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고민하는 거라서 정리 겸 써봄.



좋은 개그가 무엇인가, 더 웃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는 논외임. 


개그는 매우 어렵고 재미를 느끼는 부분도 다르므로 정해진 틀이 없음. 


다만 실수를 덜 하는 방법 정도는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음.



개그 씬의 문제는 갑분싸임.


문제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기 전에는 웃긴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단 거임.

 

객관화가 안 된다는 거지.

 

글쓴이는 기껏 짠 개그를 꼭 넣고 싶음. 그러면 넣어야지!



어떤 개그를 치든 독자가 갑분싸하여 떠나지 않을 몇가지 기교를 생각해봤음.



개그의 거장은 어떻게 연출할까.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코미디언 겸 감독 중 하나는 우디 앨런임.


그의 첫 작품은 <돈을 갖고 튀어라> 임.

 

여기에서 여러 죄수와 탈옥하는 씬이 있음.

 

발찌 하나로 죄수 전부를 매달아놔서 탈주가 잘 안 되는 거임.

 

그런데 어떻게 탈주에 성공했다?

 

그 담에 어떤 건물 안에 들어감.

 

거기서 우디 앨런은 오랜만에 애인을 만남.

 

야한 걸 하려는데 서로 묶인 죄수들 때문에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인 거임.

 

그래서 우디 앨런이 막 개드립을 치는데, 죄수들이 헤헤헤 웃는 거임.

 

그것도 여러번에 걸쳐서 말이지.



그렇게 나쁜 개그가 아니었는데도 난 그 장면이 하나도 안 웃겼음.


안 웃기길 넘어서 어딘가 불편할 정도였단 말이지.



"뭐? 웃어? 이런 상황에서 웃는다고?"



이런 느낌이랄까.


즉 갑분싸라 이거야.



우디 앨런도 뭔가 깨달았을까?


이후 작품에선 그가 배치한 주인공의 개그를 보면서 웃는 내부 인물은 거의 나오지 않음.


웃긴 사건이나 장면은 작품 내에서는 심각하거나 심지어는 슬픈 상황으로 조성함.


그 장면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건 오직 관객 뿐이다.


<작품 내 세계에서 이 상황은 심각하다. 하지만 개그다.>


는 오래 전부터 써온 개그 태도임.


버스터 키튼이나 찰리 채플린도 모두 무표정함.


또한 그들의 처한 상황은 절박하거나 슬프고, 심지어는 비극적임.


그래도 우리는 피식피식하게 되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들 작품에선


"이 부분은 웃기려고 넣었는데 관객들이 그냥 넘어가더라고요."


라는 장면들도 많다고 함.


물론 그 부분을 캐치하지 못했어도 여전히 작품들은 재밌다.


몇개 스리슬쩍 넘어가도 전체 개그의 농도가 높으니 문제가 없는 것임.



개그 치는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넣을 필요는 없다.


최소한 인물들 간이나 작품 내적 상황은



"개그가 아니다." "인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 예시를 만들어보자.



A라는 인물이 개삽질을 함. 한두번이 아니라서 화가 머리 끝까지 찬 B가 이런 대사를 날리는 거임.


"네 삽질을 보면 부처님도 살생을 못 참을 거다."


라는 대사를 침. 여기서 작가는 이 대사가 매우 개그적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쓴 거임. 나도 안 웃김.)

 

이게 갑분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A가 이런 대사를 넣주면 됨.


"푸하하하 웃긴다~ 그게 뭔 말이야~"


맞장구 치지 말라고. 개그치려고 쓴 대사라는 게 드러나 보이니까.



/A는 놀라 입을 다문다. B는 평소에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단단히 열받은 모양이다./



라는 식으로 조금 심각하게 만드는 편이 나음.


이렇게하면 개그가 실패해도 큰 문제가 안 된다.


저 대사로 독자들이 웃어주면 좋고, 아니더라도 B의 새로운 일면을 보여줄 수 있음.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아재개그 할 때에도 느낄 수 있지 않나?


우리가 아재개그를 칠 때는 웃기려는 의도가 아니다. 상대의 경멸을 받기 위함이지.



"개가 재체기를 하면 뭔지 알아? 개추야, 개추. 푸헐헐~"



이랬을 때 상대가 경멸을 보이지 않고 꺄르르호호 하면 일단 의심부터 들지 않겠음?


오히려 섬뜻한 기분이 들 거임.


소설의 개그씬도 그렇게 섬뜻한 기분을 줄 수가 있음.


한 인물의 개그에 다른 인물, 그리고 작가도 동조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됨.



더불어서 작가는 개그를 칠 때 습관이 있을 수 있음.


말투나 어미가 바뀐다던지, 시제가 바뀐다던지, 아니면 츳코미를 넣는다던지.


예민한 독자라면 그런 습관을 캐치하기 마련임. 


그렇지 않더라도 개그는 매우 섬세한 것이므로 가능한 조심하는 편이 좋음. 



위에서 A가 "푸하하하 웃긴다~" 라고 갑분싸 대사를 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음.


옆구리 찔러서 웃으라면 웃을 수가 없는 법이다.


즉 가능한 평어체나 덤덤한 서술을 유지해라.



정리하면 이렇다.



1. 개그를 칠 때는 다른 효과를 섞어라. 개그가 실패해도 눙칠 수 있다.


2. 다른 인물이나 작가가 개그에 동조하면 안 된다. 그것이 갑분싸의 원천이다. 오직 독자만 동조할 수 있다.


3. 오바하지 않고 덤덤하게 서술한다.


출처: 개그 연출에서 갑분싸 방지하는 법. - 웹소설 연재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