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philosophy/102936336


오늘은 니체 텍스트를 읽을 때 주로 생기는 오해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에 다루는 경우는 모두 니체가 비판한 철학적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니체철학과 혼동되는 것들입니다.


1.니체의 회의를 데카르트적 회의와 혼동하는 경우.

상당히 흔한 경우입니다. 니체가 데카르트를 비판했다는걸 알더라도, 니체의 회의가 구체적으로 데카르트적 회의와 어떻게 차별화 되는지 모른다면 혼동하기 쉽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데카르트는 확실한 사실을 남겨놓기 위해 회의했고, 니체는 힘의 의지를 느끼기 위해 질문을 반복(영원회귀)했습니다.

데카르트의 회의는 철학이라는 언어적 습관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반해, 니체의 회의는 언어 너머를 가리키고 느끼기 위한 회의입니다.



2.스토아 주의자로 보는 경우


이성과 감성을 대비시키듯, 본능과 규율을 대비시키고 본능대로 살라는게 니체의 가르침인줄 아는 경우입니다.


마찬가지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스토아주의자들은 그들이 지향하는 자연적 태도라는게 따로 있다면, 니체는 현상유지를 벗어나는 모든 것이 자연이 아닌것으로 다뤘습니다. 즉 니체는 <목표로서의 자연>이란 그 자체로 기만적이며,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며, 그가 접근하려는 본능은 항상 현상유지를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니체는 자연의 이데아를 찾으려는게 아니라, 오히려 항상 이데아를 넘어서고 있는 힘을 느끼려는 것입니다.



3.힘에대한 의지를 파시즘적 권력쯤으로 이해하는 경우


힘에 대한 의지는 타자를 지배하는 권력이 아니라, 타자와 내가 혼동될 수 있게끔 언어적 전제를 넘어서 질문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4.신을 원망하는 반종교주의자쯤으로 이해하는 경우


니체는 신에게 원한감정을 가지는 우를 범하지 않으며, 종교를 문헌학적으로 탐구합니다.

그가 신약보다 구약의 취향을 더 고귀한 것으로 치는 이유 역시 구약이 오래되고 방대한 문헌학적 자료기 때문입니다.

그가 배제하려는건 종교적 독단입니다.

종교에 대한 원한을 가지게 하려는게 아닙니다.


5.불교에 우호적이며, 심지어 불교적이라고 보는 경우


어쩌다 이런 오해가 생겼는지 모르겠는데, 그는 불교가 데카탕을 이겨낼 수 있는 좋은 해법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교의 윤회와 니체의 영원회귀를 대비시켜 보시면 니체가 왜 불교도가 될 수 없는지가 명확합니다.


아마 상대적인 우호성이 과장된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스피노자 역시 선배로 언급되다가 나중엔 팽당합니다.



여러분이 알고계신 유형을 말씀해주시면 본문에 추가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