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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어보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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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하나 없는, 창문 틈새 사이로 달빛 하나 별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안에서 샬럿은 상복같은 검은색 수녀복을 입고 무릎을 꿇은 상태로 아무런 미동 없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종종 새어나오는 탁해진 사파이어같은 눈은 작은 항아리와 피가 묻은, 해적 깃발의 권총처럼 겹쳐진 두 정을 바라보다 다시 지그시 감겼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왼쪽 무릎에 놓인 검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꽉 쥐어보기도하고 풀리기도 하고 매만져지기도 하고. 샬럿의 머릿속과 가슴에서는 복잡한 무언가가 뒤섞여 꿈틀거렸다.


그러다가 문이 열렸다. 어둠을 조금씩 갉아먹는,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빛이 점점 커져나갈 때에 다시 그림자 하나가 빛을 잘라먹었다. 하지만 샬럿은 하등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뒤돌아보지도 않았고 입 밖으로 아무런 말 한 마디 내 뱉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입을 연 것은 복도의 조명을 등지고 있는 여자였다.


“샬럿 님.”


그것은 분명한 탈론페더의 목소리였다. 샬럿은 무언가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눌러내었다. 분명 지금 분노를 표출해 내는 것은 기사로써 그리고 총사로써 내뱉어서는 안되는, 일종의 화풀이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원망은 어쩔 수 없었기에 그녀로써는 최대한 화를 죽여 가장 부드럽게 대답했다.


“루가루 공이 죽었어요.”


루가루. 탈론페더는 그것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알고 있었다. 무법자와 기사라는 아이러니한 조합임에도 서로를 의지했던 그녀의 친구이자 동반자. 입이 험하더라도 로망을 찾아 떠난 자신의 동료이자 앵거 오브 호드의 전우. 워울프라는 것을.


탈론페더는 작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참았다. 이 몇 마디를 쏟아낼 수는 없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말들이었기에. 게다가 탈론페더는 목적이 있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한 일이었기에 더더욱 샬럿을 끌어들여야 했다. 무언가를 잃어야 했다면 그만한 이유를 들어 설득하는 것이 명확한 일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리고 슬픈 일이죠.”


“우리 모두에게요.”


“네. 우리 모두에게.”


그림자가 짙게 깔린 방 안에 붉은 롱 부츠의 발자국 소리가 따각하고 한 번 울렸다. 그 순간 살럿은 검집을 바로 쥐었다. 꽉 쥔 손이 부들거렸다. 그녀는 사령관처럼 감정을 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여자였다. 고개가 조금 돌려짐과 동시에 슬픔에 갉아 먹혀 탁해진 눈동자가 조금 뜨였다.


“돌아가세요. 더 이상 할 말은 없어요.”


“이 일에 언더 보스가 연관되어 있다면요?”


순식간에 은빛의 검과 샬럿의 몸이 난폭하게 어둠을 가르며 울렁거렸다. 간신히 남아있는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날이 탈론페더의 목에 겨누어졌을 때, 그녀는 평생 보지 못할 것 같았던 감정에 잡아먹혀 격정적인 샬럿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탁한 사파이어가 꿈틀거렸다. 분노가 채워진 저 두 눈.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우악스러움에 탈론페더는 마른 침을 연신 삼켜대었다.


“...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으셨잖아요. 둘 사이에 어떤 커넥션이 있었는지.”


샬럿은 그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그저 노려보기만 했다.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멍청한 것도 아니었거니와 눈치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아르망에게 어렴풋이 피 냄새가 나는 것도, 워울프가 종종 약속을 파토내며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는다거나. 그럼에도 샬럿은 다른 이들에게 추궁하지 않았다. 그들도 사정이 있을테니까. 친우가 그냥 넘어가기를 바랬으니까.


다 지난 일이었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더더욱 감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돌을 던지면 더 크게 퍼지는 것 처럼, 적어도 적의 손에 죽었다면 이정도로 화가 끓어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대상이 패밀리라면 다른 이야기였다. 제 복수를 위해 ‘가족’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것이 ‘보스’가 정한 룰이었기에.


“탈론페더 양. 저에게 무슨 대답을 바라시는거죠? 가족으로써 침묵하기를 바라시나요? 아니면 기사로써 명예롭게 언더 보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기를 바라는건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제가 진실을 알려드릴게요.”


검끝에 미동이 있었다. 붉으스름한 핏방울 하나가 검날에 닿아 천천히 흘렀다. 날카로운 끝부터 천천히, 끈적하게. 양날검의 한 쪽만을 지독하게 타고 꿈지럭거리던 방울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하고 떨어졌다. 그것이 바닥에 닿는 순간, 샬럿이 말했다.


“진실? 그것을 알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저는 친우를 잃었고, 당신은 전우를 잃었죠. 간신히 묻어둔 것을 파헤치지 말아주세요. 때로는 그것이 더 편할테니까요.”


“누군가와 같은 말을 하시네요. 샬럿 님. 그래서 어느 쪽이요? 당신과 저? 아니면 언더 보스?”


샬럿은 탈론페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림자 안에서도 버젓히 보이는, 자신과 같은 죽어버린, 탁해진 청금석같은 눈. 그제서야 그녀는 숨을 가볍게 쉬었다 내 뱉었다. 검끝이 천천히 목에서 떨어져 나가며 허공에서 한 번 휘둘러졌다. 약한 파동을 일으키며 흩뿌려지는 핏방울들이 불규칙하게 바닥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검이 검집에 집어넣어지지는 않았다. 이야기의 끝이 나지 않았기에. 움찔거리며 새어나오는 붉은 피가 천천히 피부 위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탈론페더는 그것을 닦아내는 대신 목을 한 번 매만졌다. 축축하게 끈적거리는, 손가락들의 두 마디에 전부 달라 붙은 새빨간 피. 그리고 아픔. 따끔거리는 가려움과 통증이 목을 긁어대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저 가만히 손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샬럿 님이 필요해요.”


“... 왜 하필 저인가요.”


“명분을 말씀 하시는건가요, 아니면 이유를 말씀 하시는건가요.”


“둘 다요.”


“우선, 명분은 워울프. 그 멍청이의 죽음이죠. 임무 중 사망. 보고서에 단 한 줄로 정의된 죽음이었죠.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를 당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임무 중 죽은 것인지. 이야기는 듣고 싶어서요. 그리고 이유는... 화풀이에요. 화풀이. 단순하죠? 그냥, 조금 화가 났어요. 전우를 잃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감정 제어가 잘 안되더라고요. 물론 이러면 안되는 건 잘 알아요. 보스가 항상 하는 말 있잖아요. 가족끼리는 의심하지 말라고. 그런데, 자매끼리도 한 두번 쯤은 싸워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서, 같이 싸워줄 사람이 필요한거네요.”


“네. 제가 좀 약해서 혼자는 좀 무리더라고요. 게다가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라 제어해줄 사람도 필요해요. 아무리 야한 사진 찍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지만, 저도 화 낼줄 알아요.”


샬럿은 그제서야 검집에 검을 집어 넣었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유난히도 크게 들린 소음 뒤에는 적막이 있었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침묵이었다. 그 대신, 샬럿은 뒤에 있는 서랍을 조심스레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탈론페더는 순간적으로 보인, 수 놓아진 문양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희미하게 비추는 빛으로 보이는, W.W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손수건이었다.


그것은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탈론페더의 목에 달라 붙었다. 샬럿의 세심한 손길이 있었다. 천천히 쓰다 듬어지는 천 조각은 검붉은 피를 조금씩 빨아들이며 제 몸을 붉게 물들였다.


“미안해요. 총사 답지 못한 행동이었어요.”


“이해해요.”


“고마워요. 이해해줘서.”


천천히 떼어지는 손수건 아래엔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다. 대신 탈론페더는 손에 묻은, 거의 굳어 끈적한 피를 한 번 햝았다. 쓰고 비리고 철분의 맛이 나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 말았다. 익숙하지 않은 맛이었다.


“탈론페더 양. 그러면 저는 무엇을 하면 되는건가요?”


“간단해요. 그냥 제 옆에 있어주시면 돼요. 사실, 이미 어느 정도 머릿속에 구상은 해 놨거든요. 가장 먼저 시작할 곳은...”


탈론 페더는 허리춤에서 패널 하나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새하얀 화면에 빼곡히 적힌 단어들과 사진들의 연속. 그녀는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슥슥 넘기다 멈췄다. 그러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워울프의 보고서를 대필해준적이 있어요. 그 때에는 귀찮아서 적당히 넘기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한 인원들이 왜, 하필 그곳으로 발령 났는지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그곳이라면?”


멈춰있는 패널의 사진에는 샬럿도 알고 있는, 어쩌면 가장 이질적인 곳이 찍혀 있었다. 소문만이 무성한 그곳. 탈론 페더는 패널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요안나 아일랜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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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2부작하려고 했는데 분량 조절이 안될 것 같아서 3부작으로 가려고 함


추리물도 아니고 사이다도 아니게 될 것 같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