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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ㅡ


어쩌면 세상은 B급 영화이거나 그에 준하는 삼류 연극이지 않을까. 방주 안의 메이는 자신의 눈 앞에 양 옆으로 놓여진 수 많은 캡슐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 많은 인간들이 나체의 상태로 호흡기 하나 없이 들어있지는 않았을테니. 


그녀는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발을 간신히 움직였다. 작은 구둣소리가 방주의 아래에 나지막하게 깔렸다. 따각거리는 소리가 가장 가까이 있는 기포 하나 꿈틀거리지 않는 캡슐 하나에 닿으며 작아질 때에 메이는 여전히 당황스러움에 말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메이를 문 앞에 두고 돌아간 보좌관이 한 말에 따르면 이 곳은 철충들의 공격을 피할 높은 지위를 가진 인간들의 안식처 혹은 방공호여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캡슐에 채워진 연한 녹색 빛의 액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오리진 더스트 융해제...?”


군에서 사용했던, 작전에 실패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나름대로 ‘예

우’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폐기처분을 길게 놓은 위선의 액체였다. 즉, 바이오로이드의 안락사를 위한 액체였지만 지금은 오리진 더스트로 몸을 강화한 인간의 안락사를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메이는 고개를 저으며 눈 앞의 장면을 잊으려 애썼다. 하지만 버젓히 서 있는 캡슐의 인간을 잊지는 못했다. 신경부터 녹여 감각을 없앤 뒤 오리진 더스트의 구성을 역이용해 모든 세포를 녹이는, 피부라는 껍질 안에 같힌 슬라임이 될 인간들이 어째서 이렇게 나열되어 있는가. 가장 원론적인 질문의 답을 생각하려는 그 순간 그녀는 보좌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르신께서는 부인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불안감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그는 분명 이 모든 것을 노인이 계획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그리고 노인은 그녀가 아는 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이득이 된다면 자기 자신마저 던져버릴 인간. 메이는 캡슐의 인간들을 뒤로 한채 무작정 달렸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머리에서 휘청거리는 메이의 정모(正帽)가 들썩였다. 따각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못해 시끄럽게 바닥을 때렸다. 숨이 서서히 가빠져 헉헉 거렸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손과 발이 공기를 갈랐다. 그러다가 서로 어긋난 발에 걸린 메이의 몸의 잠깐동안 하늘을 날았다. 본능적으로 비튼 몸이 바닥에 굴렀다. 두 바퀴 반을 내리구른 반동에 관절들이 비명을 질렀다. 가슴이 위 아래로 세차게 뛰었다. 욱신거리는 무릎과 팔꿈치가 저릿했고 반동에 의해 이미 저 멀리 날아간 정모가 캡슐 앞에 놓여졌다.


그럼에도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방주의 천장을 바라보던 시야가 다시 바닥을 향했다. 두 팔은 몸을 일으켰고 통증을 호소하는 무릎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 굽어졌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비틀거리는 메이의 발걸음이 캡슐을 향해 나아갔다. 작은 손에 쥐어져 툭툭 털린 정모가 다시 그녀의 머리에 반듯이 씌워졌다. 그렇게 메이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노인과의 마지막을 위해서.


ㅡㅡㅡ


레퀴엠. 모차르트의 가장 아름다운 입당송(Introitus)이 방주의 끝에서 울려 퍼졌다.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노인은 그가 좋아하는 도입부에 맞춰 소파에 앉아 목을 뒤로 젖혔다. 턴테이블에서 흘러 나오는 성가대의 목소리가 한층 더 웅장하게 울리는 것을 들으며 반 쯤 차있는 와인잔을 기울였다.


방주는 하나의 오페라 극장이었다. 연극의 주인들이 설 무대를 제외하고 관객의 모두가 빼곡히 둘러싸 웅장함과 감동을 선사 받기 위한 공간. 비록 죽어가는 인간들의 박수는 기대할 수 없었지만 노인은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살고 싶다는 욕심 하나 때문에 자신을 이용한 이들에게 바치는 경멸과 혐오를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


간간히 점멸하는 은은한 녹색 빛이 노인의 뒤에서 그림자를 만들어 내었다. 어쩌면 그들 혹은 그녀들이 살고 싶다고 외치는 발버둥일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와인 잔을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느끼는 와인의 깊은 풍미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노인은 첫 번째 레퀴엠이 거의 끝나갈 때 쯔음 불협화음이 섞이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감기는 눈과 그렇지 못한 귀였다. 따각거림이 서서히 음을 올리듯 강하게 울렸다. 그는 지극히 당연하게도 그 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하나 밖에 없는 무대에 서게 될 여배우. 모든 것을 바쳐서 지켜야 했던 여자. 그리고 이제 홀로 남아야 할 슬픔인 메이라는 것을.


“늙은이.”


 이제 막 자비송(kyrie)로 넘어가고 있는 그 틈 사이로 너무나도 그리운 목소리가 울렸다. 메이. 나의 메이. 노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늦었구나.”


평소와는 정 반대의 자비로움이 듬뿍 묻어나는 말이었다. 하지만 메이는 화답도 하지 않은 채 그를 향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걸어갔다. 노인은 그런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평소 같이 손을 뻗지도 다시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그저 다리를 꼬아 그 위에 손을 올려 놓은 채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메이는 그와 다섯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발을 멈췄다. 원망에 찬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순간 그녀는 내심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저 캡슐에 들어가지 않음을 감사하게 여겼다. 메이는 그런 여자였다.


“왜 이런 일을 벌인거야?”


정모의 아래로 희끗하게 보이는 두 눈에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이윽고 한 방울의 눈물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흘러 내렸다. 볼을 타고 줄기를 만들어 낸 슬픔이 턱에 닿아 툭하고 떨어졌다. 노인은 그것을 보고서는 말했다.


“정치인은 사람의 목숨까지 저울질을 해야하는 법이다. 나는 이들의 죽음을 이득이라고 생각했고, 너는 사람이 아니니 제외했을 뿐. 의미를 가지거나...”


“거짓말.”


작은 두 손에 노인의 옷소매가 가득 잡혔다.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무심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터지다 못해 흐르는 눈물과 원망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당신은 세이렌에게 그런 말을 하지 못해. 왜냐면 그 아이는 여리니까. 한 마디 한 마디에 쉽게 상처 받는 꼬맹이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서스럼 없이 그런 말을 해. 왜...? 왜... 나는 상처 받아도 된다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내가 왜 모든걸 짊어져야 하는데? 강해보여서? 강한 척 하는건 당신이 더 잘 알잖아! 나도...! 나도...!”


상처받고 싶지 않은데. 멱살을 쥔 손이 조금 풀렸다. 숙여진 고개에서 우연찮게도 부속가의 분노의 날(Dies irae)이 턴테이블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노인은 메이의 볼에 손을 올려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누군가는 짊어져야 한다. 그것이 설령 원하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이제는 네가 그렇게 해야한다. 내가 만든 기회를 허망하게 날리지 마라. 그것이 너의 삶의 이유가 될 것이다.”


“싫어. 난 싫다고. 다 싫어. 그냥 늙은이 옆에 있을게. 죽어도 옆에서 죽을게. 그러니까 나 버리지마. 떠나지마. 가지마.”


죽지마. 메이는 그렇게 말하며 노인의 가슴에 얼굴을 파 묻었다. 마지막임을 알기에 애원하듯이 더욱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그는 볼의 눈물을 닦았던 손을 올려 메이의 머리에 올려 쓰다듬으며 말했다.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너희들이 철충들과 인간들에게 짓밟혀 죽어가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장 끔찍한 꿈이었지. 메이. 처음에 네가 물었던 질문의 대답을 하자면... 이렇게 해야 너희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이것 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죽는다. 이 말은 더 이상 너희들을 지켜줄 수 없게 된다는 것이지. 이제 곧 나는 죽음과도 같은, 아니. 잠과 같은 죽음에 몸을 맡겨야한다. 그렇게 내가 눈을 감고 나면... 너희들을 위협하는 존재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줄이기로했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멈췄다. 약함을 보이는 것은 정치인으로써 실격이었지만 그녀들의 보호자로써는 해야하는 일이었다. 납득과 결정. 이 두 가지를 양립시키기 위해서는 진심을 보여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메이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연신 도리질 했다. 이성으로써는 이해했지만 감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전역하고 사회에 찌든 탓이야. 메이는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편해질 마음을 껴안으며 말했다.


"늙은이. 그러면 난 이제 뭘 해야해?”


“현실주의자가 되어 상처 받은 가슴을 숨긴 채 살아가야겠지. 그것 뿐이다.”


메이는 그 말을 듣고서는 몇 번을 흐느끼더니 눈가의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그러고는 무언가 결심한 듯 일어나 노인의 두 볼에 손을 올렸다. 볼에 천천히 다가가는 입술이 조심스럽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제 임종을 맞이할 이에게 바치는 굿바이 키스였다.


“난 당신이 싫어. 현실주의자인 것도 싫고 나에게 냉정을 강요하는 것도 싫어. 모든 것을 짊어지게하고 도망치듯 떠나는 것도 원망스러워. 그래도... 그래도...”


남은 눈물이 소녀의 눈에 마저 흘렀다.


“당신 말대로 살아 볼꺼야. 살아서, 세이렌 그 꼬맹이도 깨우고 보란 듯이 잘 살꺼라고. 알아 들어? 그 다음엔 어떻게든 당신 같은 인간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해질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메이는 그렇게 말했다. 노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입에 희미한 미소가 감도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몸이 멀쩡하다면 당장에라도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움직이는 않는 몸과 서서히 감기는 눈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마지막이 될 숨이 천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눈이... 감기는군...”


턴테이블에는 부속가의 기억하소서(Recodare)가 울렸다. 노인은 그 노래로 마지막을 새기고 싶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서 그녀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를 바랬다. 그는 조심스럽게 메이를 부르며 말했다.


“조금... 옮겨 주겠나...”


메이의 손이 턴테이블의 축을 조금 움직였다. 약간의 공백과 함께 울리는 소리에 노인은 가벼운 한 숨을 내 뱉었다. 눈물의 날. 라크리모사(lacrimosa)가 그와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야속한 우연이었다.


“메이. 나의 메이...”


조금씩 식어가는 손에 작은 두 손이 잡혔다. 온기가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느낀 메이는 손을 볼에 가져다 대었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하는 현실부정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녀는 마지막 숨을 내쉬는 노인을 보며 눈물과 함께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잘 자. 좋은 꿈 꿔.”


ㅡㅡㅡ


드디어 소재 올릴 수 있다. 근데 그 반대로 수습 못하겠다 분량 조절 실패함.


다섯 편 안으로 끝내보려 했는데 쓰고 싶은게 많아서 안 되겠다.


1~2편 안으로 끝내야함 안 그러면 너무 루즈해 질 것 같음.


7월 오기 전에 끝낼 수 있을까 모르겠네.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