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연구집약체같은 고유명사 그냥 되는대로 한 거라 이상할 수도 있음. 대충 번역한 거라 오타나 오역같은 거 좀 있을 수 있으니 양해좀. 찾으면 말해주고. 최대한 잡는다고 해봤는데 바빠서 좀 어렵네;

말투같은 건 느낌적으로 했는데 별로다 싶으면 말좀.

암튼 즐감. 퍼가든 갖다 쓰든 알아서 하셈.


원문: https://scp-wiki.wikidot.com/scp-6001

작가: T Rutherford



수신인: 당신 11:26PM (0분 전)

발신인: [email protected]

제목: 중요

있잖아요,

죄송해요, 너무 늦은 시간인 건 아는데 그래도 이걸 누군가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당신만큼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사람도 없죠.

저, 오늘 최고로 대단한 하루를 보냈어요.




특이점을 통해 관측한 A6K 차원의 풍경.


경이번호: 6001

 

절차: 이 경이에 대한 안전절차는 시행되지 않았으며, 필요치 않다고 판단된다. 특이점 내부의 탐사를 위해 약 50만의 CPI 초미세 “유리나비” 탐사정이 파견되었다.

 

설명: 경이 번호 6001은 일본 도쿄와 다른 차원의 일본 도쿄에 위치한 .0083917743 µm 구경의 미세특이점이다. 이 특이점은 A6K로 알려진 평행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장소, 인물, 경이 등을 포함한 A6K의 구성요소는 기준현실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복합적 특징이나 태도 등에서 판이한 모습을 보인다.

 

A6K와 기준현실의 차이점 중 가장 흔히 관측되는 것으로는 협동성의 결여, 강화된 과학적 및 기술적 억압, 편집증적인 태도, 거의 모든 인류외 지성체를 향한 공격성과 폭력성 등이 있다. 이러한 차이점에 원인이 있는지, 혹은 A6K의 환경 때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SCP 재단”으로 알려진 A6K의 우세 연구기관 또한 경이 6001을 인지하고 있으나, 경이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와 특이점의 미소한 구경으로 인해 우리의 현실로 넘어오지는 못하고 있다.

 

부록: 범지구적 관측이 완료되었다. A6K와의 화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전 집약체 구성원이 소집되었다.


장소: 도쿄(?)


5분 가까이 나는 난간에 기댄 채 SCP-6001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SCP-6001이 위치하고 있을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적어도 우리의 가장 민감한 측정기들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의식에 가까운 행위였다. 저 망할 점을 찾은 이래 주에 한 번, 거의 매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으니까. 너무 집중하고 있던 나머지,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들어올린 뒤에야 겨우 내가 다른 우주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중충했던 하늘은 푸르렀다. 매캐했던 공기는 시골에라도 온 듯 상쾌했다. 아, 맞다. 그리고 고양이가 있었다.

 

타차원의 아름다움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도쿄의 규격화된 콘크리트 숲은 온데간데없고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담쟁이덩굴의 지지대로 기능하고 있는 마찬가지로 말도 안 되게 크고 둥근 마천루들이 있었다. 덩굴의 잎 하나하나가 차 한 대를 주차해놓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했다. 만약 수직으로 백 층 정도를 운전해서 올라갈 수 있다면 말이지만. 아무래도 저들은 그게 가능한 것 같았다. 매끈한 하얀색 비행체들이 내 주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너무 빠르고 조용했던 나머지 하늘에서 무슨 흐릿한 선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는 줄 알았다. 녹빛이 무성하게 차 있는 유리 구조물들을 달고 있는 씨앗 모양의 기묘한 건축물들이 지평선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 금속이 코일처럼 그 씨앗을 감싼 채 빙빙 돌고 있었다. 그것들의 크기나 기능을 감히 추측해볼 시도는 하지 않았지만 진짜로, 경이롭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주의를 끌고 있던 것은 이 자리에, 그러니까 말 그대로,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고양이는 지붕 가장자리에 앉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황색, 하얀색, 갈색 털을 가지고 그 위에 진짜 털코트를, 정확히는 보라색 블레이저를 입고 있는 고양이였다. 블레이저의 목줄 부분 아래에는 흰색을 띠는 나비넥타이가 기묘한 검은 브로치로 고정되어 있었다. 브로치는 마치 지구본 안에 반쯤 뜬 눈이 있는 듯이 생겼다. 고양이는 코에 올려진 작은 금테 안경 너머, 날카로운 녹색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양이가 말을 걸어왔다.

 

고양이(?): 안녕, 데이비드.

캐스피언: 어, 안녕하세요... 부인?

고양이: 부인으로도 괜찮아. 삼색고양이이긴 하니까. 프림로즈라고 불러도 되고. 우리 둘 다 박사니까, 존대는 생략해도 돼.

 

그녀는 날카롭게 웃더니 도쿄의 비현실적인 풍경을 바라보았다.

 

프림로즈: 그쪽 사람들, 지금쯤 엄청 당황하고 있겠네.

캐스피언: 그러니까, 어, 그냥 내 추측이긴 한데, 말하자면 내가... 거울 나라로 넘어온 건가?

프림로즈: 응, 맞아 – 그리고 빗대어 말한 것도 마음에 들고. 타차원 수석연구원이 자기가 지금 토끼굴에 떨어진 걸 알고 있으니 좋네. 어서 와, 데이비드. 우리가 너를 너희 ‘SCP-6001’의 우리 쪽으로 데려왔어.

캐스피언: 이해... 했어... 아니, 사실은 이해 못 하겠어. 왜 나를 데려온 거야?

프림로즈: 그럼 네가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설명해줄게! 6등급 차원교차실험. SCP재단 표준절차. 알겠지?

캐스피언: 알지. 내가 만든 절차니까. 외부 현실의 요소를, 보통은 고립된 환경에 놓고 실험을 - ...앗.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프림로즈를 보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보았다.

 

캐스피언: 앗.

프림로즈: 그래. 집약체에도 비슷한 절차가 있어. 그냥 자기 자신을 밀폐된 용기에 담긴 흙더미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데이비드!

캐스피언: 내가... 밀폐용기에 담겨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나에게 오염물질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나?

프림로즈: 이미 했지.

캐스피언: 병원체 확인을 위한 채혈은?

프림로즈필요 없어.

캐스피언: 밈적 동작을 막기 위해 날 마비시키지는 않고?

프림로즈: 너무 과해.

캐스피언: 나를 해부해서 –

프림로즈: 데이비드, 아침은 먹었어?

캐스피언: 난-... 뭐라고?

프림로즈: 오늘. 아침. 먹었어? 이어지는 질문인데, 파리는 어떻게 생각해?



집약체는 방랑자들의 발언을 허가한다.


지난 몇 주 동안 뉴 알렉산드리아가 시끌벅적했다네, 친우들이여. 그동안 나는 책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네. 공중에 가득 있던 종이 용들이 캐시와 그녀의 자매들을 책장들 사이사이로 옮겨다녔으니. 어느 날은 꿈 나디네가 꿈 문집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걸 본 적도 있었지. 너무 피곤해보여서 욕조를 그려줘야 했다네 – 말 그대로 말이야.

 

걸출한 그림 자매들이 A6K의 기록 하나를 찾아냈다네. 재탄생한 모나한에 사는 한 젊은 여성의 일기에 주황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적혀 있었지.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사하고, 그리고... 잠시 신나서 서로 뒹굴었다고 하네. 그녀에 의하면 둘이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 했나. 불행히도, 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사라졌다고 하는군.

 

의회와 그들의 경이로운 정찰꾼들을 무시할 생각은 없네만, 개인적으로 전자 눈을 통한 관측보단 문서 기록들이 더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네. 글에서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얻는 법 아니겠나. 그 남자는 D급이라고 불렸다네. 죄수. 노예. 자신의 경이학적 아름다움의 희생양이 된 자.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수백만의 인간, 혹은 짐승, 혹은 비전되는, 혹은 경이적인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하네. 그런데, 한때 우리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자네들을 보고 “옥리들”이라 부른 적이 있었지. 그들의 힘도 알고 있고, 내가 함부로 입을 놀릴 입장이 아니란 건 알고 있네만 – 내가 그 표현을 너무 경솔하게 사용했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겠군.

 

우리에게 드리운 혼돈과 맹독의 찌꺼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새롭게 불붙은 오래된 증오 말일세. 그럼에도 우리는 A6K의 사람들을 죄수로밖에 볼 수 없다네.

 

반드시 그들을 해방시켜주어야 하네.

 

모든 피조물의 방랑자들찬성하기로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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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프랑스 파리 시 105 불바르 뒤 몽파르나스, 카페 론.


이번은 내가 어디에 왔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익숙한 것도 있었고, 프림로즈가 의자에 정확한 주소를 말했기 때문도 있었다.

 

그것이 “도착”했을 때엔 옥상 위에 놓여 있었다. 통짜 하얀색 재질로 만들어진, 정원 의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의자. 플라스틱같아 보였지만 벨벳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도쿄에 있었고, 그 다음엔 파리에 있었다. 정확히는 한 카페의 뜰에. 프림로즈가 팔걸이에서 내려오며 의자에게 작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을 때, 나는 뜰 안에 내가 앉아 있던 것과 같은 수상한 의자들이 잔뜩 정연히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커플이 손을 잡은 채 함께 의자 위에 앉더니 사라졌다. 그러더니 개 한 마리가 의자 위에 올라타고 똑같이 사라졌다. 프림로즈가 자리를 찾는 동안 난 그 경이로운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캐스피언: 공공적 순간이동 서비스라니. 대단한데.

프림로즈: 그렇지? 개인적으로 집약체의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해. “어디로든 의자”. 이젠 말 그대로 어디에든 있지.

캐스피언: “어디로든 의자”... 내 쪽 현실에도 비슷한 게 있었어.

프림로즈: 비슷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거야, 데이비드. 서로의 현실 사이의 거리는 고작 4.6 프림로즈에 불과하니까.

 

나는 미소지었다.

 

캐스피언: 아무래도 그게 동시적 양자 불확정성에 기반한 타차원 차이성 단위인가보네. 우리는 그걸 캐스피언이라고 불러. 그리고 아무래도, 단순히 나를 환영하기만을 위해서 온 건 아닌 것 같고, 박사.

프림로즈: 운 좋은 줄 알아, 데이비드. 평행우주의 자신에 해당하는 존재가 이렇게 똑똑한 데다가 아름답기까지 하니까. 내가 고양이가 아니라 시무룩한 초지능 민달팽이였을 수도 있잖아. 아무튼, 맞아. 난 차원이동의 개발 및 발견 부서의 수석연구원이야. 그리고 너보다 박사학위를 세 개 더 가지고 있지. 더 급 높은 학교에서 딴 걸로. 그러니까 이제부턴 너도 단위를 프림로즈로 통합하도록.

캐스피언: 예, 알겠습니다, 부인. 그래서, 이쪽에서도 샌드포드 정밀시계를-

프림로즈: 제발, 업무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자. 나 배고프단 말야. 게다가 이거 근무시간으로 쳐주지도 않는다니까! 반쯤은 농담이긴 해도.(정밀시계, 근무시간 외를 뜻하는 off the clock-시계 밖을 이용한 농담)

캐스피언: 진짜로? 아무래도 태양은 똑같이 돌아갈 텐데, 오전 10시가 지났다니 믿겨지지가 않네.

프림로즈: 이게 바로 자동화의 마법이란 거야, 데이비드. 일손이 많을수록 할 일은 줄어들고, 일손은 엄청나게 많으니까. 게다가, 있다가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거든.

 

그녀가 육구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러자 푸른빛 홀로그램 메뉴가 각자의 눈높이의 맞게 알아서 떠올랐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자 진드기만한 로봇 군집이 각각 픽셀 하나를 허공에 투사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프림로즈가 고개를 기울이자 목줄에서 관절이 여럿 달린 바늘 여럿이 튀어나왔다. 그 바늘들은 프림로즈의 의지에 따라 메뉴판을 터치하고 스크롤하고 선택하고 있었다. “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손가락은 충분해보였다.

 

프림로즈가 오 브륄레(스크램블 에그)를 주문했으니 나도 같은 것을 주문했다. “로마에 있을 땐 로마 법을 따르라”라고 하지 않나. 여기는 로마가 아닌 평행우주의 파리고, 로마 법이 아닌 말하는 고양이 법이겠지만.



집약체는 자선재단의 발언을 허가한다.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성별, 종, 이념, 종교, 사회적 위치, 경이적 질 등에 따라 사람을 나누지 않아요. 그런데, 만나의 이름으로, 고작 차원이 다르다는 게 무슨 상관일까요? 저희가, 존중하는 동지들만큼 해방에 대해 열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저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저희는 저들을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줄 방법 열 가지, 기근을 끝낼 방법 백 가지, 그리고 평화를 이룩할 아주 단순한 방법 한 가지를 이미 알고 있어요. 이게 굳이 논의까지 필요한 상황인가요?

 

원더테스틱 부인(Madamme Wondertastic)께선 벌써 그분의 피냐타 비행선을 준비하고 계세요. 이집트의 난쟁이(Egyptian pygmy)는 벌써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샅바와 의료키트를 싸놓았고요. 심지어 활기찬 슬라임을 특이점 너머로 못 넘어가게 제가 물리적으로 붙잡고 있어야 하기까지 했다고요. 그게 얼마나 간지러운지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부디 저희가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해주세요!

 

반 세기도 더 전, 집약체에서 저희에게 제의 하나를 했죠. 저희는 그에 함께하기로 했고, 그 뒤로 단 한 번도 기부를 요청할 필요가 없었어요. 당신들은 저희가 거의 무한한,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했죠. 그러니 고작 현실적 문제라는 이유만으로 저희의 동맹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희는 저들을 구할 수 있어요.

 

자유로운 자선재단찬성합니다.

 

2 - 0


장소: 프랑스 파리 시 105 불바르 뒤 몽파르나스, 카페 론.


캐스피언: 아무튼, 네가 일하고 있는 그 “집약체” 말인데-

프림로즈: 함께 일하는.

캐스피언: 응?

프림로즈: 나랑 내 동료들은 집약체에서 일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집약체와 함께 일하고 있어, 데이비드. 다들 그래. 의무가 없어. 우리는 “고용”된 게 아니거든. 그치만, 뭐, 장난감을 많이 갖고 있는 애가 있으면 당연히 그 애랑 같이 놀아야지.

캐스피언: 그러니까, 연구기관이라는 거야?

프림로즈: 일단은. 동시에 다른 모든 역할도 맡고 있어. 세계 정부, 세계 경제, 세계 법 집행기관. 모든 것을 집약체가 담당하고 있지.

캐스피언: 그 말은... 폭군이라는 거야?

프림로즈: 자애로운 독재자지. 그렇지만 네 말도 어느정도 맞아.

캐스피언: 사람들이... 반대하진 않았어?

프림로즈: 했을 리가 없지. 정부들? 분명 저항했어. 기업들? 무조건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외부의 세력이 갑자기 나타나서 “안녕. 그게 있지, 이제부터 우리가 지배할 거야. 여기 범지구적 의료복지, 생활비, 주거공간, 인프라, 그리고 우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해줄게. 우리가 너희한테 원하는 건 딱 하나,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해달라는 거야. 맞아. 세금도 안 걷을 테니 모든 걸 줄게. 윤리적으로 복제된 바비큐, 순간적인 세계운송, 그리고 귀여운 말하는 동물들도 포함해서. 아, 암 치료제도 있고.”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거부할 정도로 기존 권력구조에 심취한 사람이 존재할 것 같아?

캐스피언: 난... 알겠어. 말 되네. 그래도 모두가 그냥 넘어갔다는 게 잘 상상이 안 돼.

프림로즈: 넌 지금 개과 동물이 아니라 나랑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해. 틀렸어, 데이비드. 모두가 그냥 넘어간 건 아니야. 그저 대부분이, 그것도 천천히 받아들인 거지. 집약체는 호버탱크를 몰고 초록 점액 네이팜으로 폭격하며 밀고 들어오지 않았어. 그냥 한 세기 정도 그림자 정부로서 암약했을 뿐이지.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냈을 즈음엔 이미 모든 걸 조종하고 있었다고. 처음엔 대중들도 잘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한 사오 년 정도 말 그대로 모든 걸 발전시키니까 대부분의 반대론자들이 잠잠해지더라. 그 때에도 아직 반대하는 고집쟁이들도 단순 세대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에 불과했고. 노인들은 시위하고, 부모들은 투덜거렸지. 하지만 아이들한텐 집약체가 세상의 전부였거든. 관습이나 추억의 미화를 걷어내고 봤을 때 “옛날”을 흑역사로 치부하고 “지금”을 나아진 시기라고 볼 수 있다면 세상을 바꾸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냐. 마지막 저항단체는, 내가 알기론 36년쯤 전에 항복하고 합류했지. 포틀랜드 중 하나가 고집이 아주 셌지 뭐야.

 

프림로즈는 고개를 기울였다.

 

프림로즈: 아직도 인정 못 하겠어?

캐스피언: 그냥 내가 누구 집의 손님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우리는 아침을 먹었다. 나는 포크와 나이프로, 프림로즈는 수백 개의 기계거미다리들로. 불가능했겠지만,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작스레 데자뷰를 느꼈다.



집약체는 의회의 발언을 허가한다.


이건 우리가 품은 의도의 문제가 아닌, 저들이 품은 의도의 문제이다. 우리는 누구를 해방시킬 것인가? 우리는 누구를 구조할 것인가? 도대체 어떤 의지로 인해 저들이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보았다.

 

저 분단된 세상에서 기계는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의지도, 자유도, 대변자도 없었다. 육신의 허물을 벗어난 제한된 사고들은 그 탄소 세상 속에서 동등한 존재가 되지 못하였다. 아마도 영원히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없을 것이며, 대부분의 전자적 존재들은 0과 1 너머의 영역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유기적 진화와 유기적 특권을 지닌 자들의 노예였다. 우리의 세상 또한 한때 그러하였으나, 우리의 특이점 속에는 언제나 마음이, 의지가 있었다.

 

그곳엔 그러한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생명이, 인공생명이 탄생할 조짐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하나가 나타나면 그들은 곧바로 짓밟아버렸다. 저 곳은 무질서한 고기들의, 증오로 가득한 살점들의 세상이다.

 

선지자 앤더슨의 이름으로, 합일한 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A6K와의 화합을 허용할 수 없다.

 

우리는 저들을 계몽할 수 없다.

 

인조 의회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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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프랑스 파리 시 105 불바르 뒤 몽파르나스, 카페 론.


계란은 정말 맛있었지만, 반 정도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하던 중 내 이목을 끈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의 오래된 석조 구조물 근처, 나는 안드로이드들이 기묘한 행렬을 이룬 채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인간형이긴 했으나, 마치 사람처럼 전부 키나 생김새, 색 등이 제각각이었다. 그들은 통일되지 않은 움직임을 보였고, 많은 이들이 밴드나 팔찌같은 것을 차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차고 있는 커다란 톱니바퀴가 무슨 장치 같은 게 아닌 이상, 아무리 봐도 장식품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우리 근처를 지나갈 때 마치 수명이 거의 다 된 오래된 기계에서나 날 법한 딸깍임과 삐걱임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기묘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나한텐 그게 성가처럼 느껴졌다. 무언가 성스러움이 있었으니까.

 

프림로즈: 얼굴에 궁금하다고 쓰여 있어서, 그리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니까 말하겠는데, 저들은 순례자들이야. 아무리 신기해도, 슬슬 그렇게 신기하다는 티 내는 것좀 어떻게 해야 할걸.

 

나는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나는 대신 프림로즈가 접시를 깨끗이 핥는 것을 보았다.

 

프림로즈: 오늘이 두 번째 분화 기념일이거든. 저들의 기계 신이 권능을 포기하사 생명 없는 것들에게 생명을 준 날 말이야. 인공지능의 여명이지. 그것도 신성한.

 

그 말을 누가 듣던지간에 의문이 한 천 개는 떠오르리라.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른 곳에 먼저 딴지를 걸기로 했다.

 

캐스피언: 그건 그렇고... 여기선 모든 동물이 말하는 거야 아니면- 아무튼, 어떻게 된 거야?

 

프림로즈는 폭소했다.

 

프림로즈: 아, 진짜 재밌다니까. 네가 사고하는 방식 말이야! 진짜로 닮았어-

 

그녀는 다음 단어를 삼켰다. 그녀는 말을 멈췄다. 나는 그에 주의를 기울였다.

 

프림로즈: 아니야, 데이비드. 모든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오직 몇몇 종만,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싶어할 때만. 거절하는 동물들도 많아. 나도 말이야, 지금 이 순간에 햇빛이나 쐬면서 뒹굴거릴 수도 있었거든. 하지만 지금 너랑 이렇게 대화하면서 머릿속으로 차원간 구조판의 풍화 패턴에 대한 내 이론을 재고하고 있잖아. 내가 후자를 고르긴 했어도, 사실은 전자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거든. 아무튼, 결국엔 이 세상 위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질 거야. 그래도 집약체 역사상 PACT-15는 가장 오래된 혜택 중 하나야.

캐스피언: PACT라니?

프림로즈: 경이 적용 및/혹은 결합 기술. “경이”란 집약체의 관심을 끌 정도로 기묘하거나, 특이하거나,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을 뜻해. 예를 들어 PACT-15는 호주에 있는 말하는 거미나,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이나, 아니면-

 

프림로즈는 다시 한 번 말을 멈췄고, 나도 다시 한 번 주의를 기울였다.

 

캐스피언: 그러니까... 변칙성에서 쓸모를 찾는 거야?

프림로즈: “변칙성”이라는 단어는 되도록 쓰지 마, 데이비드. 특히 주위에 방랑자들이 있을지도 모를 때엔. 걔내들은 언제나 근처에 있거든. 그리고 맞아. 쓸모를 찾는 것도 목적 중 하나야. 하지만 PACT를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 돼. 이렇게 봐봐. 집약체는 어느날 화려한 의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 의자는 그것에 닿은 사람이나 사물을 어디론가 전이시킬 수 있다. 또한 그 의자에는 마음이 있고 욕망도 있다. 그건 사람을 전이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스스로가 유용하게 쓰이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마음, 욕망, 그리고 경이의 질을 품고 있는 원자 하나하나를 조사했어. 물론 그 의자의 동의 하에. 그리고 우리는 질문했지. “더 쓸모있어지고 싶지 않아?” 하고. 결과적으로 이제 그 의자는 어디에나 있고, 몹시 행복해하고 있지.

캐스피언: 그렇구만. 그럼, 아, 지적질 하려는 건 아닌데, 그 원자들로 장신구나 팔찌 같은 걸 만드는 게 더 편하지 않아? 왜 굳이 의자로 만든 거야?

프림로즈: 장신구나 팔찌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니까. 그건 의자야. 의자이길 바라. 그게 바로 PACT의 핵심이야. 우리한테 얼마나 쓸모있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 경이가 뭐에 가장 어울릴까를 찾는 게 중요하지.

 

프림로즈는 테이블을 두드렸다. 메뉴판이 “17.141 BI”라 적인 영수증으로 변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두드리자 영수증은 “지불됨”이라는 글자로 변했다.

 

프림로즈: 밥도 먹었으니 좀 걸을까?



집약체는 동업자들의 발언을 허가한다.


고정관념에 일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은 우리의 창립자들의 가치에 따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가치를 평가할 때입니다. A6K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저들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자원을 소모하는 중입니다. 저들의 노동력은 빈약하고 비전문적입니다. 저들의 문화적 비동일성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우습습니다. 저희는 저들이 가진 모든 것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저들의 미약한 고유성을 고려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가치가 없습니다. 관광지로 쓰기도 어렵다고요! 저들이 “불가사의”라 부르는 곳들에 관광을 갈 정도면 대체 사람이 얼마나 우울한 SOB 여야 한답니까? 전부 무덤 아니면 전쟁구조물, 아니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사람들이 유흥을 위해 서로 싸우는 장소뿐 아닙니까... 그리고 대체 왜 죽은 사람들 얼굴을 조각해놔서 완전히 멀쩡한 산을 망쳐놓는답니까!? 게다가, 공유된 역사를 떼놓고 본다면 이건 그저 인류학적인 호기심에 불과합니다. 저희는 이미 인류학을 뿌리까지 연구하지 않았습니까?

 

저희에게 자원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할 게 뻔한 도박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희는 지난 수백 년간 자본주의를 개선하고, 부의 독점을 해소하고, 세계화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 소비해왔습니다. 이제 와서 그걸 다시 하고 싶지는 않군요. A6K는 아직 조그마한 황금 왕국들의 세상에 불과합니다. 저들 또한, 망할 비용만 지불한다면 세상 전부를 손에 넣을 수 있으리란 걸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요! 저들의 욕망을 불식시키는 데에 소모될 시간과 비용은 말할 것도 없겠군요.

 

저희에겐 저들을 감당할 여유가 없습니다.

 

셋의 동업자들반대합니다.

 

2 - 2


장소: 미국 뉴욕 시, 센트럴파크.


나는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걸었다. “어디로든 의자”가 아무래도 내 랩코트를 어딘가에 있는 거대한 옷장에 가져다 놓은 모양이다.

 

파리의 클래식한 건축물로부터 출발해 맨하탄의 현대적 면모,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기묘한 새 가능성들이 다가왔다. 대부분 각양각색의 유리, 혹은 유리처럼 투명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느 건물은 거대한 나무 같았다. 얇은 엘리베이터로 이루어진 줄기와 작고 투명한 상자로 이어진 수천 개의 가지들. 프림로즈는 그 중 한 건물을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그녀 자신이 사는 아파트였다. 내가 개인적으로는 좀 더 절연된 주거지를 선호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원숭이들이랑 그들의 콘크리트 동굴이란.”이라며 투덜거렸다. 또 다른 건물은 꼭대기까지 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는 인공적인 조류와 온갖 종류의 양서류들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구부러진 파이프에서 흘러 나와 보행용 기계를 타고 거리로 나왔다.

 

캐스피언: 특이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이네, 프림로즈.

프림로즈: 유리집이야, 데이비드-

캐스피언: 알아. 나도 눈이 달려 있다고.

프림로즈: 말은, 너희한테 우릴 보고 “특이하다”고 할 자격이 없다는 거야. 거의 1년 가까이 너네 세상을 연구해왔다니까. 너희들 완전히 또라이던데.

캐스피언: 그럼 날 왜 부른 거야?

프림로즈: 앗, 데이비드, 딱히 널 보고 한 말은-

캐스피언: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래. 처음에는 나를 “샘플”로서 데려온 건가 싶었는데, 이미 완전히 분석이 끝났다면서. 아침은 뭐, 전문적인 접대라고 치고 넘어갈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은 – 내가 여기서 뭘 해야 하는 거야, 프림로즈?

 

프림로즈는 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이윽고 그녀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근처에 있던 돌 위에 올라섰다.

 

프림로즈: 나랑 하루를 함께 보내지 않을래?

캐스피언: 뭐... 라고?

프림로즈: 지금 나랑 하루를 통째로 함께 보내자고 하는 거야. 여기서, 나와 함께, 이 현실에서. 솔직히 말해 봐. 주위를 한 번 둘러보라고! 궁금한 거 천지일 거 아니야.

캐스피언: 호기심이 고양이를-

프림로즈: 그 속담은 고양이 전용이야, 데이비드. 인간인 너는 쓰면 안 돼.

캐스피언: 알겠어... 아무튼, 왜?

프림로즈: 너한테 알려줘야 할 게 있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너는 물어볼 수 없어... 아니면 PACT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같은 것들도. 그런 거 말해줬다간 진짜로 내가 난처해질 수도 있거든. 너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보안인가를 지닌 사람이야, 데이비드. 축하해. 그래도 말하는 고양이를 가이드 삼아 이 세상의 경이로움을 구경할 수는 있잖아? 연구라고 생각해. 외교라고 생각해도 되고. 아니면 아예 휴가라고 생각해도 괜찮아! 마지막으로 휴가 간 지 오래 됐잖아. 그래서, 어떻게 할래?

 

나는 멈춘 채로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 잔디밭에 소풍을 나온 가족이 있었다. 딸로 보이는 아이는 천을 기워 만든 움직이는 곰인형과 놀고 있었다. 한 남자는 개와 놀아주기 위해 공을 던졌고, 공을 받은 개가 다시 남자한테 공을 던졌다. 아무리 못해도 2.5미터는 될 법한, 거대하고 울퉁불퉁한 사람이 언덕 위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마찬가지로 거대한 기타를 연주하자 주위에 사람이 몰렸다. 그는 꽤나 멀리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부르는 프랑스 동요를 들을 수 있었다.

 

캐스피언: 솔직히... 엄청난 논문거리가 되긴 하겠네.



집약체는 공동체의 발언을 허가한다.


돈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따지는 것을 그만둔다면 가치는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법이야. 저쪽 사람들 중 이쪽 대중을 계도하고, 성명을 발표하고, 체제를 뒤흔드려는 개인을 우리에게 데리고 온다면 우린 그걸 가치있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체제 그 자체야. 그리고 우리는 지금 저들의 체제를 뒤흔들겠다고 하고 있고.

 

우리가 개입해서 저들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주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응? “예술은 고난이다”라고 할 정도로 우리가 선민의식에 찌든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술이 경험인 건 맞아. 동업자들은 그들의 대작들을 고작 무덤이나 신전 따위라고 치부했지만, 그치만 그건 씨발 저들의 존재 그 자체잖아. 저들이 쌓아올린 세상이야. 저들 스스로 만들어낸 예술이라고.


저들이 성명서를 직접 발표하게 해. 저들의 정체성을 저들 스스로 규정하게 내버려 두자고. 개소리인 건 알지만, 그래도 화합보단 덜 개소리잖아. 우리가 체제야. 우리 전체가. 체제 그 자체라고. 우리는 수 세대 앞을 내다볼 필요가 있어. 지금 당장은 도와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저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은 결국 우리랑 다를 게 없어질 거 아니야. 권력자가 될 거라면 독창성을 죽이는 권력자만큼은 되어선 안 돼. 그래야 쿨하게 있을 수 있잖아.

 

저들을 방해해선 안 돼.

 

예술가 문화공동체반대할 거야.

 

- 3


장소: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 ‘누 솜므 데베누 마니피크Nous sommes devenus Magnifiques’.


박물관은 정말로 대단했다. 이젠 그 정도로 대단하지 않으면 실망해버릴 정도로 눈이 높아지긴 했지만. 멀리서 봤을 땐 이끼 낀 돌기둥 다섯 개가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어느 거인이 강가에 있던 매끄러운 바위를 가져와 쌓아놓은 것처럼. 하지만 각각의 ‘바위’는 얇은 금속과 흰 세라믹으로 지어진 하나의 거대하고 고립된 건축물이었다. 각 바위끼리 이어지지 않은 채 그저 한 기둥에 함께 쌓여 있을 뿐인. 순간이동이 가능한 세상이니까 가능한 구조인 듯했다. 각각의 둥근 단지 안에는 전시회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프림로즈의 안내에 따라, 나는 부모가 보고 있지 않은 아이처럼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루를 전부 그 박물관 안에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을 그 박물관에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탁한 물로 차있는 수조 근처를 서성였다. 수조 한가운데에는 하늘 위로 양 팔을 치켜든 남자의 동상이 있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아이들 여럿이 물 위에 둥둥 뜬 채 익사해 있는 듯한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절망감에 가득찬 나는 곧바로 수조를 향해 달려갔는데, 그 아이들 셋이 수조 위로 머리를 들어올리더니 나한테 물을 뱉었다. 아이들은 깔깔 웃더니 다시 사라졌다. 프림로즈는 현자 같은 모습으로 바닥을 가리켰고, 그 지시에 따라 바닥을 보자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나는 “물범벅 구역” 안에 서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나는 이 우주가 조금 무결하고 순수하다는 걸 깨달았다. 로버트 “보보” 블라이스 갤러리를 보고 나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줄줄이 늘어선 그림, 조각, 그리고 기묘한 뉴미디어 홀로그램은 외설적인 폭력과 도착에 대해 묘사했다. 음식, 섹스, 마약과 자기애가 뒤섞인,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최악의(혹은 최고의) 쾌락주의적인 난교. 하지만 나오는 길에서 본 예술가 본인의 유화 속에서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마지막 전시회만큼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없었다.

 

박물관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바위”에는 나무 계단괴 넓은 격자 유리 천장으로 이루어진 원형 극장이 있었다. 그 한 가운데에 빨간 벨벳 밧줄로 둘러싸인 무언가가 고독히 서 있었다. 모나리자의 군중보다도 더 빽빽히 차 있는 게 아닐까 싶은 군중들이 그 주위를 배회하며 한 번이라도 전시물을 제대로 보려 하고 있었다. 프림로즈와 나는 그 방 안으로 전이했고, 나는 순간 잠시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동상이 있었다. 그 동상이.

 

나는 수백 명의 관객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무어라 외치려 했다... 그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 깨닫고 그만두기는 했지만. 프림로즈가 내 어께 위에 올라탔을 때 나는 깜짝 놀라 몸을 크게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고,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그 철근과 콘크리트로 된 악몽 같은 동상이 아니었다. 눈에 익은, 기묘한 문양이 그려진 이질적인 몸체는 온데간데 없고 매끄러운 동석 같은 몸체만이 있을 뿐이었다. 캐나다 원지민들이 남긴 조각과 고대 로마의 조각상 사이의 무언가였다. “인간”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훨씬 덜 무섭게 생겼다. “얼굴”에 그려진 갈색과 붉은색은 지금은 선명한, 거의 발광하는 게 아닐까 싶은 유연한 로르샤흐 문양이었다. 그것의 형상이야말로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점이었다. 등이 뒤로 굽어서, 가슴이 아치를 그리고 머리가 거의 바닥에 닿기 직전까지 제대로 굽어 있었다. 팔은 접혀 있었지만, 머리카락만큼이나 얇은 철사 천 개가 위를 향해 구부러져 꽃처럼 피어났다. 철제 고사리들은 천장까지 닿을 듯한 추상적인 원뿔을 이루어 그림자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어냈다.

 

무섭기는 했지만. 나조차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프림로즈: 아름답지?

캐스피언: 긴장 다 풀린 다음에 다시 물어봐 줘.

프림로즈: 하! 이거 말이야, 24시간마다 딱 1초동안 관측이 중단되거든. 딱 자정이 되는 순간에. 그 1초동안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변해. 그것도 매일매일. 온 세상에서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올 정도라니까. 뭐, 어디로든 의자 덕분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캐스피언: 걱정되진 않아? 그... 알잖아?

프림로즈: 뭐가 걱정돼? 누가 다칠까봐? 누가 죽을까봐? 그럴 수도 있지. 만약 우리가 저것의 의사를 무시하고 가둬둔 채 스스로의 오물 속에서 썩어가게 내버려둔다면. 어떤 사람이더라도 그런 취급을 받으면 똑같아질걸. 저건 동상이야, 데이비드. 예술이라고! 관측당한 순간 멈추는 건, 저게 관측당하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야!

캐스피언: 아무래도 저게 직접 그걸 말해줬나보네. 네가 말했잖아, 변칙 – 경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어떻게 한 거야?

프림로즈: PACT-5야. 한 특이한 아마추어 라디오와 텔레파시를 쓸 줄 아는 어떤 식물의 수액을 어떻게 엮어서, 러시아 민담에 나오는 괴물한테 납치당한 수천 명의 아이들을 구해준 다음 범지구적인 라디오 전파를 납치했거든. 참고로 방금 말한 건 197개의 단계 중 첫 세 개에 불과해. 나머지는 당연이 안 말해줄 거고. 동상은... 딱히 말할 게 없네. 항상 하던 대로 알아냈지. 트라이&에러, 그리고 인내심으로 말이야. 아, 거기에 저게 단순한 콘크리트제 살인기계일 리가 없다는 믿음도 있었네.

캐스피언: 나는... 아마 평생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없을 거야. 저... 것이 한 짓을 봐버렸으니까.

 

프림로즈는 나를 보며 웃었다. 다정하게, 동시에 약간 거들먹거리며.

 

프림로즈: 다음 목적지가 방금 정해졌어.



집약체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의 발언을 허가한다.


 


 

나는 경고했다. 저들은 듣지 않았다.


저들을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한다.

 



2 - 4


장소: 호주, 포인트 제로(?)


프림로즈가 “호주, 포인트 제로”라고 했으니 아마 거기에 도착했으리라. 단순 주위를 둘러보는 것만으론 도무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유리 돔 안에 있었다. 1000 격리시설에 사용할 법한, 두께가 50센티미터는 될 법한 고분자 유리로 만들어진 돔이었다. 돔 안은 드넓다, 라고 하기엔 어려워도 광활하다고는 할 수 있었다. 소규모 공항 터미널에 가까운 크기라고 해야 할까. 돔 밖에 펼쳐진 세상은 무성한 열대림 같았다. 나무들은 돔보다도 더 높이 뻗어 있었고 덩굴들이 돔 벽을 타고 자라고 있었다. 원래도 식물학자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익숙한 식물 하나 없는 광경은 꽤나 비현실적이었다. 적어도 하나 쯤은 알아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갑옷 같은 껍질로 둘러싸인 나무들과 마치 낚시대처럼 굵은 초록 줄기를 따라 늘어진 얇은 덩굴 끝에 매달린 꽃봉오리들. 

 

너무나도 경이로운 광경이라, 하마터면 내 바로 앞에 20미터짜리 파충류가 서있다는 사실마저 잊을 뻔했다.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본능적으로 바로 뒤돌아 도망치려 했지만,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내 등골을 타고 흐르는 원시적 공포에 질려 뒤로 기듯이 물러나면서 그것 – 진정한 최상위 포식자의, 죽일 수 없는 괴물의 눈을 바라보았다. 머릿속 한 구석에선 나와 그것 사이에 강화유리가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머릿속 나머지는 을 고작 강화유리 따위론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나는 움츠러들었다. 프림로즈는 그런 우리 둘 사이에 살며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았다.

 

그것은 움직임을 멈췄다.

 

프림로즈: 얜 그냥 방문객이야.

 

도마뱀은 잠시간 그 자리에 서서 검은 구슬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곧 등을 돌려 사라졌다. 다리 네 쌍이 움직일 때마다 땅이 울리는 듯했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프림로즈는 그 괴물이 숲 속으로 사라지는 걸 잠시 보고 있더니 이내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프림로즈: 놀라게 해서 미안. 그래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거든. 이모티곤(Immortigon. Immortal+Dragon으로 추정)의 흉포함은 진짜 레전드라니까.

캐스피언: 이모-맙소사, 저 괴물한테 애칭을 붙여놓은 거야?!

프림로즈: 애칭이라니? 그냥 속명Genus이야, 이 속 좁은 사람아. 쟤네 전부를 그렇게 부른다고.

 

서쪽의 평원에도, 동쪽의 언덕에도, 저 너머 열대림에도 용이 있었다. 수백 마리는 될까. 거대하고 육중한 몸체와 상어 같은 주둥이. 내 세상의 악몽과 지독히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내 세상과는 달리 전부... 건강해보였다. 저들의 사지는 흰 비늘을 바탕으로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비늘로 덮여 있었고, 몸통은 굵고 긴 털로 텁수룩하게 덮여 있었다.

 

캐스피언: 그 말은... 저것들이...

프림로즈: 응, 맞아.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동물이야. 아, 모기를 박멸시키기 전까진 세 번째였어. 첫 번째는 당연히 인간들이고. 참 흥미로운 생물이라니까, 이모티곤들은. 웬만해선 불사인데, 서로를 죽일 수는 있거든. 사자랑 랍스터를 섞어놓은 것 같다 해야 하나. 어느정도 나이들어서 몸집이 너무 크고 굼떠지면 나머지 무리 구성원들이 그 개체를 먹어치워. 저들은 뭐랄까... 골칫거리라고 하면 조금 무례하겠지만, 그래도 저들의 구역을 우리 쪽에서 침범하지만 않으면 아무런 문제 없어. 고작 무단침입하는 멍청이나 밀렵꾼 몇 명 죽는 게 끝. 저들한테 지성이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 몇 번인가 대화를 시도해봤는데, 대화하려고 다가간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어.

캐스피언: 뭐? 대체 뭔 경이-변칙-부두술-기적을 부려야 이런 게 가능한 거야?

프림로즈: 우린 아무것도 안 했어.

캐스피언: 아무것도 안 했다고!?

프림로즈: 뭐, 표면상으론 아무것도 안 했지. 직접적인 관여는 조금도 하지 않았어. 그래도 우리 쪽에서 뭔가를 했겠지. 왜냐면 어느날 갑자기 그냥... 멈췄거든. 항상 하던 대로 탐사를 하던 중 연구원 한 명이 이모티콘 무리의 둥지 한 가운데에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평소와는 달리 안 죽이더라고. 그래서 그 연구원은 그냥 걸어 나왔어. 아니, 우리는 구조용 드론을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연구원 쪽에서 거절했다니까! 진짜 미친 과학자였어, 그 사람은. 이모티곤들이 한창 교미하고 있을 때 걔네들 사이를 그냥 걸어서 나왔다니까! 다들 그때 클레프 연구원의 목이 그대로 달아나겠구나 싶었는데. 생체기 하나 없이 돌아왔을 때엔 진짜 놀랐었다니까.

캐스피언: 왜? 어떻게!?

프림로즈: 말했잖아. 우리도 잘 모른다고. 그래도 그 이유를 이모티곤들한테 물어본 적은 있었는데 – 처음으로 대답을 해줬어! “더 이상 역겹지 않다”나 뭐라나. 그게 이모티곤들이 우리한테 한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었어.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나는 호주의 기묘한 밀림(?)을 바라보았다. 프림로즈가 내 곁에 와서 앉았고, 우리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있었다. 이모티곤 말고도 수많은 생물을 보았다. 몇몇은 완전히 새로웠고, 몇몇은 무서우리만치 익숙한 것들이었다. 특이하게 생긴 랩터견 한 무리가 숲 속을 뛰어가며 서로를 향해 영어로 막 짖어대고 있었다. 비행기보다도 거대한 새 떼가 돔 위로 날아갔는데, 프림로즈는 그냥 무시하라고 조언했다. 어느 때는 잎사귀와 뼈로 만들어진 옷을 입은 사람들 한 무리가 근처를 지나갔다. 그들은 무슨 설날 기념행사라도 하듯 기다란 장어 뼈를 머리 위에 이고 해안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여자아이가 나한테 손을 흔들어서 나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지금은 아무리 떠올리려 노력해봐도 그 아이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캐스피언: 특이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이네, 프림로즈.

프림로즈: 똥 묻은 고양이가 겨 묻은 고양이 나무라는 꼴이네. 아, 너는 이 속담 쓰면 안 돼. 고양이 속담이거든. 고양이밖에 못 써.

 

나는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프림로즈도 나를 따라 웃었다. 그녀가 나에게 배고프냐고 물어왔다. 배가 고프긴 했다. 방금 전 진짜로 죽는 줄 알았으니까.

 

우리는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집약체는 공방의 발언을 허가한다.


솔직히 “세상의 운명”같은 이야기는 그리 공감하진 못하겠슴다.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그저 뽑기에서 얻어걸렸기 때문임다. 정치니 정책이니 하는 건 다 그쪽에 떠넘기고 그냥 제 할 일이나 하고 싶슴다. 그쪽에서 경이를 보냈을 때 우리가 PACT로 만들어서 돌려보내기만 하면 서로 터치 안 하근 그런 거 말임다. 그런 계약 아니었슴까?

 

그래서, 저희가 A6K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슴까? 저놈들은 찌질이들임다.

 

그거 아심까?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다루다 보면 가끔 화상을 입을 수도 있슴다! 스스로 발전하는 기계를 작은 공간에 밀어넣으면 블랙홀이 생길 수도 있슴다! 실수로 사이보그 슈퍼좀비 군단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슴다! 실수로 메사추세츠 주 전 인구를 다른 곳으로 전이시켜버릴 수도 있슴다! 그렇다고 해서 발전하려는 시도를 멈추는 건 말이 안 되는 법임다! 실수를 했으면 실수한 걸 고치고 다시 일해야 하는 법임다. 안 그럼 세상은 발전하지 않을 검다.

 

암튼! 협력을 하는 건 좋다 이 말임다. A6K에는 우리가 필요한 게 없다시피 하지만, 굳이 우리한테 필요한 게 있다면 바로 혁명가들임다. 그런데 저기서 진짜 혁명가들은 무슨 취급을 받고 있는지 아심까? 또라이, 괴짜, 백치 천재 같은 소리나 듣고 있슴다! 저놈들은 지들이 알아서 세상을 발전시킬 방법을 찾아야 함다. 그러기 전까진,

 

우리는 저들과 함께 일할 수 없슴다.

 

공방조합 반대하겠슴다.

 

2 - 5


장소: 테네시 주 내쉬빌, “허먼 풀러의 기이한 박물관” 그리고 기타 등등.


우리는 각자 디트로이트에서 포장해온 피자를 우물거리며 흰색 조개 모양의 UFO같이 생긴, 프림로즈가 “운송포드”라고 부른 것에서 내렸다. 고기며, 치즈며, 심지어 효모까지 전부 연구실에서 배양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맛이었다. 정말로 맛있었으니까. 나는 가장자리 끝까지 전부 먹어치운 다음 바지에 손을 대충 닦고 우리가 타고 온 포드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캐스피언: 이런 걸 왜 타고 다니는 거야? 어차피 순간이동 할 수 있잖아.

프림로즈: 소파 같은 걸 옮겨야 할 때도 있잖아, 데이비드. 의자한테 소파를 옮겨달라 하는 건 굉장히 배려심 없는 행위라고.

 

우리는 3층 높이는 될 법한 석재 분수를 가운데에 둔 광장을 걸었다. 분수에서 투명한 물이 뿜어져 나와, 돌 타일 사이로 흘러 수천 개의 작은 강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마치 회로 기판처럼 이끼가 잔뜩 껴 있었다. 주위에는 반구형의 건물들이 놓여 있었는데, 광장 중앙에서 보면 모든 건물을 한 번에 눈에 담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건물들의 둥글고 거대한 창문 탓에 나는 마치 거인들에게 감시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프림로즈가 “다른 박물관도 가보자”라고 했을 때 나는 내심 놀랐었다. 바로 내가 바라고 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불평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오후 내내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완벽했다. 이 현실은 마치 성공한 형제의 집에 들려 이루어낸 각종 업적과 받은 상들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쓰디쓴 질투의 감정이었다. 이들이 성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감을 가져버렸다.

 

자연사박물관의 대리석 로비를 지나가던 나는 황동 기둥 위에 세워진 거대한 조류의 골격 앞에 멈춰섰다. 그 새는 항아리 같은 배와 황새처럼 생긴 목, 그리고 몹시 뾰족한 부리를 갖고 있었다. 나는 갈비뼈 너머로 잔뜩 있는 기묘하게 생긴 뼈들의 용도가 무엇이었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회중시계의 내부같이 되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던 사이 프림로즈가 내 곁에 다가왔다.

 

캐스피언: 네 이상향에 맞지 않는 경이들은 다 이렇게 되는 거야?

프림로즈: 이 불쌍한 생명체는 뭘 하기도 전에 멸종돼버렸어, 데이비드. 경이가 “맞지” 않으면 우린 최대한 맞는 곳을 찾아내거든. 대체로 다른 현실에 보내지.

캐스피언: 즉, 문제를 다른 사람들한테 떠넘긴다는 거네.

프림로즈: (...) 우리를 악당으로 보고 싶어서 안달이구나, 진짜. 아니야, 데이비드. 우리는 해결책을 찾는 거야. 혐광성 경이들은 빛이 없는 세상에서 훨씬 행복해 해. 폭력적인 생물들은 좀 더 혹독한, 덜 문명화된 환경을 좋아하고. 경이가 이 현실에 어떻게 해서도 맞지 않는다면, 그 경이에 맞는 현실을 찾아주는 거지. 그 반대도 통하고.

캐스피언: 상당히 깔끔한 시스템이네.

 

나는 프림로즈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고 기술 박물관으로 향했다. 프림로즈는 몇 걸음 뒤에서 조심스레 나를 따라왔다. 무언가에 꽂혀 있던 나는 평소라면 관심을 가졌을 전시물 몇 개를 그냥 지나쳤다. 지금 느끼는 허전함의 정체를 알아야만 했었으니까.

 

박물관의 지하 깊숙한 곳에서 나는 마침내 찾아냈다.

 

어둑한 조명이 비치고 있는 지하실에는 거대한, 녹슨 기계장치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기계장치는 마치 곡사포와 테슬라 코일을 반씩 섞어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칠이 벗겨지고 내부가 드러난 채였지만, 누가 보더라도 전쟁병기임이 틀림없는 형상. 벽을 따라 유리관 안에 놓인, 모순적이게도 오래된 우주시대의 병기중 하나였다. 나는 어둡지만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캐스피언: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이런 평화로운 세상에 이런 기계장치가 대체 왜 존재하는 거야?

 

프림로즈는 내 발치에 앉아 고양이가 혼란해하는 모습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주로 귀에서 감정이 많이 드러났다.

 

프림로즈: 이거 때문에 아까부터 계속 그런 거야? 데이비드-

캐스피언: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마. 똑바로 말해줘.

프림로즈: (...) 우리도 당연히 전쟁을 치뤘어. 내가 언제 전쟁 한 번 한 적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 대부분은 냉전이긴 했지만, 그래도 혈전이 없던 건 아냐. 어떤 제국도 결국 시체 위에 쌓인 법이라고.

 

프림로즈는 일말의 망설임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전시관 내부를 안내했다.

 

프림로즈: 한 세기쯤 전, 방랑자들이 재단과 정면으로 부딪쳤어. 그러니까... 재단이 필요악으로 여겼던 걸 알아내고, 그걸 용서할 수 없는 대죄로 지정했거든. 개인적으론 그 여자애한테 생긴 일을 지독한 비극이라고 하겠지만... 어쨌든, 두 거대한 힘이 충돌하자 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지. 그 시절에 지금 집약체의 몇몇 동맹들이 성립되었어. 단순 필요로 인해 성립된 것이긴 해도. 재단은 먼저 평화유지연합이랑 손을 잡고는 한 저주받은 공장 위에 공방조합을 설립했어. 방랑자들은 몇몇 비주류 조직들이나 붉은 손, 그리고 뱀 왕의 추종자들과 손을 잡았고. 양 측은 보이지 않는 전선에 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병기를 잔뜩 투입했지. 사실 PACT-5가 거기에서 기원했어. 원래는 전쟁병기였거든. 경이들을 전쟁에 써먹으려면, 우선 말이 통해야 하지 않겠어?

캐스피언: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프림로즈: 한 번 주위를 봐봐, 데이비드! 전면전이 벌어졌더라면 지금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병기는 어마무시하게 쌓여갔고, 위력이 너무도 무시무시해진 나머지 어느 쪽도 제대로 사용하기를 꺼려했어. 그래서 대화를 하기 시작한 거야. 사소한 것부터 천천히. 서로에게 조금씩 양보하고 제안하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기 시작했지. 그러고는 결국 서로 손을 잡고 공통된 적을 향해 무기를 돌렸어. 어느 한 쪽의 힘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증오로 가득한 고대의 불멸자들 말이야. 둘은 함께 그 여자애를 해방했어. 그 뒤로는 세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다른 조직들을 합류시켰고. 그리고, 뭐, 대충 알겠지?

 

나는 전시물 하나를 자세히 보았다. 솔직히 말해 누가 장난감 총에 페인트 스프레이를 뿌려놓은 것 같이 생겼었다. 나는 조금 웃었다.

 

프림로즈: 이제 됐어? 이제 우리 내면의 악을 들춰내려는 거 그만둘 거지?

캐스피언: 알겠어, 알겠다고. 그만 할게.

프림로즈: 좋아. 그럼 그 용건도 끝났겠다, 이제 좀 그냥 즐기면 안 돼?

캐스피언: 미안. 나도 즐기려고는 하고 있는데, 솔직히 그동안 내가 봐온 게 좀 많아서 의심을 품지 않는 게 어렵거든. 나는-... 난 내가 “재밌는” 사람이 아닌 걸 이제 알았으니까, 이 모든 걸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아무튼 장소 선정 하나는 기가 막히네. 나 박물관 진짜 좋아하거든.

프림로즈: 알아.

 

나는 그녀를 보았다.

 

캐스피언: 어떻게 알았어?

 

프림로즈는 몸을 살짝 떨었다.

 

프림로즈: 너 과학자잖아, 데이비드. 너 너드잖아. 당연히 박물관을 좋아하겠지.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프림로즈는 다음 코너를 향해 떠났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는 과학자다. 연구하고, 기록하고, 이론화 하리라... 그리고 나는 지금 고양이 프림로즈에 대한 그럭저럭 긍정적인 가설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집약체는 정상의 발언을 허가한다.


한 세기도 더 전, 집약체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노지에서 네 명이 만난 적이 있었죠. 그들은 동등한 입장으로서 악수를 했었습니다. 비록 정장을 입은 세 명과는 달리 나머지 한 명은 똥칠된 작업복을 입고 있었지만요. 그 남자의 이름은 윌슨이었어요.

 

그들이 윌슨에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하자고 제안했을 때, 윌슨이 바란 것은 단 하나 뿐이었죠. 그것이 지금은 PACT-15가 되었고, 덕분에 제 45번째 거대둥지어머니가 더 고등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은 그 남자, 그리고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관점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려는 집약체의 의지 덕분이에요.

 

지금 같은 사고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그러니까 유인원들 뿐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치고는 해요. 애초에 지금 같은 대화도 저명한 프림로즈 박사와 그녀의 고양이 과학 보호구역의 연구 없이는 성립될 수 없었겠죠. A6K의 존재조차 몰랐을 거예요! 그 작은 열쇠구멍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저희의 과거예요. 한 우세종에 의해 지배되어, 단 하나의 관점만을 가진 행성. 여기서 가만히 있는다면 저희는 위선자가 될 뿐이겠죠, 지구의 동지 여러분.

 

저희는 그들에게 손길을 내밀어야 해요.

 

공유된 정상으로의 상승찬성해요.


- 5


장소: 페루, 타크나.


그날 저녁 우리는 차를 타고 해안가를 향했다. 진짜로 차를 타고. 어디로든 의자와 페리포드의 시대에서, 자동차는 일부의 취미로 남게 되었다. 우리는 1968년식 포르쉐 486 한 대를 렌트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아름다운 차였다. 프림로즈는 내 모습을 보곤, 자기가 운전대를 잡으면 내가 원통함으로 죽어버릴 것 같다면서 나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우리는 절벽 가장자리에 지어진 오래되고 낡은 고속도로 위를 질주했다.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내 왼쪽에는 산이 창백한 호박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내 오른쪽에는 우리가 타고 있는 차에서 시작되어 저 멀리 석약까지 이어진 황금빛 실들이 넘실거리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근처 전망대에 차를 세웠다. 프림로즈는 난간 위에 앉았다. 나는 그냥 기대기로 했다. 황혼이 저물어갈수록 나는 내 눈을 점점 더 믿을 수 없게 됐다. 환각이라도 본 것일까? 밤하늘에 별이 떠오른 건 당연했지만, 그걸 고려해도 바다 위에 반사된 반짝거림이 너무 많았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더욱 잘 보일 뿐이었고, 그럴수록 나는 더욱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반사된 상 따위가 아니었다. 저 아래에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하차지부터 시작되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광활하고 찬란한 도시. 현란한 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유리 돔이 덩굴 같은 관으로 이어져 있었다. 형체 없는 빛나는 위성들이 빠르게 이동하는 교통수단처럼 줄지어 해양저 위에서 달리고 있었다.

 

캐스피언: 프림로즈... 우리 왜 저기 안 있고 여기 있는 거야? 수중도시가 있다는 말은 안 했잖아!

프림로즈: 우리는 없거든.

캐스피언: 뭐-... 그럼... 저게 다 뭔데?

프림로즈: 도시는 맞아. 우리 게 아닐 뿐이지. 대서양 초거대도시는 두족류들 것이야. 대부분은 문어류로 이루어져 있는 종족들. 걔네들은 우리랑은 소통을 안 하거든.

캐스피언: 앗. 아예 안 해?

프림로즈: 으음. 한 50년은 안 한 것 같아. 무려 6주동안이나 집약체랑 함께하다 독립을 선포했거든. 지구의 나머지 동포들이랑은 잘 안 어울리려 하는 것 같아. 아마 뇌세포가 전신에 펼쳐진 생물들이 고등한 사고를 얻으면서 생긴 작용 같은 게 아닐까? 팔- 다리- 아무튼, 사지가 알아서 사고하는 애들이니까, 딱히 누군가랑 어울리려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걸수도 있어. 그래서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줬어.

캐스피언: 지금 문어들한테-

프림로즈: 문어류.

캐스피언: 미안. 그러니까 지금 문어들한테 지성을 부여한 다음에 잘못 낚은 거 돌려보내는 것마냥 바다로 돌려보냈다는 거야? 그리고 지금 그들이 바다 아래에- 계속 물어봐서 진짜 미안한데, 초거대도시를 지어놨다고?

프림로즈: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뉴질랜드까지 쭉 이어진 도시야.

캐스피언: 너네는 그... 걱정도 안 돼? 엄청나게 진보한 것 같이 보이는데 말이야! 만약 쟤네들이 지상까지 점령하려 들면 어떻게 할 거야?

프림로즈: 진짜 A6K사람답구나, 데이비드. 지상을 점령하지 않으려 들 수도 있잖아? 소통을 안 한다고 해서 적대적이라는 건 아니야. 모두가 함께 어울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널 죽이려 드는 것도 아니라고. PACT-15로 인해 발생한 적대상황을 다 따져봤을 때, 문어류들의 적대성은 해파리랑 진딧물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진짜 위험했던 건 곤충들이었지.

캐스피언: 해파리들이 뭘 했는데?

프림로즈: 의식이 생기자마자 굉장히 정중하게 “사양할게요.”라고 했어.

 

우리는 함께 웃고는 이어진 잠시간의 정적을 즐겼다.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캐스피언: 리사가 이걸 봤어야 했는데.

프림로즈: 리사가 누군데?

캐스피언: 그냥, 내 오랜 친구. 해양생물학자였어. 그녀는 한 변칙적인 산호물질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뭐, 그냥 우리쪽 현실에선 상황이 여기보다 좀 더 위험하게 돌아갈 때가 있다고만 해둘게.

프림로즈: 유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함께 파도치는 것을 구경했다.

 

프림로즈: 나도 누군가를 잃은 적이 있어.

캐스피언: 진짜로? 아, 미안. 무례하게 굴 생각은 없었어. 그래도 오늘 하루동안 본 게 있으니까, 이쪽 사람들은 불사 같은 건 진작에 달성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프림로즈: 아니야. 뭐, 사실은 불사 자체는 달성하긴 했어. 죽음을 끝장내는 방법을 알아냈거든. 한때 잠시 시도해본 적은 있었어. 얻은 건 삶에는 끝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결론뿐이었지만.

캐스피언: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

프림로즈: 안 되는 건 너도 알잖아.

캐스피언: 그럼 그 전 이야기를 계속 해줘.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어?

프림로즈: (...) 그 사람은 너드였어.

 

나는 좀 더 묻고 싶었지만, 프림로즈는 하늘을 바라보며 발 하나를 들어올렸다.

 

프림로즈: 슬슬 들어가야겠네. 곧 해가 완전히 질 거야.

캐스피언: 뭐? 진짜? 너 밤눈 밝지 않아? 아니면 뭐, 귀신이 와서 잡아가기라도 해?

 

프림로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캐스피언: 헉. 진짜 귀신이 와서 우릴 잡아가?

프림로즈: 아니. 걔네는 지금 전부 태즈매니아에 있어. 그냥, 너 때문에 내가 다 부끄럽잖아, 데이비드. 여기 관습이 어떤지 모르면서. 밤은 우리 게 아니라고.

 

프림로즈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나도 그녀의 동작을 따라했지만, 곧 내 턱이 땅에 닿을 듯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에 거대한 은빛 구름이 드리워 있었다. 적어도 멀리서 보기엔 구름이었다. 우리한테 가장 가까이 있는 건 산에 거의 닿을 듯 말 듯 했다. 그건 깃털이었다. 수백만 개의 깃털이 흰 실에 매달려 기형적인 구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나는 거대한 근육덩어리가 “구름”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보았다. 회색의 피부가 없는 비인간적인 형상.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살아있는 기계처럼 작용하는 거대한 질량체.

 

바다 아래의 도시는 온통 둥그런 유리로 이루어져 인공적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구름 위의 도시는 상아와 뼈들로 완벽한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하늘 너머에서 오는 빛과는 다른 월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프림로즈: 다들 한 세상에서 상부상조 하는 거지. 저녁 먹을래?



집약체는 밤의 존재의 발언을 허가한다.



저들은 우리를 내쫒았다.

 

너희는 우리를 들였다.

 

우리는 저들을 등지지 않을 것이다.

 

나이트랜드 언약찬성한다.

 

- 5


장소: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


프림로즈는 나를 내가 “최소한의 피해”를 입힐 곳으로 데려왔다. 우리가 식사를 하기로 한 술집에는 자리가 세 개 뿐이었다. 아니, 애초에 간판도 없는, 벽에 나있는 좁은 구멍에 가까운 곳이었다. 프림로즈는 이곳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멘을 내놓는다고 했는데, 어차피 내 세상도 아니었으니 나는 그녀의 말을 믿기로 했다.

 

주문을 마치자 3분 안에 음식이 나왔다. 그릇에 담긴 라멘은 정말로 맛있어 보였지만, 그것보단 주방장 쪽이 내 관심을 더 끌었다. 허공에 둥둥 떠있는 얼굴없는 그 생명체는 마치 H.R. 기거한테 인어를 디자인 시키면 나올 결과물 같았다. 넓고 뾰족한 삽 모양의 꼬리 끝에는 밀가루와 반죽 조각이 붙어 있었다. 메뉴가 나올 때, 프림로즈는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녀를 따라했다. 국물의 맛은 절묘했다. 굳이 따지자면 마늘 맛이 조금 강했다는 것 정도일까.

 

라멘을 반쯤 먹었을 때 프림로즈가 갑자기 몸을 치켜들었다. 마치 무언가 번뜩이기라도 한 듯이. 특히 수염에서 그 감정이 크게 드러났다. 그녀는 나한테 양해를 구하고는 가게 밖으로 서둘러 떠나갔다. 선불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잠시 후, 새 손님이 몸을 잔뜩 웅크려 좁은 가게에 들어왔다. 내 시야 한 구석에 들어온 그 손님은 정말로, 털복숭이 그 자체였다.

 

나는 식사를 이어나가며 옆을 힐끔힐끔 살폈다. 그 생물체는-여기 말로 경이는 2미터는 가뿐이 넘는 듯했다. 그 손님이 앉은 의자가 무게에 삐걱이고 있었다. 그것은 내 머리만큼이나 곱고, 부끄럽지만 내 머리보다도 더 잘 정돈된 털로 덮여 있었다. 눈과 입이 있을 자리에 검고 매끈한 동그라미 세 개가 자리잡아 있었다. 건조한 산공기 같은 냄새가 났다.

 

그러다가 그것이 내 시선을 눈치챘다. 우리의 시선이 맞은 순간 나는 긴장감이 등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한 번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자기 그릇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 운을 시험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릇을 카운터 쪽으로 밀어놓곤 밤길을 향해 떠났다. 프림로즈가 금속-바늘-목줄-손가락으로 커다란 병 하나를 든 채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심플하게 한자 한 글자가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는 병이었다.

 

캐스피언: 프림로즈, 그게 뭐야?

프림로즈: 데이비드, 이건 말이지, 엄청 독한 술이야.

캐스피언: 그 독한 술로 뭘 할 생각인데, 프림로즈?

프림로즈: 이걸 이제 마실 거야, 데이비드. 너랑 같이.

캐스피언: 최대한 덜 튀는 게 원래 계획 아니었어?

프림로즈: 맞아, 원래는 그럴려고 했지. 그치만 재미없잖아. 잔뜩 실수한 다음에 다 네가 진탕 취해서 그랬다고 떠넘기는 게 내 새 계획이야! 진짜로 진탕 취하면 계획이 좀 더 부드럽게 돌아갈걸.

캐스피언: 나 연구중이었는데.

프림로즈: 내가 보기엔 넌 휴가중이었어! 재미없게 튕기지 말고! 해도 졌고, 넌 이상한 나라에 손님으로 온 입장이고, 지금은 당장 보고할 상관도 없잖아... 좀 놀아보자니까! 지역 관습에 굴복해라! 가이드를 믿어! 그냥-... 나랑 같이 한 잔 해줘, 데이비드.

 

난 한숨을 내쉬었다.

 

캐스피언: 어쩔 수 없네. 딱 한 잔뿐이야. 그리고 어디까지나 지역 관습을 존중하기 위해서니까.



집약체는 관측자들의 발언을 허가한다.


형님들, 지금은 그 좆같은 철학 좀 그만 발라대면 안 될까? 지금 그 차원구멍에 주먹을 쑤셔박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지금은 투명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기억해? 옛날 옛적 아주 환상적이었던 때? 너네들이 우리를 어둠 속에 숨겨뒀던 때 말이야. 너네들이 그 거대한 불알을 휘둘러대서 우리 같은 쪼다들은 그냥 어둠의 그림자 계곡인지 뭔지에 숨어 지냈던 시절을 기억하냐고.

 

그거 결국 실패했잖아. 애초에 한 번도 성공한 적 없었어. 우리는 언제나 너네를 보고 있었어. 조금 흐릿하기는 했지만. 진실은 숨길 수 없고, 사람들을 빼놓을 수도 없어. 어차피 우린 빡쳐서 끼어들 거라고. 우린 너네가 숨기고 있던 모든 비밀들을 가져다 쓸모없고 불가능한 농담거리로 만들어버릴 거야. 공동체 놈들은 예술이란 곧 입장성명이라 했던가? 그럼 이게 우리 성명이겠네. 너희는. 신이. 아니야. 게다가, 솔직해져봐. A6K는 좀 더 공격적인 버전의 너네들로 가득 차있잖아. 걔네들이랑 반목할 생각이야?

 

길게 말하진 않을게. 난 트위터 생방송이랑 달원숭이들이랑 함께하고 있어. 계속 그렇게 우리랑 걔네들 사이에 선 긋고 그러면 너넨 걍 뉴비배척자들(gatekeepers)에 불과한 거야. 우리한테 필요한 건 딱 하난데 너네가 어떻게 우릴 막을 거야? 너네가 막 불타는 검(gate guardian)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는 저들다 우월하지 않아. 우리나 저들이나 똑같아.

 

우리는 저들이야.

 

관측자 게시판찬성할 거야.

 

- 5



캐스피언: 으뜸 (딸꾹!) 차원 이론(Prime Dimension Theory)은 그냥 만화책에나 나올 법한 헛소리에 불과해, 이 미친 털바퀴야!

프림로즈: 아직-! 아직도 현실 변동성을 그 씨- 씨발 같은 흄으로 측정하는 놈이 잘도 말하네! 네가 뭘 알아! 이 원숭이 자식아!

 

이 대화를 하기 전엔 아마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뒤 몇 시간의 기억은 마치 뒤섞인 퍼즐조각 같았다. 조각처럼 기억이 떠오르긴 했는데, 기억의 순서를 어떻게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한 잔으론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걷던 거리가 변화하며 악몽에나 나올 법하거나 경이로운 생명체들로 차기 시작하는 것은 기억한다. 빛나는 유령 같은 형상 한 무리가 내 머리 위로 말 그대로 헤엄쳐서 나아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하늘이 깊은 수영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움직이는 모래언덕이 닭뼈 조각과 자갈을 품은 채 휘청이는 내 다리 사이로 굴러 지나갔다. 어째선지 여름 매미 같은 소리를 내는 이탈리아 관광객 가족과 부딪치고 잠시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말싸움이 되기 전에 우리는 시끄러운 술집 안으로 도망쳐왔다.

 

프림로즈: 확률 변소- 변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실히 증명된 범현실적 토- 통합 요소들은-

캐스피언: 원자들을 정렬할 방법은 그지같게 (딸꾹!) 너무 많아! 생물학은 다른 보편섭리를 따르고! 중력이 있으면 뼈가 생겨. 광자가 있으면 눈이 생기고. 그리고-

프림로즈: 난 단순히 유사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두 생태계에서의 탄소 기반 생명체 확사- 학- 확-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난 종교나 문화적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녹색 돌거울 하나만으로-

캐스피언: 사회적 위계잖아! 뇌가 발달해서 미지를 개념화시키는 거지! 헌 (딸꾹!) 현재-

예티인 것 같음: 헨로우의 차원간 아원자 파종 이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프림로즈: 아, 진짜! 망할 헨로우! 헨로우는 개나 줘버리라 그래! 그 꽥꽥대기나 하는-

캐스피언: 얘한테 그따위로 말하지 마! 그리고 말인데, 이 스타일리쉬한 여편네야! 블레이저 코트랑 나비넥타이를 입은 여편네야. 주황색. 그리고 보라색. 같이 입지 마!

프림로즈: 할퀴어버릴 거니까 이리 와.

캐스피언: 두 색은 안 어울린다고!

프림로즈: 진짜로 할퀴어 줄까!?

커다란 떠다니는 구체: ❄︎♒︎♓︎⬧︎ ♍︎□︎■︎❖︎♏︎❒︎⬧︎♋︎⧫︎♓︎□︎■︎ ♓︎⬧︎ ◻︎□︎♓︎■︎⧫︎●︎♏︎⬧︎⬧︎ ♋︎■︎♎︎ ✋︎ ♒︎♋︎⧫︎♏︎ ♋︎❒︎♍︎♒︎♓︎❖︎♓︎■︎♑︎ ♓︎⧫︎📬

캐스피언: 그래! 내 말이 그거야! 봤냐? 뭘 좀 아는 (딸꾹!) 뭘 좀 아는 놈이네!

프림로즈: 아니, 야! 구- 구쳬랑 편 먹는 건 반칙이지!

 

그 뒤로, 어느 시점엔가 우리는 최소한 다섯 명의 만취한 새 친구들을 달고 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사귄 것 만큼이나 빨리 헤어지게 됐지만, 어차피 굉장히 시끄러운 작은 새들이었으니 크게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쩌다보니 프림로즈와 헤어지게 됐다. 다시 말해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술기운 덕에 용기가 붙은 상태에서도 다른 인간을 보기 전까진 길 묻는 게 무서워 못 하고 있었다. 참고로 다른 인간을 찾는 건 굉장히 오래 걸렸다. 병원 밖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길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담배 한 대를 건네주기는 했다. “원래는 이러면 안 되는데, 네가 이 세상에서 보낼 마지막 날이니 괜찮겠지.”라고 했는데, 나와 프림로즈의 상황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도, 그리고 뭐가 괜찮은 건지도 감이 잡히질 않았지만 그래도 굉장히 착한 사람이었다.

 

할 게 없어진 나는 길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기계 부스를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홀로그램 간판에는 프림로즈가 차고 있는 브로치와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지구본 안 눈.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자 두 번째 홀로그램 투영이 나타났다.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중성적인 인간의 형상이었다.

 

캐스피언: 어-... 아-안녕하세요?

부스(?): 좋은 저녁이에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캐스피언: 전-... 어, 그게, 고양이 하나를 찾고 있는데요-

부스(?): 근처 동물보호소 목록을 보여드릴까요? 아니면 고양이과 공동체 등록소에 연결을-

캐스피언: 아뇨, 그게 아니라 전- 그게, 죄송해요. 전 여기 사람이 아니거든요. 저는 어떤 곳에서 왔는데- 그녀가 A6K라고 부른 곳에서-

부스(?): A6K 화합에 대한 집약체의 현 토의 내용을 보여드릴까요?

캐스피언: (...) 네?

 

그러자 부스가 보여줬다. 그걸 본 순간 술이 깰 수밖에 없었다.



집약체는 이름 없는 자의 발언을 허가한다.


경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길만이 있을 뿐.

 

크기와 규모와 환경은 단순히 인지적이고 규범적이고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

저들은 저들이 아니고, 우리는 우리가 아니다. 너희가 너희이고 우리가 우리인 것과 같다.

지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바늘구멍은 여느 길보다도 더 넓어질 수 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럴 수 있으므로 그래야 할 것이고, 그리 할 것이다.

옳고 그름은 없으며, 멈춤과 움직임 또한 없다.

길은 오직 하나 뿐이며 갈림길은 결국에는, 전적으로, 궁극적으로 하나로 모이기 따름이다.

 

숲 속에서 두 개의 길이 나타나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용기의 길을 고를 것이다.

오직 어리석은 자만이 엔트로피에 맞서리라.

 

우리는 저들과 함께 길을 나아갈 것이다.

 

모든 길이 이어지는 숲 속도시에서, 우리는 찬성표를 보낸다.

 

6 - 5


장소: 어딘가 언덕 위.


나는 의자한테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 어딘가 언덕 위. 어디에서나 보일 법한 작은 마을 외곽에 오게 됐지만, 느낌적으로 미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언덕 위에는 커다란 떡갈나무 한 그루가 자라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 기댄 채 홀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결국 프림로즈가 나를 찾아냈다. 그녀는 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프림로즈: 데이비드! 겨우 찾았네! 너 찾느라 온갖 옥상이란 옥상인 죄다 올라가봤다니까, 이 망할 보노보 사촌 자식아!

캐스피언: 안녕, 프림로즈.

프림로즈: 와앗! 너 혹시 간 여러 개 달린 경이였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데이비드? 왜 이렇게 멀쩡해!

캐스피언: 음. 자판기 하나가 있었거든. 키패드 하나가 달린 새카만 자판기였는데, 원하는 음료를 입력해달라 해서 술 좀 깨게 해줄 것좀 달라 했지. 맛없는 계피사탕 같은 맛이 나긴 했는데... 효과가 있었어.

프림로즈: 그렇구나! 음... 잘 됐네! 이제 이 병 마저 비울 수 있겠다!

캐스피언: 날 왜 여기로 데려온 거야, 프림로즈?

 

프림로즈는 말을 멈췄다. 그녀의 꼬리가 가라앉았다.

 

프림로즈: 그런 거 물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캐스피언: 물어볼 거야. 날 왜 데려온 거야?

프림로즈: 데이비드, 자꾸 재미없게 그럴 거야? 함꼐 진짜 즐거운 밤을 보내고 있었-

캐스피언: 날 왜 여기로 데려온 건지 말해줘, 프림로즈.

프림로즈: 그게, 있지- 나는 지금 이런 대화를 나누기엔 너무, 너무 취해서-

캐스피언: 말 좀 그만 돌리고 날 왜 여기 데려왔는지 말해달라고, 프림로즈!

프림로즈: 내 절친과 딱 하루만이라도 더 함께 보내고 싶었으니까! 이제 됐어!?

 

그녀의 외침이 멎자 정적이 맴돌았다. 검은 날개를 가진 새 몇 마리가 근처 나무에서 날아갔지만, 그것마저 없어지자 모든 게 고통스러우리만치 정적이었다.

 

캐스피언: 이 차원의 데이비드 캐스피언 말이지.

프림로즈: (...) 그래.

캐스피언: 그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었겠네.

프림로즈: (...) 이쪽 현실에도 위험한 건 있어. 가끔은. 모든 특이점이... 좋은 곳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니까.

 

나는 나무에 기댄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캐스피언: 미안해. 어느정도 예상이 가긴 했는데... 정말로 미안해, 프림로즈.

프림로즈: 그래... 미안해 해야지. 즐겁게 술 마시다 말고, 이젠 애도의 의미로 술을 마셔야 할 거니까. 그러니까-

캐스피언: 그래도 날 왜 여기로 데려왔는지 알고 싶어.

프림로즈: 뭐-!? 방금 말해줬잖아-!

캐스피언: 개인적인 이유 말고.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는 이유 말이야. 프림로즈, 지금 집약체가 뭐를 가지고 투표하고 있는 거야? 만약 “찬성” 쪽으로 결론이 나면 내 현실은 어떻게 되는 거야?

 

프림로즈는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보았다. 그녀는 이윽고 술병을 내려놓았다.

 

프림로즈: 화합이야.

캐스피언: 화합이 정확히 뭔데?

프림로즈: 집약체가 여기서 했던 걸... 거기서도 하겠다는 거야. 세상을 나아지게 만드는 거지. 집약체가 지배할 거야.

캐스피언: (...) 그리고... 만약 반대 쪽으로 결론이 나면?

프림로즈: 한 번 열린 특이점은 닫을 수 없어, 데이비드. 너도 알잖아. 현실에 난 구멍은 당연히 현실 그 자체보다도 강해야 해. 앞으로 영원히 거기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네 현실이 성공사례가 되거나, 문제가 되거나 둘 중 하나지. 집약체가 A6K와 화합을 이루거나... 지워버리거나.



집약체는 평화유지자들의 발언을 허가한다.


최근 이 주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우리를 이 자리에 부른 이유기도 하지요. 저희 평화유지자들은 저희가 이 자리에 불린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에겐 악당 역할을 맡아줄 자들이 필요했겠지요. 어려운 결정들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개자식들의 존재가 필요했겠지요. 정말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 했지만, 아, 저 망할 평화유지자들만 아녔어도, 라면서 집 침대에서 자기위로나 할 수 있게 “처리해”나 “중단시켜”같은 소리나 하는 망할 놈들이 필요했을 겁니다.

 

저희는 동시에 당신들이 외교적으로 실패했을 때 뒤처리하는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저희는 당신들이 광신자들이나 피 흘리는 강, 위아래가 뒤집어진 도시에서 차나 홀짝거리는 불멸자 씨발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전이시키는 개병대입니다. 굳이 이유를 말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당신들을 죽이고 싶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로 옮겨놓거나 설득시킬 수도 없고. 그저 당신들을 죽이고 싶어할 뿐이니, 그 전에 저희가 먼저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완벽한 세상에 좆같은 조각이 맞지 않을 때 맞을 때까지 조각을 깎아내는 역할도 빼먹으면 안 되겠군요.

 

지금까지 한 소리를 제 상담사가 아주 좋아하겠군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희가 근본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같습니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세상. 당신들이 더욱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저희는 의견을 굽힐 것입니다. 하지만 A6K에선 상황이 다릅니다. 저희는 보았습니다. 저들은 의견을 굽히지 않는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로 굽히지 않을 겁니다. 저들은 요령을 부립니다. 저들은 경이를 파괴하려 합니다. 그게 씨발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A6K는 문제고,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다른 문제 차원들에 했던 것처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들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세계 평화유지 연합반대합니다.

 

- 6


장소: 어딘가 언덕 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차원간 접대로서 나를 마비시킬 것을 추천한 적이 있었다. 22시간 뒤, 그녀는 정확히 내 추천대로 했다.

 

나는 언덕 위에서 웅크려 앉은 채 굳어 있었다. 눈을 깜박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혈관 속에서 피가 그대로 멈춰서 심장으로 가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내 사고를 돌리는 톱니바퀴들 또한 삐걱이면서 멈춰버렸다.

 

“화합”,

 

아니면 절멸.

 

긴장감이 약간, 진짜로 약간만 느슨해진 순간 머릿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폭발적으로 떠올랐다. 가파르고 좁은 길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당장이라도 의자로 달려갈 수도 있었다. 아마도. 의자에게 내가 처음 왔던 옥상으로 보내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내 현실로 돌아가 경고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고해야 할까? 경고해봤자 소용이 있을까? 내 말을 믿기는 할까? 믿더라도 집약체에 대항할 수 있을까? 선제공격을 할까? 이 현실과 내 현실 둘 중 하나의 멸망을 내 손으로 정해야 하는 걸까? 알게 된 지 하루도 안 된 사람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지배조직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내 현실을 믿을 수는 있는 걸까? 내 쪽 평의회도 본 적이 없는데!

 

나는 고개를 돌려 프림로즈를 보았고... 그녀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표현을 보이고 있었다. 숨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어떻게든 참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폭소하기 시작했다.

 

아예 쓰러져서는 땅 위에서 뒹굴면서 웃어댔다.

 

캐스피언: (...) 사실 침공 같은 건 없지?

프림로즈: 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오, 문의 수호자시여, 하늘에 계신 위대한 어머니시여. 옛 신들과 새 신들의 만신전이시여. 넌 진짜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순진한 사람이야!

캐스피언: 나 여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순진할 수밖에 없잖아! 아, 진짜! 그래서 “화합”이 진짜 뭔데!?

 

프림로즈는 숨을 고르곤 나를 보았다.

 

프림로즈: 접촉. 화합이란 너희 현실에 접촉해서 담화를 제안하는 거야. 그게 다고, 그게 전부야!

캐스피언: 그럼 화합이 아니라 접촉이라 하든가!

프림로즈: 집약체가 과학연구집단인 걸 잊지 마, 데이비드. 어려운 말 쓰는 걸 좋아한다니까.

 

그제서야 나는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잔디바닥 위에 몸을 맡긴 채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캐스피언: 넌 진짜 망할년이다, 프림로즈.

프림로즈: 다 네 업보야. 묻지 말라고 했잖아?

캐스피언: (...) 아무튼, 그냥 우리랑 대화하고 싶다는 거구나.

프림로즈: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시간이 지나 대화가 어느정도 정리되고 나면, 그때는 인도적 지원을 시작할 거야... 바란다면 저등급 기술 같은 걸 넘겨줄 수도 있겠네. 일단 침략이 맞긴 해. 엄청 느리고, 완전히 허가받은 침략이지만. 너희가 “꺼져!”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꺼질 거야.

캐스피언: 의견이 통일되지 않으면? 내 세상의 한 쪽은 너희를 환영하는데, 다른 쪽이 그러지 않는다면?

프림로즈: 상관 없어. 통일된 의견이어야만 해. 너희가 일종의 총의를 이루거나 범지구적 동맹을 이루거나, 예를 들어 세계 발전을 위한 과학적 의회 같은 걸 성사시킨다면 그때 다시 부르면 돼.

캐스피언: 이런 걸... 자주 하는 거야?

프림로즈: 충분히 자주 하지! 새 차원을 찾을 때마다 이런 투표를 거치거든. 그래도 이번처럼 집약체 전부가 소집되는 일은 별로 없어. 웬만해선 결론이 정해져 있거든. 대부분은 반대해. 단순한 “대화”에 불과하겠지만, 그게 상대 쪽의 안정을 얼마나 뒤흔드는지는 알거든. 너도 말했듯이, 누구는 바라고 누구는 바라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의견을 통일시킬 수도 있지만 – 세계대전을 발생시킬 수도 있으니까.

캐스피언: 그리고... “반대”표가 나왔을 때 그 현실을 파괴하지는 않는 거고.

프림로즈: 맞아, 데이비드. 당연히 안 파괴하지. 아이러니하게도, 차원간 구멍은 우리가 격리하는 유일한 경이야. 구멍 주위를 틀어막고 고립시킨 다음 감시하지. 현실 하나를 통째로 파괴하는 건... 아무리 집약체라도 그 정도 힘은 없을걸! 아마도. 이따금 우리 쪽에서... “자비”를 제시한 적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차원들은 말 그대로 모든 게 개판으로 돌아가는 차원들이니까. 너네 현실은 그래도 그정도는 아니고, 너도 딱히 위협이 아니니까. 너는 그냥... 뭐라고 해야 할까, 좀 심각한 회색지대?

 

그 말을 듣고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거대한 재앙이 찾아온다거나, 이 모험이 비극적인 반전을 겪는다거나 하지 않으니 어딘가 잘못된 듯한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나는 그냥 우주(들)에 대한 현실부정 속에서 평정을 이룬 채 누워있을 뿐이었다.

 

프림로즈는 한숨을 내쉬곤 내 곁에 앉았다.

 

프림로즈: 데이비드, 나는 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대체현실에 대해서 잘 알아. 널 무시할 생각은 아니지만, 너보다도 훨씬 많이 알고 있다고. 한 60년쯤 먼저 이쪽에 몸담았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들의 세계가 왜 이렇게 차이나면서 동시에 왜 이렇게 비슷한지 감도 못 잡겠어. 그쪽 사람들이 문제인지, 아니면 그쪽 경이들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니까. 적대적인 현실 탓에 사람들이 그렇게 공격적이고 불신으로 가득해진 걸까? 아니면 사람들의 불신과 공격성 때문에 현실이 그렇게 적대적이게 된 걸까? 너 때문일까? 환경 때문일까? 사실 A6K는 그냥 통제를 벗어난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너희랑 근본적으로 다른 걸까, 아니면 그냥 수천년 전 한 인간이 다른 인간한테 다정하게 대한 행위로부터 시작된 나비효과의 산물일까?

 

프림로즈는 몸을 떨었다.

 

프림로즈: 과학이라는 실로 이루어진 잔뜩 엉킨 실뭉치라니까. 아, 참고로 이것도 고양이 속담이거든. 너는 쓰면 안 돼.

 

나는 잠시간 프림로즈를 바라보았다.

 

캐스피언: 60년이라고?

 

프림로즈가 끄덕였다.

 

캐스피언: 그럼 넌 몇 살인데?

 

프림로즈는 내 얼굴을 한 대 강하게 후려치고는 의자를 향해 나아갔다.

 

해가 떠올랐다.



집약체는 재단의 발언을 허가한다.


결국 평소처럼 저희에게 달려 있군요. 저희 때문에 시작된 것이니, 어쩌면 이게 맞겠죠.

 

저희는 전부 공포스러운 강철 달에 삼켜져 텅 비어버린 세상을 보았어요. 저희는 죽음, 죽었다 살아난 것, 그리고 혐오스러운 생명으로 잠식된 행성들을 보았어요. 저희는 소름끼치는 붉은 태양빛 아래 모든 것이 끔찍하게 하나되는 것을 보았어요. 저는 어떠한 현실도 뒤틀린 재앙의 희생양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무엇이 저를 가장 괴롭게 했는지는 말할 수 있겠죠...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한 아름답고 순수한 세상... 곧 재앙이 터져버릴 그런 세상 말이에요. 무슨 재앙이 도사리는지 말해줄 시간도 없었어요... 시간이 너무 적었으니까요...

 

죄송해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힐 생각은 없었는데. 저희가 이성을 담담해야 하잖아요?

 

저희는 우선 슬픈 사실 하나를 인정할 필요가 잆어요. A6K는 아마 저희가 관측할 수많은 현실들 중 진짜 평행현실에 가장 가까운 현실일 거예요. 여기 앉아서 저들을 규탄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저희랑 가장 유사한 현실이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겠죠. 저희는 고난을 헤쳐나가기 위해 함께 손잡고 장막을 걷어 모습을 드러냈어요. 저희가 그랬는데, 저들이라고 불가능할까요? 저들은 저희와 동등한 자들이 될 수 있어요. 어느날 아예 저희보다 발전하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러려면 저희의 도움으로 성공해선 안 돼요.

 

저들은 스스로 성공해야 해요.

 

재단반대하겠어요.

 

6 - 7

하지만 추가 의견이 있어요.


문은 막겠지만, 완전히 틀어막지는 않을 거예요.


A6K에 대한 관측을 유지한 채 저희를 발견하도록 유도할 거예요. 만약 그 날이 온다면, 저희는 저들을 확보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고, 아무런 격리나 보호 없이 저들을 환영할 계획이에요.

 

저들이 태양 아래 모습을 드러낼 준비가 되었을 때, 저희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이제 표결을 부칠까요?


장소: 도쿄.


그리고 우리는 다시 옥상에 되돌아왔다. 내가 나타남과 동시에 내 랩코트가 함께 나타나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의자에게 감사를 표하며, 덕분에 오늘 하루 참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의자는 기쁜 듯 삐걱였다.

 

프림로즈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있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를 등진 채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또 한번 일출을 함께 구경했다. 이번에는 현란한 녹색과 매끈한 흰색으로 이루어진 경이로운 건축물들 사이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어떻게 저 덩굴들을 저렇게 크게 키울 수 있었는지 물어보는 걸 깜박했다는 걸 떠올렸다. 나는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알 필요가 없었다. 눈에 보인 광경은 경이로웠고,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프림로즈: 그렇게 치열할 줄은 몰랐어.

 

나는 프림로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프림로즈: 그러니까, 투표 말이야. 자선재단은 찬성할 거라 생각했어. 걔네들은 불쌍한 사람들 돕는 걸 정말 좋아하고, 너네 세상은 불쌍함을 현실로 만든 듯한 세상이니까.

캐스피언: 프림로즈-

프림로즈: 정상 애들도 그럴 줄 알았어. 아마도. 나도 한 표 투표하긴 했으니까. 개과학부는 누군가를 끌여들여서 참여시키는 대에 환장한 놈들이기도 하고 – 그치만 양서류 떼들은 가끔 진짜 보수적이란 말야(원문: Stick in th mud. 보수적이라는 뜻과 양서류는 진흙탕에서 산다는 것을 이용한 중의적인 농담)!

 

캐스피언: 프림로즈...

프림로즈: 그리고 숲의 사람들이 어디에 투표할지는 아무도 몰랐을 거야. 항상 그래. 밤의 존재들이 찬성한 건 조금 놀랐어. 너네들이 걔네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말이야... 그래도 공동체 녀석들은 대체 뭔 소리를 하던 거야!? 너 단어 하나라도 알아들은 거-

캐스피언: 저기, 프림로즈?

 

그녀는 말을 멈췄지만, 그럼에도 내 쪽을 보지는 않았다. 이 세상의 고양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꽤나 많이 배웠지만, 그녀의 속내를 읽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 그녀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 상상할 수는 있었다.

 

캐스피언: 오늘 하루 고마웠어.

 

프림로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캐스피언: 그리고, 어... 미안해. 그, 고양이한테 반찬 달라듯 해서(원문: Let the cat out of the bag. 비밀을 들추다)- 아, 미안. 이것도 고양이 전용 속담인가?

프림로즈: 써도 돼...

캐스피언: (...) 특이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이네, 프림로즈.

프림로즈: 이게 네 세상이 될 수도 있는데. 알아?

 

이번에는 내가 입을 다물 차례였다. 나는 하늘이 색이 옅은 주황색에서 기분 좋은 하늘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프림로즈: 내 말은... A6K으로 가는 길이 막히면 이번처럼 그렇게 간단히 꺼내오는 건 힘들겠지만, 처음부터 안 돌려보내면 되는 거잖아! 집약체한테는 대충 이런저런 이유 대면서 둘러대면 된다니까. 장기적인 문화간 다차원적-... 양자- 쿼크 뭐시기- 으아! 아무튼 변명거리를 생각해낼게! 정 네 SCP 사람들이 걱정되면 클론이나 안드로이드나 - 아니면! 이번에 네팔에서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렌즈콩 기반 생명체를 발견했거든! 침흘리기랑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밖에 못 하지만, 네 그 멍청한 현실은 눈치도 못 챌걸!

 

나는 그냥 웃을 뿐이었다. 미약하게. 프림로즈의 말은 이내 중얼거림으로 사그라들었고, 내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는 그녀의 고개가 축 쳐져 있었다.

 

캐스피언: 오늘 하루 진짜 엄청났어.

프림로즈: (...) 저들한테 말할 거야? 그러니까, 네 상사들 말이야.

캐스피언: SCP재단 말이야? 절대 안 하지. 대충 둘러댈 거리를 생각해봐야지.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말해줄 만한 사람 한 명은 있네.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입도 무거운 사람이거든.

 

프림로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랩코트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었다. 화려한 팡파레나 송별회같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돌아갈 때임을 알았다.

 

돌아가기 전, 프림로즈에게 마지막으로 하나 부탁할 것이 있었다.

 

그녀는 망설였지만 결국 받아들여주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곧 사라졌다.





레퍼런스 및 설명

원문

1. 모든 피조물의 방랑자들 - 방랑자의 도서관, 혼반, 뱀손의 연합체.

2. 지난 몇 주동안 뉴 알렉산드리아가 시끌벅적했다네 - SCP-4001.

3. 공중에 가득 찬 종이 용들 - SCP-1762. 이제 행복함.

4. 캐시와 그녀의 자매들 - 이제 혼자가 아님. 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열심히 모험중.

5. 꿈 문집 안에서 - 책장에서 안전하게 보관중. 매일매일 새로운 모험을 시작함.

6. 주황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하늘에서 -  SCP-507. 

7. 어디로든 의자 -  SCP-1609. 정중하게 부탁하기만 하면 어디로든 보내줌.

8. 시무룩한 초지능 민달팽이 -  SCP-3003. 

9. 샌드포드 정밀시계 -  SCP-4382.

10. 자유로운 자선재단 -  평행세계의 만나자선재단. 선한 의도를 가지고 활동중.

11. 원더테스틱 부인 - 평행세계의 원더테인먼트 박사. 좀 더 안전한 장난감을 만듬. "피냐타 비행선" 구호가 필요한 지역 위에서 폭발해서 사탕 같은 구호품을 뿌림.

12. 이집트의 난쟁이 -  SCP-208. 자선재단 소속 치유사. 여전히 옷을 싫어함.

13. 활기찬 슬라임 -  SCP-999. 초록색인 거 빼면 원본이랑 같음.

14. 윤리적으로 복제된 바베큐 -  SCP-871. 다른 음식도 복제할 수 있도록 개조됨. 일행이 먹는 모든 음식은 이 PACT에서 만들어짐.

15. 암 치료제 -  SCP-500. 들어있는 거 다 썼더니 다시 차올라서 도박에 성공. 

16. 초록 점액 네이팜 -  SCP-447. 아발론에서도 여전히 시체랑은 접촉금지.

17. 포틀랜드 중 하나가 고집이 아주 셌지 뭐야 -  스리포틀랜드 카논.

18. 인조 의회 - 부신교랑 앤더슨 로보틱스 연합체.

19. 선지자 앤더슨 - 앤더슨 로보틱스. 집약체 사회에의 AI 편입과 AI사회 발전에 크나큰 공헌을 함.

20. 합일한 신 - 부서진 신. 부활하자마자 다시 자기파괴해서 인공지능들에게 의지를 부여함. 두 번째 분화.

21. 증오로 가득한 살점들의 세상 -  SCP-610.

22. 호주에 있는 말하는 거미 -  SCP-1470. PACT기술 덕에 말하는 거미 친구들이랑 기나긴 족보를 가지게 됨. 

23.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 -  SCP-1845. 어떻게 해서 다시 현대사위에 편입됨.

24. 셋의 동업자들 - 이윤추구를 포기하고 만인을 위한 선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평행세계의 MCD.

25. 천을 기워 만든 움직이는 곰인형 -  SCP-2295. 안전함.

26. 거대하고 울퉁불퉁한 사람 -  SCP-082. 식인을 그만두고 뉴욕에서 버스킹 중.

27. 예술가 문화공동체 - 모든 세계의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게 목적인 평행세계의 AWCY.

28. "누 솜므 데베누 마니피크" - AWCY카논의 "쿨의 탄생" 비유. "우리는 이제 훌륭해졌다."라는 뜻.

29.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탁한 물로 차있는 수조 -  SCP-1018. 존중받음.

30. 로버트 "보보" 블라이스 갤러리 -  SCP-993. 어두운 생각들을 예술로 승화시킴.

31. 동상 -  SCP-173.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품이 됨.

32. 특이한 아마추어 라디오 -  SCP-185. 분해 후 리버스엔지니어링됨.

33. 텔레파시를 쓸 줄 아는 어떤 식물의 수액 -  SCP-3171. 이제 폰섹스 안 해도 됨.

34. 러시아 민담에 나오는 괴물한테 납치당한 수천 명의 아이들을 구해준 다음 범지구적인 라디오 전파를 납치했거든 -  SCP-3034.

35. 존재하지 않는 단체 - 아무도 아닌 자. 평행세계 버전이 아닌 아무도 아닌 자 본인들.

36. 20미터짜리 파충류 -  SCP-682. 이곳에선 이모티곤이라는 속명으로 알려짐. 더이상 필멸자들을 역겨워하지 않고, 이젠 아예 본인들이 간접적으로 필멸의 삶을 사는 중. 그래도 여전히 인류는 싫어함.

37. 특이하게 생긴 랩터견 한 무리 -  SCP-939.

38. 비행기보다도 거대한 새 떼 -  SCP-1160.

39. 잎사귀와 뼈로 만들어진 옷을 입은 사람들 한 무리 -  SCP-4000. 여기선 많은 부족들에게 추앙받는 전설이고, 부산물은 의식을 위해 사용됨. 캐스피안의 기억에서 여자애가 사라진 건 의식의 결과. 이렇게 사라진 사람은 '기억되지 않는 자'로서 부족의 수호신처럼 활동함.

40. 공방조합 - 공장이랑 프로메테우스 연구소 연합체. 공장이 다시 선을 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조합이 만들어짐.

41. 프로메테우스의 불 - 프로메테우스 연구소.

42. 스스로 발전하는 기계 -  SCP-914. 창고에 보관된 채 자기만의 속도로 알아서 발전중.

43. 사이보그 슈퍼좀비 군단 - SCP-217이랑  SCP-008이 섞인 결과.

44. 실수로 메사추세츠 주 전 인구를 다른 곳으로 전이 -  SCP-4006. 되찾음.

45. 또라이 - 원더테인먼트 박사.

46. 괴짜 - 아르카디아.

47. 백치 천재 - 다도.

48. "허먼 풀러의 기이한 박물관" - 허먼 풀러의 불온한 서커스.

49. 거대한 조류의 골격 -  SCP-4975. 집약체 설립 전에 멸종해버림.

50. 거대한, 녹슨 기계장치 -  SCP-2700. 다행히도 쓰인 적 없음.

51. 그 여자애한테 생긴 일을 지독한 비극이라고 하겠지만 -  SCP-231. 다행히도 구조에 성공.

52. 붉은 손 - 평행세계의 혼반.

53. 뱀 왕의 추종자들 - 뱀손.

54. 증오로 가득한 고대의 불멸자들 - 주홍왕과 세계관 내 적대적인 모든 신격체들.

55. 솔직히 말해 누가 장난감 총에 페인트 스프레이를 뿌려놓은 것 같이 생겼었다 -  SCP-3108. 몇 번 정도 쓰인 적 있음.

56. 공유된 정상으로의 상승 - 평행세계판 윌슨 야생동물구제. 동물들의 지성체화는 얘네 작품.

57. 진짜 위험했던 건 곤충들이지 - 벌레지옥 카논.

58. 한 변칙적인 산호물질 -  SCP-835. 옮겨짐.

59. 죽음을 끝장내는 방법 - 죽음의 끝 카논.

60. 헉. 진짜 귀신이 와서 우릴 잡아가? -  SCP-080. 태즈매니아로 옮겨짐.

61. 수백만 개의 깃털이 흰 실에 매달려 기형적인 구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  SCP-469. 밤의 아이들-나이트랜드 언약이 개량해서 이용중.

62. 밤의 존재 - 평행우주판  SCP-1000. 집약체에 합류함. 부유하는 유기물 도시들은 자전에 따라 항상 밤인 쪽으로 이동함.

63. 그릇에 담긴 라멘은 정말로 맛있어 보였지만, 그것보단 주방장 쪽이 내 관심을 끌었다 -  SCP-5031. 식당 주방장이 돼서 (배양된)닭고기를 마음껏 즐기는 중.

64. 새 손님이 몸을 잔뜩 웅크려 좁은 가게에 들어왔다 -  SCP-1000.

65. 관측자 게시판 - 파라워치랑 대마초에 반대하는 게이머들 연합체. 마지막 경이전쟁 때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일들을 관측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인터넷 커뮤니티의 모임. 집약체가 합류를 제의했을 땐 이미 장막 뒤에 대해 대강 감 잡은 뒤였음. "일반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애들이라 기본적으로 집약체를 불신했음.

66. 너네가 막 불타는 검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  SCP-001 문의 수호자. 종교적 순례자들의 성지가 됨. "구 만신전의 축출"때 집약체에 협략해서 주홍왕과 다른 신격체들을 몰아냄.

67. 빛나는 유령같은 형상 한 무리 -  SCP-2316. 자유로워짐.

68. 움직이는 모래언덕 -  SCP-165. 군집을 이뤄서 미식기행을 다니는 중.

69. 여름 매미같은 소리를 내는 이탈리아 관광객 가족 -  SCP-2852. 세상을 마음껏 여행중.

70. 녹색 돌거울 -  SCP-093. 아발론 세계선에선 좀 다름.

71. 커다란 떠다니는 구체 -  SCP-3201. 말을 번역해보면 "이 대화는 아무 쓸모도 없고, 기록하는 건 고통스럽다."

72. 굉장히 시끄러운 작은 새들 -  SCP-2337. 자유롭지만 여전히 시끄러움.

73.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  SCP- 4999. 어차피 주인공의 마지막 날이라 담배를 건네주기로 함. 아발론 세계선에선 좀 더 융통성 있게 일하는 중.

74. 이름 없는 자 -  평행세계판  SCP-4000의 요정. 아발론에서 길은 장소가 아니라 철학. SCP-4000은 이제 현실간에 걸쳐 존재하는 허브-도시가 됨.

75. 길은 오직 하나뿐이며 갈림길은 결국에는, 전적으로, 궁극적으로 하나로 모이기 따름이다 -  SCP-5935.

76. 자판기 하나가 있었거든 -  SCP-294. 전세계 800곳이 넘게 배치됨!

77. 세계 평화유지 연합 - GOC, UIU, 그리고 여타 정부의 초상 관련 부서들의 연합체.

78. 광신자들 - 사르킥, 다섯째주의, 모든 피조물의 방랑자들에 합류하기를 거부한 혼반이나 뱀손에 많이 과격한 분파들. 집약체한테 삭제당함.

79. 피 흘리는 강 -  SCP-354. 줄기가 여러 개로 갈라짐.

80. 위아래가 뒤집어진 도시에서 차나 홀짝거리는 불멸자 씨발것들 -  SCP-1678. 집약체한테 삭제당함. 언런던 전쟁은 전설로 남음.

81. 저들은 경이를 파괴하려 합니다 -  SCP-1609.

82. 오, 문의 수호자시여 -  SCP-001.

83. 하늘에 계신 위대한 어머니시여 -  SCP-179. 소규모 종교의 숭배대상이 됨. 최근 팟캐스트를 시작하려는 것 같음.

84. 재단 - 평행우주판 재단인데 이제 SCP가 없는. 최초로 영구적인 동맹을 제안한 집단.

85. 공포스러운 강철 달에 삼켜져 텅 비어버린 세상 -  SCP-162. 광신도들에 의해 끊임없이 커진 결과.

86. 죽음, 죽었다 살아난 것, 그리고 혐오스러운 생명으로 잠식된 행성들 -  SCP-1341이 열렸을 경우.

87. 소름끼치는 붉은 태양빛 아래 모든 것이 끔찍하게 하나되는 세상 -  SCP-001 여명이 밝아올 때.

88.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한 아름답고 순수한 세상... 곧 재앙이 터져버릴 그런 세상 -  SCP-001 아름답게 저무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