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만 있지는 않아! 참고해줘!





「그저, 이 모든 것이 달콤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면.」


ㅡ ‘거짓 종막의 설계자’, 『전지적 독자 시점』 中.


*


.


.


.


희미하게 느껴지는 지하철의 진동. 언제부터였을까.


쿵―!


누군가가, 객실의 뒷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제 4의 벽.”


「나 바 빠.」


“부탁 하나만 하자.”


내가 그 말을 꺼내자, ‘제 4의 벽’이 거부하는 것처럼 지하철이 심하게 움직였다.


“야…!”


난 겨우 중심을 잡으며, 객실의 문에 기댔다.


「'제발! 말해줘. 한 마디라도! 제발―'」


「'독자 씨!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고 했잖아요!'」


「'형은 항상 자기만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벽 너머로 느껴지는 희미한 일행들의 목소리. 언제 들었는지 모를 아주 오래된 목소리였다.


“난 이 세계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어. 이제, 내가 원하는 이야기가 되어도 괜찮잖아?”


「그 건안 돼. 그렇 게 된 다면 세 계가 멸 망할 거야.」


‘제 4의 벽’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가 이 자리를 떠나게 된다면, 모든 세계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막으려는 것이겠지.


“너한테는 ‘가장 오래된 꿈’만이 필요한거 아니야?”


‘제 4의 벽’으로부터 답변을 받는데에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 것 만이 문 제가 아 니야. 너 를말 고는 ‘가장 오래된 꿈’이 될 수 있 는자 가 없 어.」


“이미 내 설화는 수많은 세계선으로 퍼져 나갔잖아. 그거면 되지 않을ㅡ”


츠즈즈즈즈즈즈즛ㅡ!


엄청난 스파크와 함께 지하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지하철에 끼워 맞춰지기 시작했다.


「김 독 자.」


아까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힘을 쏟는 듯한 ‘제 4의 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가 전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인 것처럼.


「이 제 정 말시 간 이없 어.」


‘제 4의 벽’의 목소리는 점점 심한 노이즈가 생겨나갔다.


「정 말 네가 원하 는 것이 라면, 방 법 이 없진 않 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움츠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잠깐, 지금 뭘 하려는ㅡ”


지하철 자체에서 엄청난 스파크가 치더니, 심할 정도로 깨진 메시지가 나타났다.


[■■, ‘■ ■■ ■’이 ‘■■ ■■■ ■’의 ■■에 간■합■■!]


그리고선 들리는 아주, 아주 희미하게 들리는 ‘제 4의 벽’의 목소리.


「한수 영에 게말 해 줘. 이것 으 로 그 녀 의 부 탁은 지 켰다고.」


[현재 당신이 보유한 기억은 ‘51.00%’입니다.]


무언가가 지하철 밖에서 날아와 내게 깃들자, 숫자는 빠르게 바뀌었다.


[현재 당■이 보■한 기억■ ‘78.64%’■니다.]


[■■ 당■이 보■■ 기■■ ‘100.00%’■■다.]


그리고 끝내,


[■■ ■■■ ■■■ ■■■ ‘99.00%’■■■.]


「잘 지내, 김독자.」


‘제 4의 벽’의 말을 마지막으로 엄청난 빛이 나의 앞을 가렸다.


*


설원의 일대를 잡아먹을 만큼의 엄청난 스파크가 지나가고, 한수영이 눈을 뜨자, 그녀는 자신이 어느 공간에 있음을 깨달았다.


아득한 어둠만이 가득 차 있는 장소.


겨우 힘을 내어 자리에서 일어난 한수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중혁? 이현성? 정희원? 거기 있어?”


한수영이 열심히 소리쳐 보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메아리만이 울렸다.


[‘진실의 눈동자’가 자리를 되찾습니다.]


[진실의 눈동자]가 희미한 푸른 빛을 내며 작동을 시작하자, 보이지 않았던 설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당신들과 결말을 보고 싶다.」


49%의 김독자가 남겨놓은 설화.


김독자의 아바타가 무언가에 끌려가는걸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 설화를 따라가면 김독자가 있을까?


한수영은 천천히 걸어 그 설화를 따라갔다.


“얘들아? 거기 있는거야?”


계속해서 이어지던 설화가 끊긴 자리에 그녀가 조금 전에 보았던 지하철이 있었다. 더이상의 추진력을 잃었는지 멈춰있는 지하철.


한수영은 그 지하철에 들어섰다. 그러자 보이는 유중혁.


“유중혁!”


한수영은 자신의 말을 씹은 유중혁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퍽!


“야, 유중혁! 사람이 불렀으면 대답을ㅡ”


평소 같았으면 죽일듯이 쳐다볼 유중혁이, 어느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한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수영이 유중혁의 시선을 따라가자, 어느 하얀 코트를 입은 아이가 있었다.


크기가 맞지 않아, 흘러내린 옷을 입고 있는 한 아이. 


그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수영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가 유중혁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점점 한수영의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한수영은 그 눈물들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이 아이를 처음 본다. 아니, 처음 볼 것이다. 그런데, 왜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을까. 


아이가 한수영에게 다가오더니, 코트의 긴소매로 한수영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시야를 가렸던 눈물이 사라지자, 보이는 아이의 얼굴.


한수영은 그 얼굴을 기억한다. 아니, 잊을 수가 없는 그 얼굴이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찾고자 노력했던. 그들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구하려고 했던 한 사람이 그녀의 앞에 있었다.


“김독자…?”


김독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한수영.”


그 말을 듣자, 한수영은 김독자를 힘껏 끌어안았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얼마나...”


그러자, 김독자가 한수영의 등에 손을 올리더니 토닥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김독자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수고했어, 한수영.」


그때, 가만히 보고 있던 유중혁이 말을 꺼냈다.


“그만 돌아갈 시간이다, 김독자.”


유중혁은 한수영의 품에서 김독자를 끌어올려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응.”


김독자의 대답과 함께, 주변의 시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눈을 뜨자, 그들은 서울 한복판에 서 있었다. 1865회차에서 시나리오를 준비했던 그 장소였다.


멀리서 일행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독자 씨!”


“김독자!”


[독자야!]


“아저씨!”


김독자는 그런 모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


본래 1864회차에 돌아오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 [그러니깐, 내가 지금 보고 있는게 ‘가장 오래된 꿈’이라고…?] 」


간만에 비형의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하였다. 물론, 그 녀석은 나를 ‘가장 오래된 꿈’이라고만 알고 있겠지만.


방주를 타고 1864회차에 돌아오자, 안나 크로프트가 군인들과 함께 반겨주었다.


「“천천히 이곳으로 나와!”」


물론, 좀 과격한 방법이긴 했지만.


난 유중혁의 목마를 타면서 수많은 것이 바뀐 서울을 돌아다녔다. 유중혁의 목마라니. ‘멸살법’을 찾아봐도 이런 엄청난 사건은 없을 것이다.


「김독자의 귀환을 기념하며」


나를 위한 동상이라니, 감동적이었다. 근데 저 이상한 오징어 동상은 뭐지…?


아무튼, 그렇게 난 공단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이설화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뭘 보냐.”


...항상 곁에 있는 유중혁의 간호도 함께 말이다.


모든 일행들이 병실에 모여 이설화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독자 씨를 이루고 있는 설화들의 이음새가 불안정해요. 마치 여러 문맥이 빠져있는 것처럼요. 아마도, 지금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요.”


놀란 정희원이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독자 씨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거예요?”


이설화는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도, 그건 아니에요. 기존의 아바타가 다시 독자 씨에게 깃들면서 생긴 빈틈 같아요.”


레몬 사탕을 빨고 있던 한수영이 이설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본래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거야?”


“네, 아마도요. 근데, 그러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이길영이 번쩍 뛰며 말했다.


“그러면, 그 시간 동안 난 꼬마 아저씨랑 매일 놀 거야!”


“뭐래, 이길영. 아저씨는 나랑 먼저 놀기로 했거든?”


이지혜도 아이들 사이에 껴 외쳤다.


“꼬맹이들아. 아저씨는 지금 아픈 상태라고! 그러니, 내가 집중적으로 아저씨를 위해ㅡ 아야, 왜요! 희원 언니!”


이지혜의 뒤통수를 후려친 정희원이 뭔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독자 씨는 시나리오 초반부터 만난 내가 봐야지!”


“그렇다면 희원 씨, 제가 제일 먼저 만났ㅡ”


정희원의 눈동자에서 빨간 오오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성 씨는 잠시 이따 저좀 봐요.”


“아, 아닙니다!”


당황하는 이현성의 모습을 본 일행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한 명씩 ‘본인이 김독자를 담당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기 시작했다.


난 그런 일행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일행들의 행복한 얼굴을. 마침내 시나리오의 지옥을 벗어난 그 표정들을. 내가 오랫동안 바래왔던 그런 모습들이 아니었을까.


그런 행복한 생각을 하던 찰나.


“그렇게 어렵게 돌아갈 필요는 없어요.”


옆을 돌아본 유상아가 내게 물었다.


“독자 씨는 누가 있으면 좋겠어요?”


“...네?”


순간적으로, 모든 일행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내 복귀 첫날, 최고의 시련이 찾아왔다.


.


.


.


「“전 누구든지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편하실 때 언제나 찾아와주세요.”」


그렇게 내 말을 끝으로 ‘김독자 담당자 논쟁’은 끝이 났고, 바로 다음 날에 가장 먼저 아이들이 찾아왔다.


“그러니깐, 아저씨. 그 소설 봤지? 내가 말이야, ‘73번째 마왕’ 시나리오에서 제일 먼저 달려가...”


“누나가 그때 마왕 되겠다고 난리 치다가 시커먼 놈한테 끌려 나갔잖아.”


“조용히 해, 꼬맹아! 그리고 그때, 그런게 아니라ㅡ”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한 이지헤와 이길영을 뒤로하고, 신유승이 내게 다가왔다.


옛날에 보았던 어린 모습은 다 사라지고, 어엿한 청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유승. 내가 없이 지낸 일행들의 삶이 얼마나 길었는지 느껴졌다.


“1865회차에서는 아무도 제 배후성으로 두지 않았어요. 그래서는 안될 거 같았거든요.”


「그녀의 배후성은 아무 말 없이 먼 곳으로 떠나버렸었다.」


자신의 배후성만을 바라보고, 기다려준 나의 화신. 난 그런 화신을 작은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힘들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생각했다.」


신유승은 나를 끼어 안더니,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언젠가는, 배후성이 돌아와줄 것이라고.」


“돌아와줘서 기뻐요. 아저씨.”


“야! 신유승! 감히 아저씨를…”


“나도 안길 거야!”


한 명씩 내게 안겼고, 나 또한 그들을 안아주었다.


끼익ㅡ


“다들 재미있게 놀고 있네.”


문을 바라보자, 유상아가 들어오고 있었다. 여러가지 일 때문에 바쁠텐데. 시간을 내어서 찾아와준 모양이다.


“상아 언니!”


“몸은 좀 괜찮으세요, 독자 씨?”


언제나 감동이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를 가장 먼저 걱정해주다니.


“네, 몸은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제가 독자 씨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는지 아세요?”


유상아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한 가지 수첩을 내게 전해주었다.


“자, 여기요.”


근데 이 수첩, 어디선가 많이 본거 같은데…


“설마, 상아 씨. 이거…"


수첩의 페이지를 넘기자, 한 문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독자에겐 독자의 삶이, 상아에겐 상아의 삶이 있다.’


수첩을 본 신유승이 말했다.


“어? 이거 상아 언니가 시나리오 도중에 계속 가지고 다녔던 수첩이에요. 저도 뭐가 적혀 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난 뭐지? 하면서 손에 남겨진 수첩의 다음 페이지를 피자, <김독자 컴퍼니>의 일행들이 손을 흔들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물론, 사진에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 또한 같이 서 있었다.


“어, 이거 그때 다같이 모여서 찍은 사진이잖아? 찍어서 어따 쓰나 했더니... 여기에 쓰는거였어요?”


“응. 추억하면서 보기 좋잖아?”


그 사진 아래에 쓰여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징어 포획>의 성공을 기원하며.’


<오징어 포획>은 또 뭘까? 대충 봐서는 저 ‘오징어’는 나를 뜻하는거 같은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수첩을 보고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유상아가 웃으며 말했다.


“독자 씨를 구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지나올 때마다 적어두었던 일지에요. 난 수영이처럼 작가가 아니라서 난잡할 수도 있지만, 재미있게 봐줘요.” 


난 사진을 꺼내고서는 한 가운데에 서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만약, 이 자리에 또 다른 내가 아닌, 지금의 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꼭 끝까지 읽겠습니다. 상아 씨.”


유상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수첩을 쥐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돌아와줘서 고마워요. 독자 씨.”


「그에게 있어 유상아는 자신을 믿어주고 아껴주는 동료였다.」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지만, 꾹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아 씨.”


「동시에 그에게 가장 먼저 다가와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잊을 수 없는 그의 친구이기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유상아는 내게 변함없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


병실에 있던지 약 한 달이 지나자, 난 공단의 한 특별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찾아온 세 사람. 정희원과 이현성, 그리고 우리엘이었다.


“...그래서, 내가 ‘멸악의 심판자’ 특성을 다시 얻으려고 우리엘이랑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요?”


[맞아, 맞아! 그걸 얻기 위해서 말이지...]


한창 1865회차의 시나리오 얘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난 웃으며 말해주었다.


“고맙습니다. 저를 위해서 노력해주셔서요.”


정희원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이현성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빈 말은… 앞으로 도망가지나 말라고요. 그것보다 현성 씨,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빨리 어서 말해요.”


이현성은 잠시 쭈뼛하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독자 씨. 옛날에 충무로 역에서 했던 얘기, 기억 나십니까? 제가 독자 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던 것을요.”


「“감사합니다. 얘기하다 보니 독자 씨 이야기도 궁금해지는군요.”」


맞다, 그런 얘기를 했었지.


“예, 기억납니다.”


아까는 못 봤는데, 이현성의 손에는 한 책이 있었다. 제목이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고 써져있는거 같은데…


“독자 씨를 구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지나오면서, 얼마나 힘든 일을 해내신건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았다.


“이제 독자 씨는 혼자가 아닙니다. 저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다시는 독자 씨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센가, 이현성의 뒤로 다가온 정희원 또한 이현성의 손 위에 그녀의 손을 올리며 말했다.


“돌아온 걸 축하해요, 독자 씨.”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우리엘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나에게로 달려와 안기면서 내 품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부정한 감촉. 아니지, 이것은 악마의 유혹이다. 정신 차려야 된다. 정신을…


[돌아와서 기뻐! 독자야!]


그때, 우리엘이 갑자기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그 시야는 곧 이현성과 정희원에게 향했다. 그러고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표정은 아무리 봐도 천사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독자야, 왜 우리가 늦게 찾아왔는지 알아?]


“글쎄요, 우리엘은 그룹 활동 때문에 늦은거 아닙니까?”


우리엘은 현재 제천대성, 심연의 흑염룡과 함께 공연을 다니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정희원이랑 이현성이라면 바로 찾아올만한데? 일 때문에 바빴나?


[맞아! 근데, 저 둘은 말이야...]


순식간에 정희원이 달려오더니 우리엘의 입을 막았다.


“하하...! 우리엘께서 오늘따라 컨디션이 안좋나보네…! 현성 씨! 어서 집으로 가죠!”


우리엘은 발버둥치면서 겨우 정희원의 속박을 풀어내더니, 소리쳤다.


[읍브븝, 파! 희원이랑 현성이랑 결혼했어!]


에? 뭐라고?


내가 이현성과 정희원을 바라보자, 이현성은 사과처럼 빨개졌고, 정희원은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진짜로 우리엘... 아직 말할건 아니었는데.”


정희원은 주머니에서 한 봉투를 꺼내 내 옆에 있는 탁자에 두었다.


“정확히는, 아직 결혼은 안했어요. 몇 개월 뒤에 결혼식이 있을거니깐, 찾아와줄거죠?”


난 봉투를 펼쳐 한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드레스를 입은 정희원과 턱시도를 입은 이현성이 서로를 안고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앞을 바라보니 정희원과 이현성이 나를 바라보며 기대하고 있었고, 우리엘은 반짝이는 눈으로 우리 모두를 둘러보고 있었다.


난 청접장을 집고선,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사내 연예 규정은 만들어두고 갈걸.


“물론입니다. 결혼 축하드려요, 여러분.”


“역시, 그럴줄 알았어. 그러면 기대해요, 독자 씨!”


“그러면, 저희는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난 손을 흔들며 배웅하였다. 그런데 말이지…


“우리엘은 안가십니까?”


[왜, 내가 갔으면 좋겠어?]


우리엘이 울상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전혀요.”


[다행이다! 오늘 하루종일 있으려고 했거든. 오늘은 내가 간호해줄게!]


우리엘의 복장이 스파크와 함께 간호사복으로 변하더니, 주변을 정리해준다며 먼지털이를 들고는 방방 뛰어다녔다.


“우리엘. 조심해요!”


그때,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아야!]


열리는 문에 머리를 박은 우리엘. 저건 좀 아프겠는데.


[누구야! 누가 우리 독자의 병실에 허락도 없이ㅡ 히익!]


우리엘이 놀라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런 우리엘의 뒤로 세 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김독자.”


“독자 씨.”


[아바앗!]


유중혁, 이설화. 그리고 비유가 찾아왔다.


*


[어머 어머.]


머리에 큰 혹이 난 우리엘은 나와 유중혁을 번갈아가면서 보며, 원래 반짝이던 눈을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근데 저 날개는 왜 피고 있는건데.


[나...난 차 좀 타올게!]


우리엘은 기뻐하며 재빠르게 방을 나갔다. 뭐가 그렇게 기쁜건지.


[우리엘은 또 왜 저래. 아무튼, 아버지!]


비유는 솜털 뭉치가 아닌, 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달려와 나에게 안겼다. 우리 비유도 많이 컸네.


“몸은 작아졌어도 여전히 못생겼네염.”


...그리고, 유미아도 함께 왔다. 언제 내 옆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지만, 내 볼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미아가 네가 맘에 드는 모양이군.”


“그런가 보네. 고맙다, 미아야.”


어떻게 오빠와 여동생의 감정 표출 방법이 똑같냐.


“그러고 보니깐, 독자 씨의 몸이 점점 더 커지는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중학생의 모습이었던 때가 엊그제였던 거 같은데, 몇달 안되서 벌써 고등학생의 몸집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정말 그런 거 같네요. 전부 설화 씨의 간호 덕분입니다.”


[또, 또. 마음에 없는 소리.]


이설화는 손을 휘휘 저으며 뒤를 돌아봤다. 방금 웃은 거 같은데.


[아저씨 없는 동안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있었는지 알아?]


“물론, 알고 있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비유는 웃으며 바앗! 하더니, 솜털 뭉치로 변해 유중혁의 어깨 위에 올라갔다.


비유가 유중혁을 바라보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설화와 눈을 마주치곤 끄덕였다. 이설화 또한 끄덕이며 유미아를 데리고 잠시 방 밖으로 나갔다.


[어, 차 타왔는데...]


“괜찮아요. 잠시 저랑 얘기좀 하고 계실까요, 우리엘?”


[나...난 쟤들이랑 있고 싶은ㅡ]


“어머, 머리에 큰 혹도 있으시네. 이런건 냅두면 말이죠...”


이설화가 우리엘을 끌고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유중혁은 자신의 검은 코트를 벗어 건 다음 의자를 끌어내 옆에 앉았다.


“네놈이 없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한수영이...”


그 말을 시작으로, 유중혁은 내가 없었을 때에 있던 일행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 세삼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 녀석 또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냉혹미남 회귀자 유중혁께서 일행들을 신경쓰다니.


“...그리고, 공필두가 큰 집을 구해주었다.”


“큰 집?”


내가 되묻자, 유중혁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놈, 벌써 까먹은 것이냐?”


「“이제 다 같이 살 엄청나게 커다란 집만 사면 되겠다!”」


나는 피식하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일행들이 각자 머물 수 있을 만큼의 방들도 충분하다. 물론 개개인의 집이 있는 이들도 있으니, 그런 이들은 별장처럼 다닐 것이다.”


말을 끝낸 유중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한 책을 꺼냈다. 이현성이 들고 있던 책과 같은 ‘전지적 독자 시점’이었다.


“정말 오랜 시간이었다, 김독자.”


“그렇지, 아주 오랜 시간이었어. 그럼에도 일행들은 잘 버텨주었어.”


유중혁은 창에 기대며 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놈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왔다고 했지. 난 한 사람의 인생이 누군가를 살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게 내 덕분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유중혁의 시선에는 아득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런 그의 시선 어딘가에 실낱같은 빛이 반짝였다.


“네놈 또한 이 소설을 보았겠지. 나는 네 녀석에게 물어봐야할 것이 있었다.”


유중혁은 책를 피며, 한 장씩 넘겼다.


“‘시나리오가 끝난 후의 세계에서,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네놈이라면, 그 질문에 답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장, 한 장씩.


“난 네놈의 이야기를 보며 그 답을 찾아가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이야기 또한 보았다. 내가 겪은 것도 있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겪었어야 할 일’들 또한 네놈은 알고 있더군.”


유중혁은 본래 3회차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만나면서 3회차라고 생각했던 그의 회차는 본래의 시간선을 넘어갔다.


“네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의문을 풀어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네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지.”


페이지를 넘기던 유중혁의 손이 멈추었다.


“이 페이지 앞에 적혀있는 이야기는 변치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지. 그럼에도, 아무리 다시 읽어도 공허한 무언가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더군. 마치, 무언가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유중혁은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네가 돌아오자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 이야기는 나 혼자만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것은 너와 나, 그리고 동료들이 함께 만들어온 이야기였다.”


책을 덮은 유중혁이 내 옆으로 다가와 책을 건네주었다.


“아직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김독자. 그리고, 난 네가 이 이야기의 끝에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


유중혁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 동호대교 위에서 본 미소.


「추락하는 와중에도 언뜻 유중혁의 얼굴이 보였다. 유중혁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눈부실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 또한 그 미소에 보답하며 말했다.


“물론이지.”


내 대답을 들은 유중혁은 의자에 걸려있던 흑색 코트를 다시 입고 문 밖으로 걸어갔다. 문을 닫기 전, 유중혁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유중혁은 더 이상 그가 알고 있는 회귀자가 아니었다.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아니었다.」


“잘 돌아왔다, 김독자.”


「그에게 있어 유중혁은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 그리고 생명의 은인이었다.」


나는 그런 유중혁을 바라보았다. 말하지는 못했지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것은 나의 유년 시절을, 지금의 나를 구해준 너를 위한 보답이기도 하다고.


*


이설화의 예상과는 다르게 내 몸은 빠르게 어른이 되어갔다. 물론, 그 시간이 짧지만은 않았다.


이현성, 정희원과 같은 신혼집을 보유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김독자 컴퍼니>의 일행들이 큰 집에 모여서 함께 지내왔다.


「“아니, 진짜로 수영 언니! 내 과제 좀...”」


「“안 써준다니깐. 그리고 술좀 그만 마셔!”」


가끔은 이지혜의 술 파티로 집안이 엉망이 되긴 하였지만, 그 모습 또한 재밌었다.


시간은 또 지나, 이현성과 정희원의 결혼식이 찾아왔다.


“그러면, 신랑 이현성 군과 신부 정희원 양의 성스러운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결혼식의 주례는 유상아가 맡아 진행해주었다.


“두 사람, 기뻐 보이네.”


결혼식의 축가는 이길영과 신유승이 진행하였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장하영은 내 옆에 앉아 눈물을 찍고 있었다.


“우리 독자가 저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어머니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를… 아니, 왜 나를 바라보는데?


“이제, 신랑과 신부의 맞절이 있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마주어 서주시길 바랍니다.”


이현성과 정희원이 마주 섰다. 긴장하여 뚝딱거리며 딱딱하게 서 있는 이현성.


“자 그러면, 신랑 신부 맞... 아니, 맞절이에요! 희원 씨!”


정희원은 그런 이현성을 끌어안아 입을 맞추었다.


그때, 누군가 결혼식장의 문을 열며 나타났다. 하얀색 옷을 입고 나타난 한 천사.


[미안, 내가 늦었지! 희원아! 결혼...]


이현성과 정희원의 모습을 바라본 우리엘은 그 자리에서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우당탕탕 결혼식은 끝이 났다.


물론, 결혼식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길영과 신유승의 고등학교 졸업식. 둘은 그 마지막에도 티격태격하는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서, 지금 같이 연설을 할 때처럼 말이지…


“아무튼, 이 모든 영광을 독자 아저씨에게 돌ㅡ”


“야! 신유승! 그건 내 멘트잖아!”


“뭐래, 벌레 새끼가.”


참, 때어놓을 수 없는 테이머 듀오다.


“저 꼬맹이들 또 싸우네.”


옆을 돌아보자 한수영이 있었다.


“뭐야, 언제 왔어?”


한수영은 사탕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방금. 알잖아, 내가 좀 바쁜거.”


얼씨구, 바쁘시다?


지금까지 한수영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들이 나를 찾아왔었다. 심지어 공필두까지. 서운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한수영은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내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왜. 이 누님이 병문안 안갔다고 삐졌어요?”


정곡을 찔렸다. 누가보면 독심술사인줄 알겠다.


“아니거든.”


“딱 얼굴에 써져있네. ‘나 삐졌어요’라고. 지금이라도 왔으니깐 봐줘. 진짜 말 못할 사정이 있었어.”


“알았어. 그것보다 무슨 일인데?”


한수영은 어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을때만 너를 찾아왔었냐?”


“응.”


“들켰네.”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사람이다.


*


수많은 일들이 지나고. 어느 날, 고요한 밤이 찾아왔다.


난 한 상자를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자기 삶을 찾아 떠났으니, 이제 그 집에도 살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띠리링!


울리는 현관문의 종소리.


“아저씨 왔다! 아저씨!”


나는 내게 달려와 안기는 신유승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들 바쁜가 보네.”


“네! 다들 준비하고 계시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계세요.”


확실히 유승이를 빼고는 내가 왔다는 것을 눈치챈 이들은 없었다.


“그러면 방해하면 안되겠지. 난 잠시 수영이좀 만나고 올게.”


“길영이랑 저는 밖에서 뭐 좀 하고 올게요!”


난 살금살금 어느 한 방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 노트북으로 무언갈 쓰고 있는 한수영이 보였다.


보라색의 후드티를 입고 열중하고 있는 한수영.


“아니지, 이렇게 적으면... 아이 씨! 깜짝이야! 노크좀 하고 들어와. 김독자!”


조용히 들어왔다가 괜히 슬리퍼로 한 대 맞은 나는 시무룩하며 창문으로 다가가 창문을 닫았다. 얜 안춥나?


한수영의 침대 위에 앉으려고 하였는데, 무언가를 적고 있는 한수영의 노트북이 보였다. 뭐, 몰래 슬쩍 봐도 괜찮겠지. 


그때, 뒤를 돌아 내 모습을 본 한수영이 급하게 노트북을 닫았다.


“뭘 보려고. 것보다, 왜 들어왔는데?”


난 봉지에서 상자를 꺼내, 한수영에게 건네주었다.


“네가 저번에 부탁했던 거. 힘들게 구해왔다고.”


오! 하면서 급하게 상자를 풀어해친 한수영은 레몬 사탕을 찾고는 입에 넣었다.


“그래, 이 맛이지! 고맙다, 짜식아.”


“누가 사탕을 찾아와달라고 부탁하냐?”


“여기. 네 앞에 있잖아.”


한수영과 나는 웃으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풍경. 몇년전만 하더라도 폐허와 같았던 곳이, 지금은 시나리오 전의 시대처럼 건물들마다 황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한수영은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뽑았다.


“벌써 수많은 시간이 지났어. 뭘 한거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시간은 한 순간에 지나갔다.


“있잖아, 김독자. 나는 너를 위해 쓴 시간이 아깝지 않아.”


한수영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장에서 한 책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오늘 무슨 날인지 잊은건 아니지?”


“그럴리가.”


오늘은 2월 15일. 나의 생일이었다.


한수영이 내게 쥐어준 책의 제목을 바라보자, ‘전지적 독자 시점’이 써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근데, 저번에 유중혁이 쥐어주었던 책과는 다르게 훨씬 더 두꺼웠다.


“맘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생일 선물이다.”


“그 어떤 선물보다 마음에 드네. 고마워, 한수영.”


피식 하고 웃으며 한수영은 내 옆 자리에 앉았다.


“그 책 말이야, 다른거 뿐만 아니라, 우리가 1865회차에서 했던 일부터 시작해서 모든걸 싹 적어놓은거라고. 천재 미소녀 작가님께서 주는 몇 없는 한정판이다?”


그러고는 망설이더니, 한수영은 쥐고 있던 사탕을 내 입에 쑤셔 넣었다.


“이얍! 이거는 서비스.”


그녀가 좋아하는 레몬 맛이었다. 언제였던가, ‘기간토마키아’ 때와 비슷한 상황.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난 이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거, 네가 먹던 거 아니냐?”


“응, 맞는데?”


순간,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는거지. 내가 당황하고 있자, 한수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맛있냐…?”


난 내 입 속에 있던 레몬 사탕을 뽑았다.


“응. 생각보다 맛있네.”


옆을 돌아보았더니, 새빨갛게 변한 한수영이 있었다.


“...김독자 멍청아, 이래도 모르겠냐고.”


그런 한수영의 눈가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툭, 툭, 툭.


난 내가 입고 있던 옷의 소매로 한수영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마, 왜 울어.”


한수영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난 말이야 너를 구하던 마지막 순간에, 혹시나 모든게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


한수영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고 하더라도. 난 끝까지 너를 포기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깐ㅡ”


한수영은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제, 떠나지 말아줘. 김독자.”


창문을 바라보자, 아이들이 보였다.


「[아니, 길영아! 그게 아니라ㅡ]」


「“야, 이길영! 그건 건들면 안ㅡ”」


무언가 날아가더니 하늘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퍼엉! 퍼엉!


수많은 색깔들의 폭죽들이 터지면서 하나의 절경을 만들어내었다.


그때 대충 잠가두었던 창문이 탁, 하고 열리면서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 산들바람은 곧 ‘전지적 독자 시점’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하였다.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전지적 독자 시점’의 끝이 나타났다.


그리고 페이지가 넘어가며 나타난 ‘작가의 말’. 본래 세계선에서 한수영이 적으려고 했지만, 적지 못했던 문장이었다.


난 책을 주워,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내 책을 읽어주겠다는 약속을 잊은건 아니겠지?」


「네가 이 글을 읽고 있는건 이 책을 다 보아서 보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곳부터 펴서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 이제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아. 네가 돌아와주었다는게 중요하니깐.」


「사실, 무슨 문장을 써야될까 많이 고민했다? 어떤 말을 해야지 너에게 진심으로 닿을 수 있을까? 난 그런 고민들 끝에 결론을 내렸어.」


「만약 이 책이 너에게 전해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이 이야기를 봐준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영원히, 너를 위한 종장을 쓸거야.」


난 책을 내려두고 앞을 바라보았다. 한수영이 새빨깧게 물든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봐...”


난 그런 한수영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읍…!”


한수영의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우리는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하였다. 지금은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가 함께 있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입술 사이로 서로에게 전달되는 레몬의 향기가 느껴졌다. 한수영에게서 항상 나던, 달콤한 향기.


얼마나 오래 입을 맞추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우리는 서서히 눈을 뜨며 입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말하지 못하였던 마음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고마워, 한수영. 그리고ㅡ”


“그건 내가 말할래.”


그녀의 말과 함께 책에서 활자들이 날아와 우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미래에는 너와 나의 사이는 어떨까?」


한수영은 내 입을 막고는 나를 안았다. 마치, 더 이상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귓가에 들리는 그녀의 나긋한 목소리.


“사랑해, 김독자. 언제까지나 말이야.”


「어떤 성운의 ‘예언’을 빌리더라도, 미래를 알아내긴 힘들겠지.」


나 또한 한수영을 안고, 그녀의 곱고도 고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뭐, 미래가 어떻게 되는 상관은 없어. 왜냐면 말이야ㅡ」


본래, 한수영과 나는 서로에게 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에서 동료가 되고, 동료에서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난 그저, 너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싶거든.」


“나도 사랑해, 수영아.”


곧, 서로에게 둘도 없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 순간만을 기다릴게, 김독자.」



















EPILOGUE.


.


.


.


“근데, 아까 쓰고 있었던 그 글은 뭐야?”


한수영은 잠시 뜨끔하더니, 이내 노트북을 열어 글을 지우기 시작했다.


“어, 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예전부터 쓰던 글.”


나는 지워지는 글 속에서 겨우 한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좋아한다, 김독자.」


허, 이런거였어?


난 한수영의 뒤로 가 한수영을 안았다.


“왜 그래?”


난 아무 말 없이 한수영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귀여운 내 작가님. 예전부터 고백을 준비하고 계셨어요?”


한수영은 새빨간 얼굴로 나를 쏘아보더니, 말을 꺼냈다.


“네가 먼저 말해줬으면 이럴 일은 없었잖아...”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어... 아저씨?”


옆을 바라보니, 생일파티를 준비하던 일행들도 우리를 바라보며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청난 것을 발견한 듯한 표정.


“어머 어머.”


“이거 새로운 커플의 탄생인 거지? 그치? 사부! 수영 언니랑 독자 아저씨가 말이야~!”


“축하드립니다. 독자 씨.”


한수영과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


“독자 씨는 언제 나오시는걸까...”


<김독자 컴퍼니>의 일행들이 모여있는 집 마당 앞. 모두가 모여있는 자리에서 단 두 사람만이 자리에 없었다.


멀리서 ‘구원의 마왕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던 장하영이 다가왔다.


“원래 주인공이 제일 늦는 법이라고 하잖아.”


“조금만 기다려봐요. 좀 있으면 오겠죠.”


옆에 있던 이지혜는 난리를 치며 유중혁에게 아까 보았던 일을 털어내고 있었다.


“아니, 진짜라니깐! 사부! 둘이서 막 껴안고, 이리저리...”


“거짓말 하지 마라, 이지혜. 그 둘이 그런 사이가 될리가 없다.”


유중혁은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그 둘을 보아왔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그때, 한수영과 내가 팔짱을 끼고 등장하자, 유중혁은 진심으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봐봐! 내 말이 맞지! 저 둘이…!”


장하영이 재빨리 이지혜의 입을 막으며 모습을 숨겼다.


“조금 늦으셨네요, 독자 씨.”


“죄송합니다.”


정희원은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흠. 둘이서 뭐하고 온거에요? 설마...”


한수영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정희원에게 소리쳤다.


“아...아무것도 안했거든! 그냥 옷 좀 차려입고 나오느라…!”


“예, 예. 그러시겠죠. 아무튼, 빨리 와요. 둘 다!”


난 준비 되어있던 자리에 서보았다. 그러자, 하늘에서 바앗ㅡ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나와 생일 축하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건 저 오징어 동상… 저거 광장에 있던거 아닌가? 왜 여기까지.…


[독ㅡ자야!]


“제 배후성이 독자 씨의 생일을 축하해주겠다고 예전부터 만든 동상이에요. 광장에 있던 거 아니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런 거였군. 설마했네.


우리엘은 동상을 마당 앞에 내려두더니, 곧장 내게로 달려와 안겨 내 품에 얼굴을 비볐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수영이는…


수영이가 어디로 갔지?


난 잠시 우리엘을 떼어두고, 일행들에게 대충 둘러대며 수영이를 찾으러 갔다.


*


“독자 씨가 수영이를 많이 좋아하나 보네...”


정희원 옆에 서있던 이현성이 한마디 거들었다.


“독자 씨가 무슨 마음인지 잘 알거 같습니다.”


“오오~ 웬일이래?”


이현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옆을 바라보았다.


이지혜가 유중혁을 툭툭 치며 말하고 있었다.


“이제 믿지, 사부? 진짜라니깐! ...사부?”


유중혁 인상을 쓰더니, 아무 말 없이 어딘가로 향하였다.


[자자! 모두 잔을 들고...]


유중혁은 장하영의 마이크를 뺏어 말하기 시작했다.


“야! 그거 내 마이크야!”


[모두 김독자의 생일 파티에 와줘서 고맙다. 그에 보답하여ㅡ]


유중혁은 본인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것이 김독자를 위한 행동일 것 같았다.


[오늘 요리는 내가 만든다.]


그러자 들리는 사람들의 환호성.


“좋아, 바로 그거야! 유중혁!”


“패왕! 패왕! 패왕!”


유중혁은 야외에 있던 부엌을 향하며 생각했다.


‘너만의 날을 즐겨라. 김독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지혜.


“...사부가 드디어 미쳤나봐.”


*


나는 [전인화]를 발동하여 재빨리 한수영을 찾아 나섰다.


숲을 헤쳐 나가자 한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에는 한수영이 앉아있었다.


난 이 장소를 잘 알고 있다. 잊을 수가 없지. <김독자 컴퍼니>의 첫 노동쟁의가 일어난 장소였으니.


난 한수영 몰래 뒤로 다가가 안았다.


“여기서 뭐해?”


한수영의 표정을 바라보자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있는 것이 보였다. 난 그 표정이 무엇인지 잘 안다. 한수영이 삐졌을 때 보이는 표정.


“넌 우리엘이 더 좋지?”


뭐야, 질투였던 거야?


“에이, 너보다는 아니지.”


난 한수영의 옆자리에 앉아 기댔다.


“...정말로?”


“응. 진짜.”


그 말에 한수영은 기분이 살짝 풀린 듯 하였다.


「[자, 그러면 다들 준비 된 거지?]」


멀리서 들리는 비유의 목소리.


「[시작한다!]」


휘이잉! 휘이잉!


수많은 양의 폭죽들이 날아가더니, 곧 우리의 앞에 서울을 가득 매울만한 폭죽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퍼엉! 퍼엉! 퍼엉!


그 폭죽들은 하나의 스파크가 되어 뭉치더니, 곧 ‘생일 축하해! 김독자!’라는 말이 나타났다.


아까, 비유랑 아이들이 준비하러 갔던 것이 이거였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생일선물이었다.


옆에서 같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수영이 말했다.


“기분 좋겠네, 김독자. 아이들이 이런 것도 해주고.”


물론, 이것들 모두 아주 소중한 선물들이다. 나에게 다시는 없을 수도 있는 소중한 선물들. 그런데도,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또 다른 소중한 선물이 있었다.


“좋지. 하지만 더 좋은 선물이 따로 있잖아?”


터져나가는 폭죽이 우리를 밝히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수영의 예쁜 얼굴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 말을 하면서 내가 한수영을 바라보자,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미친놈...”


한수영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는, 입을 맞추었다. 옆에서 터지는 폭죽이 분위기를 한껏 더 고조시켰다.


입을 떼자, 한수영이 나를 안더니 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 김독자. 그리고ㅡ”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 그것은 바로,


“...사랑해.”


언제까지고, 함께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로맨스 관련 분야는 처음 써보네.
<새로운 시작>도 많이 봐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