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에는 눈이 내렸다.
졸업식
졸업식이라고 해서 날이 개거나 하는 등의 일은 없었다.
교실은 언제나 그대로였고, 학생들도 일 년 내내 유지해온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졸업식 날이 되어서도 낡은 난방 기구를 마지못해 틀어주는 모습은 삼 년 동안 봐왔던 것과 같았다.
그러나 흐르는 기류는 조금 달랐다. 고등학교의 첫 날과 흡사했다. 솔직한 소감을 말해보자면, 졸업식 날이 실감 나지 않았다. 삼 년 내내 머물렀던 곳을, 잠시 떠났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영영 떠난다. 교직원이 된다면 영영 까지는 아니겠지만, 그조차 확실하지 않다.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돌아오는 것이 익숙한 장소로 더 이상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삼학년의 종지부를 찍는 날은 오늘이다. 그와 동시에 고등학생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더 이상은 돌아오지 못하는 삶이었다. 일상처럼 복귀할 수도 없으며, 시작할 수도 없고, 다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딘가 빈 감이 없지는 않다. 최악으로 점철된 중학교와는 다르게도, 고등학교는 그럭저럭 추억이라고 할만한 것도 남은 탓이었다. 학교를 두른 담벼락을 더 이상 보지 못한 다는 것은 묘한 아쉬움을 남겼다. 학교를 나가는 것이 반가워서 만은 아니다. 교문을 들어오는 것이 두렵지 않기 때문도 있으리라. 김독자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물결치는 금빛 머리카락이 나풀나풀 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일어섰다. 시간이 되었다. 떠날 시간이다.
떠나기 전에, 덕담을 들었다. 관례적으로, 매년마다 하는 축하사다. 그럼에도 가식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은 매번 한다 한들 진심이 담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습게도 처한 처지가 달랐을 탓일수도 있다. 또한 둘 모두 일수도 있었다.
처지란 쉽게 바뀌는 것이었고, 다른 것들을 손쉽게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단 한번의 충격만 있다면 충분하다. 근 십 년에 가까운 몇년 전과, 그보다 가까운 몇년 전이 입증했다.
그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중학교 때의 처지로 살아갔을 것이다. 눈에 보이듯 확연할 뿐만 아니라, 졸업식 축하사를 가식적으로 느꼈을 것이 뻔하다. 학교가 무서웠을 것이고, 누구와도 말을 나누지 않았겠지. 멀리 떨어진 저편을 상상해본다. 적어도 중학생의 그는 상상력이 살려냈으므로. 여태껏 살아있는 것은 '멸살법'의 덕이다. 인간답게 살게 해 준것은 그녀였고.
눈이 내리는 겨울. 모든 졸업생들은 교문으로 모인다. 김독자는 교문으로 걸어갔다. 교문을 넘기 직전에, 그녀가 그를 부른다.
"김독자, 빨리 와!"
"그래, 갈게."
김독자는 교문을 넘었다. 이것으로 그는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니다. 완벽한 종지부였고, 이별이었으나. 슬픈 것만은 아니다. 당연한 결과물이다. 발을 딛는 것은 머뭇거리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그녀가 알려준 것이었다.
우리엘을 마주하고, 김독자는 꽃다발을 넘겨받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기껏해야 십분 남짓동안. 우리엘은 꽃다발을 가져와 그에게 건네주는 것이다.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그녀였다.
"고마워. 그리고, 졸업 축하해."
"뭘. 너도 졸업 축하해."
우리엘의 눈가가 부드러워지면서 그녀가 웃음을 지어냈다. 그는 그에 따라 웃었다. 이별의 날에도 그들은 웃었다. 서로가 있음을 알기에, 혹은 떠나는 장소가 그들을 만나게 한 동시에 묵묵히 그들의 곁에 있어준 고마운 곳이기에. 고마움을 표하는 데에는 울음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학교를 떠났다. 필연적인 일이나, 아쉬운 감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두 연인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곳을 뒤돌아 볼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이 끝났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해가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기에. 그들이 끝낸 것은 오직 학생의 삶이다.
그들은 성장했고, 종지부를 찍었다.
졸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