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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어보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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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 팬텀 - 느와르 레이스 /느와르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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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 감마 / 느와르 장화 - 과거 / 느와르 엔젤


느와르 더치걸 / 느와르 리앤 / 느와르 천아


느와르 탈론페더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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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하게 빛나는 촛불과 향들 아래, 아르망은 평소에 입던 붉은 수단과 비레타가 아닌 ‘의식’에 임할 때 입는 검은색 수단과 면사포를 쓰고 있었다. 손에 끼고 있던 검은색 비단 장갑의 촉감이 사륵하고 움직일 때, 밖에서 격정적인 구둣굽이 따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분명 그녀일 것이었다. 샬럿. 오르카호의 총사 대장. 명예를 자랑스레 여기는 기사 중의 기사. 정도(正度)의 극치.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흑과 백. 물들어버린 흑색의 추기경과 백기사. 무감각해진 일과 분노. 대척점이 분명한, 이어지지 못할 평행이었다. 그렇기에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너무나도 명확했으니까.


정확히 문 앞에서 또각거림이 멈췄다. 노크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복도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몸이 찢겨나가듯 떨어져 나가는 나무의 파편들이 어지러이 뛰놀았다. 하지만 아르망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손을 곱게 모아 자신의 앞에 있는 상복을 입은 수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총사대장. 용무가 있을 때에는 노크를. 상식입니다.”


아르망은 그렇게 말했다. 물론, 당장에라도 칼을 뽑아 목에 겨눌 것 같은 기사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샬럿은 간신히 남아있는 이성을 붙잡고 본성을 억눌렀다. 움찔거리는 검집이 찰그락거렸다. 당장에라도 베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서로 해야할 일이 명확하다면, 그것을 위해 움직여야 했다.


“추기경. 저에게 해명할 것이 있지 않나요?”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선, 질문을 잘 해야하죠.”


“말 장난하려고 온거 아니에요. 제가 지금 참고 있는게 보이실텐데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검증은 필요 없습니다. 더 아플 뿐일테니까요.”


“그건 제가 판단해요. 당신이 판단하는게 아니라.”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둘 사이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졌다. 또각거림과 이글거리는 침묵. 그리고 눈빛. 둘은 서로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차가운 분노들이 움찔거렸다. 좁아지는 거리만큼 공기가 묵직하게 눌러 앉았다. 아르망과 샬럿의 거리가 채 4보도 되지 않을때 쯔음, 가죽 군화의 소리가 천천히 멎어갔다. 그 대신, 샬럿의 목소리가 울렸다.


“좋아요. 확실하게 말하죠. 루가루 공. 저의 친우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야겠어요.”


그 질문을 들은 상처투성이 추기경은 한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런 질문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게 참아왔고 대비해왔었다. 공리주의자라고 스스로 몰아부치며 온 몸과 마음에 크고 작은 생채기들을 간신히 아물게 했는데. 그랬는데. 그녀는 처음으로 보스를 닮음을 한탄했다. 이렇게 찢겨져나갈 파편들이라면, 나도 처음부터 기워내지를 말것을. 끊지 못하면 도려내기라도 할 것을.


아르망은 가벼운 한 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어찌되었든 샬럿의 앞이었다.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녀는 언더 보스라는 중책의 여자였다.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아야 했고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그래야만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을테니까. 그녀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다. 다시 천천히 눈이 뜨였다. 냉정함을 연기하는 아르망은 나지막히 말했다.


“워울프는 임무를 수행하다 죽었습니다. 당신은 하지 못할, 배신자와 스파이들을 처단하는 일이었죠.”


샬럿은 순간적으로 검을 뽑아 가녀린 추기경의 목에 들이밀었다. 파들거리는 검끝과 앙 다문 입술. 짓이겨져 나오는 여린 피부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 분홍빛 볼을 타고 흐르는 후회와 원망. 피내음이 은은하게 풍겼다. 하지만 그녀들은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분노에 사로잡힌 샬럿과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은 아르망의 얼굴. 여전한 둘 사이였다.


“왜죠? 왜 하필? 왜!”


샬럿은 그렇게 물었다. 모든 원망을 쏟아내면서. 그때 붙잡을 것을. 눈치 챘을 때 추궁 할 것을. 이미 늦어버린, 간신히 억눌러둔 후회를 내뱉으면서.


“그녀가 바랬으니까요.”


아르망은 그렇게 답했다. 한 점의 가감도 없었다. 처음 만날 때 부터, 마지막 숨을 내 뱉을 때 까지. 워울프는 언제나 그녀와 함께 했다. 굳은 일은 먼저 손을 벌려 처리했고, 위험한 일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그런 여자였다.


“네. 그녀가 바랬습니다.”


아르망은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그 두 눈에는 분명 거짓은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질테니까. 부드러운 피부에 닿은 칼날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녀도 받아들이기까지 수십번은 속으로 울었다. 맞은편의 기사 또한 그랬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로의 비극이었다.


“... 당신만 힘들다고 여기지 마세요.”


본심이었다. 간신히 참아왔다고 여겼던 감정이 조금 새어나와 흘렀다. 면사포에 가려진 한 줄기의 액체가 볼을 타고 흘렀다. 피와는 색만 다른, 성분적으로는 완전히 같은 마음이. 그녀는 우악스럽게 내뱉고 싶었다. 나도 힘들다고. 당장에라도 그 망할 년들을 찢어죽이고 싶다고. 한 번의 복수로는 부족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러면 안되는 일이었다. 보스의 말마따나, 복수에 사로잡히면 안되었다. 그 같은 사람은 하나면 족했다. 그렇기에 아르망은 이를 악물고 샬럿을 쏘아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에라도 제 목을 베어도 좋습니다. 당신은 그럴 권리가 있어요.”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적어도 죽는다면 샬럿에게 죽고 싶었다. 치욕스러움보다 후련해질테니까. 호흡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각오의 고요함 사이에서 피어날 붉은 잎이 허공을 가를 것이었다. 그래야했다.


하지만 샬럿은 그렇지 않았다. 대신 한 마디를 내 뱉었다.


“아니요. 저는 당신을 죽이지 않아요.”


의외의 말이었다. 아르망의 계산대로라면 샬럿이 자신의 목을 벨 가능성은 베지 않을 가능성보다 현저히 높았다. 그럼에도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검을 허공에 한 번 흩뿌리며 검집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제 검은 복수와 정의를 위해 있는 것이지, 가족을 베기 위한 검이 아니에요.”


“...역시 당신은 검이군요.”


“착각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당신을 용서한 것은 아니니까. 대신, 한 가지 더. 루가루 공을 죽인 이들은 어떻게 되었죠?”


“그녀들은 워울프의 손에 죽었습니다. 델타의 하수인들이었죠.”


“낭만을 쫒던 그녀다운 죽음이네요.”


아르망은 샬럿의 대답에 침묵했다. 암묵적 동의였다. 낭만. 그녀의 입으로 내뱉은 적 없는, 이미 식어버린 단어 하나. 그 낭만 하나로 지금까지 자신을 따라왔고 숨을 잃었다. 케이스에 남은 담배 하나가 그것이었다. 아르망에게는 차마 붙혀 날려 보내지 못한 미련.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루가루 공은 술에 취하면 자신을 종종 총알에, 당신을 총에 비유하곤 했어요. 이제서야 그 말이 이해가 되네요.”


리볼버의 실린더에 집어넣어 공이를 당기고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의지가 있든 없든, 날아가야만 하는 것은 총탄이었다. 모든 것은 방아쇠를 당기는 이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날아간 총탄은 반드시 망가진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워울프는 총알을 자처했다.


희생시켜 만든 치명상에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아르망은 의미가 있다고 말할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공리주의자였으니까. 반대로 샬럿은 그렇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뻗고 친우의 죽음에 분노하는 검이었다. 검은 의지 그 자체였다. 휘둘러지고 멈출 수 있다. 그것부터 둘의 차이였다. 방아쇠를 당겨야만 하는 총과 의지가 담긴 검의 평행선이었다.


그것이 샬럿의 마지막 답이었다. 이제 그녀의 검의 끝은 델타를 향할 것이었고 아르망은 간신히 기워낸 감정의 조각들을 짜맞출 수 있을 것이었다. 검의 손잡이가 반대로 돌아섰다. 너덜너덜해져 부서져 버린 문으로 샬럿의 시선이 움직였다.


“총사대장.”


아르망은 품 안에 간직하고 있던 금빛으로 빛나는 담배 케이스를 손에 쥐어 뻗으며 말했다.


“워울프의 유품입니다. 가져가세요.”


멈칫하는 샬럿의 움직임에 아르망은 일어나려 몸을 움직였다. 이 유품은 그녀에게 더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이어질 말에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루가루 공을 기억해 줄 사람 한 명 정도는 더 있어도 되겠죠.”


아르망은 입에서 맴도는 말과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는 단어들을 조합해봐도 또각거림을 멈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사라져가는 샬럿을 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기억...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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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의 비중이 많지만 그냥 샬럿이라고 씀


다음 편으로 이번 에피소드 마무리 짓고 정리도 좀 하고


단편으로 끝내야 했는데 이렇게 끌어버렸네


그래도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