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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사령관 님. 오늘도 빵만 드시는검까?"


자율배식대에서 빵 두 개와 참치캔 하나를 챙겨 테이블로 돌아가려는 와중에 브라우니 하나가 다가왔다. 메뉴는 좀 더 다양했지만 영 입 맛이 없어 간단하게 배만 채울 요령이었다. 식판을 들고 빤히 쳐다보고 있는 브라우니에게 대충 대답하고 그대로 지나치려다가 마침 식당이 한산한 것을 깨달아 다시 브라우니를 불러세웠다.


"아 잠깐만, 거기. 브라우니……음…"


"2744. 상병임다."


"그래, 상병. 잠깐 괜찮을까?"


"오? 같이 식사 해주시는 검까?"


"그래. 따라 와."


기존에 자리잡았던 곳에서 기다리는 아르망에게 손짓하고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브라우니가 맞은 편에 앉자마자 허겁지겁 빵을 입에 구겨넣는 모습에 당황한 탓에 나도 모르게 빵의 포장지를 신속하게 뜯어버리고 말았다. 옆 자리에 앉은 아르망을 보고서야 브라우니에게 체하겠다고 돌려 말해 식사를 제지 한 뒤, 말을 꺼낼 만한 분위기가 조성되자 아르망과 서로 곁눈질을 교환하고 입을 열었다.


"상병은 언제부터 이 곳에서 체류했지?"


"저 말임까? 이제 2년차 일껌다. 제조되고나서 여기 배치된 뒤에 다른 곳으로 발령난 적은 없슴다."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근무지인 거로군…"


"에? 잘 모들어흠다?"


그 비극과 관련된 적 없는 이가 보여오는, 입 안을 가득채우고 우물거리는 세상 편한 모습이 약간의 안도와 씁쓸함을 동시에 전해왔다.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상병. 본대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나? 오르카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아…들었슴다. 나쁜 놈한테 거의 다 작살이 났다고 하던데 말임다. 그래서 저 쪽의 메이 대장도 그 꼴이 된거라고 들었슴다."


사령관님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하는 브라우니의 말을 끊고 신경 쓰이는 이름이 나온 것에 대해 캐물었다.

한 입 남은 빵을 마저 입에 넣어 삼키고 브라우니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뒤 곤란하다는 말투로 계속했다.


"그게 말임다. 완전 폐인이 되버려서 약에 찌든 상태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름다. 원래 같으면 섬 밖으로 탐색나갈 때 그런 약은 주워오지도 않는데 메이 대장이 오고나서는 고작 그 약 하나 구하려고 탐색 나가는 일도 생겼슴다. 한 번은 약을 구하고 왔더니 바로 찾아대길래 직접 가져다 줬더니 손에 붙잡히는 건 다 던져대고 말임다.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최소한 이 쪽 보급대 인원들한테는 피해가 안가게 해야 하는게 맞는거 아님까? 이제 진짜 질렸슴다."


"…그래. 알았다. 고생이 많네."


"사령관 님이 어떻게 좀 해주십쇼…"


"조만간 손을 써보마. 조금만 더 수고해 줘."


고맙다고 말한 뒤 먼저 일어서자 우유 한 팩을 금새 비운 브라우니가 자리를 털고 말했다.


"근데 말임다. 사령관님이 무사하신건 좋은데 오르카가 날아간거면 저희 진짜 좆된거 아님까?"


그 말에 매섭게 반응한 아르망이 브라우니를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았다. 씩씩대고있는 아르망의 어깨를 두들겨 겨우 진정시킨 뒤 출입구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나는 브라우니가 한 말을 곱씹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좆 되기만 한거면 다행이지."






  



――――――――――――――――――――――――――――――――――――――――――――――――――





점심식사를 마치고 병영을 향해 연병장을 가로질렀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낼 것 처럼 우중충했고 계절을 감안하더라도 시리게 느껴지는 바람이 온 몸을 훑었다. 사방이 바다로 싸여있는 섬이다보니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해가 있었기에 아이들은 복장을 가볍게 하고 나섰지만, 앞으로는 상시 외투를 착용시켜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져 걸음 속도를 높혀 금새 병영으로 들어섰다.

아르망을 앞질러 빨리 외투를 챙기기 위해 계단을 두세 칸 씩 뛰어올라가는 중에 이 곳에 온 첫 날을 제외하고는 볼 수 없었던 인물과 마주쳤다.


"야. 나이트 앤젤. 얼굴 한번 보기 힘들다?"


"여긴 있을 건 다 있잖아요. 사령관 님이 애도 아니고."


계단을 내려오던 중인 나이트 앤젤이 상의의 안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령관 님, 라이터 있으세요?"


"뭐? 라이터? 너 담배 폈었냐?"


"좀 됐어요. 라이터 있으세요?"


처음 마주쳤을 때와는 또 다른 퉁명스러움이 신경쓰여 별 대꾸없이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건넸다.

건네받은 라이터를 몇 번 켜보고 화력을 확인한 나이트 앤젤이 곧바로 내려가려 했기에 나는 불편한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나이트 앤젤을 구석으로 몰았다. 


"그것 참 급해보이네. 뭔 일 있냐?"


"어머 사령관 님. 여기선 곤란한데. 한 대 피우고 나서 하면 안 될까요?"


"언제는 너랑 한 적 있다는 듯이 말하지마라. 네가 뭔 일이 있던 말던 나한테 까지 막 대할 깜냥이야?"


"화나셨다면 죄송해요. 됐나요?"


빠져나가려는 나이트 앤젤의 팔을 붙잡고 벽에 짓누르자 자연스럽게 밀착한 모양새가 되어 얼굴이 가까워졌다.

좀 더 잘 보이게 된 그 올려다보는 얼굴을 가만히 보니, 오르카에 있던 시절부터 생기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던 나이트 앤젤의 눈은 겉만 보면 알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으로 물들어 한 층 더 생기가 없어보였다. 옛날과 같은 눈이라면 웃어넘길만한 것이 섞여있었지만 지금의 눈은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네가 왜 이렇게 짜증나게 구는지 한 번 맞춰볼까? 메이 때문이지?"


"정답. 이제 좀 놔주실래요?"


"말 안끝났어. 메이는 지금 어디에 있냐. 안내 해."


"…전 상관 없긴한데, 정말 메이 대장한테 가실건가요? 신경 끄시고 편하게 있으시는게 나을거에요."


"메이의 상태에 대해선 이미 들었어. 계속 성질 긁지말고 메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 해."


"…"


고분고분해진 나이트 앤젤을 풀어주자 때 마침 뒤늦게 따라온 아르망이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하고 다가오기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아르망에게 대신 외투를 챙겨줄 것을 부탁한 뒤 말 없이 서있자 마지못한 한숨을 내쉰 나이트 앤젤이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1층의 독실에 있어요. 어떤 말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고 계신 것 그 이상이니까 충격받진 마세요."


"충격은 이미 받을 만큼 받아왔으니까 신경 꺼라."


1층으로 내려와서 중앙계단과 통제실을 지나 병영 좌측의 가장 안 쪽에 있는 문에 도착하자, 나이트 앤젤이 고개를 돌려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턱짓으로 지시하니 나이트 앤젤은 아까 라이터를 찾기위해 뒤적이던 소매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들고 문에 걸려있는 자물쇠를 풀었다.


"윽…"


문을 들어서자 한 마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알코올과 땀, 환기되지 않은 방에서 날 법한 텁텁한 냄새가 뒤섞인 것 같은 불쾌한 냄새가 내무실보다 좀 더 넓직한 독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정돈되어 있음에도 곳곳에서 느껴지는 어수선함에 알아서 발소리를 죽이게 된다. 커튼으로 전부 가려져있는 창가는 흐린 날씨가 더해져 아직 점심 무렵임에도 해가 거의 다 져가는 저녁처럼 느껴졌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들어온 문을 바라보았다. 이 곳과 병영의 시간이 따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출입문 하나를 경계로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누구?"


코가 마비될 때 쯤이 되어서야 적응된 독실의 가장 안 쪽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하자 수복실에서나 쓰일 법한 침대에 누운 채로, 눈을 가늘게 뜬 메이가 안개 너머 풍경을 관찰이라도 하는 것 처럼 나를 살펴보더니 입을 중얼거렸다.


"사령관이 왜… 아… 또… 이 꿈인가…"


"대장, 정신이 좀 돌아왔나 보네요."


"나,나, 나이트 앤젤… 야, 약은…"


"이제는 사령관 님이 보는데서도 한 발 놓게요?"


"저건… 꿈이야… 진짜가 아니야…"


"아, 그러면 이젠 꿈에서까지 약을 찾는거네요? 대장, 정신이 조금이라도 돌아왔을 때 똑바로 굴어요. 진짜 사령관 님이니까."


"거…짓말…"


"하… 야."


성큼성큼 다가간 나이트 앤젤이 메이의 목과 입으로 팔을 뻗어 쥐어짜내는 것 처럼 졸라댔다.

그 행위에 아무 저항감도 갖지않는 나이트 앤젤을 보니 한 두번 있는 일이 아닌 듯 했다.


"으…크윽…그으윽…"


"제발 좀… 씨발, 좆같은 년아… 짜증나게 하지마… 알았어? 사령관 맞다니까? 이틀 전에도 말해줬잖아. 사령관 왔다고. 내가 준비하라 했어 안했어. 어?"


짝- 짜악- 짜악-


입을 조르던 나이트 앤젤의 손이 메이의 양 따귀를 후려치기 시작하면서 난 소리가 독실을 울려댔다.

나이트 앤젤을 말릴 생각은 하지 못하면서 울려퍼지는 소리 속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자, 마침내 메이에게서 손을 뗀 나이트 앤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사령관 님. 이제 괜찮을거에요."


"…"


대답하지 않고 의자를 하나 끌어와 메이의 머리맡 근처에 앉았다.

윤기없이 푸석하고 떡진 머리카락. 바싹 말라 갈라진 입에 움푹패인 뺨과 눈. 초점 없는 눈동자와 그 주위로 가득한 다크서클. 몸 곳곳에 두른 오랫동안 갈지 않은 붕대. 

메이의 모습은 폐인이라는 단어에 그대로 들어맞았지만, 폐인 보다는 다 무너진 허수아비에 더 가깝지 않을까 라는… 쓸데없는 감상을 품은 뒤 나는 메이에게 속삭였다.


"메이, 나야. 알아보겠어?"


"…어…라…"


"너의 전 사령관이야."


"…이상해…이런 적은 없었는데… 꿈에서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꿈이 아니야. 나는 진짜야."


"…"


"메이."


메이에게 다가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 볼 수 있게 양 손으로 그 머리를 살며시 부여잡고, 힘을 주어 다시 한번 말했다.


"메이. 이제 알아 보겠니?"


"……아?…헤에?…에?…하에?…"


"좀 더 똑바로 봐."


"아…아아…으아아아…"


움푹패인 메이의 눈에 초점이 돌아와 떨리고, 동공이 확장되는게 보였다. 


"그래, 나야."


"나,나,나나, 나이트…"


"오랜만이야. 메이."   


"나이트 앤제엘!!!!!!!!!"


"큭! 메…이! 진정해!"


발작해 날뛰는 메이의 양 손을 잡아 눌렀으나 멀쩡한 두 다리가 옆구리를 가격해왔다.


"아아아악!!!!!"


"나이트 앤젤! 다리를 잡아!"


"아뇨, 계속 잡고 있어보세요."


"싫어!!! 놔 줘!! 하지마!!! 안 돼!!" 


그 말을 남기고 나이트 앤젤은 독실을 나갔다. 생각지 못한 상황을 맞이해 허망하게 독실의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으니 메이가 자신의 양 손을 봉쇄하고 있는 내 팔에 입을 들이밀어 물어뜯기 시작했다.


"으윽! 잠깐만 메이! 그만 해! 이거 놔!"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짐승처럼 으르렁대는 메이의 입에서 피가 묻어나왔다.

이빨이 살갗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참지 못하고 남아있는 손으로 메이의 얼굴을 누르듯이 가격했다.

그럼에도 좀 처럼 떨어지지 않는 메이였기에 나는 할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더욱 세게 힘을 줘서 따귀를 날렸다.

십 수대를 맞고나니 그제서야 힘이 풀린다. 때를 놓치지 않고 침대로 올라가 메이의 복부에 올라탄 뒤 사지로 메이를 묶었다.

팔뚝과 손바닥으로 감싸안은 메이의 얼굴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지척에서 울려왔고 서로 엉킨 다리는 풀렸다가 다시 엉켰다가를 반복한다. 그렇게 수 분이 지났음에도 지치지 않고 더더욱 난폭하게 날뛰기 시작하는 메이를 상대로 오히려 내 쪽이 슬슬 힘이 빠져가고 있던 참에, 독실의 문이 열렸다. 


"온 몸을 던지셨네. 고생하시네요."


그대로 잡고 계세요. 메이의 머리맡으로 다가온 나이트 엔젤이 말했다.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려 슬쩍보니 나이트 앤젤은 손에 든 주사기에 알 수 없는 약물을 가득 채우고 다듬은 뒤, 메이의 턱을 바깥으로 찍어눌러 드러난 목덜미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너 지금 뭘 주사한…!"


메이가 이 지경이 된 약을 또 놓았느냐고 물으려했으나 나이트 앤젤이 내 말을 끊고 곧 바로 부정했다.


"해독제에요. 좀 있으면 진정 될 거니까 걱정마세요."





――――――――――――――――――――――――――――――――――――――――――――――――――




"이걸로 됐어요."


메이에게 물어뜯긴 자국을 소독하고 거즈로 마무리해준 나이트 앤젤이 한숨을 쉬었다.


"말했죠? 안보시는게 낫다고."


나이트 앤젤이 해독제를 투여하고 몇 분이 지나자 곧 바로 잠든 메이를 바라보면서 내가 말했다.


"마약을 해독 할 수 있는 걸 갖고 있었으면서 진작에 쓰지 않은 이유가 뭐야?"


내 물음에 피식한 나이트 앤젤이 방금보다 더 깊은 한숨을 쉬더니 나와 같이 메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해독해준다고 약쟁이가 약을 끊을 것 같아요?"


"말려보기는 했냐?"


"아뇨. 그런 적 없어요. 말릴 생각도 없었지만 애초에 말리면 안됐거든요."


"무슨 소리야?"


"아스널 준장이 지시했어요. 둠 브링어 전원을 살리고 싶거든 메이 대장을 이대로 놔두라고."


"도대체…"


이번에도 아스널인가.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처형, 메이에 대한 처분. 우군에 대한 협박까지.

이 모든 것이 대놓고 일어나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돌아가는 보급대.


"…이제와서 해독제를 놔준 이유는 뭐야."


"당연히 사령관님이 오셨으니까요. 명색이 대장인데 언제까지고 추한 꼴을 보이게 할 순 없죠."


"메이가 밉냐?"


"…사령관 님이 그런 꼴을 당하게 하는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건 저 꼬맹이에요."


"나이트 앤젤. 날 봐."


"처음엔 죽여버릴까 싶었는데요. 생각해보니까 저런 식으로 살려두는게 더 낫겠다 싶더라구요. 아스널 준장한테는 감사하고 있어요. 명분을 쥐여줬으니까."


"네가 보기엔 내가 메이를 미워하는 걸로 보이냐."


"…처음엔 사령관 님이 이 섬에 오시는게 꺼려졌는데, 이것도 잘 생각해보니까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저런 꼴이 되고나서 본인이 직접 내쫓는데 일조한 '인간'과 다시 마주하면 어떨까하고… 사령관 님을 이용한 건 죄송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사령관 님께 메이 저 년은…"


"지금부터는 그만해."


"…"


"메이를 치료해주고… 다시 지휘관으로 복귀 할 수 있게 네가 도와 줘. 네 본분을 찾아라."


"사령관 님… 혹시 바보에요?"


"화낸다."


"…사령관 님의 지시라면 저는 상관없어요. 다만, 아스널 준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거에요."


"지금부터 그 아스널을 찾을거다. 어떤 사정이 있던 더는 봐줄 수 없어."


안정된 호흡으로 잠든 메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독실을 나섰다. 커튼이 쳐진 창을 두드리는 소리로 보아하니 비가 오고있는 듯 했다.


"조심하세요. 사령관 님."








 

――――――――――――――――――――――――――――――――――――――――――――――――――





"각하."


"그래, 아이들을 데리고 너희 방에서 대기해라. 알아서 할게."


귓가를 쓸어넘기고 통신기를 매만지던 발키리가 좀 처럼 발을 떼질 못하고 있었다. 답지않게 불안함에 떠는 시선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나까지 불안해지는 것 같아 빨리 나가라고 한 뒤에 옆 방에서 가져온 커피포트를 작동시켰다.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점 강해져 가을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의 폭우가 되어 연병장을 흠씬 두들기고 있었다.


독실을 나서고 내무실로 돌아와 외투를 챙겼을 때 발키리의 통신이 있었다. 아스널과 마주쳤고 곧 내게 찾아올거라는 내용의 통신이었다. 그 통신을 받고 나는 다시 샬럿에게 급하게 통신하여 아이들과 모두를 데리고 복귀해 있으라 지시 한 뒤 내무실에 남아 아스널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녹차를 홀짝이고 있으니 창 너머로 들려오는 빗소리 사이에서 복도를 울리는 또각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왔다.

내가 긴장할 이유는 전혀 없을텐데도 유리 잔을 잡고 있는 손이 좀 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아스널에게 던져 볼 말들을 다시 한 번 고르고 심호흡을 하자 내무실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와 잠깐 뜸을 들이고 들어오라 명했다. 


"실례하겠네. 사령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아스널이 내 기억과 일치하는 자신감 가득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거기 앉으면 돼."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야 맞은 편에 앉은 아스널이 내무실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 앞에 노인 유리잔을 입가에 한 번 가져간 뒤에 입을 열었다.


"사령관. 정말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기쁘기 그지 없군."


"그래, 나도 기뻐. 아스널은 무사해서 다행이야."


내 말의 어디가 우스운건지 아스널은 작게 웃음짓고는 유리 잔을 단숨에 비웠다.


"무사하지 못한 이들도 있나보군? 잘 된 일이야. 수고를 덜게 되었으니."


"숨길 생각이 없구나?"


이어진 내 물음에 한 번 더 아스널이 웃음지었다. 이번 웃음은 방금 전과는 다르게 살짝 비릿해 보인 것은 내 기분 탓이라고 생각한다.


"숨겨? 무엇을?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지. 그대가 다시 복귀한 지금이야말로 더더욱."


"본론만 말하마. 그만 둬라."


"그대를 위한 일이야.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지. 그대가 제지할 이유가 없다만?"


"어떻게 해야 무차별 학살이 나를 위한 행위가 될 수 있는거냐? …아스널 너는, 어떠한 연유로 네 부대를 이끌고 이 곳으로 왔어. 결과적으로 그 참극에 휘말리지 않게 되었으니 네 휘하를 생각한다면 정말 다행인 판단이었지. 그런 면에서는 너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어.  특히나 부하를 우선시한 판단을 내린 부분을. 그래도 있잖아. 내가 아는 아스널이라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좀 더 건실한…"


준비해둔 말을 더듬지 않게 집중하면서 이어나가려던 차에 아스널이 손을 들어 나를 제지했다. 내 말을 끊는다는 상황은 생각해두지 않았기에 당황해버려 말문이 막힌 내게 똑바로 시선을 부딪혀오면서 아스널이 말을 꺼냈다.


"왜 구하지 않고 죽이느냐. 라고 묻고 싶은 것이지? 사령관, 생각해 봐. 그대는 배신 당했지."


"배신 당한게 아니야! 그저 조금 흔들렸을 뿐이야. 나도… 그녀들도… 모두 그 미친놈에게 놀아난 것 뿐이야."


"그게 배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령관. 나도 본론만 말하지. 이러는 이유? 한 번 등을 돌린 이가 두 번 돌리지 말란 법이 있는가?"        


"아스널!!!"


"그 작자 밑에 있던 바이오로이드는 두 말 할 것도 없지. 그들이야말로 철충보다 우선해 제거해야 할 대상이야. 그리고 참극에 휘말리지 않았다고? 사령관. 이걸 봐. 이게 뭔지 알아보겠나?"


아스널이 품에서 꺼낸 것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내 대답을 기다렸다. 테이블에 놓여진 것은 흰색 술로 어설프게 매듭지어진 본 적이 없는 노리개였다.


"하얀 노리개…? 이게 무슨…"


"에밀리를 기리기 위해 그 아이의 머리칼로 만들었지."


"기린다고? 에밀리에게 무슨 일이…"


"따로 물을 것도 없지 않은가. 그대가 떠나고 나서 그 미친 작자에게 살해당했지. 강제로 동침하게 된 자리에서 저항하다가 머리에 총을 맞았어."


"…"


"솔직히 말하지. 그대 만을 위한 일은 아니야. 나 개인적인 복수이기도 해. 에밀리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대원들도 그 자의 손에 의해 사라졌어. 아무 저항이 없던 대원들도 포함해서 반란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처형당했지. 사령관, 나는 부대를 온전히 유지한 채 이 곳에 온게 아니야. 필사적으로 탈출해 온거지. 이 정도면 충분한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겠어?"


"…그 놈은 이제 없어."


"그 흔적만큼은 아직도 남아있지 않은가."


"거기에 오르카의 전원도 포함된다는거야!?"


"…사령관."    


흥분이 분노의 경계를 넘어서려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아스널이 어떤 마음인지 이해하는 한편 무차별적으로 총구를 겨누는 그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 여전히 납득할 수 없어 머릿속이 요동쳤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가 싶다가도 극단적으로 치달아 명령을 이용해 통제하는 방법이 머릿속에 들어찬 순간, 나는 그녀에 대한 것보다 먼저 나 자신에 대한 것을 납득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따위니 그녀들이 등을 돌렸던 것도 당연하다. 부하들을 제대로 돌아볼 줄도 모르는 놈이 누군가를 통솔하고 지휘했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이었는지 이제서야 납득해버리고 만다.

침묵만이 감도는 내무실에서 빗소리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스널을 마주보지 못하고 유리잔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자리에서 일어난 아스널이 내무실을 나서며 말했다.     


"지금부터 나와 동행해 줄 수 있겠나? 직접 보고나면 그대도 생각을 달리 할 지 모르지."




   

   



――――――――――――――――――――――――――――――――――――――――――――――――――




"죄명을 읊어볼까. 비스트 헌터. 부탁한다."


거칠게 날뛰는 파도를 배경으로 흑복차림의 캐노니어 대원 열댓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열을 맞춰 서있었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비스트 헌터 하나가 파도를 등지고 줄지어 무릎 꿇고있는 죄인들 앞으로 나와 폭우 속에서도 전부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비스트헌터가 죄인들의 주위를 돌며 일목요연하게 죄명을 읊어간다.

가장 엄하게 다뤄질 죄부터 시작해서 처음에 읊은 그 죄들에 비하면 사사로이 여겨질 여죄들까지.

비스트헌터가 무릎꿇은 이들의 죄를 낱낱이 까발리고 돌아서자 아스널이 캐노니어의 대원들에게 외쳤다.


"대원들의 판결은?"


"사형!"


일제히 외친 캐노니어 대원들이 손에 들고 있는 집행용 소총을 고쳐잡고 뒤이을 아스널의 지시를 기다렸다.


"위치로."


"사령관 님! 사령관 님!"


폭우를 뚫고 다가온 애원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네번 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있는 켈베로스였다.


"제발! 죽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런 죄를 저지른 적이 없어요! 제발 저들을 말려주세요!"


다가올 죽음 앞에서 몸부림치는 켈베로스의 모습을 보다 못해 시선을 돌렸다. 캐노니어 대원들이 장전을 마치고 앞에 총 자세로 대기 중이었다. 


"싫어! 싫어! 살려 줘! 잠깐만 내 말을 들어 줘! 나는 전함에만 있었어! 정말이야! 전함이 갑자기 폭발해서 표류하다가 육지에 도착했을 뿐이라고!!!"


울먹이며 외쳐대는 스프리건 또한 켈베로스와 다를게 없었다. 줄지어 있는 대부분이 그랬다.

개중에 소수만이 무표정으로 캐노니어 대원들을 빤히 바라보거나 입꼬리를 씨익 올려댔다. 곧 자신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줄 이들에게 무감정하거나 되려 비웃는 그들의 소속이야 어디일지는 뻔했다.


"아스널! 적어도 내 휘하였던 이들만큼은 살려 줘! 부탁이야!"


진정 살리고 싶다면 명령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 지금, 명령으로 캐노니어의 대원들을 무력화 시킨다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마는 것 같았기에 감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준비."


아스널의 지시에 소총의 총구가 일제히 죄인들에게 향했다.


"아스널!!!!"


폭우 마저도 집어삼킬 정도의 비명과 절규, 애원, 그리고 그 모든 걸 비웃는 광기어린 웃음소리가 마지막으로 해안가를 뒤덮었다.

그럼에도 나는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지옥도 속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아스널에게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했다.


기대가 무색하게 총성이 울리고 난 뒤, 죄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결박당한 상태로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가거나 앞으로 고꾸라지거나.


방금까지 해안을 가득 매우던 소용돌이는 총성에 의해 소멸되고 그 잔바람 마저 계속해 이어지는 총성에 끝내 자취를 감췄다.

마지막으로 파니 하나가 나서서 죄인들 하나하나의 두부에 확인사살을 하고 나서야 첫번째 사형 집행이 마무리되었다.


망연자실한 내게 캐노니어의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두번째 재판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재판의 죄인들이 흘린 피는 두번째 죄인들이 자리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 인해 완전히 지워졌다.

두번째 재판도 첫번째와 같은 절차를 밟았다. 죄목 또한 같았다. 


그리고 또 다시, 캐노니어의 대원들이 사형 집행을 위해 소총을 장전하고 아스널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그 목소리는 들려왔다.


"히히힉…히히히…키히히히…"


지금 이 상황이 두렵기는 커녕 웃겨 죽을 것만 같다는 듯 숨죽여 몸을 떠는 그 바이오로이드에게 아스널이 다가갔다.


"그래, 웃긴가? 너 하나를 잡자고 대원이 둘이나 희생됐지. 지금 많이 웃어두도록 해. 네년 만큼은 친히 내가 직접 죽여줄테니. 절대 곱게 보내지 않겠다."    


굽은 자세로 무릎 꿇고 아스널을 올려다보는 블랙 리리스가 기묘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이 한 동안 계속되다가, 그 앞에서 아스널이 파니에게 소총을 걷내받는 것을 보고 블랙 리리스가 말했다.


"알아? 너희는 말이야. 패배자들이야. 히히히…패배자들…킥킥…"


"잘 못들었다만? 다시 한번 말해 봐."


"너희 전부 다 패배자라고! 이 개잡년들아! 캬하하하!"


아스널의 부츠가 블랙 리리스의 머리를 강타했다.

모래바닥에 쳐박힌 블랙 리리스가 머리를 흔들고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내자 치아 하나가 함께 튀어나왔다.


"히히히히… 형편없네. 형편없어. 총이 아니면 날 제대로 죽이지도 못하겠는데? 좀 더 제대로 쳐 봐."


블랙 리리스의 도발에 확실히 부응해준 아스널의 다리가 이번에는 복부를 겨눴다.

입을 통해 침과 피를 줄줄 흘리면서 앞으로 고꾸라진 블랙 리리스는 고통에 겨워하면서도 여전히 웃음을 멈출 줄을 몰랐다.

아스널의 다리는 그 멈추지 않는 웃음에도 부응하여 연신 발길질을 날려댔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대장을 말리고자 근처에 있던 파니가 아스널에게 다가간 그 순간, 블랙 리리스의 몸이 요철처럼 튀어나가 파니를 덮쳤다.


아스널과 파니, 블랙 리리스가 모래사장에서 서로 뒤엉켜 구르기 시작하자 캐노니어의 대원들이 그 현장에 소총을 겨눴지만 오사를 우려해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뒤늦게라도 상황을 수습해보고자 아스널에게 달려가는 그 사이, 결박이 풀린 블랙 리리스가 파니를 순식간에 즉살시키고 소총을 빼앗아 개머리판으로 아스널의 머리를 후려쳤다. 블랙 리리스의 상태로 미루어 보아 결박은 진즉에 풀어놓은 상태인 듯 했다.


아스널에게서 블랙 리리스가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자 캐노니어 대원들의 집중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호랑잇과 맹수를 연상시키는 그 날랜 움직임을 제대로 맞출리 만무했고 블랙리리스가 해안가의 숲으로 숨어든 뒤에도 사격은 한동안 계속 됐지만 탄환은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사격이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 그 숲의 한가운데서 나타난 싯누런 한 쌍의 안광이 해안의 모두를 천천히 노려본 뒤 이윽고 내게 고정되었다. 갖고 놀 장난감을 바라보는 것 같이 계속 노려보아오는 그 안광은 이내 초승달 모양으로 한 번 굽은 뒤 숲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계속 되던 폭우가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지만 내 머릿속은 아직도 폭우가 내리고있는 그대로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한 동안 우두커니 해안가에 선 채 시간이 흘러갔다. 잠시 후 캐노니어의 대원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한 것을 보고나서야 정신이 든 나는, 본능적인 위협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등을 돌려 병영으로 몸을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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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샬럿! 응답해!"

 

폭우가 잦아 드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이전 보다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코 앞도 제대로 안보일 정도로 내리는 비 속을 달리며 통신기를 조작했지만 그 누구도 대답을 하는 이는 없었다. 


"이런 씨발! 개 좆같은 싸구려 같으니!"


통신기는 단념하고 숨이 차는 것도 모를 정도로 달리고 나서야 겨우 위병소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위병소에서 의아해하는 브라우니와 넷과 폴른 둘을 보자마자 다급히 명령을 내리려고 했다.


"당장…! 병영으로…!"


"사령관 님. 이 빗 속에서 어딜 그렇게 뛰어오신검까? 숨 고르고 말씀하십쇼! 호흡! 호흡!"


브라우니의 일반적인 반응일 텐데도 지금은 그 모습이 너무나 태평해 보였기에 부아가 치밀었다.


"이…! 씨…발…! 개씨발년들아! 당장 병영으로 튀어가라고!"


당혹스러워 하는 브라우니들이 머뭇거리다가 병영을 향하기 시작한 폴른들을 발견하자 곧 바로 병영으로 뛰어들어갔다.

위병소를 통과하자 그제서야 통신기에서 반응이 왔다. 노이즈가 다소 섞여있었지만 목소리를 구별 할 정도는 되었기에 나는 다급히 통신기 너머의 바이오로이드에게 지시를 내렸다.


"각하, 호흡이 거치십니다. 무슨 일이시죠?" 


"발키리! 샬럿! 전부 다 모여있어! 전투태세로 준비해라! 방어하기 용이한 곳으로 가! 반드시 아이들을 지켜라!"


"…상황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한가하게 상황 말해줄 때 아니라고 좆같은 년아! 아이들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 전부 내 손에 뒈질 줄 알아!"


"…알겠습니다."


연병장을 가로질러 달리는 중에 식당과 인접한 곳에 있는 무기고 쪽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이어져 들려오는 총성이 한 동안 연병장에 메아리치고 나서야 부대 전체에 상황 발생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병영으로 들어서서 곧 바로 내무실로 향했다.

급박하게 움직이는 보급대의 인원들 사이를 비집고 계단을 뛰어올라가 내무실에 도착하니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발키리가 잘 보호하고 있을거라 믿기로 하고 곧 바로 관물대에 쟁여놨던 보호장구와 탄띠를 착용한 뒤 발키리가 챙겨 온 기관단총을 집어들고 통신기를 조작했다.


"발키리. 상황 보고 해."


"옥상에서 표적을 찾으면서 아이들을 엄호 중입니다. 아이들이라면 지금 샬럿과 함께 식당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 병영보단 식당이 낫지. 엄호가 끝나면 좀 더 시야확보가 용이한 곳에서 표적을 찾아라. 그 외 사항은 모두 선조치하고 상황이 악화되면 식당으로 합류해."


"확인했습니다."


발키리의 무전이 끝나자마자 또 다시 총성이 들려왔다. 창문을 통해 상황을 살피니 폴른 서너대가 영내 곳곳에서 파괴된 채 나뒹굴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한시라도 망설여서는 안된다. 지금 이 상황과 환경은 블랙 리리스라는 바이오로이드의 독무대와 다름없다.

내무실을 나서자 소란스럽던 병영 내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쥐죽은 것 처럼 고요했다.

주변을 철저히 경계해 가면서 계단을 내려가 병영을 나서고 화단에 몸을 숨긴 뒤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멀리 보이는 위병소와 통하는 길에 캐노니어 대원 한 무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의 장비들로 무장한 대원들이 사주경계를 하면서 병영으로 천천히 접근하는 도중, 대원들의 바로 위에서 저공비행을 하던 레이븐이 기동장비를 파괴 당해 대원들의 머리 위로 곤두박질 쳤다. 그 순간 컴뱃 나이프와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블랙 리리스가 우왕좌왕하는 캐노니어 대원들에게 쇄도했다. 총성과 비명, 육중한 장비의 소리가 한데 섞였고 얼마 후 아직 잦아들지 않은 비가 그 모든 소리를 집어삼킬 무렵, 해안가에서 본 노란 안광만이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


순식간에 모든 적을 제거한 블랙 리리스가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병영을 향했다.

그 움직임이 병영에 가려 사라진 것을 신호로 나는 몸을 일으켜 식당으로 내달렸다.


"헉…헉…"


"폐하!"


식당으로 뛰쳐 들어가자 한 손에 검을 든 샬럿이 달려왔다.


"아이들은 어딨어."


다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들은 곧 바로 발견 할 수 있었다. 샬럿의 대답이 뒤따르기도 전에 식당 한 구석의 테이블에서 몸을 숙이고 있는 아이들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괜찮니? 다친데 없어?"


"응! 괜찮아! 사령관 님…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걱정마. 알비스. 금방 괜찮아질거야. LRL한테서 절대 떨어지면 안된다. 알았지?"


양 손에 들린 기관단총을 힘 주어 잡아보인 알비스가 LRL과의 거리를 더욱 좁히며 말했다. 


"알았어! LRL은 내가 꼭 지킬게!"


아이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숨을 고르고 식당 내부를 돌아 볼 수 있었다.

식당 내부에 모인 인원들은 바닐라 셋, 브라우니 레프리콘 두 분대. 창가를 경계 중인 폴른 두 대와 포티아 둘, 캐노니어의 대원 셋이었다. 보급대인 이상 일정 수준 이상의 화력을 가진 이는 이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샬럿."


"네, 폐하."


"적은 블랙 리리스 하나다. 그것도 공격성이 극대화된 아주 경험 많은 녀석이야."


"아…설마…"


"알고 있는 녀석이냐?"


"네. 제 짐작이 맞다면 그 자가 직접 제조한 블랙 리리스일 거에요. 그 블랙 리리스는 상당히…"


말 끝을 흐린 샬럿이 고개를 돌려 식당의 출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저는 그 개체와 맞붙어 본 적이 없어서 장담 할 수 없지만… 이 곳의 인원만으로는 이겨내기 힘들수도 있어요."


"유사시에는 네가 아이들을 데리고 탈출해라."


"예? 폐하는 어쩌시려고요?"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선 따로 움직인다. 같이 움직이면 사이좋게 다 뒈질거야."


"알겠어요. 폐하. 그럴 상황이 오지않게 제가 꼭 막아 보이겠어요."


내리던 비가 멈추고 하늘이 개었어도 날이 밝을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저녁을 넘어 밤이 찾아오려는 중이었다.


"아르망과 더치는 어디있어?"


"아르망이라면 발키리와 함께 동행 중이에요. 저격을 위해 그녀의 연산능력을 빌리고 있을거에요. 더치 걸은…"


"…갈라졌냐?"


"병영의 상황이 너무 급박했던 탓에 전부 신경 쓸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원체 홀로 다니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혼자 나다니지 말랬는데!"


의도치 않게 목소리를 높인 탓에 식당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그것을 기회 삼아 식당 내 모든 인원들의 위치편성을 지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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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과 고요로 가득한 식당 속에서 시간은 흘러 밤은 보다 깊어지고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총성과 비명이 영내를 울려왔지만 그 소리를 쫓아 지원을 가는 것은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날벌레와 다름 없었기에 식당에서 숨죽일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가능성이 있다면 이 식당에서 실내 전투를 펼치는 것 뿐이다.

이 곳에 모인 면면은 나를 포함해 모두가 전투력 면에서 변변치 않았지만 샬럿이 있다면 해볼만한 싸움이다. 

병영은 층으로 나눠진 건물인 이상 각개격파를 당할 뿐이고 트인 공간이라면 블랙 리리스가 싸워 줄 이유가 없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위와 같은 판단으로 식당에 방어진을 펼치고 블랙 리리스를 맞이할 준비를 했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맹수가 식당을 엄습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전투가 전해오는 소리로 그 존재는 아직까지 건재하다는 것만 되새길 뿐이었다. 결국 사방이 어둠인 상태에서 영내에 빛이 존재하는 곳이 식당만 남은 이상, 식당의 조명들도 모두 소등을 해야 하는가 판단이 오락가락 하고 있을 때 출입문을 통해 발키리와 아르망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고없이 나타난 그 둘에게 총구를 겨누는 이들을 물리고 나는 손짓으로 그들에게 다가오라 지시했다.


"발키리. 바깥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


"제가 아는 블랙 리리스와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조준은 커녕 눈으로 쫓는 것 조차 어려운 수준이에요."


"너도 그렇게 느낄 정도면… 젠장… 그보다 더치는 못봤냐?"


"예. 영내 대부분을 관측했지만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발키리의 대답에 안좋은 예감이 머리를 스쳐지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부디 더치 걸이 무사하길 바라면서 아르망에게 말했다.


"아르망, 블랙 리리스의 다음 행동에 대해 예지가 가능하겠어?"


"네, 폐하. 어떤 식으로든 블랙 리리스는 이 식당에 침입할겁니다. 창가를 통해 침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요. 혹은 투척물을 이용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전자장비는 이 부대에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와 관련 된 사항은 제외하겠습니다."


"뭐가 됐든 결국 육탄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거군."


"네, 그러니 폐하. 실내에서 전투를 유도 한 뒤에 지속되는 전투는 실외에서 치르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 하는 길입니다."


"자연스럽게 포위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그럴려면 지금 외부에 인원을 배치해야 하잖아. 그 교활한 것이 걸려줄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창가를 봉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네요. 육탄돌입은 몰라도 폭발물이라면…"


아르망의 조언이 계속 되고 있던 그 때 였다. 반대편에 위치한 창가에서 바닐라 하나가 기웃대더니 날아온 탄환에 이마를 관통당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깨진 창문을 통해 무언가 식당으로 날아든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아이들에게 몸을 날렸다.


콰앙!


"윽…켁켁…"


중앙에서 폭발한 폭발물에 가외에 있는 조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조명이 파괴당했다. 식당 대부분이 어둠에 잠식 되고 매케한 연기가 코와 눈을 덮쳐오는데에 더해 사방에서 탄환이 날아들었기에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탄환 수십발이 식당 안을 휘젓고 폭발로 발생한 화재에 스프링쿨러가 가동되었다. 스프링쿨러가 저장된 물을 모조리 뿌린 뒤에 보조 조명에 불이 들어오자, 그 빛 아래로 안광을 빛내는 맹수가 인질 하나를 품에 안은 모양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총 버려!"


"손 들어!"


"전부 무기내려 개새끼들아!"


식당 안을 울리는 고성 속에서 어느새 튀어나간 샬럿이 블랙 리리스와 지척에서 대치했다.

블랙 리리스에게 붙잡혀 목에 칼이 들이밀어진 더치 걸이 외쳤다.


"그냥 쏴버려! 나랑 같이 쏴버리라고!"


"히히히…이 좆만한 거 봐라? 배짱있네? 근데 어째? 여기 있는 새끼들은 너만한 배짱이 없나본데?"


"당장 더치 걸을 풀어줘요!"


샬럿이 검을 고쳐잡고 당장이라도 달려들듯이 자세를 취하자 블랙 리리스는 기억났다는 듯이 광소하고서 온갖 추잡한 단어로 샬럿을 쏘아붙였다.


"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주인님 전용 창부 아니야? 아랫구녕이 헐다 못해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쑤셔진 걸로 아는데 의외로 제대로 서있네?"


"크으…! 당장 그녀를 풀어 줘!"


"우리 주인님이 떠나시자마자 그새를 못참고 옛 주인한테 쪼르르 달려간거야? 그래서? 어땠는데? 네 지금 주인은 힘 좀 써? 우리 주인님 좆 맛보다 더 맛나든?"


"그냥 쏘라고!!! 나랑 같이 쏴버리란 말이야!"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블랙 리리스! 인질을 풀어주고 투항 해!"


다시 한번 사방의 어둠 속에서 고성이 터져나왔다.

온갖 욕설, 겁박과 협박. 강요와 요구. 그 모든 것들이 교차하는 와중에 폭발에 휘말렸던 폴른이 다시 일어나 블랙 리리스를 향해 사격했다. 


블랙 리리스는 그 사격을 우습게 흘려내고 손에 든 칼을 투척해 반파되었던 폴른을 이번에야 말로 완전히 잠재웠고 그 공격을 신호로 받아들인 식당내의 모든 인원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샬럿과 블랙 리리스가 쏟아지는 탄환의 비 속에서 테이블 사이를 도약해가며 격돌했고 바이오로이드들의 모든 사격은 서로를 향한 오사가 되어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어댔다. 

지휘가 무의미해진 식당은 해안가의 지옥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또 다른 지옥도가 되었고 그 아비규환은 가장 빨리 움직이던 두 바이오로이드 중 하나가 멈추고 나서야 끝날 수 있었다.  


"킥…킥킥…우리 주인님은…정말 멋지게… 마지막까지…정말 아름답게 떠나셨어…너…너희 모두를… 폭죽으로…삼아서…너희 함대를… 폭죽으로 삼아서… 이걸로 나도…주인님께 부끄럽지 않은…아아…정말로 멋진…불꽃놀…"


샬럿의 검이 맹수의 유언을 허락하지 않았다. 양 손으로 부여잡은 검이 그 가슴에 내리꽂히고 나서야 블랙 리리스는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폐…폐하…폐하…"


"아…아아...사령관 님! 사령관 님!"


살아남은 이가 거의 없는 식당을 멍하니 돌아보는 중에 등 뒤로 망연한 아르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아르망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을 따라가니 그 곳에 LRL이 누워있었다. 날아드는 탄환을 피하기 위해서 였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몸 아래로 흘러나오는 붉은 색의 무언가는 절대로 LRL에게서 나와서는 안 될 것이었다.   

 

"…에?"


분명히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아비규환 속에서 아직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탓이다. 

폭발에 휘말린 탓에 아직 뇌가 제대로 주변 상황을 인식 하지 못해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LRL 이제 끝났어. 일어나 봐."


LRL에게 다가가 앉았다. 상황은 끝났는데도 아직도 일어나지 않는다. 짖궃은 장난을 하는거라면 지금은 사양이다. 장난이라면 지금이 아니라 이후에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다. 지금 만큼은 안된다. 난리가 난 탓에 아직 저녁도 먹지 못했다. 장난이라면 저녁을 먹고서 해도 늦지 않다.


" LRL. 장난치지 마. 나 화낸다?"


아직도 미동도 하지 않는 몸을 흔들어본다. 축 늘어진게 마치 누워있는 그대로 잠이라도 든 것 같다. 그럴 만도 했다. 식당에서 몇 시간이고 잔뜩 긴장하고 마음 졸인 상태로 있었으니까. 그래도 여기서 자는건 곤란하다. 딱딱하고 차가운데다 물로 다 젖은 바닥에서 자면 턱 돌아가는 건 둘째치고 병이 들 수도 있다. 병이 들면 곤란하다. 이 부대는 어떨지 모르지만 의무실은 커녕 수복실도 찾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   


"폐하…"


"…일어나 봐. 꼬맹아. 초코바 줄게. 응? 돌아가서 책 읽어 줄테니까. 빨리 일어나 봐…"


"…폐하. LRL은…이미…"


"…"


"LRL은… 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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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마다 분량을 늘리고 있다보니 오타가 많을 수 있음 알려주시면 바로 ㄳ치고 수정함


재밌게 읽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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