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22362464 1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373271 2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405397 3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421992 4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448163 5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465240 6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503726 7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544508 8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599728 9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653850 10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707411 11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799947 12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860958 13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969950 14화

https://arca.live/b/lastorigin/23094127 15화

https://arca.live/b/lastorigin/23146252 16화

https://arca.live/b/lastorigin/23250242 17화

https://arca.live/b/lastorigin/23350827 18화


----------


https://arca.live/b/lastorigin/23410099 [파혼대회][단편]화원(花園)




--------------------------------------------------




"빨리 튀어가. 당장 꺼져."


"구원자! 그녀의 정체는 우리 교단도 몰랐던 일이야!"


사라카엘은 이제야 깨닫는다. 

부정한 것을 씻어내고자 했던 교단이었으나 진정 그 부정한 것 한 줌이 자신들 교단에 뒤섞여있었음을.

그리고, 그 한 줌이 또 다른 재앙을 불러 올 것이란 것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령관에게 따로 할 말이 있었겠지만 지금의 사라카엘에게 허락 된 것은 급급한 변명 뿐이다.   


"꺼지란 소리 못들었어 씨발년아!!? 빨리 그 년한테 전해라. 아르망의 머리한올이라도 건드렸다간 너희 미친 교단년들 전부 통째로 쓸어버릴 줄 알아. 알아들어!?"


발키리의 두 눈이 사령관을 담는다. 어둠 속에 가려진 탓에 그 표정은 알아 볼 수 없었다.

치고 올라오는 분노에 의지해 사령관의 두 다리는 어느 때 보다도 곧게 서있었지만 엄지만한 자갈 하나가 퍼뜨리는 아주 작은 파문 한 줄 만으로도 금방 주저 앉을 것 처럼 보였다.


그에게 한계가 찾아온다. 낭떠러지에서 가느다란 작은 실 하나에 의지한 것 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사방에 쏘아댄 고함을 통해 모든 것을 쏟아낸 것 같았음에도 사령관은 좀 처럼 이성을 찾지 못했다.

교단의 집행자들이 모두 물러가고 나서도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각하, 지시를."


발키리는 입을 떼면서도 걱정했다. 혹시라도 그가 자신을 재촉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일었지만 발키리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좀 더 유연하게 느껴질 표현법은 마땅히 없었다. 그런 것을 일일히 가릴 때도 아니었다. 사실, 마음 같아선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급대가 아닌 그가 거처로 삼았던 해안가로 돌아가자고 권하고 싶었지만 이제와서 그것을 받아들일 사령관이 아니다.

결국 이러나 저러나 이렇게 우두커니 시간을 죽이는 것은 좋지 못한 생각이다. 사령관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말했던 것 처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 것을 헤아린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피할 수도, 놓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멀리 와버린 것인가하는 들리지 않을 한탄을 흘리며 발키리는 사령관의 지시를 기다렸다.


사령관은 검은 천사가 있던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말 없이 옥상의 출입구로 향했다.

그런 주인과 같이 일행들 또한 말없이 뒤를 따를 뿐이었다. 


옥상을 내려와 번화가 방향의 출구로 건물을 나서니 수백의 코헤이 신자들이 맞아주었지만 사령관은 그 인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모양새로 걸음을 계속했다. 공간을 내어주는 인파를 헤집으며 어느 정도 걷자 인파 사이에서 누더기로 만든 로브를 뒤집어 쓴 한 명의 바이오로이드가 사령관의 길을 가로막았다.


"수녀님께서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수녀님께서? 하셨습니다? 내가 그년보다 밑이라는 거냐?! 너도 그 새끼가 만든 년이야!?"


평소라면 압존법 문제 따위, 사소하게 흘려들을 사령관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작은 자극 하나하나가 그의 분노와 이어진 심지에 불을 붙였다.


사령관의 손에 들린 총에서 십 수발의 탄환이 발사되었다.

탄환은 노렸던 바이오로이드 외에도 몇몇의 바이오로이드를 추가로 관통했다.

이윽고 울려오는 비명에 사령관은 아랑곳 않고 눈 앞에 쓰러진 바이오로이드가 건네려던 통신기를 챙긴 뒤 걸음을 계속했다.


"발키리 언니…"


매달려오는 알비스를 한 손으로 끌어안은 발키리는 쓰러져있는 서너명의 바이오로이드를 한 번 훑고 알비스에게 말했다.


"…절대로 제 손을 놓지 마세요."


발키리의 눈에 비치는 휘청거리는 걸음걸이의 사령관은 오르카의 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들을 연상케 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취할 정도로 마셔댄 적은 없었지만 지금 만큼은 차라리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었으면 했다. 그 걸음걸이는 야영지로 삼은 건물에 도착할 때 까지 계속 되었고 중간중간 넘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발키리는 몇 번이고 몸이 튀어나갈 뻔 했지만 결국 그 누구도 감히 부축하려 나선 이는 없었다.


"…"


야영지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사령관이 챙긴 통신기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사령관은 손에 들린 통신기를 빤히 바라본 끝에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통신기를 귓가에 끼웠다.


"들리시나요?"


"너 이 개같은 년! 아르망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다가는…!"


"자매들이 돌아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제가 부탁드린대로 해주셨군요. 좋아요. 제게 응해주신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요?"


"말 끊지 마라. 응하긴 뭘 응해. 경고하는데, 아르망의 털 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너희 교단은 물론이고 이 도시 자체를 날려버려주마. 알겠어!?"


"그런가요?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볼 만 하겠어요. 그래요, 좋을대로 하시지요."


"뭐…"


"저와 함께 하시기 전에 일단 알려드리도록 할까요. 그래야 모자라더라도 어느정도 동일선상에 설 수 있으시겠죠."


"지금 장난 놀자는 거냐?"


"아시다시피 저는 당신의 바이오로이드가 아닙니다. 당신도 알고있는 '그'의 손에서 태어났지요. 하지만 그 뿐 입니다."


"킥킥킥… 설마 그 놈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라도 하려는건 아니지?"


"맞아요. 저는 당신도, 그도 따르지 않습니다. 교단 또한 따르지 않지요. 오늘날에서야 '빛'이라는 것 또한 길잃은 양들을 위한 도피처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 무엇 하나 따르는 것 없는 그런 제가, 추구하는 것은 단 하나…"


"말할거면 알아듣게 말 해 씨발년아!"


"유희이지요. 저는 제 자신의 유희만을 추구합니다. 제 주인이었던 자가 제게 명령을 따를 의무를 부여하지 않은 것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과거 당신들, 인간들만의 전유물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어쩌면… 제 주인은 제가 이렇게 되길 바라고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한 번 놀아보자는 거냐?"


"네, 맞아요. 이해가 빨라서 좋군요. 슬슬 이 곳에서는 즐길 거리가 떨어져가던 참이었어요. 제 주인이었던 자 만이 아니라 마침 찾아와 주신 당신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내 바이오로이드를 갖고 논 건 다 네가 즐겁기 위해서였다? 주인을 따르지 않는다는 소리 하지마라. 네 주인과 다를게 뭐냐. 그 주인에 그 바이오로이드야. 아니, 성별만 다르지 다른건 다 똑같다고 봐도 될 수준이군. '인간'과 다를게 없어."


"방금도 말했듯이 전 제 주인께 감사하고 있어요. 제 주인을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 말씀드릴 건 다 말씀 드렸으니 이걸로 우리는 동일선상에 섰군요. 좋아요. 부디 저와 함께 즐겨주세요. 조만간 다시 통신하겠습니다."


"…"


발키리는 생각한다. 베로니카는 간단히 표현해도 될 것을 쓸데없이 장황히 늘여놓았다고.


자신은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인간'임을 선언해도 모자라지 않다.

그와 다를 바 없는 성향은 둘째치고, 아주 제한적인 통제 조차도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령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인간'이 아니고서야 무엇인가.

아니, 그 신체능력을 생각한다면 인간 이상이다.

교묘히 '코헤이 교단의 수녀 베로니카'를 연기해오다가 사령관을 마주하자마자 본 모습을 드러낸 그 인간은 사령관의 말대로 여성으로서의 '그'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 그래… 한번 해보자 이거지?"


또 다시, 발키리는 생각한다. 


본인의 선택으로 오르카를 떠난 뒤 회색빛을 껴입은 그가 질척한 진홍으로 물들어 가는 것은 그 때부터이다.  

캐노니어의 지휘관 아스널의 망령되고도 눈 먼 복수에 휘말린 그 날이 분수령이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 날, 사령관의 곁을 지켰다면 그 복수의 망집에 휘말리지 않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제 손으로 마지막을 배웅해준 이를 타박해보았자 소용없다. 회한을 흘리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책임이라면 자신에게도 있었으니까. 


만약 그 때, 사령관과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선을 그었던 그 모든 것에 대해 감추고 얌전히 떠났었더라면.

자신들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오롯이 자신들만의 것으로 껴안은 채 범고래와 함께 사라졌었다면.


하릴없이 더더욱 짙게 사령관은 물들어간다.








――――――――――――――――――――――――――――――――――――――――――――――――――




분명 처음엔 이럴려고 길을 떠나온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와 처지가 다를게 없어질 그녀들을 마주하고 떠오르는 감정에 물 흐르듯 몸을 맡겨 볼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피를 볼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아르망과 발키리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서야 자신의 유약했던 과거에 조금은 솔직해졌었을 것이다.


내가 돌아갈 곳이 아직은 남아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품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 아스널을 어설프게나마 이해해보려고 강단이 서지 못했던게 아닐까.

그래서 결국 LRL과 더치 걸을 떠나보내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 지금, 내가 갈피를 못잡는 탓에 아르망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은 아닐까.

전부 내 탓인 것은 아닐까.


뒤늦게 회한에 젖어봐야 늦었다. 분명 나는 그녀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모두 내가 선택한 것들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 한 번 내뱉은 말 또한 결코 주워담을 수 없다.


"각하, 둠브링어와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이 집합했습니다."


손에 든 통신기를 매만지면서 네개 째 담배를 꼬나물었다. 공중에서 어렴풋이 들려온 기동음에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저게 다야?"


옥상에 집합한 대원들은 일곱이 채 안되었다. 

스카이나이츠의 흐레스벨그, 블랙 하운드, 하르페이아. 둠브링어의 메이, 나이트 앤젤, 레이스. 

그래도 괜찮다. 여차 할 때 저 개같은 것들을 쓸어버리기에는 충분한 화력이다.


"둠브링어는… 리리스가 침투했을 때 손실이 있었다고 합니다. 스카이나이츠의 대원들은…"


발키리는 아까부터 유난히 말을 떤다.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을 끝까지 들을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집합한 대원들에게 향했다.


"메이, 용케도 살아남았네? 이제 좀 그나마 사람다워 보이는데. 바이오로이드라 회복이 빠른건가?"


옥좌에서 내려와 나이트 앤젤의 옆에 나란히 선 메이는 고개 숙인 채 내 눈을 피했다.

왜 피하는지는 알고 있다. 여린 녀석이라 당연히 염치가 있겠지.

그런데도, 이해해줄 요량이 있음에도, 다 알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그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메이에게 비아냥거리고 만다. 


"메이, 앞으로 이 도시에서 아주 높은 확률로 네가 나서야 할 수도 있는데 말이야. 전혀 싸울 수 있는 것 처럼 보이지가 않는데? 아니면 뭐냐. 또 약이 고파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거냐? 똥 마려운 개새끼마냥?"


"…사령관 님?"


벌벌 떨기 시작한 메이에게 혀를 한번 차고 의문을 실은 나이트 앤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에 어울리는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는 나이트 앤젤에게 말했다.


"왜, 문제 있냐?"


"메이 대장이 밉지 않으시다면서요?"


"그래. 밉지 않아. 그렇다고 좋지도 않지. 설마, 살갑게 대할거라 생각했어? 내가? 무슨 이유로?"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 있었지. 그 무슨 일 때문에 너희를 부른거지. 날아오면서 못봤냐? 아니면 그 누구도 너희한테 전파하지 않은거냐? 그런거면 내가 알려주마. 저기 횃불들 보여? 저 광신도 년들 보이냐고. 기억해 놔라. 니들이 날려버려야 할 수도 있는 년들이니까."


"사령관 님. 갑자기 왜 그러시죠? 제가 알기로는 생존자를 찾고 계신걸로 알고있었는데… 저들은 오르카의 저항군이에요. 근데 갑자기 싹다 날려버리시겠다고요?"


"그래!! 이 썅년아!!! 저 씨발년들 다 날려버릴 수도 있다고!!! 오르카의 저항군!? 그게 지금 어쨌다는 거야!"


"…괜찮으세요?"


"……발키리, 스카이나이츠 애들 데려가서 무장 시켜줘라. 보급대에서 가져온 거 쥐여 줘. 쟤들 무기 없댄다."


"알겠습니다."


발키리와 함께 옥상을 나서는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의 표정이 불안하다.

절대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내 언행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있다.

그런데도 좀 처럼 진정이 되질 않는다. 분이 가시질 않는다.    


"그리고 사령관 님. 저희 무장의 여분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저 정도 면적의 저 정도 규모를 전부 쓸어버리기에는 모자라요."


"메이가 나서면 될 일이야."


"…진심으로…"


"그래, 진심이다. 그 미사일은 남아있을 거 아니야. "


"핵탄두는 아니에요. 그건 해체 당했으니까. 급한대로 재래식으로 수납해 뒀어요."


"그걸로 됐어. 부르면 언제든지 올 수 있도록 이 건물에서 상시 대기해라. 위치 들키지말고."


벌써 동이 튼다. 당연히 잠은 한숨도 못잤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아니, 피곤해서는 안됐다. 아마도 지금부터는 더욱 피곤해질테니까.

할 말만 마치고 서둘러 옥상을 나섰다. 당연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사용 할 수 없기에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 엊그제만 해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는 이보다 훨씬 간격이 길고 작았었는데.


베로니카의 통신을 기다려줄 이유는 없다. 예고 없이 들이닥쳐 헤집어보면 아르망에 대한 실마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필요하다면 누구든 잡아다가 고문이라도, 나아가서는 한 둘 정도는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

더는 이전 처럼 머뭇거리지도 망설이지도 않겠다. 


"폐하!"


건물 1층의 로비로 돌아와서 마주친 샬럿은 나를 찾고 있었는지 마침 잘됐다는 듯 다가왔다. 말 없이 대답을 기다리니 샬럿은 나와 출입구를 번갈아보았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폐하가 옥상에 계신 사이에 동태를 살펴 볼 생각으로 잠깐 단독행동을 했었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언제라도 처벌을 내려주세요. 지금은 그 것 보다…"


"그 것 보다?"


"단독행동 중에 어젯 밤에 구해주셨던 몽구스 팀과 조우했어요. 저기 보이시죠?"


샬럿이 가리키는 곳, 출입구 근처에 열을 맞춰 서있는 몽구스 팀의 모습이 보였다. 속옷 차림이었던 홍련은 탈출하고서 그 사이에 신자 한 둘을 제압이라도 했는지 코헤이 교단 신자의 누런 로브를 걸치고 있었고 그 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미호와 스틸 드라코는 속옷 차림은 아니었지만 홍련과 같은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애써 탈출해놓고 왜 여기로 온거야."


이들이 보는 내 시선이 곱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니까. 그 최적의 순간에 발키리를 제지하지 않고 두었더라면 나는 지금 코헤이 교단으로 다시 쳐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작에 교단의 머리를 모두 쳐버리고 도시를 정리하게 한 뒤에 교단의 해산을 명했을 수도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친 그 사이, 나와 마주한 몽구스 팀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뭐하자는 거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사령관 님. 염치 없지만 죄를 물으실 것이라면 제게… 대원들은 제 지시를 따랐을 뿐,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짐작컨대, 내가 떠난 뒤의 얘기를 하는 것이겠지. 

무엇인지는 몰라도, 죄라고 부를만한 짓을 고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는다는 선택지도 있었을 것이다.


"무슨 짓을 한거냐."


"그 자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뭐? 갑자기 찾아와서 한다는게 속죄야? 내가 무슨 신부라도 되는 줄 알아? 저기 적당한 년들 있잖아!! 저 씨발년들한테나 찾아가!!!"


"잠깐만! 아니야! 아, 아니… 아니에요! 사령관 님! 작전관 님은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자가… 그자가 다섯을 잡아오지 않으면 열을 죽이고, 열을 잡아오지 않으면 스물을 죽이겠다 했어요! 저희 모두… 그렇게 전함을 오고다녔어요…"


홍련도 안하는 변명을 미호가 대신한다. 미호. 미호라고 하니 레오나가 있던 공장에서의 일이 생각난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안그래도 표정이 펴지지 않았는데 두통에 찡그리기 까지 했으니 미호의 눈엔 험악하게 보였던 것인지, 미호는 흠칫 놀라며 계속되는 변명을 더듬어대다가 말을 흐리고 말았다.


"네 작전관, 네 엄마가 소중해도 그렇지. 정작 본인은 변명 한 마디 안하는데 네가 뭐라고 주절대는거야? 몇 주 전이었나. 컨테이너가 있는 어떤 공터에서 말이야. 스틸라인 한 분대가 자살을 했더라고. 입에 총구를 쑤셔넣고 쏴서 말이야. 어쩔 수 없어? 그러면 용서가 돼? 너희가 자살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잖아!!!"


"각하…! 부디 진정하시길. 무리한 감정 소모를 계속하시면 각하께서…"


언제 와있었는지 발키리가 나를 만류했다. 평소엔 별 말도 없던 것이 이제와서 나를 말리는게 꼴같잖았기에 목소리를 높였다.


"입 닥쳐! 할 일 끝났으면 저년들 위치편성이나 해! 한가하게 끼어들 때냐!?"


발키리가 표정을 흐렸다. 이상했다. 발키리는 무슨 일이 있던, 좀 처럼 포커페이스가 풀리는 일이 없었다. 오르카에서도, 아이들과 함께한 도시에서 마주쳤을 때도, 공터에서도, 테마파크에서도, 보급대에서도. 그런 발키리의 모습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번 더 쏘아붙일 생각이었다.

그 때 천천히 발키리에게 다가간 알비스가 그 작은 손을 발키리의 한 손에 위로라도 하듯이 포개었다. 발키리도, 알비스도 그 상태로 고개를 숙인다.


"…"


왜 저들 멋대로 음울해지는 것인가. 이제 곧 교단 년들을 치러 가는 이상 긴장을 해도 모자를 판인데.

마음에 안든다. 정말로 마음에 안든다. 이거고 저거고 모든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씨발…"


"폐하…"


몽구스 팀을 데려온 장본인인 샬럿이 송구스럽기라도 한 모양새로 당혹스러워 한다.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샬럿을 빤히 보고 있으니 곧 하려고 했던 일이 다시 떠올라 몽구스 팀을 바라보았다.


"일어 서. 처벌이고 용서고 집어치워. 지금은 너희한테 시킬 일이 있으니까."








――――――――――――――――――――――――――――――――――――――――――――――――――






어젯 밤 집회가 있던 번화가에 들어서고 나서도 통신기에서 베로니카의 음성이 흘러나오는 일은 없었다.

어제의 집회는 거짓말 처럼 느껴질 정도로 번화가는 한산했다. 그 많던 바이오로이드가 전부 어디로 간 것인지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고 횃불로 쓰인 나무토막 몇 개만이 거리에 나뒹굴고 있었다. 


"야! 거기, 너! 이리 와!"


그 때 바이오로이드 하나가 멀리 보이는 광장 쪽을 지나쳐가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놓칠 새라 목청껏 불렀다.

내 부름에 바이오로이드는 어쩔 줄 몰라하며 머뭇대다가 이 곳 저 곳에 고개를 돌리더니 내게로 발을 돌렸다. 천천히 걷는게 마음에 안들어 죽기 싫으면 뛰어오라 하니 그제서야 속도를 높여 내 앞에 도착했다.


"로브 벗어. 부르면 빨리 튀어오지 왜 머뭇거려."


로브를 벗은 바이오로이드, 목 언저리에 교단의 문양을 새겨놓은 이오는 불안한 시선으로 나와 일행들의 눈치를 보면서 끙끙대는 소리를 삼켰다.

이오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지만 사정 봐 줄 생각은 없다. 조금 미덥지는 못하지만 한 번 물어나 보기로 했다.


"명령이야. 불어. 너희가 받들어모시는 년들 어디에 있어."


"아… 사령관 님… 정말로 살아계셨어… 천사님들의 말이 맞았어… 사령관 님… 저 있죠… 정말 하루도 빠짐 없이 기도 드렸어요…"


붉어진 눈시울로 올려다보기에 이오의 뺨을 모을 수 있는 모든 힘을 모아 후려갈겼다. 이 미친년들과 해후의 감정을 주고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그 씹창년들 어디에 있냐고!!"


그러고보니 괘씸하다. 그 베로니카야 어쨌든 나머지 대가리들은 내가 존재함을 아는데도 날 찾기는 커녕 이런 수고를 하게 만드는가. 죽든 살든 마중을 나와야 옳은 것이지 않은가. 


"사령관 님! 내가… 내가 얘기 해 볼게…"


기운 없는 얼굴을 찡그린 채 내 옆에 선 알비스가 말했다.

마지못해 나섰다고 말하는 그 모양새가 또 내 화를 돋구었지만 상대는 알비스다. 

돌이키지 못할 짓을 할 뻔 했기에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거렸다.

나는 말 없이 물러나 등을 돌려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그 것을 대답으로 받아들인 알비스가 이오와 대화를 시작했다.


"하…"


잠이 모자라서인가, 좀 처럼 담배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한껏 들이키고 뱉어보아도 여전히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는 담배 마저 문제인가. 아니면 내가 문제인가.

담배는 정신의 안정과 고유의 쓴 맛을 주긴 커녕, 그 연기로 연신 눈을 두들겨 댈 뿐이다.


"사령관 님, 끝났어. 광장 너머로 쭉 가면 문양이 가장 크게 그려진 빌딩이 있대. 거기에 있을거라고 하는데…? 그리구… 따라오고 싶대."


"당장 꺼져."


총구를 들이민다. 혹시라도 광장에서 처럼 머뭇거린다면 바로 쏴버릴 생각이었다.


"사령관 님!"


"한 번만 더 말한다. 꺼져!"


일행에게 애원어린 시선을 보내다가 내 일갈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이오는 발을 돌렸다.

안쓰러운 눈길로 이오의 등을 바라보던 알비스가 말했다.


"사령관 님… 저 이오 언니는 무서운 일이 벌어져도 갈 곳이 없어서 여기에 있었대…"


"헛소리. 아까 못들었냐? 천사들이 어쩌고 기도가 어쩌고 하던 거. 마리랑 슬레이프니르를 그 꼴로 만든 게 무서운 일이라는 걸 알면서 그따위 소리를 해?"


"…"


"…미안, 알비스. 앞으로는… 앞으로는 나서지 마. 널 위한 일이야. 혹시라도 너 마저…"


너 마저 사라진다면. LRL을 따라가버리고 만다면. 나는…


말이 씨가 될지도 모를 것 같아 차마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로비에서 처럼 알비스는 또 다시 고개 숙여 내 시선을 피했다. 

알비스를 심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교단에 속했다 해도 사실은 이오에게 폭력까지 휘두를 생각은 없었다.

마음과 생각과 몸이 따로논다. 계속해 겉돌기만 할 뿐 뒤섞여 하나가 될 기색이 없다.

알비스를 계속해서 보고있기 어려워 나는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이오가 말한 장소는 이 곳일 것이다. 이렇게 금방 찾을 것이었다면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거대한 천에 거칠게 그려진 교단의 문양은 빌딩 곳곳에 깃발 처럼 나부끼고 있다. 정말로 이런 곳이 빛을 모시는 자들이 기거하는 장소인가 하는 의심이 들던 차에 통신기에서 음성이 새어나왔다.


"바빠 보이시는군요. 이른 아침부터 교단을 찾아가시다니. 제대로 숙면은 취하셨는지?"


"그래. 덕분에 동트는 것 까지 확실히 봤지. 네 년 장난놀음에 어울릴 생각 없이 나 혼자 놀아볼 생각이었는데 어디서 지켜보기라도 하는거냐?"


"후후… 그럼요. 혹시 물으시더라도 당연히 알려드리진 않을겁니다."


"좆까는 소리 그만 해. 그것보다 하나 말해볼까? 여기있는 년들 다 쓸어버려도 상관 없다고 그랬지? 과연 그럴까? 난 네가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나야 문제 없지만 이년들 다 뒈지면 곤란한 건 너야."


"아뇨. 거짓이 아니에요. 진심입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죽이라 권장해드리고 싶군요. 사실 조금 충동질을 해볼까도 싶어요. 뭐, 그렇더라도 당신은 상당히 애먹을테죠. 후훗… 거짓말을 하는 건 당신이에요. 사실은 당신, 아직도 그녀들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했잖아. 도대체 머릿속이 얼마나 꽃밭인거지?"


"내가? 이년들을 잡아 죽이는데 애먹을거라고? 기어오르지 마라. 약속하지. 너 이 씨발년, 네 년을 잡으면 절대 곱게 안보낼거다. 범하고 또 범한 뒤에 고문해주마.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방법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죽여달라 애원하게 만들테다. 정말로… 진심으로 약속한다."


"기대 되네. 부디 잘해봐요. 그럼 이제… 조금 이르지만 첫번 째 놀이를 시작해볼까요."


"목 씻고 기다려. 금방 찾…"


"제 자매들과 천사들 중 단 한 명에게 소녀의 위치에 대한 힌트를 전해 두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실테죠? 이게 첫번째 놀이에요. 빌딩으로 들어서서 3층에 있는 가장 큰 사무실을 찾으세요. 자, 우리 한 번 재밌게 놀아봐요."


신호는 끊겼다. 베로니카가 말하는 놀이란 것에 휘둘릴 생각은 없다.

아르망에 대한 것을 최우선으로 찾아온 것이지만, 그 외에 따져물어야 할 것 또한 있다.

통신기를 내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 발키리에게 지시했다.


"지금 당장 대기 중인 년들한테 지시해. 이 빌딩 반경 500m를 샅샅이 뒤지라고. 몽구스 팀 한테도 다시 지시해라. 우리가 지나온 경로와 이 빌딩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추려서 수색하라고 해. 실수하거나 성과가 없는 것들은 가만 두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통신기에 지시하는 발키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로비와 3층으로 이어지는 장소마다 경비 목적으로 배치된 신자들은 알아서 길을 터는 이들이 다수였고 진정하라며 만류하는 이들에겐 명령을 통해 제압해가며 3층의 사무실에 다다랐다.


"굳이 말 안해도 알겠지? 움직이지 마라. 저년들 전부 결박 해."






――――――――――――――――――――――――――――――――――――――――――――――――――





"하… 설마 이렇게 태평히 있을 줄이야. 어제 나랑 마주치고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아자젤과 사라카엘, 베로니카 셋은 그 '베로니카'의 말대로 모두 3층의 사무실에 모여있었고 들이닥치자마자 발견한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한창 쑥덕대던 도중이었다. 저들 나름대로 의견을 나눌 일이야 있겠지만 그 내용까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를 따로 내릴 필요는 없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나를 보자 당황과 경악에 어찌하지 못한 이들이었기에 결박은 별다른 해프닝 없이 완료되었다.


"인간 남성… 모두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디 들어주세요."


의자에 앉은 채 손과 발이 결박되어 있는 아자젤이 말했다. 발키리 보다는 못해도 아자젤 또한 표정이 그다지 많은 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최소한 울먹이기는 해야 그 추한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것을 용인할 마음이 티끌만큼이라도 들텐데 아자젤은 결박 당한 상태에서도,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도 평온하다 못해 초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아자젤이 오늘의 그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아자젤의 말을 끊었다.


"변명은 필요없어. 아니, 하지 않아도 돼. 너희가 저질러 놓은 걸 본 것 만으로 충분해."


"인간 남성, 무엇에 그리도 분노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전령으로서 빛께서 행하라 하신대로 심판의 대행을…"


"개같은 소리 집어치워! 한 번만 더 인간 남성이라 불렀다간 그 아가리를 찢어버릴 줄 알아! 이 미친… 사이비년들…"


"각하."


"헉…헉…"


"각하. 아르망에 대한 것이라면 여기는 제게 맡겨주시길. 조금 쉬셔야겠습니다."


어깨에 손을 올려오는 발키리를 뿌리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말 나온 김에 한 번 보자고… 이 방도 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양초에 벽 곳곳에는 문양, 누가봐도 사이비잖아. 저 침대는 또 뭐야? 이런 곳을 침실로 쓰고 있는거냐?"


"…"


"여기까지 오면서 마주친 녀석들은 어떤 녀석들이었는지 알아? 제 손으로 제 목숨을 끝낸 녀석들, 나 처럼 어떻게든 생존을 도모하려다가 잡아먹힌 녀석들, 오르카에 휘말리진 않았어도 제 할 일을 계속 해오던 녀석들, 복수에 눈이 멀었지만 끝내 제 나름대로의 책임을 진 녀석들… 근데 너희는 도대체 뭐냐. 이 도시는 마리가 규합하고 있던 중이었다고 들었다. 너희도 마리가 구해줬겠지. 그 뒤엔 안봐도 비디오야. 근데… 그런 녀석을 그런 꼴로 만든 것도 모자라 기껏 살아남은 것들까지 사이비로 전락시켜!?"


"인간… 사령관 님. 그 바이오로이드는 당신을 등진 자 였어요."


"입 닥쳐! 내가 마리보고 잘했다 하는 소린 줄 알아!? 너희 이 미꾸라지 같은 년들… 너희가… 너희가 그 새끼가 만든 바이오로이드랑 다를게 뭐야."


"…"


"마리는 결과적으로 나를 등진게 됐지만 제 의지로 선택이라도 했지. 너희는 오르카에 있을 때에도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존재하지도 않는 빛만 찾으면서 쳐박혀 있었잖아. 내가 몰랐을 것 같냐? 알아? 나한테 있어서 마리보다 더한 년들이 너희야."


"…구원자 되시는 사령관께서 부디 저희에게 심판을 내려주시길."


이제서야 아자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진심으로 본인이 해온 짓을 자각하지 못했었다는 그 모양새에 분노가 일기보다는 역겨움이 느껴졌다.


"아직도 구원자 타령이냐. 너희는 손대는 것도 아까워. 하나만 대답해라. 아르망을 데려간 그 년에 대해서 전부 불어."


"…모른다."


이제껏 입을 다물고 있던 사라카엘이 말했다. 그 표정은 굳다 못해 적개심 마저 느껴질 정도로 차갑게 식어있었다. 설마하니 내가 보라고 그 따위 표정을 짓는 것은 아니라 믿고 싶었다.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못마땅하단 듯이 구는거냐. 그 따위 표정 짓지 마라. 사라카엘."


"…쳐박혀 있었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너는 아자젤이 어땠는지…! 아니, 되었다. 하나만 말해두도록 할까. 제 발로 오르카를 나간 것은 바로 너다. 그런 자에게 말해보았자 헛수고지."


"사라카엘!"


발키리가 사라카엘에게 소리쳤다. 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발키리의 그런 모습에 놀라기는 커녕, 사라카엘이 내뱉은 말에 아주 잠깐 혼이라도 빠진 것 처럼 이명이 울리고 현기증이 돌아 머리에 손을 댔다.

발키리는 당장이라도 사라카엘을 죽일 기세로 다가가 소총을 그 이마에 쳐박듯이 가져다댄다. 조금 진정이 되어 그런 발키리를 제지하고 나는 다시 말했다.


"…그래, 맞아. 내 발로 나갔지.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내가… 어떻게 했어야 됐다는거냐."


"각하! 이따위 것이 말하는 것에 굳이 일일히 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됐어. 너희랑 시간 낭비할 틈은 없어. 다시 묻는다. 아르망을 데려간 베로니카에 대해 아는 것을 전부 불어라."


"모른다고 했다."


발키리가 소총을 돌려 개머리판으로 사라카엘을 가격했다. 고통에 신음하기는 커녕 한층 더 눈매를 세운 사라카엘은 분노하는 것 처럼도 보인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노해야 할 것은 나고, 용서를 빌어야하는 것은 사라카엘인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저런 눈을 한 채 나를 노려다보는 것인가.


"생각이 바뀌었어. 발키리, 전부 다 데리고 밖에 나가있어라. 질문을 바꾼다. 너희 중에 아르망이 있는 곳에 대한 힌트를 가진 자가 있다고 들었다. 말해라. 말하면 덜 고통스럽게 다뤄주마."









---------------------------------------




고닉을 파고 인사드립니다.


휴 슬슬 후반부에 진입했어용. 이거 점점 쓰다보니 후회물이라기 보다는 멸망물, 아포칼립스 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 것 같네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아 보려했는데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번 편은 대사가 좀 많은 편이고 사령관이 슬슬 제정신을 잃어가는 탓에 욕도 많아서 불편하게 보이실 수도 있는 점에 대해 미리 사과드립니다 ( _ _ )         


후회물을 쓰다보니 제 정신도 다크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전환용으로 쓴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단편도 하나 있으니 제 글이 마음에 드신 분은 한번 쯤 읽어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링크는 맨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저를 춤추게 합니다.


많은 리플 환영합니다 혹시라도 내용 중에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성실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재밌게 읽어 줘~


  

  





https://arca.live/b/lastorigin/23508467?mode=best&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