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김독자. 얼른 일어나. 안 일어나면 두고 간다."

"...나 학교 안 가... 더 잘래..."


그 말을 들은 한수영이 내 몸을 뒤흔들었다.


"아, 데려다준다면서! 얼른 일어나라고!"


그리고 그 고집을 못 이겨 나는 이내 잠옷에 추리닝을 걸치고 그녀를 따라나갔다.


"너 진짜 어깨 좁다."

"네 가슴은 어떻고?"


한수영이 내게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방 빼실래요?"

"글래머시라고요."


한수영이 내 옆구리를 팍 쳤다.


"놀리는거지?"

"...뭘 원하는건데?"


그리고 별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학교 앞에 도착했다.


"그럼 난 가볼게. 집에서 자고있지 말고 밥이라도 해."

"...응."


인사를 나눈 후, 한수영이 몸을 돌리고 학교로 뛰어들어갔다.


*  *  *


"수영아 교문에서 인사한 사람 누구야? 오빠야?"

"아니? 왜?"

"아, 난 너 외동인줄 알았거든! 집에 놀러가도 아무도 없고..."


한수영의 앞에 있던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근데 집에 같이 산다면서! 아, 혹시 사귀는 사이..?"

"사귀는 사이는 아니고."

"그래?


한수영의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듯 천장을 바라보던 여자가 갑자기 한수영의 책상을 쾅 쳤다.


"근데 왜 같이 살아!"

"...집이 없대서?"

"...미쳤구나..."


경악한듯 그녀가 한수영을 바라보자, 한수영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얼굴은 좀 반반하지 않냐? 허여멀건해가지고."

"...너 변태같아."

"..."


*  *  *


"다 해서 얼마에요?"

"5만원. 카드로 낼거야?"

"네, 여기요."


한수영이 준, 금색으로 고급스럽게 선이 그려진 검은 카드.


"여기, 됐어."

"감사합니다."


일단은 얹혀사는 처지니까 이런 일이라도 해야한다.


-넌 무슨 애가 집에만 오면 하루종일 방에 있니? 돈도 안 버는게!

-니네 엄마 살인마라면서?

-이거 사오거라. 얹혀사는 처지에 이런 것도 안 하면 우리가 널 키워줄 이유가 없다.

-이제 성인도 됐으니까 우린 너 키워줄 이유 없어. 돈 낼거 아니면 나가라.


나쁜 기억들이 문득 떠올라, 머리를 좌우로 휙휙 흔들고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한수영의 집에 도착하고, 나는 절망에 빠졌다.


"나 현관문 못 여는데..."


혹시나 해서 검은색 카드를 대봤지만 달라지는건 없었다.


"하..."


*  *  *


어느새 해가 지고 얇은 초승달이 떴다.

그리고 내 앞에는 한수영이 나타났다.


"...김독자? 여기서 뭐해! 죽었어?"

"...살았어."

"근데 왜 이러고 있어? 옆에 냉동식품들은 뭐고?"

"현관문을 열 수가 없어."


그 말을 들은 한수영이 뭔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이내 시선을 내 장바구니에 돌리고서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 야! 내가 다른 카드 줬어! 어떻게 냉동식품을 사왔나 했다!"

"..."


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수영을 노려보자, 한수영이 어깨를 움츠렸다.


"미, 미안해..."

"..."

"아, 미안하다고!"


한수영이 그러고서 부끄러운지 제 카드로 현관문을 열고 뛰쳐들어갔다.

그리고 나도 뒤이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

"아 보지 말라고!"

"......"

"...미안하다니까, 진짜..."

"...."


퍽!


내가 계속 원망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자, 한수영이 내 배를 주먹으로 가격하고서 방으로 도망쳤다.


"...저게... 야, 너..!"


쾅!


문이 닫히며 들린 파공음이 집 안에 메아리치듯 퍼져나갔다.


"거실에서 자!"

"이 겨울에? 창문 열어두고 환기까지 해두셨으면서 방 안에서 보일러틀고 혼자만 따뜻하게 자려고?"

"내가 집주인이거든?"


안에서 철컥 하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 역시 이렇게 포기할 인물은 못 됐다.


베란다 창문을 타고 침실에 있는 창문을 열고 침실에 들어가자, 옷을 갈아입고 있는 한수영의 나신이 눈에... 어... 보였다.


"......"

"그... 미안?"

"나가."

"으, 응!"


밖에 나오자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마구 요란을 치는게 느껴졌다.


"...옷만 갈아입고 열어주려고 했단말이야... 뭔 미친 새끼가 창문으로..."


한수영이 황당한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갈아입고 열어줘."

"그럴거야."


한수영의 말이 끝나자, 끼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고,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쓴 한수영이 보였다.


"...뭐해?"

"...얼굴 못 보겠어."

"괜찮아 어차피 아무것도 못 봤어. 볼 것도 없었... 컥..!"


앞에 있는 이불이 화가난듯 내 몸에 마구 들이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