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설정 없이 그냥 손 가는대로 쓴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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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오늘도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또다.

또 개 같은 악몽을 꿨다.

아니, 말은 똑바로 해야겠지.

좆같은 기억을 꿈이라는 형태로 다시 떠올린 것이다. 나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는 기억이고.

"하, 씨발."

악몽으로 깨어난 직후엔 항상 욕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하루쯤은 욕이 안 나오길 바랬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내리자 문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곧 문이 열렸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집사였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게 수십 번은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아니, 오히려 처음보다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어, 괜찮아. 가서 물이나 떠 와."

"...예, 알겠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반응하자 집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히 문을 닫으며 물러났다.

"하... 씨발... 진짜 욕 밖에 안 나오네."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을 거칠게 내뱉는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몸이 이불 밖으로 드러나면서 몸을 차갑게 식힌다.

창문으로 가자.

창문으로 가서 바람을 쐬자.

그러면 좀 나아지겠지.

하지만 몸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옮기려 다리를 움직였지만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꼴사납게 이게 뭐야.

바닥에 엎어진 채로 중얼거린다.

어이가 없다. 기억 따위가 대체 뭐길래 몸을 제대로 이렇게 무기력해지는 건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본인의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은근히 주변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것도 항상. 그저 무신경한 태도에 가려져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어떻게 알았냐고?

그야 내가 매일 쫓아다니면서 관찰하고 말을 걸어보기도 했으니까.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괴한에게 죽을 뻔한 나를 구해준 이 사람은 대체 어떤, 그리고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따라다녀보기도 했고, 때로는 우연히 마주친 척 말을 걸어보기도 했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사람 곁에 계속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사람이라면 어떨까,라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얼굴이 붉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선을 넘어버리다 잘못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겁하지만 그와의 애매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병신 같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차가운 사람이었고, 나는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옛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이름을 부르고 서로 반말을 한다는 점이려나.

하지만 그런 날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도, 예고도, 전조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그를 찾아다녔지만 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것처럼 그의 흔적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병신이었다고.

선을 넘으면 유지되고 있던 관계가 깨져서 다시는 볼 수 없을 수 있음이 무서워서 현상 유지를 택했던 병신 중의 병신이었다고.


흑.

눈가가 촉촉해진다.

목이 멘다.

"흐윽..."

억누르려고 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흐아아..."

보고 싶다.

다시 졸졸 따라다니고 싶다.

다시 말을 걸어보고 싶다.

"흐윽, 어딨어..."

아니, 안아주고 싶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손을 잡고 싶다.

"대체, 흐윽, 어딨냐고..."

그에게 기대고 싶다.

그에 품에 안겨 위로받고 싶다.

그의 품에 안겨 얼굴을 부비적거리며 응석 부리고 싶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목청이 터질 듯이 절규를 내지른다.

집이 떠나갈 정도로 절규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현재를 좀먹는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대한 후회를 벗어던지며 눈앞에 펼쳐진 현재만을 바라보고, 미래를 생각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과거에 대한 후회가 현재를 좀먹는다고 할지언정 나는 그 후회를 계속 안고 갈 것이다.

설령 후회를 안고 가는 것이 지옥길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계속 안고 갈 것이다.


그를 너무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