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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알아낸 사실 하나.


나는 지금 이 세계로 온 상황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녀의 역할이 바뀐 정조역전의 세계로 온 상황이다.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 둘.


지금까지 내가 살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이 세계답게

여기에 있는 대기업들은 삼성이나 LG 같은 그룹이 아니라 MH니 DJ 같은 그룹으로 상호가 변경된 상태이며

내가 알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지역명을 쓰고 있다.

예를 들면 강남역은 서동역, 홍대 입구 거리는 청대 입구 등등으로 바뀐 상태이다.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 셋.


나는 지금까지 똑같은 여자에게 두 번이나 살해당했다.

첫 번째는 사우나 앞, 그리고 두 번째는 모텔 방 안에서 나는 여자에게 목숨을 잃었다.

왜 그 여자가 나를 죽이는지에 대해서 나는 자세한 원인은 잘 모르지만, 그 여자는 나를 알고 있으며,

내가 어디에 있든 간에 그 여자는 귀신같이 나를 찾아온다.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 넷.


가장 결정적인 사실로 나는 죽을 때마다 회귀를 할 수 있다.

회귀하는 장소와 시기는 내가 이 세계로 온 것을 맨 처음 알아차린 MH 그룹 앞, 9월 9일 아침에 나는 다시 태어난다.

내가 왜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고 회귀를 하는지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 다섯.


쓸데없는 정보기는 한데, 정말이지 당연하게도 이 세계 특전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다.

회귀하면 딱 9월 9일 날 그 택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는 그 피곤한 신체 조건으로 회귀를 하는 것 같다.


음…. 이 정도인가?


계산대에서 잠시 빌린 볼펜으로 냅킨에다가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을 조그맣게 글씨로 적기 시작하는 아름이.

전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머리가 어지럽다. 빨대가 꽂힌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 마신 후에 냅킨에 쓰여 있는 문구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속으로 두어 번 읊조린 뒤에 글씨가 적혀있는 냅킨을 구깃구깃 접어서 쓰레기통에 휙 하고 던진다.

마치 NBA의 선수가 던진 공처럼 쓰레기통의 테두리를 맞고 부드럽게 안을 쏙하고 들어가는 냅킨 뭉치.


운이 좋군.


탁 트인 유리창을 내려다본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높이 올려진 타워 팰리스 안으로 개미떼처럼 들어가기 시작하는 회사원들.

지금 시각은 현재 아침 8시, 딱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시작하는 절정이라 그런지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원래…. 여기는 원룸단지였는데.


유리창 너머의 세계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아름은 손에 들려있는 펜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머리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생각해보니까 안 좋네.


생각해보니 정조역전의 세계로 떨어졌다고 해서 좋아할 게 아니었다.


내가 이 세계에 가면, 원래 내가 있던 세계의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부모님은? 내 친구들은? 

게다가 정조역전의 세계라고 해서 이제보니 그렇게 썩 남자들의 하렘 천국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남녀 성별의 구분만 역전된 상황!

당연하게도 이 세계에서도 늙은 여자, 그리고 뚱뚱한 여자, 못생긴 여자 등등…. 그런 여자들이 지천으로 늘비해있다.


한아름, 그도 눈이란 거 달린 입장으로써 그런 여자들을 상대로 자기 좆 대가리를 마음대로 놀리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혜정이 누나 정도면 할 만한데…. 만나러 갈까?


서울 검찰청, 전 회귀에서의 기억에 의하면 그녀는 검찰청에서 일하고 있었다.

뭐…. 이번 회귀에서 혜정은 아름을 모를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뒤를 따라 쫄래 쫄래 걷는 그녀의 지능 수준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번 회차에서도 그녀를 자빠트릴 수 있을것 같다.

근데, 또 그 여자가 나를 찾아오면 어떻게 하지?


전 회귀, 그리고 전전 회귀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나니 등골이 저릿저릿하게 떨리기 시작하는 게 느껴지는 아름이, 아직 추위를 느끼기에는 이른 날씨지만

그의 몸은 한겨울에 팬티 한 장만 입은 사람처럼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한다.


두 번 다시 만나기는 싫은데.


... 생각해보니 그녀는 정말 어떻게 자신이 있는 곳을 귀신처럼 알아채서, 나에게 오는 것일까?

그런 것 까지 생각하기에는 지금까지 한 아름 그는 자신의 두뇌를 너무 혹사했다.


국, 영, 수, 그리고 2개의 사회 영역의 등급을 합치니 40이 나오는 말 그대로 미라클 보이 

한아름은 더는 그런 생각을 할만큼의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까지 알아낸 것도 많이 애쓴 거지 뭐.


불과 얼마 전까지 진라면을 먹을까 신라면을 먹을까? 같은 문제로 머리를 쓴 게 전부인 한아름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카페에서 했던 생각들 하나하나가 전부

그의 한계를 시험하는것이나 마찬가지 였으니까.


자신의 좌뇌와 우뇌를 극한까지 쥐어짜 내서 내린 결론들, 그리고 그 결론을 머릿속으로 도출한 것만으로도 아름의 좌뇌와 우뇌는 뜨겁게 달아올라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다.


일단 머리 좀 식힐까?


원자력 발전소에 냉각수를 들이붓듯이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전부 들이마신 아름이, 그는 빈 잔을 모아놓는 곳에 자기 컵을 내려놓고

다시 카페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그때.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지금까지 두 번 자신을 찔러죽인 그녀가 카페의 2층으로 올라오는 것을 그는 보고 만 것이다!

공포영화의 판박이 표현 중 하나인 미친 살인마와의 우연한 만남 뭐 그런 거냐?! 


무려 자신을 두 번이나 죽인 희대의 광년을 마주하자마자 바로 얼굴에 핏기가 싹 가라앉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는 아름이.

아직 칼에 찔리지도 않았건만 벌써 가슴에서 찌릿찌릿한 통증을 내보내고 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가파르게 뛰기 시작한다. 본능은 도망치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지만 

정작 본능의 명령을 받들어야 할 그의 손과 발은 기름칠을 하지 않은 양철 로봇처럼 삐걱 삐걱거릴 뿐이었다.


"아름아…. 여기 있었구나?"


"어…. 저기 그러니까…."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도 않는 이 상황!

성큼성큼 계단을 두 개씩 한 번에 올라, 한순간에 아름이와 거리를 좁힌 그녀.


그리고 두 팔을 벌려,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죽을 거야, 이번에도 죽을 거야, 또 살해당한다고! 살려줘! 내가 대체 뭘 했다고 내게 이러는 건데, 진짜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내게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를 진짜 못 살게 만드는 거냐고! 


곧 다가올 고통에 대하 눈을 질끈 감는다. 가슴? 배? 아니면 어깨? 언제 또 어떻게 그의 몸을 비집고 들어올지 모르는 차가운 날붙이가 두려워 두 눈을 질끈 감는 한아름.


뭐가 남녀역전이고 정조역전인지 그런 사소한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훨씬 좋고, 아픈 것보다는 안 아픈 게 훨씬 더 좋은 게 모든 세상 사람들의 마음 아니겠는가?

만약에 또다시 회귀를 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바로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서울 중심지에서 벗어난 아주 먼 지방으로 도망을 치겠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해.


대체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번에 회귀하면 아예 쫓아올 엄두도 나지 않게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일본 같은 곳으로 도망쳐보겠다.

그렇게 아름이는 다짐하고 또 이번에 찾아올 고통에 대비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아침부터 어디를 가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던 거야? 바깥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니? 어젯밤 부터 나들이를 가고 싶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나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네.

말만 하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같이 가줄 수 있는데 혼자 아침부터 이렇게 돌아다니면 위험하잖니, 가뜩이나 흉흉한 세상인데 몸조심해야지."


..어?


분명 차가운 날붙이로 몸을 찌를 줄 알았건만 두 팔로 아름이를 꼭 끌어안는 그녀, 향수라도 뿌린 것일까? 향수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어쨌건 간에

기분 좋은 향기가 아름이의 코끝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품은 따뜻하고 또 포근했다.


마치 햇볕에 잘 말린 이불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고 안락한 기분, 아무것도 안 하고 그 자리에 있고 싶은 그런 안락한 느낌이 들었지만, 한아름으로서는 이런 그녀의 반응이 두렵기만 하다.


왜 이러는 거지?


분명 어디서 꺼냈는지도 모를 날카로운 칼로 내 배를 찌르고, 죽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른 그녀의 행동에 오히려 더 강한 경계심을 품는 아름이었다.

위기 시에 바퀴벌레는 IQ가 430까지 상승한다고 했던가?


다시 한 번 한아름, 그의 머리가 다시 비상한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분명 첫 회귀 때 그녀가 보여준 반응 역시 이것과 비슷한 반응이었지?


그때는 무슨 유튜브 몰래카메라인 줄 알고, 그녀를 거칠게 밀쳐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마 조금이라도 싫은 구석을 보이면, 또다시 칼로 자신의 몸을 쑤셔댈 게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아름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녀의 품에 안긴 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물론…. 머릿속은 온갖 공포와 두려움을 포함한 온갖 잡생각들이 가득하지만.


설마 이렇게 가만히 있는데 죽이지는 않겠지? 죽이면 진짜 그거는 사이코패스다. 

그건 그렇고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아는 거야? 무슨 신기라도 있는 건가? 이 여잔?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서 돌아다니면 어떡하니…. 걱정했잖니……."


전 회귀, 그리고 전전 회귀 때 그녀가 보여주던 그 광기 가득한 눈동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름의 눈앞에 있는 그녀는 눈에 약간의 물기가 고여있는, 평범한 여자 그 자체였다.


이런 상황이 굉장히 그녀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눈가에 있는 물기를 손가락으로 훔치기 시작하는 그녀.

누가 봐도 적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아까까지 가지고 있던 두려움이 한여름의 얼음처럼 녹기 시작하는 아름이었다.


좌우지간 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목숨에 위협을 받지 않는 상황인 것 같아, 몸에 힘이 탁 풀리기 시작하는 아름이.


방금까지 빳빳하게 굳어있던 다리에 힘이 탁 풀리기 시작하면서, 천천히 그녀의 품에 기대어 쓰러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아름이를 꼭 안아주는 그녀는 손을 들어 아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아름아, 집에 가자"


전 회귀, 그리고 전전 회귀 때 칼로 자신을 잔혹하게 살해한 여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자애로운 미소를 띈 체 아름을 바라보는 그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름으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아무런 순순히 그녀를 따라 카페 바깥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마음먹었기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상황이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또 조금만 자극하면 금방 품속에 있는 칼을 꺼내서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그녀에게 아름이는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폭탄을 손에 쥐고 있는 기분, 그게 바로 아름이의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차장을 향해 자동차 키를 딸깍거렸다.

그러자 삐 중요한 거리는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에 빛이 켜지며 백미러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차.


그녀의 머리카락 색처럼 검은색 차였다. 차에 대해서 문외한인 아름이 보기에도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차.

대기업 이사? 아니 국회의원이나 탈법한 중후한 느낌의 차체가 인상 깊다.


"아냐, 괜찮아 내가 운전할게."


??누구에게 하는 소리지?


갑자기 혼잣말하는 그녀가 이상해 주위를 둘러보는 아름, 공포에 눈이 멀어 있었던 탓일까? 주위를 둘러보니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자들이 아름과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마 경호원?? 키도 크고 손뼈가 큼직한 것이 아마 오랜 시간을 격투에 쏟아부은 그런 여자들이 주위에 한가득 있는 걸 보니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아름이의 어깨.


분명 그는 알고 있었다. 전 회에서 TV를 통해 이곳 여자들의 신체 능력은 자기가 살고 있던 현대의 남자들과 비슷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자신을 바라보는 눈매가 사납기 그지없다. 아니 원래 저렇게 인상이 안 좋은 것인지는 아름이로서는 알 턱이 없지만서도….


"괜찮아, 해치지 않아"


저는 당신이 제일 두렵습니다.


내뱉지도 못할 말을 속으로 삭이는 한아름. 그저 합죽이처럼 입을 꾹 닫은 체 그녀를 따라 차에 타기 시작한다.


조수석에 앉은 한아름, 지금까지 그가 탔던 소나타나 과학 시리즈들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급스러워 보인 차량 내부 실내장식이 아름의 눈을 사로잡았다.

베이지 계통의 차량 내부는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를 떠올릴 정도였으니까.


비싼 차는 승차감부터 틀리네.


시동이 켜졌음에도 고요하기만 한 차의 내부. 미끄러지듯이 바퀴가 굴러가며 주차장 바깥을 나가기 시작한다. 


"돌아가자, 집으로"


그리고 빌딩 숲이 가득한 대로로 차를 몰고 나가기 시작하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