러 오신건가요? 보다시피 리제는 바빠서 당장 치료받기는 힘들거같아요. 다프네의 의무실은 한산한거 같던데 거기 가보시는건 어떠세요?”

   

   

“그래? 그럼 다프네의 의무실에 가봐야겠다.”

   

   

“주인님 잠깐만요!”

   

   

“왜?”

   

   

“다프네를 만나셨을 때 리제의 의무실이 붐벼서 여기로 왔다고 말하지 마시고, 너가 보고싶어서 여기로 왔다고 말해주세요. 그런 작은 한마디가 다프네에겐 큰 힘이 될거에요.”

   

   

“알겠어. 얼른 다프네한테 가봐야겠다.”

   

   

“작전성공! 이제 다프네한테 얼른 문자를 보내야겠다.”

   

   

   

<다프네의 치료실>

   

  

“오늘따라 유독 환자가 적네. 아픈 분들이 적은건 다행이긴 한데 너무 심심하다...”

   

우우웅!

   

   

“뭐야, 문자가 왔잖아. 누가 보낸거지?”

   

   

[다프네. 지금 주인님이 다프네를 만나러 의무실로 가고 계세요. 이번 기회에 주인님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주인님은 다프네를 사랑하시냐고요! 그 질문을 하면, 주인님은 분명 다프네를 사랑한고 대답해주실거에요.]

   

   

“엥? 주인님이 나한테 오신다고? 그리고 주인님한테 나를 사랑하냐고 물어보라니...”

   

   

(문 벌컥) “다프네. 나 체한거같은데 처방좀 해줄래?”

   

   

“앗, 주인님이 진짜 오셨네! 리제언니한테 안가시고 웬일로 저한테 오신거에요?”

   

   

“그냥 너 보고싶어서 왔어. 혹시 내가 불편한건 아니지?”

   

   

내가 보고싶었다니... 주인님이 불편할 리가 없잖아요. 일단 의자에 앉아보세요. 체한 것 때문에 여기 오셨다고 하셨죠?”

   

   

“어. 추석기념으로 나온 동태전이 너무 맛있어서 몇접시씩 갖다먹었더니, 지금 너무 더부룩해.”

   

   

“그럼 소화제 드릴게요. 이거 드신다음에 가볍게 산책한번 하시면, 체한게 어느정도 사라질거에요.”

   

   

“혹시 손은 안따줘?”

   

   

“손이요? 손따는건 의학적으로 검증된 치료법은 아닌데... 그래도 주인님이 원하시면 따드릴게요. 손 내밀어보세요.”

   

   

“여기.”

   

   

(사령관의 손을 잡은 뒤 가만히 보고만 있다)

   

   

“왜 아무것도 안하고 내 손만 보고있어?”

   

   

“주인님의 손을 가까이서 보는건 처음인거 같아서요. 이제보니 저보다 손이 굉장히 크시네요.” 

   

   

“그래? 어디 손좀 한번 대보자. 우와, 내 손이 확실히 크긴 하네. 아니면 다프네의 손이 작은건가?”

   

   

(슬며시 사령관의 손에 깍지를 낀다) “주인님... 저 궁금한게 있어요.”

   

   

“뭐가 궁금한데?”

   

   

“주인님은 혹시 제가 싫으신건 아니죠?”

   

   

“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내가 다프네를 싫어할리가 없잖아.”

   

   

“그치만 평소에는 여기 대신 늘 리제언니의 의무실을 이용하셨잖아요. 그리고 리제언니한텐 많은 선물을 해주는데 저한텐 한번도 안주시고, 산책도 리제언니랑 많이 가시고, 자주 안아주시고...”

   

   

“앗, 죄송해요! 제가 너무 말을 많이했죠? 얼른 손 따드릴게요.”

   

   

“다프네. 내가 리제보다 너한테 관심을 덜 줘서 서운했나보구나?”

   

   

“서운한건 아니라... 그냥 조금 부럽고 질투가 났거든요. 주인님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리제언니가요. 주인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리제언니를 보면서, 아무런 매력이 없는 저는 주인님께 전혀 사랑받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미안해.”

   

   

“네? 뭐가요?”

   

   

“너가 사랑받지 않는다고 느끼게 만들어서. 내가 리제만 너무 사랑하느라고 바로 옆에 있던 너를 섭섭하게 만들었던거같아. 난 어떤 바이오로이드도 싫어하지 않아. 보잘것없는 나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바이오로이드 한명한명이 고맙고, 그런 너희를 모두 사랑하고 있어. 물론 다프네 너도 사랑하고 있단다. 눈에 띄는 애정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너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제가 정말로 사랑받고 있다니... 그리고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저는 이렇게 주인님의 손 한번 잡아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니까요.”

   

   

“정말 이것만으로 만족하는거 맞아?”

   

   

“...아니요.”

   

   

“그럼 뭐를 더 원하니?”

   

   

“저를 안아주세요. 그리고 주인님의 향기로 저를 가득 물들여주세요.”

   

   

“알겠어. 그리고 이번기회에 확실히 보여줄게. 내가 너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는걸 말이야.”

   

   

   

   

<의무실 바깥>

   

   

“후훗. 다프네가 주인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군요. 남들한테 방해받지 않도록 만들어줄테니, 부디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의무실 입구의 팻말을 ‘부재중’ 으로 바꿨다)

   

   

“뭐야, 의무실에 다프네 없어? 나 연고 발라야하는데...”

   

   

“리제의 의무실에 가보세요. 거기도 연고가 있을거에요. 제가 데려다줄까요?”

   

   

“데려다주면 고맙지. 근데 의무실에 아무도 없는거 맞아? 안쪽에서 소리가 들리는거 같아.”

   

   

“잘못 들은거겠죠. 얼른 리제의 의무실로 가보자고요.”

   

   

   

   

<그날밤 페어리 숙소>

   

   

“하아...”

   

   

“다프네. 기분이 좋아보이네요. 무슨 좋은일이라도 있었나요?”

   

   

“네... 이젠 리제언니가 부럽지 않아졌거든요. 레아언니의 말대로 저는 주인님에게 사랑받고 있었어요. 그것만 생각하면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이 기뻐요.”

   

   

“으아아... 오늘따라 환자가 왜 이렇게 많았던거야? 피곤해 죽겠네.”

   

   

“리제언니 오늘따라 굉장히 피곤해보이시네요. 오늘 일이 바쁘셨나요?”

   

   

“어. 오늘따라 환자들이 왜 이렇게 붐볐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래도 간만에 열심히 일했더니 뿌듯하네. 오늘은 피곤했으니까 바로 잘거야.”

   

   

“좋아요. 그럼 시간도 늦었으니까 바로 소등할게요. 다른분들도 괜찮죠?”

   

   

“잠깐 다프네!”

   

   

“왜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너한테서 주인님의 냄새가 나... 너 오늘 혹시 주인님을 만났어?”

   

   

“아, 그게...”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불을 껐다)

   

   

“불이 꺼졌네. 그냥 나중에 물어봐야지. 쿠울...”

   

   

“하아... 아직도 벅차서 잠이 안와. 주인님...”

   

   

‘후~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을 열심히 했더니 엄청 피곤하네. 나도 얼른 자야겠다.’

   

   

“저... 레아언니?”

   

   

“왜요?”

   

   

“저도 주인님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혹시 도와주실래요?”

   

   

“물론이죠. 드리아드도 주인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