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독- 자-"

"...왜."

"변태."


한수영이 내 위에 앉더니 킥킥댔다.


"넌 대학 안 가?"

"지방대밖에 못 가는 성적이라 안 가."


그 말을 들은 한수영이 목을 뒤로 젖히며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럼 내가 책임져야겠다. 그치?"

"무슨 결혼한 것도 아니고. 남녀사이 모르는거야."

"나갈래?"

"결혼할래?"


한수영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꺄르륵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태풍이 오기 전에는 날이 개다고 했었나. 지금 보니 딱 그 꼴이 아닐수가 없는 그런 갠 날이었다.


*  *  *


"그 애랑 헤어져."

"예?"


이게 무슨 삼류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대사인가.

아마 다음 대사는 아빠가 국회의원이고 엄마가 연예인인 아이에겐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 말이 아닐까?


"안 그래도 대권때문에 혼잡한 상황에서 내 명의로 된 집에 한 남녀가 드나드는게 기자들한테 보이기라도 하면 어쩔 것 같나? 누구 인생을 망치려들어!"


생각보다 더 쓰레기같은 인간이었다. 딸의 인생을 걱정해서도 아닌, 본인의 인생 때문에.


"...애초에 아이가 생겼다고 처음부터 말했더라면..."

"하, 그랬으면 지금 사업이나 하고있겠지. 매스컴에 국회의원 한국유가 유명 아이돌을 혼전임신 시켰다고 뜨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묻고 싶다. 그럼 대체 그렇게 태어난 사람의 인생은 뭐냐고.


"...뿌리부터 썩어있네요. 처음부터 뿌리를 갈아끼면 되는거였는데, 썩은 뿌리에서 기어코 나무가 자라났잖아요."

"그 썩은 뿌리가 내가 심은 뿌리라는 것만 모르면 되는거지."

"..."


한국유가 피식 웃음을 짓더니 내게 봉투를 던졌다.


"이건 그냥 성의일세. 헤어지면 두배를 더 주지."


5만원 40장. 무려 200만원이 봉투에 들어있었다.


"...검토해보겠습니다."

"그래, 얼른 검토하고 와."


*  *  *


적이 어떤 수를 쓸 지 모른다면, 내가 먼저 적을 쳐야한다.

그리고 내게는 가장 강력한 수가 하나 있다.


"...뭐? 그 새끼가 그래?"


한수영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물기로 촉촉해졌다.


"키우지도 않아놓고서? 하..."

"먼저 쳐야 해."

"...어떻게?"

"그 사람이 제일 피하려는게 뭐지?"

"...내가 알려지는거? 야, 너...!"


한수영이 기겁한듯 뒤로 물러섰다.


"맞아."

"하하, 하... 미쳤구나 정말..?"


한수영이 어이없다는듯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며 말했다.


"해볼만 하네."

"...괜찮겠어?"

"지가 하자고 해놓고?"


그 말에 나도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다음 날, 매스컴에는 한수영에 대한 기사들이 도배됐고,


협의당은 한국유 의원을 당에서 퇴출했다.


"인터뷰 좀 해주세요!"

"한수영 학생!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저 기자들 덕분에 당분간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는건 좀 아쉽지만 말이다.


"너냐?"

"예?"

"혹시 김독자세요?"

"아닌데요."

"사진은 같은데?"

"..."


본능이 외쳤다. 도망쳐야 한...


*  *  *


"하... 너지? 이 미친놈아."

"...왜..."

"너 덕분에 3선은 못 하겠다. 참 고맙네."


한국유가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나를 노려봤다. 나는 그런 한국유에게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축하드려요."

"이런 씨■!"


퍽!


철로 된 야구방망이가 내 갈비뼈를 강타했다.


"크억..! 컥!"

"이 새끼 염산통에 넣어버려."

"...네, 의원님."


그리고 이내 줄로 묶인 내 앞에 염산이 채워진 통이 놓였다. 사실 죽음에 맞서면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해온다.


"...자, 잠깐만요. 기사 없애달라고 하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 미친새끼야. 뭐해! 얼른 넣어!"


그 말을 들은 깡패들이 날 의자채로 들었다.


"자, 잠깐만요! 잠깐만!"

"왜, 이제 겁나냐?"

"아니요. 너무 쉬워서요."


나는 입에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공익 신고자 보호법이라고 아세요?"

"...뭐?"


그리고 그 순간, 경찰들이 안에 들이닥쳤다.


"왜 이제 와요. 너무 늦으셨는데?"

"...서에 증원 요청 하느라요."

"이 미친... 처음부터...!"


한국유가 당황한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맞아요. 처음부터 덫이였죠. 애초에 기자들 그득한데 내가 그 집을 왜 나가? 처음부터 나가있던거지."


경찰관 한명과 신고자가 준비한 덫.


상황은 이렇게 된다.


*  *  *


"오늘부터 독자 씨가 공익 신고자로 등록되셔서 당분간 저와 함께 귀가하시면 됩니다."


이진우 순경이 내게 인사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진우에게 말했다.


"실적 올리실 생각 없으세요?"

"...예?"


공익 신고자를 보호하는 경찰. 한 마디로 잡일을 맡는 그런 경찰.


"그게 무슨..."

"국회의원 한국유의 살인미수사건 현장 발견 후 체포. 이 정도면 어떨까요?"

"뭐요? 그게 무슨...!"

"지금부터 10시간 내에 한국유가 보낸 사람이 나를 잡아갈겁니다. 그 인간은 그런 인간이니까요."


이진우가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랑 좀 떨어진 곳에서 저를 보고계시면 됩니다. 누가 절 잡아갔을 때, 당신은 절 따라와서 한국유를 현장에서 체포하면 되는거죠."


*


"미쳤군... 정말 미친 짓인건 아나?"

"예, 예! 서장님!"

"하... 이걸 상부에 알리지 않을 수도 없고 진짜... 시말서나 쓰고 있어."


시말서와 교환하는 훈장. 나쁘지 않은 거래다.


*  *  *


"그렇게 된거야."

"진짜? 아빠는 왜 그렇게 똑똑한데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어?"

"저걸로 돈 벌면 큰일나거든."


한수영이 서아를 보며 웃음지었다.


그리고 나도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추억을 회상하다가, 이내 그들과 함께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