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손에 닿는 가죽장갑의 감촉이 희미해지고,

발끝부터 서서히 감각이 사라져간다.



이계의 신격과의 계약의 대가를 치룰 시간이 다가온건가.


저 멀리 달려오는 일행들의 얼굴이 흐릿해져간다.



"유중혁 대장!!!"



"눕고싶다."



이지혜와 김남운이 주위의 돌을 발로 쓸어낸 뒤,

이현성이 천천히 그 곳에 나를 눕혔다.



"대장···  좀만 참아. 거의 다 왔어 응? 참을 수 있지? 대장이잖아··· "



숨이 넘어갈 정도로 통곡하는 이지혜의 어깨에 대천사가 손을 얹었다.



나는 내 제자에게 그 어떤 위로도 건넬 수가 없다.



내가 건네는 모든 위로가, 순간이 지나면 이 아이를 옭아 맬 족쇄가 될 것이 틀림없다.



이제 겨우 눈을 돌릴 힘 밖에 남지 않았지만 간신히 입을 떼 일행들에게 현실을 고했다.




"때가··· 온 것 같다."



폐허가 된 서울 속에, 엄숙하고 숭고하게 무너진 해상전신의 동상이

마치 지금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처럼

5분, 10분, 15분, 짧고도 긴 찰나동안 침묵이 이어져갔다.



침묵의 시간을 깬 것은 다름아닌 김남운이였다.



"··· 나도 가끔은 생각해. 그곳에서 죽는 건 나였어야 했다고. 대장도 그렇게 생각하지?"



김남운은 주위의 무너진 건물 파편에 걸터앉아

반병신이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겨우 돌려 김남운의 얼굴을 쳐다봤다.

장난스런 눈에 빗방울이 한없이 맺혀있었다.

이내 한 방울씩 떨어진 빗방울이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웅덩이에 눈물이 하나 둘 떨어질 때 마다

울음소리는 더 커져갔다.

다시 짧은 시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난 뒤,

눈물을 멈춘 이현성이 말을 이어갔다.



"유중혁 대장, 당신이 회귀자라서 다행입니다···"



그 말에 이지혜가 내 어깨를 붙들고 이야기했다.

"모두 돌아가는 거야. 대장이 그랬듯이, 우리도 그때로 회귀하는 거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러면··· 그러면···"

이지혜가 말끝을 흐리며 계속해서 통곡했다.



나도 너희들과 함께 회귀 해 1000회차의 삶에서 이 세계의 결을 보고 싶다.

하지만, 1000번에 가까운 회귀속에서 

집단으로 회귀한다는 시도를 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일행들도 이 사실을 아는 듯 그 누구도 이지혜의 말에 동참하지 않았다.

빛을 잃은 찬란한 대천사가 이지혜의 어깨를 감싸고

그녀의 머리칼에 파묻혀 흐느꼈다.



-「"눈을 감지 마라. 네 검이 누구를 죽이는지 똑똑히 기억해라."」



어느 회차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죽음을 받아들일 때, 회귀를 시작할 때

눈을 감지 않았다.



내 선택이, 내 의지가, 내 회귀가 

누구를 죽이는지 똑똑히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한쪽 눈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바라보았다. 통곡하는 내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번 생에도 너희를 죽이는구나.



한가지 아쉬운건, 망가진 한쪽 눈으로는 너희 모두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성흔, '회귀'가 발동을 준비합니다.]



시스템 알림창이 뜨고 난 직후, 전신에 감각이 사라져갔다.

한 발자국도 일행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던 내 몸이

버티지 않으면 한 순간에 날아가버릴 정도로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통곡하는 일행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지만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저들 중 그 누구도 우리를 비추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배후성도 다를 바 없다.

이 영원불멸할 속죄의 성흔을 만들어준

내 배후성은 단 한번도 나를 비춘 적이 없었다.

그는 대체 왜 나에게 이런 길을 주었을까,

나와 그는 대체 언제 만났던 것일까,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 일행들에게 생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행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가볍게 응시하고,

마지막 사력을 다해서 입을 뗐다.



"···너희들은 실패한 회차가 아니다."

"설령 이 세계의 끝이 비극이라고 해도·····너희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발 끝부터 서서히 황홀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



[성흔, '회귀'가 발동합니다!]



"대장."

"당신만 믿어."

"다음 회차에선, 반드시 세계를 구해줘."



세계를 구한다는, 이 세계의 끝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많은 사람을 베었다. 개중에는 너희들도 여럿 있었다.

여태까지 내가 죽인 사람들의 희생에 응당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이룩해야 하는 이 역설적인 숙명이

회귀자의 운명인가.



내 죽음에 좌절하지 마라.

내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내 의지를 이어가기 위해, 나와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나를 뛰어넘기 위해

이 세계의 결을 맞이해라.


그렇게 강해져서

누구보다 강해져서

저 하늘의 별들조차 너희들을 두려워 하게,

누구도 너희를 이용하지 못하게,

모든 존재의 왕으로써 군림할 수 있게

그렇게 강해져서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다음 회차를 살고있는,

단순한 변덕으로 이번 삶의 너희를 농락하고, 다시 회귀한 날 만나게 된다면



가차없이 베라.



그러니



"살아남아라."




[성흔, "회귀"가 발동되었습니다.]




진천패도를 쥔 소녀는 찢어질 것 같은 폐의 고통을 붙잡고 계속해서 통곡했다.

흰 머리의 소년은 망연자실 한 듯, 웃다 울다를 반복하며 지쳐갔다.

누구보다 강한 심장을 가진 사내가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냈다.



에덴의 대천사가 소멸하는 회귀자의 화신체를 붙잡고서 

어딘가에 존재할 이계의 신격을 향해 소리쳤다.



"죽인다. 죽일 것이다.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 말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계선을 건너서라도, 반드시 이 원한을 갚을 것이다.

설령, 내가 선을 저버리고 악이 된다 할지라도!"



오열하는 대천사의 눈에서 암담한 불꽃이 튀겼다.

절규하는 대천사의 말투에서는 절대선 계통의 성좌라고는 믿기지 않을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하늘 찬란히 빛나는 별들 중 그 어느 별도 그들을 비추지 않았다.

그저 황홀한 빛을 가진 회귀자의 자취가 흩날렸다.



그것이 그들의 '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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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새 글 쓸 시간이 없어서 걍 전에 썼던거 수정해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