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오래 전 옛날에 인간을 좋아하는 구미호가 있었음

그러나 스스로가 요괴이니 쉽사리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었지

하지만 인간과 같이 어울리고 싶다는 욕구는 마음 속에 남았어


그러다 우연히 산 속을 걷다가 맹수에게 쫓기던 얀붕이를 발견함

그 구미호는 그걸 보고 바로 맹수에게 달려들어 순식간에 맹수를 죽였음

맹수를 죽이고 얀붕이 쪽을 돌아보며 괜찮냐고 말하려던 찰나

숨을 돌린 얀붕이가 구미호에게 구해줘서 고맙다고 정중히 인사하는 거야

구미호는 어리둥절했지. 그리고 신기했어. 이런 인간이 있었구나 하고.

인간과 어울리고 싶어서 인간의 마을로 가면 인간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돌을 던지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구미호와 얀붕이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어.

구미호는 궁금해 했지. 

어떤 인간이길래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걸까.

구미호가 조심조심하며 그걸 묻자, 얀붕이는 슬며시 웃으며 자신의 살아온 얘기를 해 주었어.


얀붕이는 얀붕이가 살던 곳에선 누구나가 인정하는 천재였어.

공부를 매우 잘해 부모님과 훈장님의 기대가 매우 컸지.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얀붕이는 나이 스물에 과거에 응시해 장원급제를 했어.

장원급제한 얀붕이는 금의환향해 고향으로 돌아왔고 성대한 환영을 받았어.

얀붕이는 벼슬을 받아 일을 시작했는데 일을 성실히 잘 한다는 평판이 자자했어.

딸 있는 고관대작들이 누구나 얀붕이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싶어했을 정도였으니.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던 얀붕이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쳤어.

얀붕이가 섰던 줄이 없어진 거지.

얀붕이가 들어갔던 정치 파벌은 임금에게 밉보여 모조리 사형당하거나 귀양가거나 벼슬에서 물러나야 했어.

촉망받던 인재였던 얀붕이는 순식간에 벼슬을 빼앗기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지.

고향으로 돌아온 얀붕이를 맞아준 건 냉대와 멸시뿐이었어. 부모님조차도 얀붕이를 냉대했지.

실의에 빠진 얀붕이는 집을 나와 산 속으로 들어가 살고 있었지.

말을 마친 얀붕이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구미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어.

자신이 구미호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소년 시절 친구와 놀다가 산 속에서 길을 잃어 해매다 호랑이를 만나고,

도망치던 자신을 구해준 것이 구미호였으며 구미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고 

언젠가 그 구미호를 만나면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지.


얀붕이의 이야기를 듣던 구미호는 얀붕이의 고난에 가슴아파하다 깜짝 놀랐지

얀붕이가 말한 구미호는 자신이기 때문이었어.

얀붕이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얀붕이는 놀라면서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감사인사를 했지.

그런 얀붕이를 보며 구미호는 이 남자와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구미호는 맹수가 더 있을지 모르니 얀붕이의 집까지 같이 가자고 하고, 얀붕이는 흔쾌히 수락해.

집에 도착하자 얀붕이는 구미호에게 다시 감사를 표했고 구미호는 얀붕이에게 자주 와서 당신과 어울려도 되냐고 물어

얀붕이는 안 그래도 적적한 산 속 생활인데 말상대가 있으니 좋다며 언제든 오셔도 좋다고 하지


이후 구미호는 얀붕이 집에 자주 놀러와 얀붕이와 같이 어울렸지.

구미호는 얀붕이와 같이 있으면 자신이 받았던 분노와 한이 차츰 옅어지는 느낌이 들었어.

그러면서 구미호의 마음 속에는 얀붕이에 대한 사랑이 싹텄어.

그도 그럴 것이 구미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얀붕이처럼 자신을 대해주는 이가 한 명도 없었거든.

그렇게 사랑의 싹을 키우던 구미호는 얀붕이와 초가집 마루에서 노을을 바라보다 얀붕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

얀붕이를 사랑한다고.

쭉 같이 있고 싶다고.

얀붕이 또한 냉대와 멸시에 지쳐 산 속에 들어와 쓸쓸히 살던 차에 구미호와 어울리며 사랑을 품고 있었어

그날 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얀붕이의 이불 속에서 동침하였고

둘은 연인이 되었어.


구미호와 얀붕이가 연인이 된 지 2년이 흘렀어.

구미호는 자신이 살던 동굴에서 나와 얀붕이와 동거하고 있었지.

얀붕이와 구미호는 누가 보면 천생연분이 따로 없을 정도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어

구미호에게 얀붕이는 삶의 의미가 되어 있었지


그 때, 서울은 엄청난 격변을 맞이하고 있었어

임금이 죽고, 새 임금이 왕위에 올라 얀붕이가 속해 있던 파벌 사람들을 다시 서울로 불러모으기 시작한 거야

서울로 올라온 파벌 사람들은 순식간에 높은 자리를 꿰찼고, 그 위세가 크게 높아졌어

의기양양해진 파벌 사람들은 얀붕이도 다시 서울로 불러오기 위해 얀붕이의 고향에 사람을 보냈어

근데 이미 얀붕이는 집을 나간 지 2년이 넘었으니 행방을 알 길이 없었지.


그래서 파벌이 보낸 사람이 포기한 채 서울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장날에 장을 보러 잠시 마을로 내려온 얀붕이를 보게 됐어

그 사람은 뛸 듯이 기뻐하며 얀붕이에게 다가갔지

얀붕이도 곧 그 사람을 알아보고 서로 재회를 기뻐하며 주막에 들어가.

파벌이 보낸 사람은 탁주를 마시며 얀붕이에게 "다시 우리의 세상이 왔다. 너의 자리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서울로 가자." 고 말해.

구미호를 만나기 이전의 얀붕이였다면 바로 서울로 같이 갔을 거야.

하지만 얀붕이에게는 구미호가 있고, 서울로 올라간다는 것은 구미호와의 이별을 의미했어.

얀붕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지.

그래서 얀붕이는 "벼슬은 이제 진절머리난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조용히 살고 싶다." 고 하며 탁주 잘 마셨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가


파벌이 보낸 사람은 얀붕이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엄청난 액수의 상금을 약속받았기에 포기할 수 없었어.

그래서 얀붕이를 미행하는데 얀붕이 집에서 구미호가 나오고, 얀붕이와 행복한 모습으로 이야기하는 걸 보게 됐어

그러자 파벌이 보낸 사람은 얀붕이는 구미호에게 홀렸다, 라고 생각하게 되고 

얀붕이를 강제로라도 서울로 데려가 구미호에게서 떼어놓아야겠다고 마음먹어

닷새 후 장날, 다시 장을 보러 내려온 얀붕이를 파벌이 보낸 사람이 기절시킨 후 납치해 서울로 가.


집에 있던 구미호는 장을 보러 간 얀붕이가 저녁이 되어도, 밤이 되도록 오지 않으니 불안해졌어.

왜 안 오지? 하면서.

온갖 불안한 생각을 하면서 집에서 밤을 지샜어.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얀붕이는 돌아오지 않았어.

얀붕아, 어디 간 거야?

내가 싫어진 거야?

내가 질려서 날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버린 거야? 

얀붕이를 만나야 해.

얀붕이는 내 옆에 있어야 해.

얀붕이는 내 거야.

그렇게 구미호도 집을 떠나 얀붕이를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니게 되었어.


한편, 서울로 납치된 얀붕이는 매우 화를 내면서 다시 구미호와 살던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그런 얀붕이에게 파벌의 수장이 이렇게 말하는 거지. "자네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난 군사를 보내 구미호를 토벌할 걸세."

이를 바득바득 갈던 얀붕이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벼슬길로 나아가게 돼

얀붕이의 성실함과 실력은 죽지 않아 엄청난 속도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해

그런 얀붕이에게 파벌 사람들은 계속 혼담을 넣지.

하지만 얀붕이는 단호하게 거절해.

얀붕이의 마음 속에는 구미호 말고는 없었거든.


그러다 파벌 수장이 개최하는 연회가 열려

명목은 파벌 수장의 생일 축하였으나, 실상은 얀붕이를 파벌 수장의 사위로 맞이하기 위한 축하연이었어

파벌 수장과 그의 딸은 싱글벙글이었으나, 얀붕이의 표정은 매우 좋지 않았어.

파벌 수장의 딸에게 줄 마음 따위 1도 없었기 때문이지

얀붕이는 이딴 거 다 집어치우고 구미호와 같이 살던 허름한 초가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했을 뿐이었어

이윽고 연회가 절정에 달했을 때 파벌 수장이 정식으로 얀붕이가 자신의 사위가 됐다고 소개해

사람들의 놀라움과 탄식의 함성이 연회장을 가득 메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축하의 말과 박수가 터져나왔고

얀붕이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일 뿐이었어

그 모습을, 연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서 검은 인영이 쳐다보고 있었지.

인영이라기엔 조금 이상했어. 머리 위에 귀가 있고 뒤엔 꼬리 아홉 개가 달려 있었으니.


연회가 끝난 후, 얀붕이는 자신과 같이 있고 싶다고 끈덕지게 달라붙는 파벌 수장의 딸을 억지로 떼어내고 방으로 돌아왔어.

그리곤 방문을 닫고, 침대에 걸터앉아 창문 너머 보름달을 조용히 바라보며 구미호를 생각했어.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마루로 나와서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를 품에 안으며 사랑을 나누던 때가 그리웠지.

그 때, 검은 인영이 창문을 넘어 얀붕이의 방으로 들어왔지.

얀붕이는 깜짝 놀라 잠시 얼어 있다가 그 인영이 누구인지 알고는 몹시 기뻤어.

자신과 2년 동안 함께 살며 사랑을 나누던 구미호였거든.

2년 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지 얼굴이 야위었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어.

구미호가 자신을 찾아와 주었다는 게 기쁠 따름이었으니까.

그런데, 구미호는 그렇지 않았어.

오히려 얀붕이에게 엄청난 적대감과 혐오감, 분노, 슬픔을 담은 살기를 뿜어냈지.

당황하는 얀붕이에게 "나를 갖고 노니까 좋았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으니까 속이 시원해?

난 얀붕이를 정말 사랑했는데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 하며 소리치는 구미호.

얀붕이는 진실을 얘기하고 싶어도 구미호가 뿜어내는 살기에 눌려 말을 제대로 할 수 가 없었지.

그걸 구미호는 얀붕이가 정곡을 찔린 것으로 오해해 버렸어.

그 순간 속에서 뭔가가 '툭' 끊어진 구미호.

결국 구미호의 손톱이 얀붕이의 몸을 갈라 버리고 말았지


얀붕이는 구미호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

서울로 납치당한 후 죽고 싶거나 서울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자신의 연인인 구미호가 그걸 이루어 줬으니 기뻤어.

그 모습을 본 구미호가 이상함을 느끼지.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며 살려달라 소리칠 줄 알았는데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얀붕이는 피를 토하면서도 구미호에게 진실을 알려줘.

진실을 다 듣고 난 구미호는 절규하면서 얀붕이를 안아들며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죽지 마요..... 제발....... 잘못했어요...." 하며 울먹여

하지만 얀붕이는 이미 출혈이 심해 곧 죽을 게 너무 뻔했지

얀붕이는 구미호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어...... 사랑....해...." 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고 말지.

구미호가 숨을 거둔 얀붕이를 품에 안으며 슬픔에 잠겨 있는데,

얀붕이 방에서 소란이 일자 수상히 여긴 사람들이 얀붕이 방으로 와 문을 열고 얀붕이와 구미호의 모습을 목격해

구미호가 사람을 죽였다~! 하며 누군가가 고함치자

구미호는 "얀붕이를....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게 네놈들이냐?" 하며 서서히 일어서.

그리고 구미호 본연의 모습인 여우로 변신해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모조리 죽여주마!!!!"

그리고는 얀붕이의 방을 찾아온 이들을 모두 죽이고, 파벌 수장의 집으로 달려가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어

파벌 수장의 집에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질 즈음, 구미호가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는 소식이 퍼진 서울은 비상이 걸렸고

서울의 군사와 퇴마사들이 구미호 토벌을 위해 몰려오기 시작했어

퇴마사들과 군사들을 계속 상대하다 지친 구미호는 도망쳤지만, 

계속 추격해오는 군사들과 퇴마사들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지.

퇴마사들이 서둘러 구미호의 봉인 술식을 펼치고 있을 때, 구미호는 얀붕이와의 추억을 떠올렸어.

얀붕이가 납치되기 전, 얀붕이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 사랑, 기쁨, 행복...

그리고 얀붕이를 다시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말. 수백 번도 한 말이지만 부족한 그 말.

나도 얀붕이를 엄청 많이 사랑한다고.

이윽고, 구미호의 시야는 어둠으로 덮혔어.








그렇게,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어.

구미호가 실제로 존재하겠냐며 그 존재를 허구로 치부하는 시대가 되었지.

국내여행 중이던 얀붕이는 여행 책자를 따라 어느 절에 왔어.

근데, 그 절은 이미 망해 스님들이 다른 절로 옮겨간 지 5년이 넘은 절이었어.

당연히 관리도 안 돼 있어 곳곳이 허름했지.

주변을 잠시 맴돌던 얀붕이가 슬슬 갈까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돌바닥이 푹 꺼졌어.

돌바닥 밑은 싱크홀이 났던 모양인지, 그 부분만 구멍이 움푹 파여 있었지.

다시 올라가려던 찰나, 싱크홀 끝에 문이 보이는 거야.

호기심이 발동한 얀붕이는, 휴대폰 손전등을 키고 문을 열었어.

그 곳에는, 아홉 꼬리가 달리고 여우 귀가 달린 사람이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사슬에 매여 있었지.

얀붕이는 깜짝 놀랐지. 여기 왜 사람이? 아니, 저거 구미호 아냐? 

구미호가 실제로 있었나? 저거 코스프레 아닌가? 여러 생각을 했지

실제 구미호라면 위험하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막연하지만 왠지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

얀붕이는 사슬을 끊어 구미호를 구해 주기로 마음먹고 사슬을 잡아당기니

너무나 쉽게 바스라졌어.

그렇게 사슬을 끊고, 쓰러진 구미호를 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손을 대자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들며 알지 못하는 기억이 주마등처럼 얀붕이의 눈 앞을 지나가

기억이 다 지나가고 날 즈음, 구미호가 눈을 떴어.

직후, 구미호는 울음을 터트리며 얀붕이에게 안겨 왔어

얀붕이를 내가 죽여서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다고, 그리고 이 세상 누구보다 얀붕이를 사랑한다고.

그리고 얀붕이는 그런 구미호를 안으며, 수백 년 전에 구미호에게 하던 것처럼 나도 누구보다 구미호를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거지.


졸라 뻔한 클리셰이긴 한데 한번 적어봄

조금 길게 썼나 모르겠네..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