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말씀하기 싫으시면 나중에 의견 주세요. 알겠죠? 그건 그렇고….”

 

허공을 향해 말을 걸던 신하나가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탁 치자, 꿈틀거리는 검은 촉수들이 하나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다.

클라라 이클립스, 유세라, 당상화, 안나 스노우벨…내 전생 4명의 아내 모두 촉수에게 집어삼켜진다. 그녀가 섬기는 외신의 일부를 사역한 것. 

 

“후훗, 다들 진정하니까 좋잖아요. ‘허무의 손’에 잡히면 어느 세계의 이능이라도 무능, 무효, 무과로 돌아가요.”

 

밤색머리 펫샵 아가씨는 입가에 초승달을 걸치고 말한다.

화염의 정령도, 얼음의 이능도, 당문의 무공도, 네오-서울의 마력도…. 말 그대로 무용지물로 돌아간다.

 

“까아아악!? 이거 놓아주셔요. 뭔, 뭔가요?”

 

촉수가 몸을 휘감자 금발의 공작영애, 클라라는 소녀처럼 소리를 지른다.

원작 여주인공을 진심으로 죽이려던 악역영애 시절이면 상상도 못할 반응이다. 내가 여자로 만들어준 셈.

사실 난 악역영애, 천마, 척준경 3대 뇌절을 굉장히 싫어했다. 악역영애가 날 죽인 이후로 더더욱.

 

“제 소환수에요.”

“소환수란 자고로 더 복슬거리고 귀여운 존재일거랍니다. 몬, 몬스터에요. 마물술사가 제국에 남았다고요?”

 

로판이랑 코즈믹 호러의 소환수 개념이 다른 건 당연한 말이다.

 

“…크읏. 차라리 죽여라.”

 

세라가 곧은 정조를 지키는 여기사마냥 말해서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빙염여제]라 쓰고 ‘걸레년’이라고 읽는 년.‘

 

내가 저 여자를 특히 혐오하는 이유는 나에게 모든 배신 중 NTR이 제일 기분이 나쁘다는 걸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저 비치 년과 아카데미에선 순애물을 찍었었는데 하렘으로 갈걸.

 

“정말요-?”

 

공포게임의 인외(人外)가 묻자, S급 헌터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미안, 해. 난 강도진과 아직 할 일이….”

“당신이 죽인 거잖아요?”

“…큿, 거기엔 사정이 있어.”

 

사정이 검으로 남편의 몸통아리를 반으로 자르는 거면 없어도 그만일 사정이다.

나는 아직 

 

“네오-서울에서 ‘드래곤과 절대 엮이지 말라’는 속담을 깜빡했어. 유피의 지인 분, 풀어줄래?”

 

사이버펑크 세상에서 마법사를 죽이고, 드래곤과 엮이지 말라는 건 유명한 일화다. 

엘프 스노우벨의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하는 하나.

 

“저, 드래곤이라면 드래곤인가요.”

“본녀도 마찬가지온데 속박을 풀어주지 않겠사옵니까? 영수(靈獸)를 미처 몰라 뵈옵니다.”

“아이참, 영수라니 뭔가 기분이 좋아지네요. 다들 싸우지 마세요. 알겠죠?”

 

상화가 나근나근하게 웃으며 부탁한다. 그러나 그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 신하나를 영약의 재료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리들 언니, 승재 오빠가 아까부터 말이 없어요.”

“아하, 괜찮다네. 조수군. 자네의 지인들 기운이 넘치는구만. 아까부터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

 

넷의 속박이 모두 풀리고 나서, 권나연의 흐트러진 차림을 바로 잡아주던 탐정 앨리스 리들이 입을 연다. ‘보통 인간’끼리 손을 잡기로 했나.

아무튼 그녀는 나에게 이성적인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리들 씨….”

“리들 씨라니 평소대로 앨리스라고 해도 좋다네. 그야 우리는….”

 

검지를 들어 올린 명탐정, 우리의 리들 양께서 입술을 열었다.

 

“…부부니까.”

 

부부라는 말에 헛구역질이 나온다. 어느 부인이 결혼식 날 탈주하더니 총알을 심장에 박지?

나 말고도 좌중의 여인들의 시간도 잠시 멈췄다.

 

“무슨 말이신지. 제 부군이 왜 그쪽 모자의 남편이실까요? 밀즈는 제 집사일 때부터 쭉 저만 바라봐왔답니다”

“…강도진은 내 남편이야. 혼인신고절차를 끝마쳤어.”

“서방님께서 극동에서 나고 자랐으나, 중원에 맹을 떨친 바. 사천당문의 부마로 삼는 것에 아무 이의도 없었사온데.”

“유피, 선조님께서는 나와 프로그램 이그드라실 아래서 맹세를….”

 

선조님 타령, 아직도 밀고 있다. 안나 스노우벨이 7명 중 가장 착하고 믿음직스럽다는 건 변함없지만.

 

“승재 오빠, 이 사람들 말이 다 사실이야?”

“권…나연, 물러서. 망할, 물러서라고!”

 

마지막 죽음이 눈에 선하다. 통째로 씹혀먹는 건 차라리 나았다. 

 

“괜찮아. 오빠가 결혼했다면 기뻐! 나는 응원할게.”

 

망할, 저 미친년. 권나연은 뭘 오해했는지 찔끔 눈물이 맺힌 채로 들어간다.

 

[일곱 인연의 호감도가 표시됩니다.]

 

개씹창, 아니지, 상 태 창이 잠수 타다가 드디어 그 X같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니까…그쪽도 부군과 결혼했다는 말인가요?”

 

[클라라 이클립스(악역영애): -1]

 

“그래, 한미한 정도로 따지면 개미와도 같은 여자야.”

 

[유세라(헌터): -4]

 

“아하하, 이거 조사대상이구만”

 

[앨리스 리들(탐정): -1]

 

“영웅호색, 본녀는 서방이 첩을 두는 걸 반대하진 않았사옵니다. 그전에 임이 삼도천이 건너간 것을 어찌할꼬….”

 

[당상화(무림인): -2]

 

“유피, 세계수의 맹약을 어기는 건 옳지 않아.”

 

[안나 스노우벨(엘프): 0]

 

“…………”

 

[신하나(???): -3]

 

“승재 오빠, 전생이니 환생이니 다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에헤헤….”

 

[권나연(소꿉친구): -5]

 

상태창에선 계속 문구가 꿈틀거리는 뱀처럼 흘러나온다.

 

[당신에겐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호감도가 -10아래로 떨어진 인연은 곧바로 죽습니다]

 

[당신의 호감도가 가장 높은 아내와 원하는 곳에서 환생하세요!]

 

[퀘스트 ‘일곱 번의 기회’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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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니까 너무 짧네

내일도 올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