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새벽, 김독자 컴퍼니의 일행들은 모두 잠든 지 오래였다.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으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한 여성이 자고 있는 방의 문 앞에서 그 소리는 멈췄다.


끼익


한밤중에 그녀의 방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김독자였다.


"수영아... 어?"


늦은 밤까지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던 그녀는 많이 피곤했는지 노트북 앞에 얼굴을 묻은 채 잠들어있었다.


"피곤했구나..."


김독자는 의자에서 그녀를 가볍게 들어 올려 침대에 눕혔다.


이불을 덮어주며 그는 한수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얀 피부에 길고 검은 속눈썹. 

불그스름한 입술.

그리고 그녀의 눈가를 장식하는 까만 눈물점.

모든 것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부각하고 있었다.


"수영아, 자?"


여전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 모르겠다."


그녀의 침대 옆에 걸터앉아 그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일행들이 살고 있는 큰집. 그 앞에 세워놓은 자신과 일행들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옆에서 [흑염]을 꺼내들고 서있는 한수영의 모습.


김독자의 눈은 다시 바로 옆에 있는 그녀에게로 향했다.


"후... 나 있잖아..."


김독자는 몇 번이나 뜸을 들였지만 잠들어있는 그녀에게서 반응이 돌아올 리 없었다.


김독자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말했다.


"나... 널 좋아하나 봐."


첫 문장을 내뱉은 그는 이제 조금 더 편해진 마음으로 다음 문장들을 꺼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해서... 그리고 지금의 나를 위해서 두 번이나 너는 나를 위한 글을 써줬지."


어린 시절의 김독자를 구원했던 [멸살법]. 그리고 지금의 김독자를 돌아오게 해준 [전독시]까지.


그녀의 글은 전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한수영이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너에게 여러 차례 말했지만 정말 고마웠어."


네가 돌아온 걸로 충분하다고 말하며 웃던 한수영의 모습은, 아직까지 김독자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너의 글은 항상 나에게 구원이었어."


그 시절 네가 써준 글이 아니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처음에 만났을 때 표절 작가라고 한건 정말 미안해. 

그때는 모를 수밖에 없었잖아, 너도 이해해 줄거지?


매일 밤마다 네가 쓴 소설을 읽었어.


나의 밤, 나의 유년을 채워줄 수 있었던 건 너뿐이었지.


나를 구원해 준 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어떤 생각이 너의 밤을, 너의 유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쓰도록 만든 걸까.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자신의 글을 읽어준 것만으로 충분했다는 그녀의 말을, 그녀의 독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너에게 나는 어떤 의미일까.


계속해서 나만을 위한 작가가 되어주겠다는 건 무슨 의미였을까.


"계속 나만이 너의 독자였으면 좋겠어."


"네 덕분에 다시 돌아온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겨야 하는데, 난 자꾸 더 큰 걸 바라네..."


수많은 문장들이 그녀에게 닿지 못한 채로 방 안에서 흩어져 나갔다.



"그런데 말이야."


그의 손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대로 손을 들어 그녀의 앞머리를 젖힌 김독자는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다 손을 뗐다.


"나 이제 널 좋아하게 됐어. 작가에 대한 독자의 애정이 아닌 이성으로써."


어쩌면 그녀의 희생을 알았기에, 김독자는 그녀를 거부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웹 소설의 다음 연재분을 기다리는 독자처럼,


언제부턴가 그는 그녀의 사랑을 바라게 되었다.


"오늘 고백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걸 아는지 너는 벌써 잠들었네."


"너에게 난 그저 네 세계를 이해해 주는 독자일 뿐이니까."


내가 작가로서의 네가 아닌 이성으로써의 너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너는 부담스러워할까?



어쩌면 지금보다 못한 사이가 될지도 모르지.


김독자의 손이 자신보다 조그마한 한수영의 손을 감쌌다.


"머리로는 고백을 안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가슴은 답답할까."


"나 사실 이런 생각도 했어."


적막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이 말까지 해도 괜찮을까,


고민은 짧지 않았다.


주변이 조용한 걸 확인한 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차라리 우리가 결혼한다면 어떨까."


네가 독자로서의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내 마음을 받아준다고 하더라도, 

네가 진짜로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우린 언젠가 헤어지게 될 거잖아.


그렇게 스쳐가는 인연일 바에는, 서로 아무 일 없었던 척하는 어설픈 친구 사이로 남을 바에는,


그냥 결혼하는 게 어떨까.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헤어질 걱정부터 한다니, 좀 한심하지?"


근데 수영아,

나 정말로 너한테 잘할 자신 있어.

정말로.


그리고 그만큼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


흔히 사랑은 서로의 반쪽을 내어주는 거라고 하잖아.


하지만 네가 나에게 반쪽을 주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난 행복할 테니까.


네가 주지 않을 반쪽마저 내가 채울게.

날 사랑하지 않아도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러니까, 너를 사랑하게 된 나를 한 번만 더 구원해 주라.


이제는 내가 너의 밤을, 어둠을 채워주고 싶어.


"나만을 위한 작가도 좋지만, 내 평생의 연인이 되어준다면 더 좋을 텐데."


네가 나를 위해 해주었던 것처럼, 거짓을 쌓아올려 진실로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내가 눈 감는 날까지만 날 사랑한다 해줄 수는 없을까.


설령 나를 속이는 거라 해도 좋으니까 거짓으로라도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쓴 것이라는, 그런 말을 들어보는 건 나에게 너무 과분한 걸까.


그녀에게서 고른 숨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 김독자는 한수영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널 사랑해 수영아."


이런 내 마음을 너는 알아줄까.

내 마음만 생각하는 나를 네가 과연 사랑해 줄까.


그래도 말이야,

정말 혹시라도 날 사랑해 줄 수 있다면 언제든지 나에게 와줬으면 좋겠어.


그때가 올 때까지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려 주었던 건 너였잖아.


이제 나의 세계는 너니까, 이번에는 내가 기다릴게.

포기하지 않고 너에게 계속 다가갈게.


"그러니까... 언제 까지든 난 기다릴 수 있으니까"


김독자의 눈에는 어느새 물기가 어려있었다.


"정말로... 나를 사랑하면 안 될까?"


새벽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고 공기는 아까보다 서늘해져있었다.


이불을 그녀에게 덮어주고, 김독자는 방문을 열었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참 좋을 텐데."


그녀에게 닿지는 못했지만 어찌 됐든 하고 싶었던 말을 한 그는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방을 빠져나왔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내지 못한 채, 또 하나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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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그가 떠나고 혼자 남겨진 방에서, 한수영은 조용히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내가 좋으면 기다릴 게 아니라 다가올 것이지..."


하여간 겁은 많아서.


"언제까지나 너를 위한 종장을 써줄 거야."


그러니까 언제까지나 나만을 위한 독자가 되어줘.


뒷말을 삼킨 그녀가 작게나마 웃었다.



이미 잠이 달아나버렸기에 그녀는 다시 의자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방을 가득 채운 키보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단 하나의 독자를 위한 또 다른 이야기가 써내려져 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레몬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물었다. 



우리의 밤, 우리의 유년.


이제 더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고 우리는 결국 서로를 구원했잖아.


너의 마음을 이제라도 알려줘서 고마워.


앞으로 남은 모든 순간들을 너와 함께 달려갈게.


그러니까, 지금처럼 계속 나를 사랑해 주라.












3500자...


제목은 뭔가 독안으로 썼어도 괜찮았을거 같은데 나만 그렇게 느끼나?


한시간 반동안 똑같은 노래 계속들으면서 썼다...

여기와서 처음으로 쓴 창작 이후로 오랜만에 전독시 2차창작같은 창작을 쓴거같네


확실히 순애가 쓰기에는 즐거움


뭐? 이런거 필요없으니까 [광기]나 더 내놓으라고?


너네가 원하지 않아도 줄거니 걱정마


잘 봤으면 개추나 눌러라

댓글도 좋고.


오타&오류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