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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a.live/b/lastorigin/23894384 오르카의 집행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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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 풀어."


몽구스 팀에 의해 거칠게 무릎 꿇려진 베로니카의 입에서 재갈이 풀렸다.


"푸하! 고마워요. 답답했어."


찢어진 눈가에서 생긴 출혈로 얼굴의 한 면은 피투성이였고 빙결 볼트에 당한 오른쪽 다리는 동상으로 인해 썩어 문드러지기 직전이다. 적잖이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한데도 베로니카는 그런 건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지,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을 지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


"폐하."


"괜찮아 아르망. 적당히 다룰게."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오던 아르망에게 한 손을 들어 제지하고 눈 앞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수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어라? 적당히? 그건 곤란해요. 당신. 나하고 약속했잖아?"


"…"


"에이 설마. 약속을 안지키려고? 이봐요. 난 당신이랑 한 약속 지켰잖아요. 그러니까 당신이 저 귀여운 소녀를 살릴 수 있었던 거잖아요."


"내가? 너와 약속을 했었나? 기억이 안나는데."


그래. 약속 했었지. 죽기 직전까지 범하고 고문해 주겠다고. 그런 내 협박에 이 수녀는 겁을 먹기는 커녕 기대한다고 대답했던 것도 기억한다. 공장에서 조우한 것들이나 리리스나 이 베로니카도 내가 익히 아는 존재가 아닌, 바이오로이드의 탈을 쓴 무언가 라는 것은 질색할 정도로 알게 되었지만 설마하니 그 협박을 어서 이행하라며 이런 처지에서 이런 식으로 재촉해올 줄은 몰랐다. 미친년.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윗 구멍 아랫 구멍 가릴 것 없이 완전히 개작살을 내놓고 싶지만 도리어 이 베로니카가 그것을 원하는 이상, 아르망이 보고 있는 이상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생각지도 못한 꼴을 당한 것에 더해 일부러 모른 척 하는 내가 견디기 어려웠던 것인지 베로니카는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눈을 부릅뜨고서 내게 외쳤다. 


"야이 씨발아!! 날 범하고 고문하겠다고 약속 했잖아! 자, 어서. 빨리 약속지켜. 어서! 지금 당장 네 좆대가리를 꺼내서…!"


베로니카가 말을 마치는 걸 기다려주지 않은 홍련이 그 얼굴을 크로스 보우로 후려 갈겼다. 그 덕에 튀어나가듯 옆으로 쓰러진 베로니카가 다시 몸을 일으키자 입에서 핏줄기가 주르륵하고 치아 몇 개와 함께 떨어졌다. 


"씨발… 개새끼… 이 개버러지 같은 인간 놈… 사기꾼 새끼… 존나 약해빠진 새끼… 왜 약속을 안지켜!! 나랑 같이 재미보겠다고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 할 거 아니야! 마지막에 와서 이런 식으로 초를 쳐!? 이 거짓말쟁이 새끼…"


베로니카는 항상 감겨있던 그 눈을 치켜뜨고 드러낸 붉은 안광을 이글거리면서 좀 처럼 분을 삭히지 못했다. 원했던 바다. 이 이상 베로니카가 기뻐할 만한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몽구스 팀."


"네, 사령관 님."


베로니카를 짓누르던 몽구스 팀이 내 부름에 차렷 자세로 고쳐 잡고 일제히 대답했다. 이 베로니카를 잡지 못했다면 추가적으로 벌어졌을 일들을 생각하니 머리 한 켠이 아찔해져 가볍게 말 몇 마디 뿐이라도 그 공을 치하해 줘야겠다 생각했다.


"잘해줬다."


"아… 네, 네. 감사합니다."


기뻐하기 보다는 당황스러워 하는 홍련이 조금 멋쩍은 모양새로 시선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알 일은 없겠지만 몽구스 팀은 아르망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후에도 엇나갔을게 뻔한 나를 아르망이 잡아줬으니까. 아르망이 아니었다면 샬럿과 같은 경우와는 다르게 딱히 좋은 꼴은 못봤을 테니까. 그러니 아르망을 생각해서라도 몽구스 팀에 대한 처분은 기존과 똑같이 다루겠다. 알아서 따라오던가, 아니면 그냥 떠나던가.


사실상 베로니카에게 놀아난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시달린 것 같은 무거운 피로가 긴장이 조금 풀린 틈을 타고 한번에 찾아와 점점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잠도 못잤고 폭격을 피하겠다고 죽어라 달렸으니 그럴만 했다. 아르망이 무사하니 이제는 끝낼 때다. 나는 느슨히 풀어질 것 같은 눈가에 힘을 주고 입을 열었다.


"몽구스 팀. 한 번 더 수고해 줘라."


"네. 지시해 주십시오."


"샬럿. 몽구스 팀과 함께 베로니카를 데리고 폭심지로 가라. 도착하면 사지를 절단하고 그대로 버려두고 와."


"안 돼!!!!"


베로니카의 절규를 무시하고 아르망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오는 아르망에게 똑같이 고개를 끄덕여 대답해주고 몽구스 팀 에게 붙들려 끌려가는 베로니카를 지나쳐 보급대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너… 너! 절대 잊지 않을 거다! 좆같은 구라쟁이 새끼!! 이 개씨발 오입쟁이같은 새끼야!! 내가 베푼 은혜를 이 따위로 갚아? 죽여, 차라리 그냥 죽여!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후회하면서 질질 짜게 만들어 줄테다! 이 벌레같은 인간새끼야!! 놔, 이거 놔! 씨발… 난 산다. 반드시 살아! 반드시 살아서 네 놈 앞에 다시 나타날거다! 그 때는 저 년이 아니라 네 놈을 잡아다가 자지가 부러질 정도로 범하고 또 범한 뒤에 고문해주마. 네 놈이 말했던 것 처럼!"


"그래? 그거 기대되네. 어디 잘 해봐."


끌려가는 와중에도 짐승 마냥 악을 쓰고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할퀴고 난리도 아니다. 결국 참다 못한 몽구스 팀이 짐승을 끌고가다 말고 자빠트린 뒤 화기를 몽둥이 삼아 사정 없이 후려 패기 시작했다. 누런 안개와 처량한 바람소리 뿐인 다 무너져 가는 도시 속에서 베로니카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만이 메아리가 되어 사방에 퍼졌고 더는 안봐도 될 험한 것을 지켜보는 건 나 하나로 충분했기에 발키리와 아르망에게 알비스를 데리고 먼저 출발하라 지시했다.


담배를 하나 꺼내 피우면서 먼저 도시를 벗어나고 있는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선 여전히 짐승을 때려잡는 소리가 들려왔고 흙먼지는 가라 앉기는 커녕 더 심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그 기세를 더더욱 키워 도시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키려 들고있다.

그 누런 안개 속에 잠긴 도시를 한동안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맑은 소리를 내는 금속골격, 아마도 팔 부분의 골격이 바람에 휘날려 내가 있는 발치 까지 굴러 들어왔다. 


누군가의 그을린 팔 뼈, 내 선택에 따른 그 결과가 다시금 내게 실감하라며 손가락을 뻗어 나를 가리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피하듯이 고개를 틀고 자리를 옮겼다. 한 번 더 세차게 불어온 바람에 맑은 소리를 내며 다시 굴러가기 시작한 뼈는 아직도 매질 중인 바이오로이드들을 지나쳐 도시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었다. 팔이라는 확실한 형태로써 찾아온 선명한 실감을 애써 떨쳐내고자 다 피워가던 담배를 버리고 새 것을 하나 더 꺼내 입에 물었다.


"씨발…"


나는 아르망을 살리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에 후회는 일절 없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가슴 한 켠이 욱씬거리고 싱숭생숭 해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곳에 당도하고 난 후, 나는 몇 번이고 코헤이 년들과 이 도시를 쓸어버리겠다고 외쳐댔다. 그래. 그 말대로 했을 뿐이다.

내게 있어서 코헤이의 수 백명 보다 아르망이 더 소중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 당연한 선택을 한 것 뿐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각지에 퍼진 생존자들을 규합해 다시 한 번 저항군의 기반을 세우겠다는 것은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오르카와 함대의 대다수가 날아간 그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발버둥 쳤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미래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멸망이 우리에게 찾아왔음을. 더 이상 미래가 없는 것을 실감한 순간부터가 멸망의 한복판에 있는 것임을. 


즉 나는, 이 멸망 속에 남은 것들 중에서 보다 소중한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멸망 속에서 숫자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떠오르는 것들을 필터를 거치지 않고 속으로 되뇌고 있는 꼬라지가 나 자신에게 변명이라도 하는 것 처럼 느껴져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런 사이에 두번 째 담배도 꽁초만 남아 입에 대롱거리고 있었고 마침 차분해진 몽구스 팀이 만신창이가 된 베로니카를 다시 일으키려 하는 중이었다.


"큭… 큭큭큭…"


생기가 가신 탁한 눈으로 쇳소리 같은 웃음을 흘리는 걸 보니 이제는 완전히 맛이 간 것 처럼 보였다. 베로니카는 흐느적 거리면서 겨우 두 발로 일어선 뒤 옆에서 거칠게 걸음을 재촉 해오는 몽구스 팀을 곁눈질로 째려보고서 누군가가 들으라는 식으로 소리 높여 외쳤다.


"아~ 사지를 잘라서 길 한복판에 버리겠다니… 진짜… 재미 없겠다~ 좀 다른 벌칙을 주면 특별 보너스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이상 지켜 볼 필요는 없다.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가 되었음에도 아직도 놀이타령이나 하는 것이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 느껴져 나는 발치에 둔 배낭을 매고 먼저 출발한 일행들의 뒤를 빨리 쫓아가기로 했다. 계속해서 저 수녀의 모습을 한 광기를 눈에 담고 있으면 덩달아 나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또 다시 이성을 잃고 당장이라도 직접 손을 대고 말 것 같았다.


"어라? 가는 거에요? 어디로 가게? 아, 아니야. 내가 한 번 맞춰볼까요? 우리 리리스가 뛰어놀았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거지? 그렇지?"


"…뭐?"


베로니카의 그 말이 올가미 처럼 발목을 강하게 움켜잡아와 끝내 무시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킥 하고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린 베로니카를 몽구스 팀이 재차 제압하려 했기에 그들을 뒤로 물린 뒤, 베로니카를 노려보는 것으로 다시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궁금하죠? 궁금하지?"


어떻게 보급대를 알고 있는가. 궁금할 것도 없다. 아르망 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당신한테 굉장히 유용한 서비스를 해줄까 하는데. 어때요?"


"설마. 이제 와서 너하고 몸을 섞으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내 말에 한층 더 선명히 입꼬리를 일그러뜨리고 장난스럽게 치맛자락을 옆으로 넘겨 살짝 비부를 보여온 뒤 베로니카가 손사래를 쳤다.


"아, 그건 필요 없어요. 나도 김샜거든. 하도 얻어 맞아서 몸도 쑤시고. 이런 상태로 떡쳐봤자 재미도 없고. 그냥 하나만 약속할래요? 이번에는 진짜로 약속 지키겠다고 말하면 재밌는거 알려줄게."


베로니카가 보급대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더 이상 베로니카는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그것을 베로니카 본인도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더 신경이 쓰인다. 어째서 그것을 지금 카드로 삼았는지가.


"원하는게 뭐야."


"어짜피 날 살려 둘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냥 한 방에 죽여. 당신이 나한테 얼마나 쌓아두었던 간에 그냥 한 방에 보내달라고. 팔 다리 다 잘리고 죽을 때 까지 땅 바닥을 기라니 생각만 해도 지루해. 그러니까… 응? 약속?"


"생각해 보마."


"풉… 큭큭…"


"…?"


"지금 당신 표정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와… 표정 봐. 지금 본인이 칼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렇지? 어쩜… 이리도 같잖을까?"


"그래? 그럼 가던 길 가라. 죽기 직전 까지 최대한 발버둥 치길 바라. 그래야 좀 덜 지루할 테니."


"내가 어떻게 알았게? 뭐, 알고 있지? 그 예쁜이 한테 알아낸 거라는 건."


베로니카가 보급대에 대해 알게 됐다한들 위협이 되지 않는다 판단했기에 덮어두었던 어느 위화감이 다시금 머릿 속에 맴돌았다. 

내가 아는 아르망은 어떤 험한 꼴을 당하든 적에게 정보를 넘길 아이가 아닌데다가, 험한 꼴을 당하기는 커녕 베로니카의 악취미에 의해 오히려 꽃단장을 하고 나타났다. 아르망의 입을 열려면 고문을 해도 모자랐을텐데 말이다. 만에 하나 아르망이 베로니카에게 정보를 불게 되었다 하더라도 진즉에 그 사실을 나와 광장에서 마주하자마자 알려왔을 것이다. 즉, 아르망은 자신이 정보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르망의 입을 억지로 열게 하지도 않았고 아르망 본인 조차 자신에게서 정보가 샌 사실을 모른다면, 베로니카는 어떤 수단으로 보급대에 대해 알아낸 것인가?


"흐흐흐… 들리네~ 들려~ 짱구 굴리는 소리가."


"이랬다 저랬다 구는게 시간 끄는 것 처럼 보이는데? 죽는 건 신경도 안쓰는 것 처럼 굴더니 역시 양반은 못되는군. 할 말 끝났으면 이만 가지."


"기억 나? 당신네 오르카의 수복실. 거기에 있던 기계. 기억 모듈을 읽어내는 장치 말이야."


샬럿과 홍련이 감전이라도 된 듯 흠칫 몸을 떨었다. 베로니카가 밝혀 온 위화감의 정체는 생각도 못한 것이었기에 내 반응 또한 그녀들과 다를게 없었다. 그래. 그 장치라면 아르망에 대한 것도 전부 설명이 된다. 필시 아르망을 잠 재워 둔 뒤에 장치를 사용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 장치를 사용한 것이라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 장치의 설비를 언제 구축했냐 하는 시기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그 정도 되는 장치를 어떻게 따로 마련했냐는 것. 오르카에 있던 것을 그대로 옮겨왔던, 아니면 새로 만들었던 기억 모듈 재생기는 절대로 베로니카 혼자서 간단히 마련 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 혼자서는…

 

"…"


"표정 변하는 거 봐. 이제 알았구나? 내가 말했지? 엄청 유용한 서비스라고."


왜 그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까. 

블랙 리리스에 이어 눈 앞의 베로니카 까지 겪었으면서도 왜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놈이 직접 공들여 만든 바이오로이드가 더 있을거라는 걸 왜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분하지만 베로니카의 카드는 유효했다. 내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킥, 멍청한 놈. 네가 이 곳에 오겠다고 마음 먹은 그 순간부터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어."


이런 상황에서 승패 같은 것은 상관없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이미 오래 전에 내가 오르카를 떠났을 때 부터 승패는 정해졌다.   


"…얼마나 있냐."


"어? 뭐라고? 잘 안들려~"


"너희 개쓰레기 같은 년들 얼마나 더 남아있냐고!!!!"


"아하하하하하하하!!"


그래, 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내 패배다. 그런 식으로 눈을 뒤집어 까고 광소를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럴 때야 말로 몽구스 팀이 베로니카를 제압해야 하는 것인데 뭐 대단한 것이라도 목격한듯이 얼어붙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있다. 이해한다. 나도 지시를 못내리고 있을 정도니까. 베로니카의 카드가 말해오는 사실에 너나 할 것 없이 나 처럼 눈 앞이 아득해진 것만 같겠지.


"넌 실수 한거야. 너의 손발이 되어줄 수많은 신자들을 고작 계집애 하나 살리겠다고 제 손으로 날려버리다니… 흐흐흐. 얼마나 남았냐고? 궁금해 할 필요가 있나? 네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차례로 찢어죽인 다음 머지않아 알아서 너를 찾아갈텐데. 걱정은 하지마.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너, 알고 있지? 우리 주인님이 어떤 목적으로 나와 내 '진짜' 자매들을 제조했는지. 너희가 얼마나 남았든 질적으로 우리의 상대가 못 돼."


"샬럿. 지금 당장 이 년의 사지를 날려버려."


"에…예? 폐하? 죄송해요. 제대로 듣지 못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두 번 말하게 만드는 이 멍청한 년도 베로니카와 같은 꼴로 만들어버릴까 하는 충동이 일었으나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것을 애써 억누르고 다시 한 번 지시했다.


"지금. 당장. 사지를. 날려. 버리라고!"


"아…네, 알겠습니다."


"나의 진짜 자매들 모두가 너와의 전쟁을 위해 태어났다. 게다가 네가 거느린 멍청한 년들과는 달리 내 자매들은 오직 한 분께 충성하지. 지금도 한창 각지에서 너와 관련 된 모든 것들을 말살하고 있느라 땀 좀 빼고 있을 걸? 그러니까 그냥 잠자코… 아악!"


샬럿에 의해 다리 하나가 날아간 베로니카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나 고통에 겨워하는 것도 잠시 뿐, 곧 바로 고개를 쳐들고 똑바로 나를 쏘아보면서 황홀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을 지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윽… 킥킥… 지, 지금 쯤이면… 내 자매들 모두가 너희의 정보를 받아 봤을거야. 으흐흐흐~ 이것도 나름 재밌네. 야이 씨발놈아. 내 사지가 대수냐? 시간 아까운 줄 알면 지금부터 빨리 한 년이라도 더 따먹어 놔. 네가 할 수 있는 건 좆질 뿐이니까. 얌마. 따먹을 거면 하나만 말해 줘. 누구부터 먹을거야? 아, 너 그 폭탄 매고 있던 금발 년 부터 따먹을거지? 그렇지? 존나 맛있게 생기긴 했어. 쫀득쫀득한게 나도 한 번 따먹을까 싶었는데 말야."


남아있던 다리 하나가 추가적으로 날아갔으나 이번에는 고통에 겨운 표정도, 비명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흥이 오른 베로니카는 얼굴을 발그레 상기시키고 계속해 나불거렸다.


"아깝다~ 가기 전에 인간 좆 맛 한 번 보고 갈 수 있겠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다리 두 짝 날아갔어도 박을 수만 있으면 됐지. 어때? 한 판 땡길까? 나 좀 친다~? 나 뒈지기 전까지 고민 해 봐. 천국으로 보내줄께. 아, 아니다. 빛으로 보내준다 해야 하나? 풉. 큭큭…"


추잡스러운 말들을 쉴 새 없이 나불대면서 허벅지만 남은 양 다리를 내게 향하고 벌려오는 그 모습을 나 외에 제대로 마주한 이는 없었다. 그 질척한 역겨움에 못이겨 샬럿은 연달아 두 팔을 빠르게 절단해 버리고 지금 당장 처형을 집행하게 해달라며 간절한 시선을 통해 빌어왔다. 


"죽여."


"…목 씻고 기다려라. 내가… 우리 자매들이 널 찾을 거다."


목을 씻어야 할 것은 베로니카였다. 그 말을 끝으로 베로니카의 목이 달아났으니까. 바람에 흩날리는 흙먼지와 잔해들에 치여 도시의 한복판을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한 그 머리를 한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담배를 찾았다.


"…"


분명 마지막으로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놨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담배갑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뒷주머니 점퍼의 안주머니까지 모두 뒤져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끝까지 지랄이다. 엉망진창이 되버린 머릿 속을 담배연기로 채울수도 없어졌기에 나는 짧은 한숨을 흘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천천히 굴러가던 베로니카의 머리는 누군가 계산이라도 한 것 처럼 똑바로 나를 향해 멈춰서 있었다. 그것도 마지막에 보였던 비릿한 웃음을 지은 채로. 끝까지 비웃음 당한 것이 견딜 수 없어져 성큼성큼 다가가 베로니카의 머리를 온 힘을 다해 걷어 차 버렸다. 두개골에서 난 작은 균열음과 함께 날아간 머리는 이내 조금 더 굴러가 싯누런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자취를 감추었다.





/





도시를 나서고 근교를 지나 보트를 정박해 두었던 항만에 도착하자 어느새 밤이 가까워져 있었다. 숨을 고르는 알비스에게서 입김이 모락모락 새어나오는 것을 보니 이제 가을은 완전히 지나간 듯 했다. 항만으로 오는 도중 말을 꺼낸 이는 그 누구도 없었고 그것은 보트에 탑승 중인 지금도 그랬으나 방금 막 입을 연 이가 있었다. 블랙 하운드, 모두가 탑승한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블랙 하운드가 보트에 타려는 기색은 없이 가만히 고개 숙인 채 항만의 한 구석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죄송해요. 떠날게요. 정말… 정말로 죄송해요. 사령관 님."


"…그래."


발키리에게 손짓해 보트를 출발시킬 것을 지시했다. 바다로 떠나와 항만과 멀어져 블랙 하운드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고 이내 그 모습이 작은 점이 될 때 까지 블랙 하운드는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점이 바다로 떨어진 것을 확인한 끝에 나는 보트의 가장 앞 좌석에 앉아있는 알비스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


알비스는 옆에 다가온 내게 시선을 돌리는 일 없이 턱을 집어넣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모습에서 기도를 드리는 작은 천사가 연상 되었기에 나는 방해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미동도 없는 저녁 바다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마주해온 바이오로이드 마다 선택하게 해왔으나 방금은 억지로라도 블랙 하운드를 데려왔어야 했는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멸망에 이르게 된 그 폭풍에 속절없이 휘말렸을 뿐인 일개 말단일 뿐이니 내가 먼저 나서서 품어줬어도 됐지 않았을까 하고 뒤늦게 후회아닌 후회를 해보았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다. 그녀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배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행위를 그녀들은 분명히 저질렀고 나 또한 이유야 어찌되었든 먼저 그녀들을 떠나 왔으니까. 서로에게 자격이 없으니까. 그러니 용서 운운 하지 않고 지금 껏 모두에게 선택하게 했다. 게다가 블랙 하운드를 억지로 데려왔다 하더라도 과연 전력으로 삼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이미 생의 끈을 놓아버린 이에게 총을 쥐여줘봤자 방해만 될 뿐이니까. 


하르페이아와 흐레스벨그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내게 품고있던 죄책감까지 폭발하고 만 것일까. 블랙 하운드가 선택한 이상 별 수 없다고 여기지만 그 최후를 목격하고서 느릿느릿 찾아온 씁쓸함은 어찌 해 볼 수도, 별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양 손을 깍지끼고 허리를 숙여 그 씁쓸함을 곱씹고 있자 알비스의 오른 손이 내 손 위를 감싸왔다. 따뜻하고 말랑한 그 느낌이 손을 타고 전신에 퍼지는 것 같았다.


"사령관 님. 괜찮아? 엄청 피곤해 보여."


눈이 흐릿했던 탓에 알비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미루어보아 걱정어린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더 걱정을 끼치지 않게 최대한 기운차게 대답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알비스의 말대로다. 자각을 못했을 뿐 몸이 한계였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것을 깨달으니 곧바로 온 몸의 힘이 빠져버려 쓰러지듯 알비스의 무릎에 고개를 누였다.


"사령관 님… 많이 힘들었지…? 이제 코 자자. 알비스가 자장가 불러줄게."


 알비스의 무릎을 베개삼아 자장가를 들으며 가만히 누워 있은지 몇 분 정도 지나자 뺨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사령관 님. 아직 안자? 안자면 이것 좀 봐. 눈이 내리고 있어. 바다에 내리는 눈은 처음보네."


내리기 시작한 눈에 잠깐 자장가가 끊겼지만 알비스는 그다지 신나하는 기색 없이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장가를 불러왔다.

얼굴 군데군데에 느껴지는 눈의 감촉과 알비스의 따뜻한 손길이 조화를 이룬 그 나른한 쾌감이 더욱 잠을 부추겨왔기에 나는 의식할 틈도 없이 금방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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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ㅎㅇ 오랜만에 왔습니다


다들 철탑 재밌게 즐기시구요. 제가 끄적인 글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플과 개추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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