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안 더워?"
"네, 제가 좀 추위를 타서요."
한여름에 긴팔 검은 스타킹을 신은 김독자에게 던진 선생의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나와 다른 애들의 질문에도 동일했다.
그때는 요즘 장마철이라 확실히 추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일로부터 3일정도 지났을까.
그녀도 사람이기에 그런 차림은 더울 수 밖에 없었다.
반 전체가 급식을 먹으러 간 사이 그녀는 맨 윗 단추를 풀고 에어컨바람에 몸을 식히고 있었다.
땀에 젖어 머리카락이 이마고 뺨이고 붙은 그 모습, 그리고 땀에 살짝 젖은 하얀 셔츠가 꽤나 미녀라고 생각하는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무심코 그녀를 눈에 담았다. 그러다가 이상한걸 보았다.
살짝이였지만 보인 그녀의 목 아랫부분이 멍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붉은 것 같기도, 퍼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판단하기도 전에 그녀가 윗단추를 서둘러 잠구는 바람에 정확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그 멍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중혁! 노크좀 해!"
"내 반에 내가 들어가겠다는데 노크를 해야하나?"
"그건 그렇네."
그녀의 평소같은 모습에 안심했다.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나보다 했다.
침대에서 어떻게 떨어져도 거기에 멍이 들 수 없단걸 알면서도 그랬다.
해맑게 웃는 그녀를 보며 무슨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해버렸다.
그 맑은 미소에 뿌려진 흙은 보지도 못한 채.
일주일 뒤, 선생의 입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독자는 오늘 독감으로 결석···"
뒷말은 듣지 않았다.
독감이라니, 걱정은 되었다.
하지만 또 이상한 점을 찾았다.
그녀는 나와 독감 주사를 맞았다.
그것도 나를 끌고 갔다.
그리고 바로 어제도 나와 하교를 같이 했다.
해맑게 웃고, 총총거리며 뛰고,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독감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는 선생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병문안 갈 생각을 했다.
이런걸 해본 적이 없는지라 서툴렀다.
검색을 하니 과일이 제일 좋다길래 사과 하나를 사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자 김독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집에서조차 긴팔 긴바지라니, 사실 열사병에 걸린게 아닐까 싶었다.
말도 없이 온거였지만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녀의 방에 안내되었고 그녀와 마주 앉았다.
여기, 꽤나 후덥지근하다.
"아, 이거."
새빨갛고 둥글고 커다란 사과를 건네자 김독자가 뭐가 그리 웃긴지 실실거리며 말했다.
"크크, 고마워. 지금 깎아올게."
"내가 깎을게. 과도는 부엌에?"
"세면대 위에 걸려있어."
나는 사과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자그마한 과도가 손에 착 감겼다.
나는 사과에 칼을 집어넣어 살살 껍질을 깠다.
생각한대로 되질 않는다.
껍질이 이렇게 두꺼웠나.
나는 더 큰걸 살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그리고 껍질은 또 계속 끊어져서 오래걸렸다.
계속 이러고 있자 김독자가 나와서 말했다.
"너 사과 깎아본 적 없지."
"···미안하군."
"아니, 사과하라고 한 말은 아니야."
그녀가 내게서 사과와 과도를 뺏어가 본인이 깎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가 묶은 머리 아래로, 목덜미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시퍼렇게 물들어 딱 봐도 아파보이는 멍자국을.
나는 그녀가 썰은 사과를 방으로 가져가 같이 먹었다.
마지막 조각을 그녀에게 양보한 후 물었다.
"그 멍, 어떻게 된거야?"
그러자 김독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심란함, 의문, 분노, 그리고는 당혹스러움, 안심, 결심.
이 순서로 느리게 표정이 바뀌더니 김독자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난, 아빠한테 맞으며 자랐어."
꽤 충격적인 얘기였지만 듣기 싫지는 않았다.
"···주먹부터 회초리, 발길질. 하루도 안 맞은 적이 없었어. 다행히 뼈는 튼튼해서 안 부러졌지만."
화가 치밀었다.
아빠라는 작자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나도.
그런 화를 넘어설때즈음 그 화가 확 사라져버렸다.
아니 못 느낄 지경까지 갔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의 지퍼를 내렸다.
온 몸이 멍 투성이였다.
퍼렇고 붉고.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로 비춘 것 같았다.
그리고 곳 곳에는 담뱃불로 지진듯한 흉터도 보였다.
그리고는 옷을 다시 고쳐입고 이마를 보였다.
이마를 감싸던 머리카락이 올라가자 결코 작다 할 수 없는 흉터가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불쌍했다.
부모가 없는 나보다도 불쌍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웃을 수 있고 해맑게 움직이던 그녀가 대단했다.
나는 무심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내 목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감정이 실려있었다.
이 감정이 뭔지는 모르겠다.
김독자가 그 말을 듣더니 입이 움찔거렸고 눈빛이 반들반들거렸다가 죽었다가, 다시 반들거리게 되었다.
"괜찮겠어? 나 좀 많이 먹는데."
"괜찮아, 요즘 인방으로 버는 돈이 꽤 되거든."
그러자 김독자가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아, 너희 아빠에게 쪽지나 적어둬."
"그래야 하려나."
그러면서도 이미 본인은 쪽지를 적고 있었다.
대충 가출한다는 내용인 쪽지를 냅두고 나와 김독자는 짐을 챙겨 그 집을 나왔다.
어쩌다보니 개연성도 캐릭터성도 다 뭉개져버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