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io - Ribbons

 - 영국의 포크트로니카 아티스트 비비오의 9번째 정규 앨범이다. 일반 버전이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바이닐(혹은 LP) 음반이다. 검정색 디스크에다 중앙에 종이 레이블을 붙여놓은 형태다.

 이 음반은 나에게 의미가 깊은 앨범이다. 왜냐하면 이게 내 첫 바이닐 앨범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때 바이닐 음반이 뭔지 궁금해서 비비오의 WXAXRXP Sessions를 주문했다 잘못 와서 이걸로 받았는데, 우연의 일치였던게 이게 그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앨범이었다. 이거만 하루종일 돌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반송을 하지 않았다.

 안에 들어있는 음악은 가히 아름답다 할 수 있다. 비비오가 예전(Vignetting The Compost같은 앨범들)의 로-파이 포크 스타일로 돌아가면서도 현재의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유지해서 이 Ribbons라는 비비오만의 독특한 포크트로니카 앨범을 만들어냈다. 그 여러 악기들(기타, 아치탑 기타, 바리톤 기타, 바이올린, 필드 레코딩, 롤랜드 V-Synth, 드럼, 베이스 등)을 총동원하여 한 앨범 안에 각각 다양한 분위기들을 만들어 낸 것도 인상깊다. 


!!! - Wallop

 - 미국의 댄스-펑크 밴드 !!!(칙칙칙)의 2019년 8번째 정규 앨범이다. 이 음반은 초회한정반 버전으로, 초록색(청록색에 더 가깝다), 그리고 분홍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글에서 찾기 가장 어려운 밴드 중 하나(!!!이라고 치면 인식을 못 한다. Chk Chk Chk이라고 쳐야 나온다.)인 칙칙칙은 여러분을 광기가 아닌 클럽으로 인도하는 음악을 만든다. 록은 록이지만 쉽게 접근 가능하고 춤을 출 수 있을만한 댄스-펑크를 만드는 것이다. 이 앨범도 마찬가지로 되게 흥겹고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앨범이지만 전과는 달리 앨범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미적 감각과 흘러넘치는 흥을 모두 만족시켜 줄만한 앨범을 찾는다면 난 이 앨범을 추천하고 싶다.


Tune-Yards - sketchy.

 - 미국의 팝/록 밴드 Tune-Yards(튠-야즈)의 2021년 5번째 정규 앨범이다. 한정반으로 나온 파란색 반투명 바이닐 음반이다.

 튠-야즈라는 밴드는 예전부터 내는 음반들 마다 새롭고 신선한 사운드를 선보였었는데 이 앨범도 이 앨범만의 신선한 사운드를 멋지게 선보여주었다. 여러 악기들과 소리들을 오려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도록 붙여둔 콜라주같은 사운드다. 그리고 여러 노이즈와 이펙트를 활용하는 등의 실험적인 면모도 잘 녹여냈다.

 근데 이런 사운드 말고 가사에 집중을 해보면 좀 어두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다. 이 앨범은 전보다 메릴 가버스(이 밴드의 프론트우먼)의 정치적 분노가 확실히 표출되는 앨범이기도 하다. 첫번째 트랙인 nowhere, man같은 경우에도 가사가 미국 앨라버마 주의 낙태금지법에 대한 가사인데(소리지르는 아기들은 '너'의 문제라며 무시하는 부분도 나온다), 이만큼 메릴 가버스의 분노가 가사에서 많이 표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King Krule - Man Alive!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인 킹 크룰의 2020년 3번째 정규 앨범이다. 인디 스토어 한정반으로 나온 하얀색 불투명 바이닐이다.

 2013년 6 Feet Beneath The Moon으로 데뷔한 이후로 여러 매체들의 주목을 받으며 활동을 해온 이 시대의 새로운 음유시인인 킹 크룰은 앨범마다 분위기가 비뀌곤 한다. 6 Feet Beneath The Moon은 활기차면서도 어두운 분위기가 있고, The Ooz는 느와르스러우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데, Man Alive!는 전보다는 좀 분위기가 가라앉은 느낌이다. 전보다 조금 차분해졌다고도 말 할 수 있겠다. 어둡고 과격한 분위기가 아예 사그러들지는 않았으나 전보다 비중이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앨범이 전작보다 좀 아쉬운가? 그건 또 아니다. 이 앨범은 전에 발매했던 앨범들보다는 색채가 더욱 화려해진 느낌이 든다. 마치 흑백영화를 보다가 컬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밝게 변한 킹 크룰의 분위기도 한 몫 하지만 이그나시오 살바도레스(킹 크룰 밴드의 색소폰/백킹 보컬 담당)의 색소폰의 공이 크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변화를 느껴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니 킹 크룰을 좋아한다면 한 번 쯤은 꼭 들어봐야 할 것이다.

Squid - Bright Green Field

 - 영국의 록밴드 스퀴드의 2021년 데뷔 앨범이다. 인디 한정반으로 나온 초록색 반투명 바이닐이다.

 스퀴드는 데뷔 앨범을 내기 전에도, 낼 때도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브라이튼의 동네 재즈 밴드로 시작해 활동을 이어오다 그들의 싱글 Houseplants가 유명세를 얻고, 나중에 워프 레코즈에 영입되어 3개의 리드 싱글을 발매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발매되자마자 여러 매체들에서 극찬을 하고, 심지어 2021년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도 올랐으니...

근데 그런 이유에는 다 이유가 있다. 스퀴드는 이 앨범에서 여러 장르와 스타일,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재즈였다가 펑크였다가 하는 재밌고 자유분방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평온함과 혼돈이 공존하고(Narrator와 2010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곡 진행이 아주 스릴 만점이다. 대단하다 이 밴드.

그리고 이 앨범은 올리 저지(이 밴드에서 드럼/리드 보컬을 담당)의 보컬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실험적이고 열정적인 음악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바로 올리 저지의 보컬이다. 보통 수시로 높낮이가 달라지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보컬을 구사하지만, 때로는 차분하게 깔아주다가 갑자기 절규하는 듯이 훅 들어온다. (얼마나 강하냐면 Narrator에서는 목소리가 깨질 정도다;;; 얼마나 강하게 불렀으면 마이크가 감당을 못 할까)

이런 이유로 신세대 포스트-펑크 록의 정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은 이 앨범을 꼭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좋은 건 나눠야 하니까.


Beck - Gamma Ray / Bonfire Blondes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벡의 2008년작 Modern Guilt에서 나온 싱글이다. 한정판으로 나온 하얀색 7인치 디스크이다.

 벡의 Modern Guilt는 개인적으로는 너무 과소평가된 앨범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여러 매체에서 평가를 좀 낮게 줬는데도 이렇게 창의적인 음반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 당시. 하지만 아직도 좋은 앨범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특히 Gamma Ray라는 곡이 제일 특이했던 것 같다. 60년 대의 서프 록 같은 음악을 깔고 감마 레이와 녹아내리는 만년설, 지루함, 활활 불타는 집 등을 노래하고 있으니... (그 때의 나는 이런 분위기가 이 앨범의 이름(Modern Guilt, 현대의 죄책감(?))에 걸맞는다고 생각했다. 지금 들어도 맞는 말처럼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싱글 뒷면에 수록되어 있는 Bonfire Blondes는 음악 자체는 좀 흥겨운 듯한 일렉트로닉 록이지만 가사는 좀 섬뜩한 내용들("전 인류에게 정크 메일을 보냈어", "불이 꺼지고, 그들은 모닥불에 금발들을 던져/미녀들은 불타지만 내 등골은 너무 차가워"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Modern Guilt의 반전매력 아닌가. 음악은 좋지만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매우 심오한 것.

Burial, Four Tet, Thom Yorke - Her Revolution

 - 영국의 아티스트 베리얼, 포 텟(요즘 도미노 레코즈랑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그 사람 맞다), 톰 요크(라디오헤드의 프론트맨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가 2020년에 내놓은 싱글이다. 바이닐은 2021년이 되어서야 나왔다. 한정반으로 나온 검정색 12인치 디스크이다.

 예전에 이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계에서 알아주는 사람들(톰 요크는 솔로 활동으로도 고평가를 받고 있고, 포 텟은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으며, 베리얼은 UK 덥스텝의 거장이다) 세 명이 모여서 이런 앰비언트 풍의 음악을 만들다니. 근데 Her Revolution에서의 잔잔하게 퍼지는 몽환적인 피아노 소리, 피아노 소리와 조화를 이루는 부드러운 드럼 소리, 그리고 듣다 보면 빠져들게 만드는 톰 요크의 달콤한(?)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결국 내 최애 싱글 중 하나가 되어버렸따. 그리고 His Rope에서는 내가 기대하던 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한다. Her Revolution과는 달리 타격감이 더 세진 비트, 몽환적인 피아노와 더불어 포 텟 특유의 신비한 신디사이저, 톰 요크의 좀 굵어진 목소리 등이 돋보인다.


불싸조 bulssazo))) - 한(국힙)합

 - 한국의 슈게이징 밴드 불싸조의 4번째 정규 앨범이다. 한정반으로 나온 검정&하양색 음반이다.

 불싸조가 원래 이런 분야(음반 쪽)에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서 음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뽑아낸다. 저걸 봐라. 이건 아주 완벽한 음과 양의 조합이다! 알흠답지 않은가? 화려하지 않은가? 마치 우유를 넣은 커피같지 않은가???

근데 내가 가장 충격먹은 것은 음반이 아닌 음악이었다. 이 앨범에 들어있는 곡이 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좀 둥글둥글하고 몽환적인 기타 소리와 슈게이징 특유의 강렬하고 찢어질 것 같은 기타 소리가 번갈아 가면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선사한다. 또 베이스도 엄청난 중독성을 자랑하고 드럼도 아주 열정적이다. 그리고 (It's Bigger Than) Hip Hop 앞에 있는 짤막한 나레이션이 기억에 남는다. 힙합 음악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이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음악이 아니며, 돈을 벌기 보다는 세계에 한국 힙합을 알리기 위해 활동한다는 내용인데, 아무래도 요즘 힙합(이제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아니게 되어 버렸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음악이 되어버렸고, 세계에 한국 힙합을 알리기 위해 활동하기 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활동하게 되어버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는 의도에서 집어넣게 된게 아닌가 싶다. 애초에 한상철 선생님이 절대로 힙합을 적대시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한상철은 힙합을 좋아하고, 이전에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인 제이 딜라를 위한 추모곡을 만든 적이 있다. Time: The Donut Of The Heart (Jay Dee - 1974 - 2006)이 바로 그것이다.)


사각형 미는 사람 - 나에게 이상한 것들을 먹여달라

 - 영국의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스퀘어푸셔의 1996년산 데뷔작이다. 2021년에 25주년을 맞아 리마스터링한 기념으로 2가지 한정반을 출시했는데, 그 중 하나인 투명 디스크 버전이다.

 솔직히 IDM이 다 차갑고 난해한 음악인 것은 아니다. 물론 일반인들이 듣는 음악에 비해 음악이 너무 난해한 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다 감성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스퀘어푸셔가 그 예시이다. 

따뜻하고, 불규칙하고, 몽환적이고, 창의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 앨범에 담겨져있다. 말랑말랑한 베이스 소리, 도무지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비트, 마치 꿈 속을 걸어다니는 듯한 몽롱한 분위기, 창의적인 곡 구성, 그리고 때때로 강력하게 몰아붙이는 공격적인 사운드. 이게 뭐지 싶겠지만 들어보면 안다.

재즈와 테크노의 미묘한 밸런스도 주목할 만 하다. 분명히 일렉트로닉 음반인데 재즈의 느낌이 엄청 묻어난다. 이 점은 Smedleys Melody에서 직접 느낄 수 있다. Amen Break*를 잘게 분리해서 아주 복잡하게 배치하고, 스퀘어푸셔의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베이스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그 미묘한 밸런스를 잘 지켜낸다.


드디어 끝이 나는구나

~끝~

* Amen Break: 소울 밴드인 더 윈스턴즈 (The Winstons)의 Amen, Brother에 나오는 드럼 솔로를 활용한 브레이크비트 리듬 패턴. 스퀘어푸셔가 이 브레이크비트 샘플을 아주 많이 사용하기로 유명했다.


추신: 학교 생활 즐거운! Very 재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