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아름아…. 이게 대체 무슨…?"


손잡이가 박살 난 현관문을 발로 차며 들어온 그녀가 아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실내를 바라보았다.

몸을 덮고 있는 수건을 제외하고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혜정과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지를 올려 입고 있는 아름이의 모습


누가 봐도 5분 뒤에 질펀한 임신 교미가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모습!!!


문고리를 박살내기 전에 얼마나 세게 문을 두드렸는지, 그녀의 주먹에는 핏방울이 맺혀있었고, 소화기를 들고 있는 손의 아귀는 찢어져 피가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손아귀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지, 아니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고통마저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아름이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입을 벌린체,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야? 언제부터 이런 일을 한 거야 아름아…? 거짓말이지?"


"....어 선생님,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시고 커피 한잔 하시면서 이야기 좀 하시렵니까…?"


"아, 누나는 가만히 있어."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문객의 등장에 당황한 건 혜정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혜정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아름과 눈앞의 그녀를 번갈아 보는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혜정은 아름이를 보며 눈으로 그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고?


나도 몰라, 새끼야


이런 느닷없는 상황이 당혹스러운 건 아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소화기를 들고 있던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것 그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모처럼 바깥에 나들이를 간다고…. 해서…. 이제 좀 많이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나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났던 거였니…?"


아니 이건 또 뭔 소리야??


한아름, 그는 눈앞의 그녀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들이라니, 한밤중에 트럭에 택배를 실어 보내는것도 나들이로 쳐줘야 되는 건가??


"아니, 무슨 소리야, 나들이라니, 나는 가을소풍 같은걸 간 적이 없어"


이건 진심이었다, 분명 아름은 이 정조역전의 이 세계로 떨어지기 전에는 대한민국 사방팔방에 보낼 택배를 트럭에 싣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눈앞의 그녀는 그런 아름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내젓기 시작한다.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내저을 때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이 왼쪽, 오른쪽으로 찰랑 찰랑거린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샴푸 모델의 광고처럼 찰랑거리는 머릿결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아름이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눈앞의 그녀는 무슨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귀신의 모습보다 더 무서운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거짓말…. 거짓말…. 또 내게 거짓말을 했어."


낮게 읊조리는 그녀의 말, 무섭다. 집에 가고 싶다.

엄마…. 저 여자 뭐야 무서워….


"...저기 아름씨…. 일단 뭐가 됐든 간에 일단 사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 시발, 한 게 없는데 뭘 사과를 해요 사과는, 나는 저런 년이랑 엮인 적이 없어요."


"저런 년…? 아름아, 지금 방금 나한테 저런 년이라고 했어?"


"아니 선생님, 그게 아니고요. 아 일단 소화기부터 내려놓으시죠, 우리 일단 조용한 카페 같은데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천천히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어보는 게 어떨까요?

오늘은…. 제가 한턱 삽니다."


커피 같은 소리하고 있네, 지금 이 상황에서 카페인이 넘어가겠냐?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 혜정은 수건 한 장만 걸친 몸을 일으켜 허리를 반쯤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화기를 들고 있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일단 손에 쥔 저 소화기를 내려놓는 게 급선무였다. 주먹으로 두들겨 맞으면 일단 죽지는 않겠지만, 소화기로 두들겨 맞으면 병풍 뒤에서 향냄새를 맡는 건 시간문제였다.

천천히 혜성이 손을 뻗어 그녀가 들고 있는 소화기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 걸 멈추고 이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그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탓에 이마까지 내려오는 앞머리에 그녀의 시선이 어딜 향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하는 혜성!

물총에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그녀의 팔에서 붉은색의 핏줄기가 사방팔방으로 튀어나와 방 안을 더럽히기 시작했다.


소화기를 든 그녀의 남은 한 손에 들려있는 은빛 칼, 아름이는 저 칼이 어떤 칼인지 알고 있었다.


아니 서울 시내에서 왜 저런 걸 품 안에 숨기고 있는 거야?? 그리고 경찰은 뭐하고, 지금 이러는 순간에 모텔 주인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고


"분명, 나만 바라봐주겠다고 약속했잖니, 아름아…. 근데 왜…. 어째서"


"아니, 난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는데, 전 당신 같은 사람 몰라요. 진짜….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에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녀가 한 발자국 다가올 때마다 뒷걸음질 치며 다가온 보폭만큼 멀어지는 아름,


"아파…. 아파요……. 죽을것가태!!! 끼에 에에!!!!!"


동맥이라도 잘린 것일까? 

멀쩡한 한 손으로 어떻게든 피가 흐르는 곳을 어떻게든 붙잡아 지혈을 해보려고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는 듯 혜성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붉은색의 핏줄기가

여기저기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혜성의 몸에서 나온 핏줄기는 칼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튀었지만, 그게 그녀의 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오지 마…….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침대 옆에 있던 곽티슈를 들어 그녀에게 던지는 아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티슈 곽은 그녀의 머리를 맞고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멈칫, 그녀는 손을 들어 티슈를 맞았던 부위를 한번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름아, 내게 왜 이러는 거야…."


길게 늘어트린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새하얀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투명한 눈물.


갑자기 발바닥에 접착제라도 붙은 것처럼 걸음을 멈추는 그녀의 모습에 허둥지둥 바지를 마저 다 입고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는 아름이.


시발…. 왜 지가 울고 지랄이야….


바지에서 뜨거운 감촉이 느껴지면서, 천천히 다리를 타고 뭔가가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느낌이 느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가 멈춰 서있는 순간에 허둥지둥 모텔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빠져나가려는 아름이.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창문턱에 한쪽 발을 올리고 일단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곳으로 몸을 옮기려던 아름이었지만….


악! 이건 정말로 아프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는 아름, 뒤를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피에 묻은 칼을 든체 아름이의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름이를 향해서 내려찍기 시작하는 칼. 이번엔 가슴이었다.


날카로운 금속이 뼈와 근육으로 이어진 아름이의 몸통을 비집고 들어갔다.

숨을 쉬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격렬한 통증,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통증 앞에서 아름이 할 수 있는 건 살충제를 맞은 파리처럼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 외에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쪽 발을 창문 턱 위에 올려놓은 아름이의 몸이 힘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지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몸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그의 시선이 향한 것은 칼로 자신의 몸을 찌른 그녀의 모습.


여전히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아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


이 상황에서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몸이 싸늘하다.

미안하면 사람을 찌르지나 말지, 왜 후회할 짓을 하는 것인지….


손과 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메두사와 시선을 마주한 것 퍼럼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눈이 천천히 아래로 감기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MH 그룹


익숙한 풍경이다.


몸을 더듬어 보지만 털끝 하나 상처 나지 않은 몸.

분명 첫 회귀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몸 상태.


몸이 뻐근하다, 회사 앞에서 몸을 한번 크게 기지개를 켜 본다.


남의 회사 입구 앞에서 뭐 하는 건지….


짙은 춘추 양복을 입은 셀러리맨들이 아름이를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시선을 보내긴 하지만, 뭐 다시 고개를 돌려 제 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 바쁜 회사 생활 중에 길거리에서 기지개를 켜는 젊은 남성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는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귀중하고 값비싸기 때문이겠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제 보니까 회사에 들어가는 사원들의 성비를 따져보니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아름,

확실히 정조역전의 세계답게 남자들은 밝은색 계통의 옷을 입고 있다면, 여자들은 짙은 색 계통의 옷을 입고 있었다.


저번 회귀까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본 풍경이지만, 깨닫고 나니 조금 새로웠다.


눈앞의 풍경을 잠시 바라보던 한 아름, 바로 앞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몸을 한번 부르르 떨기 시작한다.


사람에게 칼 빵을 놓다니 이런 무자비한…….

누군가 말하길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고 했던가?


회귀 자의 여유라고 해야 할지, 제삼자의 시선으로 회귀 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냉철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아름이었다. 


왜 그녀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 것일까?


음……. 정확히 딱히 명쾌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자신은 어떤 관계로 묶여있다는 것이고, 아마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닐까?


치정살인, 그가 있는 세계에서도 이런 일은 흔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결국에는 연인을 흉기 혹은 둔기로 살해하는 치정살인이겠지…?


머리가 복잡하다.


남의 회사 앞에서 뻘쭘하게 서 있는 것도 보기 안 좋으니, 일단 회사 근처 카페에 들어가는 아름이었다.

이제 막 영업을 시작했는지,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이 분주하게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다, 아름을 보자 황급히 계산대로 돌아왔다.


"주문하시겠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요"


"드시고 가세요?"


"네 먹고 갈 거예요, 계산은 현금으로 계산할게요."


아름이는 지갑을 열어 빳빳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주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곳이 정조역전의 세계라는걸 모르기 전까지는 별로 그렇게 지폐를 관심 있게 쳐다보지 않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지폐 속 인물도 그가 알고 있던 인물들과는 다른 인물이 지폐 앞면에 프린팅 돼 있었다.


???누구지??


일단 아름이 알고 있는 여성 위인이라고 해봐야 허난설헌, 신사임당, 선덕여왕…. 에…. 그리고 위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명성황후…?


뭐 대충 한국사에서 언급이 나온 여자 위인들은 대충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어쩌면 뭐…. MH니 DJ처럼 그가 모르는 제3의 것으로 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이 세계에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기다리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커피를 한잔 들고, 2층 창가로 자리를 옮기는 아름이.


확실히 커다란 회사건물이 주위에 많이 있는 도심지 한가운데에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실내 장식은 나름대로 깔끔하고 괜찮았다.

창가에 앉아서 멍하니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그가 있던 세계에서나 이곳 정조 역전의 세계에서나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 한 아름이었다.


자, 그럼 경치 감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생각을 해보자.


문제1. 그녀는 어떻게 내가 있는 곳에 귀신같이 찾아오는 것일까?


첫 문제부터 수능 살인자 문제를 맞닥뜨린 수험생처럼 생각이 턱턱 막히는 아름이었다.


그래, 사실 첫 회귀 때는 그렇다고 쳐도 두 번째 회귀 때는 어떻게 그녀는 내가 있는 모텔 방 호수까지 정확하게 맞춘 것일까?

위치 추적기라도 숨겨놓은 것일까?


무슨 본 시리즈도 아니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겠냐…. 아마 지나가는 누군가가 보고 일러바쳤겠지.

전 회귀 때 모텔이 있던 그곳은 중심지였으니까….


문제2. 왜 나는 회귀를 하는 것일까?


...... 다음 문제


문제3. 물론 돌아갈 마음은 없지만, 나는 왜 이 세계에 온 것일까?


.... 아는 게 없냐 나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