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한 미지와 미개한 지식 속에서의 괴리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수십 개의 섬들, 모든 사람들이 발견되지 않은 신비의, 미지의 땅이라 불렀던 곳이었지만, 이는 그들의 오만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분명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알지 못했다는 우매한 이유 하나만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이 섬의 원주민들을 미개하다 부르고, 신기하다고 지칭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를 문명인이라고 부르던 이들은 미개하다고 굳게 믿는 이들과 공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 괴리는 방황을 낳을 것이며, 방황은 비극을 불러일으킬수도 있습니다.


누벨 오그를레비앙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류로그네다의 잔악한 발길 아래, 영토는 불살라졌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한 줌뿐인 생존자들과 식민지인 므위시음반자 제도뿐입니다.. 오그를레비앙의 군대는 패전의 노래를 부르며 참패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부러진 총검과 조각난 명예뿐입니다. 자국의 저항군들과 파르티잔들은 더 이상의 반동적 행위를 그만두었으며, 헤르만 통령의 강경적인 진압으로 다른 반항적 제스쳐 또한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희망 따위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타국에 뼈를 묻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조그만 제도에서, 울창한 정글과 밀림이 우거진 섬들 사이에서 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개한 므위시음반자 원주민들과 같은 숨을 내뱉고 겸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위생작이고 비문명적인 섬들의 군집에서 벌레들처럼 살아갈 바에는 죽거나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칼날은 우리와 원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질 것입니다. 침략자들의 증오와 절망은 해소하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오그를레비앙의 생존자들은 처참한 분위기 속에서 자멸하고야 말 것입니다.


콩퓨사이온 대륙의 북부 해안가에서 찬란한 문명과 섬세한 도시들을 가꾸었던 오그를레비앙은 경박하고 전쟁광에 불과했던 류로그네다의 군홧발에 지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처절하고도 극단적인 분란이 점령지에서 다분하게 발생하였지만 평화로웠던 도시들은 이미 잿더미로 변한 상태였습니다. 타이미르 제국의 압제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던 천년의 문명은 역사속으로 소멸하였습니다. 우리는 눈과, 코와, 입과, 귀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슬픔의 피를 흘립니다. 우리의 아름다웠던 과거는 사라졌고 더 이상 남아있는 자존심은 없습니다. 절망, 절망, 절망. 그 것을 제외하고는 할 말이 없습니다.


음울함은 살아남은 국민들의 지체들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긁어모은 보트들과 소형함선들에 몸을 실은 이들의 바닷길은 하늘마저도 저버렸는지 폭풍우와 해일을 불러와 험난한 또다른 환란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런 숱한 고난들을 헤치고 반겨온 것은 반가운 햇님과 휴가를 맞이하며 놀러온 환상적인 해안가가 아닌, 므위시음반자 식민지에서 거주하던 동포들에게 우울한 소식을 전해야 하는 끔찍한 일들이었습니다. 친구, 부모님, 아들딸, 형제자매의 전사통지서와 조국의 멸망, 그리고 파멸당한 오그를레비앙의 항구들을 설명해야 하는 일들은 이제 지긋지긋해졌습니다. 다시금 모든 생존한 므위시음반자의 오그를레비앙 국민들에게 알립니다. 오그를레비앙은 멸망했습니다. 우리는 멸망한 국가의 유일한 생존자들입니다.


고국을 탈환할 계획을 희망차게 세워보기도 했습니다. 므위시음반자에서 새로운 오그를레비앙, 바로 누벨 오그를레비앙을 세우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발버둥치는 우리를 비웃듯이 번번히 ‘우연’이라는 허수아비를 앞세워 방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희망을 체념했습니다. 우리는 여러번의 포기를 겪었고 이제 그 어떤 수단도 막혔으며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삭막의 숲 속을 헤맵니다. 눈밑은 초췌하며 눈동자는 심령주의자들이 말하는 ‘넔’이 나갔으며 모든 슬픔은 적응이라는 위화감 사이에서 사라졌습니다. 태연함, 그 단어만큼 두려운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모든 길이 막힌 지금, 오그를레비앙의 전사들이 해야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우리의 분노를 표출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으리라. 우리는 누벨 오그를레비앙 식민지에 있는 모든 원주민들을 죽임으로서 정신적인 자존감을 회복할 것입니다. 총구에서 화약의 냄새가 푸른 초목의 냄새를 뒤덮고, 피륙을 가르는 소리가 울창한 밀림을 뒤덮으며, 원주민들의 비명이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일 때, 우리의 절망과 음울은 그제야 눈 녹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므위시음반자 연합

수목의 푸르름과 청량하게 빛나는 바다의 푸르름에 둘러싸인 므위시와 다소 음침하고 어두우면서도 고대의 샤머니즘과 부두교를 바탕으로 신비롭게 자라난 음반자들은 근대의 철컹거리는 기계왕국들에게 지배당하고 착취당하기 전까지 두 대륙 사이에서 찬란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하얀 발자국을 백사장에 찍으며 해안가 아래로 내려온 이방인들은 음험하고 어찌보면 신성해보이는 옷과 배를 이끌고 찾아왔습니다. 므위시는 화합하고 음반자는 대적했지만 결국 므위시음반자는 힘을 합쳐 이방인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조상들과 선조들의 힘으로 대항하고, 정글의 영혼들과 연합하여 연대하여도 스스로를 신의 사도라 부르는 이들이 굉음을 내는 봉을 휘두르며 멀리서 보이지 않는 공격을 연달아 쏘아내는 괴물들을 내보내자 처참히 패배하였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쇠사슬로 묶였고 영혼은 노예가 되어 속박되었습니다.


간교하고 믿음없는 자들에게 노예로서 전락해버린 므위시음반자의 부족민들은 압제당하며 자유의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것만으로는 괜찮습니다. 단순 변심에 의해 사라져가는 물건과도 같은 파리목숨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인간인줄로만 알았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불행이 이지를 덮어버린 이후로 인간이기를 포기했습니다. 압제자들, 지배자들, 통치자들의 나라 또한 우리와 같은 처지가 된 이후, 므위시음반자의 지도자들은 독립의 열망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화해의 길을 터고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아닌, 같은 처지의 피해자로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꿈을 가졌습니다. 물론 이는 죄다 순진한 우리들의 멍청한 생각에 불과했지만 말입니다. 


오그를레비앙의 생존자들과 므위시음반자 식민지군이 힘을 합쳐 건설해 낸 누벨 오그를레비앙은 므위시음반자의 고혈 한 방울마저 털어내려는 건지 더 혹독하고 가혹하게 물적과 인적 자원들을 착취하였고, 더불어 모든 부족원들의 혈통마저도 끉어야 한다는, 말 그대로 절대로 이루어 질 수 없고 이루어 져서도 안되는 미친 행각을 저지르려는 경지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사상과 이상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화합할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오그를레비앙의 시민들과 같은 땅에서 살 수 없고, 선조들이 남겨놓은 음식을 먹을 수 없으며, 동일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없습니다. 가능했다면 공존할 수 있었을 테지만, 한 가닥의 가능성마저도 스스로의 절망이 세상의 좌절이라 믿는 오만함과 자신의 불행이 남에게서 나온다고 믿는 우매함을 가진 압제자들의 의해 잘려나갔습니다. 


비록 패배하고 이 조그마한 군도로 도망친 이들이지만 그들의 무기는 빈약한 화기로 무장하고 있는 우리보다 훨씬 월등하며 소수의 군함마저 보유하고 있습니다. 몇몇의 무장투쟁가들은 적의 적은 동료다라는 뜻 아래, 오그를레비앙을 멸망시킨 류로그네다 공화국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대륙인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고 혼탁한 탐욕의 향기는 도움의 손길을 곪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는 누벨 오그를레비앙 시민들의 화만 불러일으켰고 우리는 오직 자신의 손으로만 자국의 영토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므위시의 수장 벨지키야 뒤발리에르와 음반자의 수장 움베르토 멩기에트는 오랜 숙적 관계를 끊고 유대하여 잔혹한 오그를레비앙의 뒤발 (악마들)을 처치하고 쇠꼬챙이로 동족의 살을 꿰뚫는 잔인한 몬지타 (괴물들)을 죽이기로 맹세했습니다. 더 이상 무의미한 학살과 죽음은 없을 것입니다. 므위시음반자 연합의 영광은 조상들의 축복 아래에서 광영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단들, 섬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이방인들은 바다 너머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힘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도살장의 가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저들이 돌아가지 않고 부족민들을 학살하려 한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똑같이 대할 것입니다. 오그를레비앙의 생존자들이여, 선의는 선의로, 죽음은 죽음으로 갚으리니, 이는 므위시음반자 제도와 정글의 뜻이며 법칙입니다.