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편: https://arca.live/b/reader/39008706?p=1
덜컥, 겁이 났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한다는데 정말 자신이 들어가도 괜찮을까, 하는 그런 걱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어쩌면 지금도 충분히 고통받고 있는 그녀를 다시 한 번 고통 속에 밀어넣는 것은 아닐까.
겪어본 일이었기에,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독자 씨? 왜 안 들어가고 그렇게 서 있어요?"
유상아의 물음에 김독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저 문고리를 잡은 채,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미칠 듯이 흘러들어오는 갈등의 파랑에, 김독자는 절망했다, 희망했고, 들어가려다 그러지 않기를 수 차례나 반복했다.
"제가 정말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요?"
"네? 그게 무슨.."
종잡을 수 없는 김독자의 언행에 유상아는 당황했다.
같이 연구원으로 있었을 때는 이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그였기에 더욱.
아니, 어쩌면 이 모습이 김독자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들어가 보셔야겠다고 그러셨으면서.."
"아무래도, 제가 안 들어가는 게.."
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한수영이 자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잠시 고민하던 김독자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다시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그가, 문 손잡이를 돌리고 그녀의 병실 안으로 들어간 것은 분명 그런 이유에서였으리라.
"독자 씨?"
철컥- 하는 문소리와 함께, 곧 유상아만이 복도에 남겨졌다.
저 멀리서 의사를 대동하고 다가오는 한명오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낯빛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
새근- 새근-
편안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20년 만에, 편안히 자고 있는 한수영의 얼굴을 본 김독자는 갑자기 솟아오르는 울음을 어쩌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섰다.
.. 20년 만에 찾아온, 자신의 신에 대한 감정.
처음 든 건, 분노더라.
"왜.. 왜 이제 왔어요."
그녀가 깰까, 차마 큰 소리는 내지 못하고 김독자는 소리 없이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았다.
정말로 못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는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김독자는 그저 한없이 기쁘면서도 화가 났다.
왜 이제야 왔냐는 투정과, 다시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안도가 합쳐져 이상한 감정을 만들어 냈다.
".. 누나."
"독자야.."
순간, 자신의 목소리에 한수영이 대답한 것인가 놀란 김독자는 감겨 있는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다.
감긴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한수영.
척 봐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
김독자는 애석하게도, 그런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해 줄 수 없었다.
'저 여기 있어요'라던가, '누나..' 라던가.
그러한 말을 해 줄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은 이유는, 일전에 유상아에게서 들은 그녀의 몸 상태를 걱정해서였던 것이다.
스윽-
한수영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대신, 그는 떨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 주었다.
움찔- 하며 반응하던 한수영의 몸은 계속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기 시작했고, 날이 다 샐 때까지 김독자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준 후 병실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그의 퇴원일이다.
"독자 씨 퇴원 축하해요."
환자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고양이를 안은 채 밖으로 걸어나온 김독자에게 대표로 유상아가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흡족한 얼굴로 한명오가 서 있었고 김독자는 유상아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고맙습니다. 저 같은 게 뭐라고.."
"저 같은 거라니! 자네 덕에 냉동 상태의 환자들이 다시 새 생명을 찾을 수 있게 되었네. 그야말로 기적같은 이야기지. 그저 책을 좋아하던 7살 소년에서, 위인전에 등재될 만한 위대한 인간까지. 자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베스트셀러는 따 놓은 당상일세."
한명오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왠지 오늘은 그런 그의 호들갑도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라..
김독자는 생각했다.
한수영이 죽은.. 그러니까, 죽었다고 생각한 이후로는 그의 세계는 멸망한 세계였다.
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이제 몇 가지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지금 그 글을 쓰는 김독자 자신이 살아남을 거란 사실이다.
만약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면.
그 이야기를 한수영에게 보여줄 수 있는, 꽤나 긴 소설로 쓰게 된다면.
제목을 어떤 제목으로 할 지는, 이미 정해 놓았다.
자신의 소설의 이름은, 자신이 어떻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았는지를 기록한 그 소설의 이름은 이러했다.
"..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