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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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대회][단편] 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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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a.live/b/lastorigin/23610526 청부업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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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폐하…?"


베로니카가 말했었다. 사실 그녀들에게 아직 미련이 남지 않았느냐고. 솔직하진 않지만, 부정하진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통신기를 통해 지금 당장 둠 브링어를 호출 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르망을 살리려면 바로 폭격을 시작해도 모자를 판에. 아르망을 찾겠다고 그렇게 개잡듯이 다섯을 조져 놓았으면서. 각하 소리, 폐하 소리, 사령관 님 소리 들어가며 누구든 찾아내 구할 것 같이 굴었으면서.


결국 또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것도 아르망을 눈 앞에 둔 채 망설이고 만다.


"폐하… 저를 보세요."


포근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은 아르망이 위로하는 것 처럼 내 양 손을 잡고 올려다본다. 강한 바람이 불어 누런 흙먼지가 광장 가득 흩날린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탓에 아르망의 양 팔도 조금씩 떨리고 있다. 더 이상 통신기에서 음성은 흘러나오지 않는다. 베로니카의 마지막 통신 후 몇 분이 지났을까. 5분? 10분? 시계도 없는 탓에 확인 할 수가 없다. 또 다시 시간을 생각하니 둠 브링어와 스카이나이츠를 호출 할까를 망설이며 귓가의 통신기에 손을 가져다대려고 했지만 이번엔 아르망이 내 손을 당기듯 강하게 쥐고 있기에 그 마저도 불가능하다. 급하다면 발키리에게 그랬던 것 처럼 뿌리치면 될 것을. 아스널을 눈 앞에 두고 날 만류하던 보급대에서의 그 때 처럼 또 한 번 아르망의 뺨을 치면 될 것을. 


"있죠…폐하… 제게 있어서 폐하는 정말로 따뜻하고 다정하신 분이에요."


아니야, 아르망. 난 겁쟁이에 우유부단하고 강단이 없는 놈이야. 너희의 사령관이 되어선 안됐을 놈이야. 그래. 시간을 돌린다면, 이라고도 생각했었지. 고작 지나온 이 길이 가혹 했어서 말이야. 있잖아, 아르망.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넌 어떻게 할래? 난 말이야. 너희가 날 발견하기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 너희를 떠난 그 순간이 아니라 가장 처음, 너희의 사령관이 되기 이전으로. 그리고… 그리고…


"바이오로이드를 인간으로서 대해주시는 분이에요. 그 누구보다도 저희를 이해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분이에요."


그렇지않아. 아르망. 네 말대로였다면 애초에 이런 상황까지 치닫지 않았을거야. 마리와 슬레이프니르가 부하들에게 잔혹한 꼴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아스널이 복수에 눈이 멀지도 않았을 꺼야. 레오나는 죽을 일 없이 마리와 같이 모두를 규합하고 있었을 거야. 홍련이 제 동료들을 그 자에게 갖다 바칠 일도 없었을 거고. 너희 손으로 직접 샬럿에게 고통을 가할 일도 없었겠지. 알비스와 LRL은 말할 것도 없어. 더치가 그 공터에서 홀로 쓸쓸히 자살한 대원들을 묻어주는 일도 없었겠지.


"수많던 저희 중에서도 그 누구보다도 부하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시던 분이에요. 미래를 보시고 희망을 노래해주시던 분이에요."


설마. 아르망은 나한테 거짓말을 할 수 있는거니?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내가 정말 그런 놈이었다면 애초에 너희를 떠난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겠지. 모두 사라지는 것 보다는 어떻게든 존속이 가능한 것이 낫다며 그 놈을 피할 일은 없었을 거야. 그 놈이 이렇게 까지 할 놈일 줄은 몰랐다는 변명은 하지 않을게. 너희가 나를 버린게 아니야. 내가 너희를 버린거야. 그런 내가 어떻게 너희를 위하던 놈이었다고 말 할 수 있는거니. 


"정말로 선량하고 현명한 분이시고요. 그리고… 제가 정말로 사랑하는 분이세요."


"…"


"그러니 폐하. 제가 정말로 사랑하고 현명하신 폐하. 늦지 않았어요. 아직 되돌릴 수 있어요. 여기있는 모두를 품어주실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서 가세요."


내 손을 깍지껴 잡았던 아르망이 스르르, 매듭을 풀듯 손을 놓는다. 흙바람이 날려 사방이 뿌옇더라도 창창한 햇빛은 가려지지 않고 곱게 단장한 아르망의 눈물지은 얼굴을 보듬어 한층 더 화사로이 띄워준다. 애달픈 고백과 작별의 안타까움을 담은 그 미소에 눈 앞이 일렁거리기 시작해 나도 모르게 아르망에게 한 발 다가가 그 부드러운 몸을 껴안고 만다.


"…폐하…폐…하…"


울먹이는 소리, 애써 그 울먹임을 삼키고 웃어보이려는 안쓰러운 목소리에 못이겨 아르망을 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준다.

그러자 아르망은 내 가슴에 손과 얼굴을 묻고 결국 터져나온 울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고마워. 아르망."


또 다시 한 번 더, 과거의 나를 타박한다. 어떻게 이렇게나 아름답고 상냥한 아이의 뺨을 칠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나 나를 지탱해주고 품어주는 아이가 있었음에도 왜 그 놈과 다름없는 길을 걸으려 했을까. 


"폐하…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답니다."


내 품에 고개를 묻고 있던 아르망이 나를 밀어낸다.

붉어진 눈시울과 촉촉해진 내 가슴을 보니 눈물이 꽤 많이 나왔던 모양이다. 그것이 또 안타까워 나는 아르망의 시선을 피하고만다.


"저는… 지금부터 혼자서 산책을 하러 갈테니까요. 그러니 폐하도 어서 가세요. 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거니까 방해하시면 안된답니다?"


상기된 얼굴로 활짝 웃어보인 아르망이 천천히 등을 돌려 내게서 멀어진다.

느린 것 같지만 빠른 것 같기도 한 그 하늘하늘하고 편안해보이는 발걸음을 마지막으로, 나 또한 아르망에게서 발을 돌렸다.


"스으읍… 후우우…"


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눈가가 그렁그렁해진다. 

꾹 참아 눌러보려고 심호흡을 몇 번 해봐도 좀 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세차게 불던 바람이 모두 지나가고 흙먼지가 걷히기 시작하자 도시의 정경이 보다 맑아져간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에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쨍쨍한 해.


LRL과 더치를 떠나보낼 때도 느낀거지만, 날씨란 놈은 분명 눈치가 단 하나도 없는 놈일 것이 분명하다. 야속할 정도로.


"…"


걸음걸이를 빨리하다가 이내 달리기 시작한다. 아직 멀리가지 않은 그 금발의 소녀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내 기척을 알아채고 돌아보는 것 보다 빠르게, 다시 한번 그 부드럽고 가냘픈 몸을 끌어안는다.


"폐…하…?"


"미안… 미안해, 아르망.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폐하, 폐하!"


한 번 더 말할게 아르망. 정말로… 진심으로 미안해.


일어날 일은 일어나.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어. 모두 내가 선택한 것들이야.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


"안 돼… 안 돼! 폐하! 폐하!!! 안 돼요!! 그러지 마세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어.


"둠 브링어! 도시를 쓸어버려!! 스카이나이츠! 보이는 모든 바이오로이드를 전부 다 사살해!"


내 선택은 아르망, 바로 너야.



/





"다시 한 번 감히 여쭐게요. 진심이시죠?"


아르망을 들쳐매고 달리는 중이었기에 통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나이트 앤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명령이야! 빨리 폭격해! 단 한 놈이라도 살려두지 마!"


"폐하!! 안 돼요!! 저를 놔주세요!! 제발! 제발 명령을 철회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데인저 클로즈. 사령관 님의 안전을 빕니다."


나이트 앤젤의 응답이 끝나자마자 공중의 한 면에서 기동음과 함께 여섯 개의 궤적이 떠올랐다. 


"발키리! 도시를 쓸어버릴거다! 샬럿이랑 알비스를 데리고 빨리 빠져나와! 홍련! 폭격이 시작될 거다! 알아서 사려라!"


각 개체들의 응답을 확인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번화가를 벗어나기 위해 한 층 더 템포를 올려 달린다. 다리에 걸려오는 부하가 점점 더 강해지고 숨이 가빠진다. 조금이라도 집중을 풀면 당장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끝이다. 이 도시, 이 교단과 함께 한 줌의 재가 되버리고 만다.


"…폐하…어찌…"


"아르망. 부탁이야. 얘기는 나중에 하자. 뭐가 됐든 전부 받아줄테니까. 그러니까…"


부탁이야. 널 살리고 싶어. 날 미워해도 돼.


"…아아…"


경악으로 일그러졌던 아르망의 얼굴이 풀려 눈가에 그늘이 진다. 내 선택을 존중하고 따른다기보다는 그것은, 포기. 아니, 체념이었다. 아르망은 체념하고 버둥거리던 몸에서 힘을 빼 가만히 내게 기대어온다. 거기에 방금과 같은 부드러움과 다정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아… 하아…"


번화가의 반을 넘어오자 하늘에 떠올랐던 여섯 개의 궤적이 점으로 변해 한 자리를 일정한 모양으로 멤돌고 있다. 곧, 곧이다. 이러면 늦는다. 다리 두 개를 대가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다. 내 목숨을 대가로 아르망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다. 살린다. 반드시 살리겠다.


여섯 개의 점 중 다섯 개의 점이 도시로, 내 바로 정면으로 날아온다. 빠르면 10초 정도의 거리, 살 수 있다. 살릴 수 있다. 이 정도 거리와 속도면 충분히 가능하다.

스카이나이츠 대원들과 레이스가 내 머리 위로 비행운을 그리며 지나가고나서 빌딩을 한 번 돈 뒤 선회해 다시 도시로 방향을 돌리자 이윽고 건물과 신자들에 대한 화력투사가 시작되었다. 나이트 앤젤은 나를 기준으로 우측에서부터 정밀하게 폭격해온다.


아르망을 한 손으로 지탱해 고쳐매고 품에 있던 전자패드를 꺼낸다.


7, 아직 7 하나 뿐이다.

나이트 앤젤의 폭격에 의해 건물 두개 정도가 무너지고 스카이나이츠의 사격이 계속 되고 있지만 그 아래의 입력란은 아직 단 하나도 매꿔지지 않았다. 느낌 뿐이지만 30분까지는 이제 정말 얼마남지 않았을 것이다. 30분이 되는 순간부터는 매 일 초 일 초가 가파른 절벽이고 빠져나올 수 없는 수심의 바다이다. 속으로만 둠 브링어와 스카이나이츠를 재촉해보며 통신기에 입을 가져다댔다.


"발키리! 샬럿! 지금 어디냐?! 빠져나갔어!?"


"화력이 투사되는 지점과 반대 방향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걱정하실 일은 절대 없으실겁니다. 곧 뵙겠습니다."


"알았다. 알비스는 꼭…!"


"제 품에 있으니 그 또한 걱정 마시길."


"믿는다."


우측에서부터 시작된 폭격이 점차 가까워져오고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에게서 들려오는 격발음 또한 뒤편에서 서서히 다가오고있다. 번화가를 가득 울리는 굉음에 각 건물에서 뛰쳐나오기 시작한 코헤이 신자들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한다. 그런 신자들에게 나는 통신기에서 입을 떼고 달리느라 가빠진 호흡을 한 번 가다듬은 뒤에 성대가 찢어져라 외쳤다.


"명령이다! 도시를 벗어나지 마!"


"폐하!!!!!!!!!"


가만히 어깨에 매달려있던 아르망이 찢어지는 비명과도 같은 절규 어린 고함을 외쳤다.  


"구원자 님…! 사령관 님!!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제자리에 서있어라! 시체가 남아선 안 돼! 모두 흔적 하나 없이 죽어라!"


명령을 마치고 다시 전자패드를 확인한다.


7

K

두번째 입력란에 마침내 암호가 추가로 입력 되었다. 종잡을 수 없고 믿을 수도 없는 베로니카의 약속에 희망을 가져본다.

이 것 뿐이다. 아르망의 바람을 져버리고 아르망을 선택한 이상, 이젠 정말 이 것 뿐이다.


7

K


번화가를 거의 다 벗어나자 또 다시 입력란 하나가 채워졌다. 이제 마지막 하나, 정말 딱 하나만 남았다. 전자패드를 보며 희망에 젖어 얼굴이 조금 느슨해지자 방금 좌측 방향으로 넘어간 나이트 앤젤로부터 통신이 왔다.


"사령관 님! 이제 미사일이 얼마 없습니다! 아직 절반이나 남았어요!"


"나이트 앤젤! 통신채널을 메이한테 연결 해!!"


"채널 돌렸어요!"


"메이! 명령이야! 지금 당장 네 미사일을 폭격되지 않은 지점에 발사 해!"


"엣…아…사…사령관…"


갑작스레 들이닥친 내 목소리에 당황한 메이가 상황에 맞지 않게 쭈뼛대고 있다. 비아냥 댄 것 이외에 대화 한 번 하지 않았기에 그럴 법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나는 답답함에 못이겨 메이에게 다시 소리쳤다.


"메이!!! 병신 같이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미사일을 발사하라고!!!!!"


"폐하! 역시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남은 이들이라도!!!"


"읏…정말로 미사일을…"


번화가를 전부 빠져나오니 멀지 않은 거리에 야영지가 보였지만 속도를 줄이지는 않는다.

폐가 찢어지고 다리가 부서질 것 같았지만 가능한 감내하며 이전보다도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면서 통신기에 대고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이 씨발년아!!! 단 한 번만이라도 쓸모있어 봐!! 설마 여기까지 와서 명령을 거부하려는거냐!? 지금 당장 그 개좆같은 미사일을 발사하라고!!!!!"


"흐으으…흐으으윽…!"


"메이!!!!"


외마디 비명과도 같이 메이의 이름을 외친 것을 마지막으로 통신기에서 노이즈가 일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가까이 보이는 그 점에서, 거리를 감안한다 해도 꽤 거대해 보이는 투사체 하나가 발사되었다.

야영지로 삼은 건물로 도착해 로비의 가장 안 쪽으로 향했다. 급하게 두리번거려 머지않아 들이닥칠 폭풍에서 안전할 만한 곳을 찾았고 마침 응접실과도 같은 방이 하나 보였기에 그 방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 아르망을 내려놓았다.


"헉…헉…"


"…폐하."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팍을 움켜쥐고 전자패드를 확인한다.


7

K


야영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스카이나이츠와 나이트 앤젤의 화력투사로 인한 굉음이 미미하게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지만 아직도 남은 마지막 하나가 채워지지 않았다. 이젠 정말로 막 발사된 메이의 미사일에 모든 걸 걸어야한다. 번화가와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기 위해 방의 가장 구석으로 아르망을 잡아끌고 엎드리게 한 뒤 그 작은 몸을 내 몸으로 덮고 점퍼를 뒤집어 썼다.


"…"


이제…곧… 조금만 더…


30분이 되기 전에 메이의 미사일이 착탄되길 바라면서 속으로 숫자를 센 지 약 20초.


"크윽!"


마침내 메이의 미사일이 착탄되었는지 엄청난 굉음과 함께 들이닥친 진동과 폭풍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지만 아르망을 보호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지탱할 수 있었다.

엄습해온 폭풍으로부터 아르망을 보호하며 나는 마지막으로 정말 모든걸 걸고 간절히 빌었다.


부디 마지막 입력란이 채워지기를.





///




미사일로 인한 폭풍은 지나갔지만 도시를 가득 매운 누런 흙먼지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먼 발치에 있는 건물들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흙먼지에 삼켜진 도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전자패드로 눈을 돌렸다.


7

K

D2


"…폐하, 하네스가…"


"뽑아낼게. 조금만 참아 아르망."


한 쪽 어깨에 걸쳐진 부분과 밑가슴에 있는 부분을 잡고 하네스를 당겼다.


"윽! 으읏!"


아르망의 살갗에 파고든 쇠붙이는 그다지 길다랗지는 않았지만 좀 처럼 잘 빠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아르망에게 사과하며 힘을 주어 단번에 하네스를 빼냈다.


"꺄앗!"


"아팠지? 미안 해 아르망. 그래도 확실히 빠졌어."


뽑아낸 하네스를 최대한 멀리 집어던지고 아르망에게 한 발 다가갔다.


"아르망. 정말, 정말 다행이야."


다행스럽게도 베로니카의 약속은 거짓이 아니었다. 놀라지는 않는다. 결국 기댈 것은 베로니카의 약속 뿐이었으니까.

상체 곳곳에서 미약한 출혈이 일기 시작한 아르망의 몸을 닦아주고자 손을 가져갔으나 아르망은 한 발 물러서며 내 시선을 피했다.


"…폐하. 대답해주세요."


"…"


"전…저는…저는 이제…"


"아르망… 일단 지금은…"


"제게 무엇보다도 소중하신 폐하께서 선택하신 것이란 건 알아요. 그래도… 정말로… 이렇게 까지 하신 끝에 제가 살아가도 되는 걸까요?"


"부탁이야. 날 미워해도 돼. 그래도 제발… 날 떠나지 마. 떠나려고 하지도 마."


"전… 모르겠어요. 폐하, 저는 정말로…!"


"무사하셨네요. 무모하셔요. 정말."


아르망의 말이 막 이어질 찰나에 하늘에서부터 나타난 나이트 앤젤이 말을 걸었다.


"정말로… 무모하셔. ……진짜로 싹다 쓸어버리셨네요."


"됐어. 메이랑 나머지는 어디있냐."


"사령관 님이랑 같이 다니던 분들의 생존여부는 확인했어요. 모두 잘 살아있으니까 걱정마시길. 그리고… 스카이나이츠는…"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조금 뜸을 들인 나이트 앤젤이 한 숨을 한 번 쉬었다.


"스카이나이츠는?"


"폭발에 휘말렸어요. 워낙 급박했어서 합이 안맞았나 봐요. 생존자는 블랙 하운드 뿐이에요."


"…그래."


"사령관 님. 들리십니까? 사령관 님?"


통신기 너머로 홍련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다. 말 해."


"다행입니다. 무사하셨군요. 몽구스 팀 전원 생존했습니다. 지금 바로 베로니카를 연행해 사령관 님께 합류 하겠습니다."


"…"


그래. 아르망이 무사한 것에 기쁜 나머지 잠깐 잊고 있었다. 베로니카. 이 모든 일의 원인인 베로니카가 아직 남아있다.


"…폐하. 안 됩니다."


내 얼굴을 쏘아보듯 마주 본 아르망이 강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폐하.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려하는지 아시지요?"


"그래."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폐하를 위해서에요. 죽이지 말라고는 말씀 드리지 않을게요. 부디 이성적으로…"


손에 필요 이상의 피를 묻히지 말아라. 곱게 보내라.

아르망이 말하는 것은 이런 것이겠지. 

어찌 이럴 수 있을까. 그런 꼴을 당했음에도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한번 아르망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걱정을 끼치지 않게 애써 표정을 밝게하고 대답했다. 


"생각해볼게."


확실하지 않은 내 대답에 아르망은 조금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지금은 그걸로 괜찮다는 듯 완전히는 아니지만 살짝 표정을 풀었다.


조금 지나자 누런 안개 속에서 한 명, 두 명, 폭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이 점점 모습을 드러낸다.

발키리와 샬럿, 알비스. 초점 없는 눈을 한 채 넋이 나간 블랙 하운드. 메이와 레이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몽구스 팀과 함께, 다리를 절며 완전히 제압 당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 바이오로이드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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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좀 늦었지만 다시 찾아뵙습니다.


이번 편은 분량이 전보다 좀 적지요. 요즘 좀 피곤해서… 부디 너그러이 봐주세요.





재밌게 읽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