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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편

ㅡㅡㅡㅡㅡ


"얌전히 보고 있어라. 사도야."

"읍읍! 읍읍읍!!"


김독자는 구멍을 뚫은 작은 목갑에다가 한수영의 머리통을 넣었다. 사람들이 잘린 머리를 보면 사단이 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예선전은 어제와 달리 아무일 없이 무사히 시작되었고, 본선전에 진출할 아이들이 척척 선발되었다.


"흘흘, 이번 대회에 정말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출전했군요."

"저는 특히나 저기 '의천문'의 아이가 인상깊었습니다. 교관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검을 찔러넣다니."


가주들은 벌써 뛰어난 실력을 가진 중소문파의 아이들을 자신들의 세가로 영입해가려는 욕망이 그득해보였다.


그렇게 예선전이 계속 진행되고, 비유가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구십칠 번 참가자. 김비유라고 합니다."


비유의 목소리를 들은 모두가 비유가 있는 비무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 마교의 무공과 소교주의 무위가 궁금했을 것이 분명했다.

관람객들은 희미한 기대가 섞인 눈으로. 가주들은 불편한 기색으로.


"자네 딸은 정말 씩씩하구만."

"하하, 감사합니다."


수많은 시선을 받으면 압박감에 몸이 움츠러들기 마련인데, 비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선공을 양보하지. 그럼 오게."


교관이 선공을 양보했지만......비유는 검을 뽑지 않고 요상한 자세를 취했다.


가주들이 술렁였고, 김독자는 비유가 무얼 할지 알았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는. 들려오는 굉음에 삼켜져 버렸다.


파지지지지지지직!


비유의 양손에서 그녀의 키보다 조금 크고 뇌기가 넘실거리는 새하얀 창이 만들어졌다.


가공할 기파에 모두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고, 교관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비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번개의 창을 교관을 향해 던졌다.


창은 교관을 뚫어버릴듯한 속도로 날아가다가 그의 눈앞에서 터져버렸다.


콰아아아앙!


충격파와 흙먼지가 비산했기에 모두가 고개를 돌리거나 손으로 얼굴을 막았다. 슬쩍 눈을 떠보니 교관이 비무대의 바깥으로 튕겨져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본 무당파의 장문인, 목승이 한수영의 머리통이 담긴 목갑을 팡팡 치며 웃고있는 김독자에게 호통쳤다.


"지금 이게 뭐하자는 짓인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건 생사결이 아니란 말일세! 그런데 교관에게 저런 무식한 절기를 날려? 그대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인가!"


모두가 목승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김독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저 교관이 죽었습니까?"

"뭐라?"


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간 교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교관은 내상을 입어 피를 토하기는 커녕, 넋이 나간채로 상체를 일으킨채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고 있었다.


"제 딸이 진심으로 절기를 썼다면, 닿기도 전에 교관을 감전사 시켰을 겁니다."

"허......"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비유의 실력에 대해 계산하기 시작했다.


스무살도 안된 나이에 기를 유형화시켜 절기를 날리고, 심지어 그 절기의 위력을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해 교관을 큰 상처없이 제압했다는 것.


비유의 무위는 모두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바, 방금 내가 무얼 본거지?"

"마치 작은 번개를 집어 던지는 거 같았네......"

"저 어린 소저가 벌써 저런 무위를......"

"황보세가와 서문세가도 저정도는 아니었어."


(황보세가와 서문세가의 무공은 뇌기(雷氣)를 다루기로 유명하다.)


관람객들은 비무대의 중앙에 일직선으로 생긴 검은 그을음을 보고 공포에 질리거나 감탄했다.


그렇게 비유의 이름이 정파 무림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

.


대기실.

비유가 예선을 마치고 돌아오자 경계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비유는 어깨를 으쓱하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 파천문의 아이들이 비유를 향해 달려왔다.


"야, 소교주! 방금 그거 무슨 기술이야! 무슨 번개를 집어던지는 줄 알았다고!"

"인정, 나도 마교에나 갈걸......지금이라도 가면 나도 배울 수 있을까?"

"사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파천붕권도 아직 배우는 중인데."

"농담이야 농담."


비유는 씨익 웃은다음 짐을 챙겨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관객석에서 남은 예선전을 관람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비유는 김독자에게서 받은 용돈으로 저녁 식사를 사겠다면서 아이들을 이끌었다.


.

.

.


"절기 이름이 멸혼백뢰신창이라고요?"

"영혼을 멸한다....무시무시한 이름이네."

"근데 아까 교관 아저씨 혼이 쏙 빠진 거 보면 어울리는 이름인데요?"

"그치?"


나는 낄낄 대며 식당 거리를 빠르게 걸었다.

자식들, 이제 삼대오의 중에 하나를 보여준 거 뿐인데. 기대해라.


"비유야, 너 잘하면 별호 하나 생기겠다."

"진짜?"

"그럼! 별호라는게 원래 그 사람이 보여준 검법이나 기술에 따라 정해지기도 하거든? 그게 충격적일수록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는거지. 아, 마교의 소교주는 번개를 집어던지더라....하고."

"오......"


별호가 생긴다고?

기왕이면 좀 멋있는 걸로 생겼으면 좋겠다.


뇌제(雷帝)라던가 벽력대제(霹靂大帝) 같은걸로.


기왕 별호가 붙는김에 '왕'이나 '제'가 붙는게 더 멋있고 좋지 않은가?


나는 스스로 별호를 상상하며 헤벌쭉 웃었다.

그걸 본 하영이는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식당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지혜 언니가 외쳤다.


"우리 술도 시키자!"

"술?"


술이라니. 물론 나도 성인식을 치뤘고 다음해에 열아홉 살이 된다. 그런데 나는 술을 한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다.


설마 지혜 언니는 마셔본 적이 있는걸까?


"언니는 술 마셔본 적 있어?"

"엥, 너는 없어? 한번도?"

"응. 아직."

"사실....나도 아직...마교는 좀 일찍 배울 줄 알았지."

"그거 편견이야."


에이 뭐야, 술이라도 가르쳐달라고 하려 했는데.

괜히 기대했네.


"저기봐. 마교의 소교주다."

"저 옆에는...파천문이구만."

"파천문이 마교와 어울린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이 사람아, 그게 아니고 특별 감시 대상이라 맹주님이 직접 자신의 제자들을 붙여 감시하는 것일세."


물건을 파는 상인들, 또는 칼을 찬 무림인들이 우리를 보고 수군거렸다.

내가 멸혼백뢰신창을 쓰고나서 유명해지긴 유명해졌나보다. 나는 사람들의 감탄사를 들으며 속으로 싱글벙글 웃었다.


"비유 누나 조금 소름끼쳐요."

"크흠......쉿."


우리가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들어가려 할때.

한 무리가 우리 앞으로 끼어들었다.

나는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몸을 살짝 뒤로 뺐다.

노골적인 새치기였지만, 지금 맛있는 식사가 코앞이었고 괜한 시비가 붙지 않게 짧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그럼, 미안해야지. 너 같은 마교 놈들이 여기서 이렇게 고개 빳빳이 들고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데."


아, 이 새낀 또 뭐지.

내가 뭐라 한마디 하려 할때, 지혜 언니가 말했다.


"지금 뭐라 씨부렸냐?"

"허, 파천문 놈들이구나. 이제 보니 아주 그냥 마교의 개가 다 됬네."

"파천문이고 마교고 나발이고 넌 뭔데 그렇게 말하는 거냐?"


잘한다. 지혜 언니. 좀 더!

그때 무리의 다른 남자가 말했다.


"이 놈! 말을 삼가라. 이 분은 대 남궁세가의 소가주이신 남궁언이시다."

"아, 잘나신 남궁세가께서 이렇게 치졸한 새치기를 하신다?"

"됬어, 언니. 그냥 다른데 가자. 여기서 시비 붙으면 안돼."


나 대신 나서준 건 고맙지만, 여기서 다툼이 일어나선 안된다. 벌써 사람들이 우리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교의 소교주가 남궁세가랑 시비가 붙었다!"


누군가 외치자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다. 저걸 외친 사람도 분명 남궁세가의 사람임이 분명했다.


치졸한 새끼들.

치졸한 건 저 새끼들이었지만, 나와 아빠랑 언니들은 이번 대회동안 특별 감시 대상이었기 때문에 경거망동 하면 안된다.


"됬어, 언니. 여기서 싸움이 붙으면 큰일 나. 차라리 다른 데로 가자."

"뭐? 넌 아무렇지도 않아?"

"아이, 그냥 가자니까. 우리가 너무 불리해."

"아, 그럼 한마디만 더 하자! 딱 한마디만!"


지혜 언니 제발, 고마운데 체통 좀 지켜.

하영이랑 길영이 유승이는 잘 이해한 거 같은데. 왜 언니만......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어디서 마교 놈이 이렇게 기어들어와가지곤, 쯧쯧......"


저 새끼는 본선에서 만나면 그냥 죽여버려야겠다.

맹주님한테 말해서 대진표 좀 조작(?)해달라고 할까? 저 새끼 가장 먼저 탈락시켜버리게.


남궁언. 내가 기억했다.


"길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예? 아, 예."


비유가 저 멀리 사라지고, 남궁세가의 무리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모여든 양민들은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마교랑은 많이 다른데?"

"그러게, 저렇게 쉽게 물러가다니..."

"그래도 다행일세, 저 혈기왕성한 애들이 바로 칼 뽑고 날뛰었으면 오늘 장사 접었어야 했는데 말이지."

"그건 맞네. 오히려 저 남궁세가에서 시비를 걸었는데 참고 넘어간 가 보면 대단한 거지."


양민들은 예상외의 상황에 신기한 듯 대화를 나누면서도 안심하면서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

.

.


"으, 진짜 열받네."

"참아. 본선전에서 발라버리면 그만이야."

"끄응...니가 나보다 낫다."


지혜 언니는 화가 많이 났는지 냉수를 연거푸 들이켰다.


"에휴, 아무리 니가 소교주여도 남궁언은 조심해야해. 걔 오룡(五龍) 중 한명이야."


오룡(五龍). 즉 다섯 마리의 용.

소설 좀 읽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대충 후기지수들 중에 실력이 뛰어난 애들을 싸그리 모아가지고 오룡이니......이무기니...하는 것.


그치만, 지금 나에겐 그 오룡들은 살생부에 불과하다. 다 죽여버려야지.


"오룡 같은 놈들은 전부 다 저래?"

"세가 쪽 애들은 원래 다 저래. 구파 쪽 애들은 그래도 도가 쪽 애들이라 좀 선한 면이 있긴 하지."

"그렇구만......뭐 그러면 오화(五花) 같은 애들도 있겠네?"

"오화는 없고 삼화는 있어."


삼화.

오룡이 남자 후기지수들이었다면, 오화는 반대로 실력 좋고 예쁘장한 세명의 여자 후기지수들을 말한다.


"언니는 꽃은 못 되겠네."

"지금 뭐라?"

"아까 남궁언이랑 말할때 입담이 아주 그냥....."

"푸하하! 사저가 그런면이 좀 있긴 하지."

"이것들이 입 안 다물어?"


지혜 언니가 언니의 쌍룡검을 뽑으려고 할때, 음식이 나왔다. 역시 맛있는 거 앞에선 장사 없다.


"일단 밥부터 먹자."

"그치. 든든하게 먹어야지."

"잘 먹겠습니다."


지금은 안 좋은 감정들은 멀리 떠나보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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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유, 오늘 완전 멋있던데?"

"흠흠, 감사합니다."

"이 녀석, 잘난척은..."

"헤헤헤."


파천문 친구들과 헤어지고나서 아빠와 희원 언니랑 상아 언니를 만났다. 그리고 그 옆에 쓸모없는 떨거지들도.


"안녕하세요. 장문인 선배님들."

"크흠...반갑네. 소교주."


나한테는 파천문 친구들이 붙었는데, 아빠한테는 구파의 장문인들이 붙었나보다. 그리고 자기들한테 인사를 좀 늦게 했다고 눈치를 팍 준다. 마음에 안든다. 노인들은 차례로 화산파, 종남파, 그리고 무당파와 점창파의 장문인들이었다.


장문인들 정도는 되어야 아빠를 막을 수 있다는 걸까? 물론 아빠를 일대일로는 이기려는 것은 바보짓이었기에 네명 씩이나 붙은 게 분명했다.


"아빠, 맹주님한테 부탁해서 대진표 좀 바꿔달라하면 안되요?"

"말씀은 넣을 수 있는데...왜. 싸움이 붙었니?"

"그건 아니고...아까 애들이랑 저녁 먹으러 가는데 남궁언이라는 애가 갑자기 욕을 날리잖아요. 마교놈들이 고개를 뻣뻣이 들고다닌다면서."

"끄응, 대진표가 이미 정해져서 아무리 맹주님이라도 힘들텐데....."

"그럼 됬어요. 그냥 만나면 부숴버릴게요."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만난다는 뜻이니까. 나는 내 일만 잘 하면 된다.


"크흠...소교주, 그 발언은..."

"아 죄송요."


장문인 할아버지들이 눈치를 준다.

아무래도 세가 연합에서 가장 세력이 큰 남궁세가이기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보니 저 할아버지들도 불쌍해보였다.


"상아 언니. 오룡삼화에 대해서 알아요?"

"알지. 궁금해? 비유 너도 잘하면 사화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에이. 전 마교 사람이잖아요. 정파의 별호는 가지고 싶지 않아요. 마화(魔花)라면 모를까."

"잘 어울리는데? 이제 아빠랑 같이 무림공적이 되자꾸나. 일단 무림맹 비고에서 무기 몇개를 슬쩍하고......"

"당신 진짜 훔쳤어요?"

"쉿. 방금 그건 말실수."


아빠의 농담에 우리는 낄낄대며 웃었지만, 장문인들은 아니었나보다.


'맹주님은 대체 어쩌자고 저런 자를.....'

'내 살다살다 이런 교주는 또 처음보는구나.'


그렇게 걷다가, 상아 언니의 장원에 도착했을때, 장문인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원래는 상아 언니의 장원에 머물면서 감시를 해야했지만, 상아 언니가 완강하게 거절하자 다들 물러갔다.


상아 언니 진짜 장난 아니다.


"으아, 오늘 하루종일 앉아있으려니까 피곤해 죽겠네......상아야 괜찮아?"

"아뇨. 괜찮을리가 있겠어요?"

"하긴....."


오늘 상아 언니는 아빠의 옆자리에 앉음으로써 두 분의 관계를 밝혔다고 한다. 공개적인 자리라 세가 연합의 가주들은 큰소리를 치지 못하고 아빠랑 상아 언니를 계속 노려보고 세뇌당한 것 아니냐면서 회유하려고 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 뭐 이런건가?

속담 활용이 잘못된 거 같지만......에이, 몰라.


"운기조식 조금만 하자."

"저도 운기조식하고 좀 씻어야겠어요."


아빠랑 상아 언니는 안으로 각자의 방으로 사라졌다. 흑염 아줌마의 머리통이 담긴 작은 목갑은 덤이었다.


"근데, 두분은 언제부터 합방해요?"

"글쎄, 때 되면 어련히 알아서 하시지 않을까?"

"과연 그럴까요?"


희원 언니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설화 언니를 마중하겠다며 팔각정자에 앉아 가만히 장원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고, 비무대회의 본선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

.

.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의 응원 소리와 함성 소리가 울려퍼졌다.

사회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올라와 선수를 소개했다.


비무대회는 백이십팔강 전으로, 임의로 정해진 상대에게서 승리해 절반씩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남궁언! 남궁언!"

"남궁세가의 힘을 보여줘라!"


아, 저 새끼. 어제 그놈이다.

오늘 첫번째로 진출해 본선전의 분위기를 돋우려는 것이 분명했다.


상대방은 중소문파 출신인 '영건'이란 친구였다.

본선전에 진출한 것 부터가 이미 어느정도 재능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남궁언과 영건이 짧게 인사를 나눈 다음, 검을 뽑고 서로를 향해 겨눴다. 남궁언의 표정은 자신감이 넘쳐보였지만, 영건은 벌써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시작!"


심판이 신호를 주자, 남궁언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쳤다.


캉!


철과 철,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졌다. 영건은 엄청난 충격에 얼굴을 굳히고, 몸을 비틀어 남궁언의 검을 쳐낸 후 뒤로 조금 물러섰다. 방금 그 내려치는 공격에 영건의 손아귀가 찢어져버렸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고, 그걸 또 억지로 막느라 벌써 영건의 손에선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궁언이 웃으며 말했다.


"영건이라고 했나? 방금 그걸 막는 건 칭찬해 줄만해. 대부분 그걸 못 막고 나가떨어지거나 하거든. 그러니까, 이제 기권해라. 더 추한 꼴 보이기 싫으면."

"크윽......"


영건은 검을 고쳐잡았지만, 덜덜 거리는 손은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검 한번 못 휘두르고 탈락하긴 꼴사납지 않은가? 영건은 이를 꽉 깨물고 남궁언에게 달려들었다.


"그래도 근성은 있는 놈이구나."


영건은 남궁언의 어깨를 사선으로 내리쳤다가 재빨리 하단을 파고들었다.


캉!캉!캉!캉!


"이것밖에 없나?"


남궁언은 영건의 칼을 모조리 방어해내었다. 오히려 영건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자신의 손이 더욱 아파왔다. 더 이상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영건은 이제 자신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어느새 자신의 목 앞에 멈춰선 검을 보고 침을 한번 삼킨 다음, 중얼거렸다.


"졌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영건은 검을 집어넣고 떨리는 손으로 납검한 다음, 포권을 취했다. 그러나, 남궁언은 자신을 무시한채 벌써 등을 돌려 비무대를 내려가고 있었다.


영건은 분노를 참으며 의약당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저, 저 싸가지 없는 새끼 저거."

"참아, 나중에 이기면 되는거야."


남궁언, 오룡 중 한명이라 불릴 만 했지만, 희원 언니랑 현성 아저씨보다 더 약했다. 아니, 교의 무력대 대주 아저씨들보다.


나는 대주 아저씨들과의 대련에서 몇번 승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저놈은 충분히 발라버릴 수 있었다.


"다음 대전자는!......"


비무대회는 계속되었다.


.

.

.


"흐음, 저 애가 남궁언이구나."

"음......"


김독자와 유상아는 서로에게 검을 겨눈 남궁언과 영건을 바라봤다가 피식 웃었다. 유상아가 의아해하자 김독자는 목갑을 손가락으로 따다닥 튕기며 말했다.


"아, 갑자기 옛날 생각 나서. 우리 처음 대련했을 때 기억나?"

"당신,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땐 진짜 웃겼으니까."

"놀리지 마요!"


유상아는 김독자의 어깨를 팡팡 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독자는 실실 웃고 있었다. 남궁민영이 웃으며 말했다.


"둘이 정말 사이가 좋아보이는구만. 그래서 혼례는 언제 올릴건가?"

"아, 가능하면 내년 봄으로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나도 꼭 불러주게."

"물론입니다."

"이제 시작하나봐요."


유상아도 자세를 바르게 고쳐잡은 뒤에 흥미진진한 눈으로 경기를 감상했다.


'씨발, 존나 꽁냥대네. 누군 서러워서 살겠나.'


목갑안에 있던 한수영은 둘의 염장질에 구역질이 쏠렸다. 그 둘을 보는 세가의 가주들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

.

.


"비유야, 이길 수 있지?"

"두번 말하면 잔소리지."

"비유 누나, 그냥 묵사발을 만들어버려요!"

"그러면 우리 설화 언니만 고생해."


하영이와 유승이는 벌써 승리해 의약당으로 가 상처를 치료 받고 있었다.

지혜 언니는 손 쉽게 이겼고, 길영이는 아직 차례가 되지 않았기에 나를 응원해주었다.


"갔다 올게!"


나는 비무대 아래에 서서 사회자가 우리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을 기다렸다.


"다음 시합! 마교의 김비유! 그리고 백리세가의 백화 (白花) 백리연!"


백화(白花)!

백리연이다!

정파의 힘을 보여줘라!


백화 백리연.

나는 눈 앞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새하얀 무복의 백리연을 바라봤다. 별호 답게 새하얀 옷을 입고 남자들 여럿 울렸을만큼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역시 괜히 별호가 붙는 게 아니다.

그리고 별호가 붙는다는 것은 이미 강호에서 좀 알아준다는 의미. 처음부터 나를 떨어뜨리려고 이런 애를 붙인 거겠지. 뻔하네.


"두 참가자는 준비되었습니까?"

"예."

"네."


백리연이 먼저 검을 꺼내 나를 겨눴고, 나는 한 박자 쉬고 발검했다.

내 검을 본 심판과 백리연은 당황했고, 그리고 관람객들에게서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백리연이 소리쳤다.


"이봐요. 지금 비무가 장난인가요? 당장 진검을 가져오세요!"

"음, 미안한데 나는 아직 검이 없어. 아빠가 대회 끝나고 하나 사주신다던데......"


당연히 나는 내 무기인 '비유목검'을 꺼냈다.

이래뵈도 이게 철심을 박아서 나름 무게가 있고 튼튼하다. 손잡이 감촉도 부드러운 좋은 목검이다. 


"지금 그 목검으로 나를 조롱하려는 것이면 당장 기권하고 내려가세요."

"싫은데. 쪽팔릴거 같으면 니가 내려가던가."

"그만! 김비유 참가자. 정말 목검으로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심판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백리연은 나를 물어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 너무 피곤하다.


"당신에게 정파의 힘을 보여주도록 하죠."

"네네~. 좋은 비무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심판이 입을 열었다.


"양측 준비......시작!"


선공필승.

나는 백청신공을 운용하며 왼손에 백청신공의 뇌기을 담아뒀다. 검으로는 거의 동시에 허벅지와 어깨를 두번 찔렀다. 백리연은 내 속도에 당황했는지 눈을 크게 뜨며 겨우겨우 방어해냈다.


백리연은 내 검을 막아내는 동시에 물 흐르듯 부드러운 동작으로 내 가슴을 향해 반격하듯 검을 찔러넣으려고 했다.


그때, 나는 충만한 뇌기(雷氣)가 담긴 좌장을 내질렀다. 백리연은 내 장력을 검을 휘둘러 검풍으로 튕겨냈다. 그러는사이 나는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손목이나 어깨, 목을 향해 목검을 찔러댔다.


목검이라 큰 상처를낼 걱정이 없었기에 작정하고 찔렀다. 백리연이 내 목검을 막아내면서 요상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쉬익!


순간, 나는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를 듣고 목을 뒤로 젖혔다. 내 눈앞으로 아슬아슬하게 백리연의 검이 지나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백리연의 회심의 일격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세를 고쳐잡기 전에 품 안으로 파고들어 그녀의 어깨에 내 왼손을 가져다대었다.


파지지지직!


됐다. 내가 이겼다.

몸 속으로 침투한 뇌기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는 백리연.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내공을 운용해 최대한 뇌기를 막아보려고 하고 있었다.


챙그랑!


그러나 이미 마비된 그녀의 팔은 검을 떨어뜨렸다.

나는 맘 편히 그녀의 머리의 목검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툭.


아주 살짝 머리를 쳤다.

나는 심판을 바라보았다.


"승자는요?"

"스, 승자는 마교의 김비유!"


"백화가....열초식도 못 버티고...졌다고?"

"쯧, 세가라고 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마교에서 괴물을 키우고 있었구나...."


백리연은 아직도 뇌기를 해소하지 못했는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짚고 다시 뇌기를 빨아들였다.


"하아.....하아...."

"어때? 찌릿찌릿하지?"


백리연은 주저앉은 채 나를 죽일듯한 눈으로 노려봤다. 근데 뭐. 내가 이겼다. 꼬우면 이기든가.


"좋은 비무였습니다."

"......한 수 잘 배웠습니다."


그래도 얘는 어느정도 예의는 아는 애다.

졌어도 분노를 참지 못하는 애들도 몇몇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어서 의약당으로! 빨리!"

"난 괜찮아....하아...잠시 다리가 안 움직일 뿐이야."


내가 몸을 돌리자 백리세가의 일원들이 백리연을 부축하려고 올라왔다. 나를 노려보는 것은 덤이었다.


나는 싸늘해진 관객석을 쓱 훑어보곤 천천히 비무대를 내려왔다.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 속엔 시기, 질투, 증오, 공포의 눈빛이 담겨 있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크게 다친 곳이 없었기에 자리로 돌아가 대회를 관람했다.


내 다음 차례인 길영이는 조금 고전했지만 승리해 우리는 모두 육십사강 전에 출전하게 되었다.


백이십팔 강 전이 끝났으니 육십사 강 전은 내일이었다.


배고프다.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

.

.


육십사강 전.


"점창파의 임후백이라 합니다. 조심하시길, 제 창에는 눈이 없으니......"

"그럼 나도 창으로 할게. 걱정마. 이번에는 안 던질 거니까. 나와라. 멸혼백뢰신창."

"자, 잠깐!"


파지지지직!


나는 멸혼백뢰신창을 만들고 자세를 잡았다. 투창의 자세가 아닌 단창의 기수식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나는 검수이자 창수였다. 아빠에게서 이 절기를 전수받았을때 투창 뿐만 아니라 공수의 자유로운 변환을 다룰 수 있다.

그리고, 임후백의 창과 내 창의 길이는 얼추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내 창은 뇌기로 만들어졌고, 위후천의 창은 철로 만들어졌다는 것. 승부는 안 봐도 뻔했지만, 임후백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그래봤자 내력이 바닥나는 것은 시간문제! 핫!"

"이걸 덤비네......"


임후백은 자신의 창과 내 뇌창이 부딪힐 때마다 스며드는 뇌기를 자신의 내공으로 최대한 방어하면서 창을 휘둘렀다.


챙그랑!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임후백의 손이 마비되어 그의 창이 바닥을 굴렀다.


"더러운 마교놈! 이런 사악한 마공을 쓰다니!"

"진 놈이 말이 많네. 넌 집에나 가라. 그리고 이건 맹주님도 인정해주신 무공이거든? 니가 뭔데 마공이니 뭐니 하면서 지랄이야?"


빠악!


"마, 마교의 김비유 승!"


삼십이강 전.


"사악한 마두답게 더럽고 치졸한 수를 쓰더구나. 하지만 나 '서문찬'에겐 통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뇌기 쓰는데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서문세가도 뇌기(雷氣)를 다루는 가문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소가주 서문찬은 어려서부터 영약이란 영약은 밥 먹듯이 먹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같은 뇌기를 쓰는 자라면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그는, 후기지수들 중에서 유명한 오룡 중 한명인 뇌룡(雷龍)이었다.


빠지지지직!


"끄아아아악! 기, 기권! 제발!"

"쯧, 뇌룡이라해서 쎈 줄 알았는데...."


그랬다. 자신'만' 있었다.


"마교의 김비유 승......"


십육강 전.


"이 신성한 비무대회에 너 같은 마교인이 설 자리는 없다. 지금 당장 검을 놓고 기권해라. 그렇게만 한다면 그 피비린내 나는 몸뚱아리에 상처 하나 없이 돌려보내줄테까. 이 '구양훈'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뻐억! 뻐억! 파지지지직!


"......마교의 김비유 승."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십초식 이내에 출전자들을 제압하며 팔강까지 올라왔다. 내가 승리할 수록 분위기는 점점 싸해져만 갔다.


저들이 져놓고 나를 노려보는 이유가 뭔지모르겠다. 올라오는길에 만나는 애들 때문에 귀가 너무 피곤했지만, 딱히 상관 없었다. 내가 이겼거든.


팔강에서의 내 상대는 장하영.

하영이는 남자였지만, 예쁜 얼굴이었기에 벌써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하영이가 자세를 잡으며 주먹을 올렸다.

그 전에, 하영이가 친절히도 나를 배려해주었다.


"조심하는게 좋을 걸? 그 목검 부러질 수도 있어. 아끼는 거 같던데."

"오, 그렇다면 나도 맨손으로 상대해줘야지."

"너희 무공 백청신공이라 했나? 그거 너무 사기야."

"부럽지? 부러우면 입교하던가. 지금 입교하면 재산의 절반만 지불하고 외당에 입교 할 수 있어. 아빠도 좋아하실 걸?"

"원래는?"

"전재산 우리한테 주고, 입교시험도 치뤄야 해."

"그러면 그냥 안갈래."

"그래. 후회없이 한판 붙자."

"후회없이."


그걸로 우리의 대화는 끝이었다.


"양측 준비......시작!"


푸아아아앙!


시작하자마자 하영이의 오른손에서 뿜어진 권풍이 내 시야를 어지럽혔다. 나는 양손에 백청신공의 뇌기를 휘감고 손을 휘둘러 시야를 확보했다.


쐐애액!


시야를 확보하던 사이 다가온 하영이의 오른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쇄도했다. 나는 뒤쪽으로 보법을 밟으며 하영이의 손이나 손목을 잡아 뇌기를 주입하려 시도했지만, 하영이의 주먹이 너무 빨랐다.


슉! 솨악! 후웅!


내 귓가를 스쳐가는 울림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저 위력의 주먹을 맞으면 한방에 뻗을 게 분명했다. 나는 더욱 거리를 벌렸다.


"뭐야! 왜 자꾸 도망가!"

"나는 원래 도망을 잘 쳐."

"그래? 그러면......흐읍!"


하영이의 손에서 황금빛 권기(拳氣)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관객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권기다!"

"역시 파천문! 잘하면 장하영 소협이 이길지도!"


검기보다 권기가 상대적으로 발현하기 쉽다. 사물에 기를 옮겨담는 것보단 자기 손에서 바로 뻗어져나오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하영이가 절대 약한 것은 아니다.


"조심해라. 간다!"


권기가 실린 파천붕권이 나에게로 쏟아져왔다. 나는 재빨리 허초와 실초를 구분해 뇌기가 담긴 장풍(掌風)을 내질러 권기를 막아냈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권기가 부딪히며 생긴 굉음이 귀를 어지럽혔다. 하영이는 멈추지 않고 기의 충돌 때문에 일어난 흙먼지를 뚫고 나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쌍장(양 손바닥)을 내질러 성공적으로 기습을 방어해냈다. 하영이는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였다.


하영이와 나는 수십합을 맞붙었다. 어깨를 향해 손가락을 찌르기도 하고, 옷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는 걸 막아내기도 하고, 말 그대로 막상막하였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내 오른발에 뇌기를 주입했다. 하영이의 손이 내 턱을 향하는순간!


파직!


"으윽?!"


나는 한 손으로 하영이의 손을 막음과 동시에 오른발로 하영이의 왼발을 밟았다.

순식간에 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뇌기 때문에 하영이의 하반신은 마비된 상태.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하영이한테 혀를 내밀었다.


"김비유 너!"


하영이는 다리가 뻗뻗하게 굳은채로 주먹을 내질렀지만, 나는 이미 그의 등 뒤를 점했다.


"후아...잘못하면 질뻔했네. 그러길래 내력을 아꼈어야지. 권기를 그렇게 함부로 쏟아내면 되겠어?"

"진짜...너한테는 못 이기겠다."


하영이는 한숨을 쉬며 손을 내리고 패배를 인정했다.


"마교의...김비유 승."


팔강전도 승리하자 관람객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러다가 정말 소교주가 승리하는 거 아닌가?"

"그, 그럴리가!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일세!"


"후아......가자, 내가 부축해줄게."

"그래, 재밋었다."

"나도."


나는 하영이를 부축해 의약당에 있는 설화 언니에게로 데려갔다.


"비유야, 그냥 니가 이겨라."

"내가 이겨도 되는 거야?"

"니가 이기면 적어도 나는 우승자에게 진 거니까."

"음, 그러면 꼭 이길게!"

"그래그래."


그렇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속에 팔강전이 마무리 되었다.



다음에 계속

ㅡㅡㅡㅡㅡ

이겢 4강전과 결승전만 남았네

기대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