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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 왠일로 우리 부대가 훈련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한 걸까?"


"종말의 때에서 살아남은 키슬레프의 여인들이 싸우는 방식을 보고 싶을 뿐일세. 그거 이외에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아니. 그거면 됐어. 어쨌든 사령관이 나나 다른 자매들한테 관심을 보이는 건 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되니까."


한창 모의 훈련 중이던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를 지켜보던 레오나는 사령관이 자신의 옆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 보자 조금 놀란 듯한 반응을 보이다 이내 평소처럼 도도한 목소리로 답하고 함께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상한 투구와 갑옷을 걸치고 있지만 평소와 다른 엄중하고 진지한 사령관의 모습이 레오나에겐 썩 싫지만은 않았는지 훈련을 지켜보던 레오나가 먼저 사령관에게 말을 걸었다.


"감상은 어때?"


"자료에서 본 그대로군. 강력하진 않아도 화력 투사의 정밀함만큼은 제국의 일류 사냥꾼들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야. 그러고보니 자네의 기사단은 포병이 존재하지 않았지?"


"맞아. 우린 원래 추운 지방의 시가전이나 산지에서의 전투를 위해 만들어졌거든. 그런 곳에서 싸우는데 포격 따윈 방해만 될 뿐이야. 잘 단련된 손 끝이 검과 같은 날카로움을 갖듯, 우리에겐 최고의 명사수들이 있으니까. 굳이 포격에 의존하거나 할 필요가 없지."


"그런데 자료에 따르면 자네는 평소엔 같은 부대원들을 한 장소에 모아놓지 않는 거 같더군. 그대도 어딘가 저들과 거리를 두고 행동하는 거 같고. 아까 만난 스틸라인 기사단의 일원들과는 다른 거 같은데 그러는 이유라도 있나?"


사령관의 질문에 레오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우린 원래 멸망전쟁 당시 전멸한 부대야. 대도시가 파괴되고 자체적인 보급도 불가능해진데다가 미국 서부를 탈환하려던 계획까지 실패하면서 세력이 꺾인 끝에 전멸하고 말았지. 다행히도 라비아타가 보낸 마리 4호기 덕분에 나랑 내 자매들이 부활해서 지금도 우리 부대의 주특기인 시가전을 통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고."


"전멸이라..."


"...나만 믿고 따라온 자매들이 하나하나 고립된 환경 속에서 죽어가는 걸 볼 수 밖에 없었어. 심지어 그 누구도 날 원망하긴 커녕 발할라에서 기다리겠다는 말만 했지. 그런 걸 계속 보다보면 어떻게 될 거 같아? 마음이 무뎌지는 거야. 눈물도 마르고, 마음도 아프지 않고, 그냥 될지 안될지 확신조차 없는 목표만 보며 전진하게 돼. 난 결국 그것조차 실패한 채 전멸해버렸지만. 그러니... 괜히 스틸라인처럼 한 장소에 여러 부대원을 모아두고 싶지 않은 거 뿐이야. 겨우 얻은 두번째 기회에 그런 사소한 실수를 했다가 또 전멸의 위기를 겪고 싶진 않거든."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네."


"어머, 사령관이? 마치 나 같은 경험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당연하지. 나 또한 자네와 같은 비극을 겪었으니까."


사령관의 말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레오나가 바라보자 사령관은 잠시 투구를 벗고 그것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알트도르프가 너글의 악마들에게 둘러싸인 최악의 상황에서, 제국군은 필사적으로 싸웠지. 브레토니아의 위대한 국왕, 루앙 레옹쿠르가 이끄는 최후의 에란트리 워, 심지어 실바니아의 선제후가 된 블라드 폰 카르슈타인의 언데드 군단까지 모두 너글의 악마에 맞서 싸웠어. 하지만... 우린 끝내 알트도르프를 지키지 못했지. 제국 각지에서 모인 용병과 병사들, 카로부르크의 그레이트 소드 연대, 샬라의 신전에 있던 부상병들까지 모두 자신의 고향을 지키고자 무기를 들고 싸웠는데도...!"


"......"


"내 마지막 기억은 라익스마샬, 쿠르트 헬보르크가 내 앞에 쓰러져 죽고 나도 한쪽 팔이 잘려 죽어가던 것이었어. 그때 천주 지그마의 이름을 부르짖은 순간 정신을 잃고 이곳에서 눈을 떴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그 싸움을 끝으로 제국은 멸망했다는 것. 후후...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명색이 황제라는 작자가 땅도, 백성도, 군대도 모두 잃고 홀로 살아서 여기 서있다니."


"...그래도 사령관에겐 기회가 남아있잖아?"


"기회라고?"


"난 지금도 사령관이 말하는 알트도르프라던가 하는 곳이 어딘지 몰라. 딱히 관심도 없고. 하지만... 사령관은 아직 살아서 여기 있어. 그것도 사령관 한 명만을 바라보는 수많은 자매들과 사령관의 명령을 따르는 AGS들이 있는 곳이지. 그러면 적어도 꼴사납게 주저 앉을 이유는 없지 않겠어? 우린 모든 작전이 가능해. 그리고 사령관이 내리는 지시가 어떤 결과를 바라든 간에, 원하는 대로 될 거고. 난 사령관이 특별한 사람이길 바라니까 계속 정진해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해. 그건 할 수 있지?"


알트도르프 공방전 패배를 떠올리며 자조하던 사령관에게 격려하는 레오나의 말을 들은 사령관은 그녀의 말에 한치 틀린 게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은 패배한 군주였지만, 지금 자신에겐 두번째 기회가, 이겨야 할 싸움과 구해야 할 세계가 있었고 그런만큼 과거의 패배에 사로잡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을 다시 마음에 새긴 사령관은 투구를 쓰고 레오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대의 혜안에 감사를. 키슬레프의 여인이여. 북방의 암사자라 불리는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구려."


"...또 이상한 소릴 하네. 하지만... 싫진 않아. 음..."


"사령관 각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사령관의 말에 얼굴을 붉힌 레오나가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리던 사이 훈련을 마친 발키리가 자세를 취하며 물었고 사령관은 그녀에 대한 자료를 떠올리며 답했다.


"잠시 그대들의 훈련을 보고 싶어서 왔다네. 아주 놀라운 저격 실력이더군."


"과찬이십니다. 대장의 지휘와 자매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니까요."


"아니, 설령 그런 조건들이 있었다 해도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자들이 수두룩하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자네의 사격은 과찬이라 할만한 게 아니야. 그것은... 음?"


"가, 각하...?"


"호오... 아름다운 오른쪽 눈이군. 어떤 마법으로 인해 된 건가?"


"그, 그렇게 보지 말아주십시오... 사령관 각하의 모습이 너무..."


발키리의 오른쪽 눈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사령관의 모습에 레오나가 살짝 질투가 났는지 헛기침을 하고 얼굴을 붉히던 발키리도 흠칫 놀란 채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 그럼 저는 잠시 가야할 곳이 있어서..."


"음? 알았네.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게."


"사령관~ 알비스 보러 왔어? 그럼 이거 줄게!"


"알비스! 또 사령관한테 초코바 떠넘기지 말랬지!"


"히잉~ 베라 언니이~!"


발키리가 급히 자리를 물러나자 그녀의 뒤에서 알비스가 초코바를 사령관에게 건넸고 그 뒤에 있던 베라가 급히 그녀를 제지하고 볼을 잡아당기자 팔을 버둥거렸고 그걸 본 레오나가 작게 웃자 사령관도 웃으며 알비스가 내민 초코바를 품에 넣고 말했다.


"보기 좋군. 마치 한 가정의 자매들을 보는 기분이야."


"우린 서로에게 자매나 다름 없으니까. 그 부분은 나름 괜찮다고 생각해."


"가족끼리 선한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만큼 지그마께서 기뻐하는 것도 없으시지. 그대의 기사단은 분명 지그마의 연회에 참석할 자격이 있을 것이야... 음? 레오나. 저기 앉아 있는 아이도 기사단의 일원인가?"


"안드바리를 말하는 거야? 맞아. 우리 부대의 물자 보급을 담당하고 있어. 최근에 복원되었지만 그녀의 지원 능력은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


"저런 아이조차 싸워야 하다니... 잔혹하기 그지 없군. 종말의 때라는 것은 말이야."


그렇게 말한 사령관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컨테이너 상자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는 안드바리에게 다가갔고 곧 안드바리가 사령관을 알아보곤 깜짝 놀라 상자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사령관님? 무슨 일이라도..."


"...힘들진 않은가?"


"네? 갑자기 왜..."


"자네 같은 아이들까지 전장에 내몰리는 건 옳지 않은 일이야. 모름지기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이 무기를 들고 종말의 때에 맞서는 건... 어른으로서 보기 괴로운 일이군.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지 못한 미안함이라고 해야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보급 업무라면 오히려 즐거운 걸요? 나름대로 신경 써야 할 건 많지만 언니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보람찬 일이에요! 으... 가끔 알비스 언니가 몰래 초코바를 훔쳐가는 건 빼고요.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틈만 나면 시도하는데... 사령관님? 벌써 지루해 하시는 건가요?"


안드바리가 한창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과 개인적인 생각을 열심히 말하다가 사령관이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는 걸 보자 물었고 사령관이 고개를 젓곤 그녀에게 키를 낮추고 살며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말은 곧 그녀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홀로 힘든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점에 있어선 적어도 네가 나보다 더 잘하고 있구나. 나도 어른으로서, 제국의 황제로서 너 같은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구나."



[오늘 처음으로 사령관님을 만났습니다. 언니들이 말씀하신 사령관은 엄청 친절하고 다정한 분이라고 하셨는데 처음엔 믿기지 않았지만... 직접 만나보니 언니들이 하신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레오나 대장님을 비롯한 언니들이 좋아하실만한 분이고 또... 제가 만약 어른이 되면... 함께 지내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 안드바리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