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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기사였던 농부에게 

 

 

 

 

“로이어 12년 4월 2일, 오늘부로 황금 사자단의 기사 루크마이어 엔더스를 발톱으로

 

임명한다. 이에 반대할 자가 있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오늘부터 황금 사자단의 발톱이다. 일어서라, 기사여.”


로이어 왕이 말하자, 그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얀 갑옷에 금색 선이 우아하게 새겨진 갑주에 붉은 망토를 두른 남자, 그의 이름은

 

루크마이어 엔더스로 올해 16살이 되는 소년이었다. 

 

“그대, 루크마이어 엔더스는 모든 걸 버리고 왕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좋다. 그대는 황금 사자단의 발톱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라.”


“감사합니다.”


이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고작 15살에 황금 사자단에 들어온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단 1년 만에 황금 사자단의 대장 중 하나인 발톱이 되다니, 다른 기사들은

 

루크마이어를 시기했다. 그가 가진 재능과 더할 나위 없이 올곧은 마음을 질투했다.

 

그의 앞길은 더할 나위 없이 창창했다. 모두가 존경하는 왕의 호위기사, 황금 사자단의

 

대장 중 한 명이 되었으니까. 그의 미래에 암울한 기색 따윈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무려 19년 전의 일.

 

지금의 루크마이어 엔더스는, 평범한 농부에 불과했다.

 

 

 

 

 

 

 

*****

 

 

 

 

 

 

 

“아빠! 또 술 마시고 왔지!?”


“뭐 어때서 그래. 일이 힘든데 술이라도 마셔야지.”


한 때 미소년이라고 칭송받던 소년은, 이젠 수염이 덥수룩한 영락없는 아저씨였다.

 

다부진 몸과 칼날처럼 매서운 눈매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전의 기품이나 당당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누구도 그가 기사였다는 걸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우리 공주님, 아빠가 분명 집에서 마법 실험하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어, 어떻게 그걸.”

 

“그냥 한 번 찔러 본건데 진짜 했냐? 이놈의 계집애를 그냥!”


“폭력 반대! 폭력 반대!”


그리고 그런 그의 딸, 엘리자는 올해로 18살이 되는 아름다운 소녀였다.

 

농부의 딸보단 귀족의 딸이라고 하는 게 어울릴 소녀였다. 쉽게 보지 못할 은빛

 

머리카락에 자수정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아가씨. 그 외모에 반해

 

마을의 청년들이 매번 찾아와 꽃이며 선물을 가져다 바쳤지만 그녀는 거들떠도 안 봤다.

 

“너도 슬슬 결혼할 남자를 찾아보는 건 어떠냐?”


“엑, 싫은데.”


“설마 난 죽을 때까지 손자도 못 보는 거냐?”


그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러자 그녀가 그 옆에 착 달라붙어 누웠다.


“이제 슬슬 혼자 자도 되지 않아?”


“아빠랑 자는 게 뭐 어때서 그래?”


“아니, 그래도 말이야……어휴, 됐다.”


벌써 18, 19년 가까이 이렇게 살았다. 

 

모든 걸 버리고 왔건만 후회 따윈 조금도 없었다. 

 

이전처럼 경애의 대상이 될 수도 없었고, 명예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힘겹게 농사를

 

짓고 그걸 팔아 또 1년을 버티는 생활. 그럼에도 그는 행복했다.

 

“아참, 너 요즘 검술 연습은 하냐?”


“가끔씩?”


“마법도 좋지만 검술도 꾸준히 해야지.”


“애초에 농부의 딸이 검술이랑 마법을 왜 배워야하는지 모르겠는데.”


“시끄러. 배우면 다 써먹을 곳이 있는 거야. 그래, 오랜만에 대련이나 해볼까?”


“아빠는 너무 강해서 싫어!”


“얼른 나오기나 해.”


그가 목검을 챙겨 바깥으로 나갔다. 벌써 밤이었지만 보름달이 뜬 밤이라 꽤 환했다.

 

“저번처럼 마법 쓰다 걸리면 꽁꽁 묶어다 트롤이랑 결혼시킬 줄 알아.”


“웩, 차라리 고블린이랑 결혼하는 게 낫겠어.”


“너 고블린한테 잡혀가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구나?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걸.”


엘리자가 자세를 잡았다. 그녀는 모르지만, 그것은 루크마이어가 배우고 한 단계

 

발전시킨 잉게르 유파의 검술이었다. 

 

“우선 대련하기 전에 복습부터. 검술의 기본은 뭐지?”


“자세랑 호흡.”


“어떻게 싸워야하지?”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좋아, 시작해보자.”


그가 단숨에 튀어나가며 엘리자의 목을 노렸다. 그녀가 그걸 막는 동시에

 

루크마이어의 정강이를 걷어찼지만, 위력이 부족했다. 그는 그 자세에서 연계하여

 

엘리자의 검을 따라 다시 목을 노렸고- 검 끝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먼저 1승.”


“다음엔 더 세게 차야겠네.”

 

“좀 봐줘라. 아빠도 나이 먹어서 멍 들면 일주일은 간단 말이야.”


그 후, 그들은 거의 1시간 동안 대련했다.

 

엘리자의 검술은 이미 여느 기사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였으나, 그녀 자신은

 

진짜로 싸운 적이 없어서 자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지 못했다.

 

“그나저나 전부터 궁금했는데, 아빠는 농부잖아? 왜 검을 쓸 줄 아는 거야?”

 

“어릴 적에 배워서. 그래봤자 진짜 기사를 이길 정도는 아니야.”


“그렇겠지.”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늙고 약해진 그였지만, 검술은 그 때보다도 발전하여

 

어지간한 기사들도 그를 이기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숨겼다.

 

“아빠, 같이 씻을래?”


“너도 진짜……다 큰 여자애가 아빠랑 씻자고 하는 게 어디 있어?”


“뭐 어때서 그래. 더운 물을 아껴야 하니 어쩔 수 없잖아.”

 

 “하여간…….”


두 사람은 같이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 엘리자의 몸은 이미 성숙해졌고 티 하나

 

없이 아름다웠다. 루크마이어는 그런 그녀를 보며 슬슬 짝을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욕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잠자리에 들었다. 

 

“너 말이야, 어떤 남자가 좋냐?”


“취향 말이야?”


“어.”


“음……강하고 상냥하면서 멋진 남자. 돈 많고 잘 생기면 더 좋고.”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냐?”


“뭐 어때.”

 

그는 눈을 감았다. 이제 전처럼 체력이 좋지 않아서, 하루만 일해도 곯아떨어졌다.

 

루크마이어가 잠든 걸 확인한 뒤에야 엘리자가 자는 척을 그만두고 일어났다.

 

“……미안, 아빠.”


그녀는 그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손을 가랑이 사이에 넣고 자위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틀린 욕망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날이 커져가는 사랑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랑해, 아빠.”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른다.

 

그들이 사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라는 것을.

 

 

 

 

 

 

 

 

 

*****

 

 

 

 

 

 

 

 

다음날 저녁,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루크마이어는 일찍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쉬었다. 엘리자는 마을 처녀들과

 

강가에 가서 놀고 온다고 했기에 딱히 할 일이라곤 없었다.

 

그럴 터였다. 그런 하루가 되어야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딸 왔어? 왔으면 저녁부터-”


“루크마이어 엔더스, 이런 곳에 숨어있을 줄이야.”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처음 한 일은 탁자 밑에 숨겨둔 장검을 뽑는 것이었다.

 

“그 이름을 듣는 것도 거의 20년만의 일이군.”


루크마이어를 부른 남자는 금선이 새겨진 하얀 갑주를 입고 있는, 황금 사자단의 기사였다.

 

그 옆에 서 있는 것도 같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날 죽이러 왔나?”


“상황에 따라선.”

 

루크마이어는 생각했다. 도망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엘리자가

 

붙잡힐지도 몰랐다. 다른 병사들이 더 있다면 상황은 배로 불리했다.

 

“그녀는 어디 있지?”


“누구?”


“왕비의 딸 말이다.”


“20년 전에 죽었다. 태어나자마자 몸이 약해서 나흘 만에 죽었지.”


기사가 집을 둘러보았다. 루크마이어의 말이 거짓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혼자 사는데 침대가 두 개고, 그릇도 너무 많지 않나? 게다가 여자 냄새가 나는군.”


“거 그냥 속아주면 어디 덧나? 하여간 기사들이란…….”


“어디 있지?”


“찾아서 뭘 어쩔 셈인데?”


“우린 그녀의 적이 아니다. 우리들은 그녀를 차기 여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왔다.”


그 말에 루크마이어가 탁자를 뒤엎었다. 동시에 숨겨놓았던 단검을 던져 옆에 서 있던

 

기사의 이마를 꿰뚫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미쳤군! 네 놈이 무슨 짓을-”


루크마이어가 병을 던져 기사가 방패를 들게 했다. 그 다음 다리에서 갑옷이

 

덮이지 않은 무릎 위를 정확히 찔러 그를 쓰러트렸다.

 

“크윽……!?”


“잉게르 유파는 기습과 난전을 위해 만들어졌지. 바깥의 병사들이 있나?”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물러서라고 명령해라. 당장.”


“전원 물러서라! 이 오두막에 다가오지 마라!”


바깥에서 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이 물러나는 소리였다.

 

“왜 이러는 거지? 그녀는 적법한 왕위 계승자다.”


“그래서 그래. 난 엘리자를 여왕으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거든.”


“그럼 이딴 시골에서 아낙네 생활이나 시킬 셈이냐? 한 나라의 공주를?”


“어. 처음부터 그러려고 키운 건데?”


“아빠?”


엘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바깥에 병사들은 누구야? 왜 저한테 무릎을 꿇는 거죠?”


“공주님! 저희 황금 사자단이 공주님을 데리러 왔습니다.”


“공주……?”


“시끄러워! 한 마디만 더 하면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어!”


그가 기사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그럼에도 기사는 계속 말했다.

 

“당신은 로이어 왕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님이십니다! 당신이 바로 차기 여왕이란 말입니다!”


“닥치라고 했지!”


“그만! 아빠, 이게 다 무슨 말이야? 공주? 여왕? 나는 그냥…….”


“당신은 이 남자의 딸이 아닙니다. 그의 본명은 루크마이어 엔더스, 한 때 황금 사자단의

 

대장 중 한 명이었으나 반역을 일으킨 후 달아난-”

 

스걱, 살 베이는 소리가 났다. 기사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엘리자, 지하 통로로 가자. 일단 여기서 나가고 얘기하자꾸나.”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설명해줘, 제발.”


“가는 길에 설명할게. 얼른 따라와.”


그가 바닥의 나무판자를 뜯어내 비밀 통로로 들어갔다. 

 

그들은 거길 따라 마을의 외곽까지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병사들이 그들을 찾겠지만

 

비밀 통로로 달아난 두 사람을 바로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괜찮겠지.”

 

“아빠, 내가 공주라고? 로이어 왕의 딸이라면……아빠는 누구야?”


“…….”


그는 엘리자가 평생 이 사실을 모르길 바라며 살아왔다.

 

여왕이 되면 엘리자는 고통 받게 된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내 이름은 루크마이어 엔더스. 그 남자의 말대로, 한 때 왕을 호위하는 황금 사자단의

 

기사였다. 그 중에서도 송곳니, 눈, 꼬리, 발톱이라 불리는 4대장 중 한 명이었어.”

 

“아빠가 기사였다고? 그럼 왜 지금은…….”


“너의 어머니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지.”


벌써 그토록 오래 전의 일이건만, 그는 어젯밤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천둥 번개가 치던 밤. 거대한 탑을 등지고 선 기사, 벼락과 울부짖음.

 

그는 그 날, 자신의 사형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다.

 

“너의 친부, 로이어 왕은……솔직히 말해서 빌어먹을 짐승 같은 인간이었다.”


“…….”


“거의 달마다 첩을 만드는 바람에 나라 재정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지. 그런 로이어 왕의

 

아내이자 왕비, 리제타 왕비님께선 그런 왕을 질책하고 나무라셨다.”

 

“리제타 왕비가……내 엄마야?”


“그래. 로이어 왕은 왕비님을 성가시다고 생각했고, 어느 날 자신의 명령을 거슬렀단

 

이유로 반역죄를 물어 탑에 유배했다. 그곳에서 굶겨죽일 셈이었지.”

 

그가 들고 있던 검을 바라보았다. 이 검을 왕을 지키겠다고 맹세했건만.

 

맹세는 부서지고 그는 그 어떤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난 왕비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그 분은 왕비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정말

 

훌륭하신 분이었어. 나는 왕에게 왕비님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들어주질 않았구나.”


“난……맹세를 어기고 그녀가 유배된 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를 구출한 뒤 여기까지

 

달아났지. 그 땐 이미 너를 임신하고 계셨었어.”

 

“엄마는?”


“널 낳자마자 돌아가셨다. 나는 네가 그런 일이 휘말리질 않기를 바라며 키웠어.

 

권력이란 무서운 것이야. 저들이 널 왕비로 추대하는 것도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겠지.”

 

“……알겠어. 이해했어.”

 

“엘리자.”


그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널 내 친딸처럼 여기며 살았다. 네가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내 목숨도 바칠

 

수 있어. 그게 내가 왕비님께 한 맹세다.”

 

그렇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공주니 여왕이니 그런 것보다도, 단 하나의 사실만이 떠올랐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와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타인이다.

 

보통이라면 당황했을 것이다. 평범한 여자라면, 엘리자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뒤틀려있었다.

 

“이제 어쩔 거야?”


“당분간 여길 떠나서 잠적해야겠지. 우리 둘이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장소로 가서…….”


“단 둘이서…….”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도 우릴 방해하지 못 할 곳으로 가자, 아빠.”

 

“그래.”


그는 아직 모른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대회용으로 낼까 했는데 솔직히 재미는 그닥 없는 듯

딴 건 모르겠고 한 10일 정도 고기랑 밀가루 못 먹어서 피자 먹고 싶어 시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