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엘라 벨 루스티첼.

거대한 제국의 단 한 명뿐인 황녀이자, 비운의 운명을 타고난 소녀.


그녀는 오늘로부터 정확히 3년 후. 19세 생일에 납치당한다.

제국을 보호하는 푸른 방벽이 부서지고, 붉은색이 제국을 가득 채울 때.

이 여린 소녀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국민의 안전을 요구했고.

그렇게 마족들에게 납치당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수없이 바랄 정도로, 끔찍한 나날이 이어졌다.


인간을 그저 장난감으로 볼 뿐인 마족에게 황녀는 예쁜 장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기의 천재라고 불리는 두뇌도, 경제와 정치 전반에 걸친 수많은 지식도 그들에게는 아무 볼 일 없었다.

황녀라는 고귀한 위치조차도, 그들에게는 단순히 배덕감을 즐기기 위한 조미료에 불과했다.


그녀는 매일 같이 낯선 마족들에게 둘러쌓여 몸을 희롱당했으며, 포로 이전에 인간다운 대우조차 받지 못했다.

식사는 남자의 정으로 더럽혀진 것을 먹어야 했고, 몸을 가릴 옷은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고고함을 잃지 않았고, 타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마족들을 더욱 즐겁게 했다.


그녀는 수많은 마족과, 자신의백성이 보는 넓은 공터에서 하급 마물에게 범해졌다.

대화조차 불가능한,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슬라임과 촉수 같은 마물에게 방치된 채로 하루종일 범해졌으며.

경멸의 대상이었던 고블린에게 아름다운 몸을 추잡하게 더럽혀졌다.

그 후에는 마을 광장에 방치되어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시민들에게도 수없이 강간당했다.


끝없이 유린당하고, 모욕받고, 더러운 말을 입에 담게 되고, 몸도, 마음도 망가져버린 불행한 그녀.


그 끝에는 그녀에게 행복이 찾아왔을까.


아니, 그녀는 이야기의 끝에서도 버림받았다.


영웅이 등장해 마족들이 항복하고 평화 협정을 맺을 때.

이미 더럽혀지고, 망가져버린 그녀를 찾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고귀하고 성스러워하는 황실에, 마물따위에게 범해져버린 황녀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혼자서는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한 몸으로, 길거리를 전전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게 이 소설의, 밑도 끝도 없는 피폐물 주인공의 엔딩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녀에게 빙의했다.

눈앞에서는 이 소녀의 16세 생일을 기념하는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아리엘라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귀한 별'에 걸맞는 아름다운 분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름다우신 황녀님께!'

'마족에게 몸을 판 창녀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지금과, 밑바닥까지 떨어진 두 기억이 합쳐진다.

그리고 그 끔찍한 기억들이 앞으로 내가 겪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몸이 멋대로 떨렸다. 지금 이 상황을 두려워하는, 내 것이 아닌 감정이 내 안에 공존해 있었다.


"아바마마. 송구하오나 소녀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먼저 일어나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도저히 이곳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가장 빛나는 곳이기에 더럽혀졌을 때 돋보이는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멋대로 흘러나온 아리엘라의 말투로 양해를 구한 뒤, 연회장에서 먼저 빠져나왔다.

원래 연약한 아이여서 그런지 갑작스레 창백해진 안색에도 그들은 아무런 질문 없이 나를 보내줬다.



"허억... 헉...."


처음 보는 세상에 방황하는 와중에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시야의 들어오는 풍경도 어째서인지 익숙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체력뿐이었다. 뛴 것도 아니고 조금 빨리 걸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숨이 차오르다니.


호흡을 가다듬고자 올려본 하늘에는 푸른 달이 떠있었다. 아직은 세상이 안전하다는 증거.

그 모습에 날뛰던 심장이 조금은 얌전해졌지만, 어차피 찰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3년밖에 남지 않은 병풍.


그리고 저 달이 핏빛과 같은 색으로 붉게 떠오를 때면, 나는 소설에서 보았던 아리엘라와 같은 운명을 걷게 된다.

내 몸, 내 감정, 내 말, 심지어는 생명의 자유마저 빼앗겨서는 노리개로 전락해버리는 운명.


나는 거기서 벗어날 것이다.

아니, 어떻게든 벗어나야만 했다.


"그래서... 대체 뭐부터 해야하지?"


하지만 적은 너무나도 강대했고, 아리엘라는 아직 힘없는 소녀에 불과했다.


다른 주인공들처럼 육체나 마법을 단련하기에는 아리엘라는 그런 분야로는 재능이 없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죽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